문학자료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한시

 

<한문학의 세계>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한시




Ⅰ. 들어가면서


 石洲 權韠의 시 세계를 살펴보려면 우선 그의 삶의 행적을 통해 살펴보는 과정이 요구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時한편으로 인해 죽게 된 시인을 이해하려면 죽음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생애와 죽음까지 불러들인 그의 시세계를 이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권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시 세계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개인적 감상의 차원에서 다가간 권필의 시 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권필의 시 세계


1.권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시


 권필은 세상의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 시인이었다. 그의 강직한 성격과 글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지 않는 성품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의 아버지 권벽은 세속 명리에 개의치 않고 평생 오로지 의연한 선비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었다. 권필의 형제들도 모두 성품이 곧고 글을 또한 잘 지었다고 한다. 권필은 6남 1녀 중에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둘째 인(韌)과 셋째 온(韞)과 함께 송강(松江) 정철(鄭澈)에게 나아가 글을 배웠다. 권필은 특히 정철의 사람됨을 사모하고 스승으로서 평생 존경하고 따랐다. 그래서 후에 정철이 조정의 음모로 귀양을 가게 되자 그의 죄없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벼슬길에 미련을 버리고 세상을 등진 채 살았다.(나이 19세에 초시와 복시에 거듭 장원했지만 한 글자를 잘 못 써 출방 당한 것이 과거에 다시 나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스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과 자신 역시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권필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말하길

 

나는 평소에 성품이 성기고 허탄하여서 세상과 잘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붉은 대문이 있는 커다란 부잣집을 볼 때마다, 반드시 침을 뱉고야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골목길의 오막집을 보면 반드시 그 둘레를 거닐며 돌이켜 보아, 팔베개를 하고 물을 마시면서도 그 즐거움을 세속과 바꾸지 않는 사람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라고 하고 있다.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 다는 것은 성격적 결함으로 인한 부적응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혼탁하게 흘러가는 세상에 따라가 어울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권필이 또한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가 이상하거나 괴이한 인물이어서 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권세를 움켜쥐고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 당대의 세도가들과 혼탁한 세상에 편승하여 살아가는 인물들을 멀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권필의 많지는 않지만 몇몇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애를 유지했던 사실과 그가 벗들을 향해 지은 시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가 사람을 싫어해서 어울리지 않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권필의 강직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두려워 하지 않고 꼬집어 비판 할 수 있는 성품은 그의 행적과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임진 왜란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조정에서는 왜군을 막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영의정 이산해는 서울을 버리고 피난 갈 생각만 했으며, 좌의정 유성룡은 왜군과 화해할 생각만 했다. 권필은 이들을 간신으로 칭하고 그들의 목의 베어 나라를 바로 잡을 것을 상소하였다. 또 한번은 어느 마을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서 이 사건의 재판을 질질 끌었다. 권필은 이런 불의에 대해 임금께 곧장 상소를 올리고 그 죄가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불의를 보고 타협할 줄 모르는 곧은 성품과 그것을 비판할 줄 아는 날카로운 정신은 그의 시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역사

詠史

戚里多新貴  외척들 가운데 귀하게 된 사람 많아

朱門擁紫微  붉게 칠한 대문이 궁궐을 둘러쌌네.

歌鍾事遊讌  노래 부르고 춤추며 잔치만 일삼고

裘馬鬪輕肥  가벼운 갖옷에 살찐 말을 다투어 사들이네

秪可論榮辱  잘사느냐 못사느냐만 따질 뿐이지

無勞問是非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 삼지도 않으니

豈知蓬屋厎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쑥대지붕 아래에서

寒夜泣年衣  추운 밤 쇠덕석 덮고 우는 백성들을


 광해군 때에 이르러서 외척들의 세도가 대단하여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하고 백성의 삶 역시 힘든 지경에 놓였던 것 같다. 자신들의 배만 따뜻하고 부르게 채우고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 그들의 횡포에 대해, 옳고 그름은 생각지 못하고 자기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당대 세도가들의 힘은 권필이라는 벼슬 자리 하나 갖지 못한 이에 비하면 매우 컸을 텐데 한 개인으로서 두려워 하지 않고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의 용기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충주석

忠州石效白樂天

忠州美石如琉璃  충주의 아름다운 돌은 유리 같아서

千人屬出萬牛移  뭇 사람들이 깨어내어 바리로 실어 가네

爲問移石向何處  그 돌들을 옮겨다 어디로 보내는지요

去作勢家神道碑  세돗집 신도비로 쓰일 거랍니다.

神道之碑誰所銘  비석에 쓰일 글은 누가 짓나요

筆力倔强文法奇  글짓는 법도 기이하고 붓 놀리는 힘도 세찬 분이라오 

皆言此公在世日  그 대감이 이 세상에 계실 적에는

天姿學業超等夷  타고난 성품이며 글 배운 것이 남보다 뛰어났죠.

事君忠且直  충성스럽고 강직하게 임금을 섬긴데다

居家孝且慈  효성스럽고 자애롭게 집을 보살폈구요.

門前絶賄賂  집 앞에는 주고 받은 뇌물 하나 없었고

庫裏無財資  곳집에도 모아 논 재물 하나 없었답니다. 

言能爲世法  말씀마다 세상의 법이 되구요,

行足爲人師  행실마다 사람들의 사표가 되었다지요.

平生進退間  나아가고 물러간 평생의 자취 속에

無一不合宜  합당하지 않은 일이 하나라도 있었나

所以垂顯刻  그러기에 이렇듯 아로새겨서

永永無磷緇  길이 길이 빛나게 하는 거랍니다

此語信不信  이 말을 믿든 안 믿든

他人知不知  남들이야 알든 모르든

遂令忠州山上石  충주의 산기슭 돌로 하여금

日銷日鑠今無遺  날로 쪼아내고 달로 깨어내어 남김없이 되었네

天生玩物幸無口  돌로 태어났길래 입이 없어 다행일테지

使石有口應有辭  돌에게도 입이 있었다면 할 말 많았으리라.


 이 시는 권필 시의 날카로움이 잘 드러난 풍자시다. 세도가에서 비석을 세우겠다고 돌을 옮겨가는 상황을 보고 지은 시다.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계없이 무조건 좋은 말로 비석을 치장하려는 모습을 보고 돌이 입이 없어 다행이지 만약에 돌에게 입이 있었다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재치있는 풍자시가 아닐 수 없다.


개싸움

鬪狗行

誰鬪與狗骨, 群狗鬪方狠  누가 개에게 뼈다귀를 주었나 / 개들이 몰려들어 사납게 다투네

小者必死大者傷,  작은 놈은 반드시 죽을 게고 / 큰놈도 다쳤으니

有盜窺窬欲乘釁.  도적은 엿보다가 그 틈을 타려하네

主人抱膝中夜泣,  주인은 무릎 끌어안고 한밤중에 우는데,

天雨墻壞百憂集.  비가 내리고 담장까지 무너져 / 온갖 근심이 모여드네.


 이 시 역시 정권다툼과 자기들 밥그릇 싸움만 일삼는 무책임한 이들을 풍자한 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더 많이 갖겠다고 아둥바둥 달려 들어 싸우는 이들을 '개'에 비유하고 그들이 그렇게 싸우는 동안 가뜩이나 고달픈 삶을 더 힘들게 견디어 내야할 백성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비가 내려 담장까지 무너져 근심으로 가득 찬 백성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그저 뼈다귀 싸움이나 벌이고 있는 그들을 꾸짖고 있는 듯 싶다.

 권필의 '느낀 바를 말할 줄 아는 시'는 광해군이 임금으로 있을 때 임해군이 반역을 꿈꾸었다고 하여 귀양 가게 된 사건을 보고 시를 지은 것에 이르러 절정을 향해 간다. 이 때 종실의 여러 친척과 집안 사람 백여명이 형벌을 받고 매맞아 죽는 옥사가 일어났다. 임해군도 끝내 죽게 되었는데, 이항복, 이덕형, 정구 등의 원로대신들이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여 임해군을 살려 내었다고 한다.


아우 왕자까지도 죽이다니

從來戊己可傷魂  예로부터 무오.기미년 일이/ 내 마음을 슬프게 했는데,

乙巳年間事更屯  을사년 이번 일은/ 더욱 참담하여라

千古留名兩學士  천고에 이름을 남긴 것은/ 두 학사이고,

九原含通一王孫  지하에서도 원통하기는/ 한 분의 왕손이로다.

是非袞袞終難定  옳고 그른 일이 어우러져/ 끝내 결정짓기 어렵고,

毁譽粉粉未易論  비난과 칭찬이 어지러우니 / 쉽게 논하지 못하겠구나

安得長風掃陰翳  어떻게 해야 시원한 바람 끌어다 / 어두운 구름 헤쳐 버리고,

高懸日月照乾坤  해와 달을 높이 뜨게 해서 / 온 누리를 비치게 할까


 친형 마저 반역자로 믿어 버린 광해군과 그렇게 하도록 종용한 외척들. 세상은 갈수록 혼탁해지고 어두운 구름 때문에 해와 달은 높이 뜨지 못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을 끌어다가 옳고 그른 일을 분별하고 비난과 칭찬을 적재 적소에 할 수 있게 하여 온 누리가 밝게 빛나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을  슬프게 읊조리고 있다. 당대에 대한 슬픈 넋두리와도 같지만 그 밑바닥엔 광해군과 외척들에 대한 비난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들이 옳지 못하기에 불의로 물들어 가는 세상은 슬픈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올바른 것, 자신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일이라면 그 어떤 세도가라도  틀렸다고 말 할 수 있는 곧은 정신과 용기가 그의 마음 속 깊이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이런 성품은 바른 말로 하여금 바른 시를 짓게 해 죽음에까지 그를 몰고 간다.  


임숙영의 과거 급제를 취소했다기에

聞任戊叔削科

官柳靑靑花亂飛  궁궐 뜨락 버들은 푸르르고 / 꽃잎은 어지러이 흩날리는데,

滿城冠蓋媚春暉  온 성안의 벼슬아치들은 / 봄빛을 받아 아양떠는구나

朝家共賀昇平樂  태평시대의 즐거움을 / 조정에서 함께 축하했는데,

誰遣危言出布衣  그 누가 위태로운 말을/ 포의에서 나오게 하였는가?


 이 시가 바로 문제의 시다. 이 한편의 시로 그는 시화(時禍)를 입게 된다. 이 시는 1611년 임숙영(任叔英)이 과거 시험에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광해군 폐정의 원인과 폐해를 낱낱이 열거하고 정치의 옳고.그름을 논하며, 권문세가의 부당한 행위와 왕실의 부정을 비난한 글을 썼는데 그 글이 뛰어나 과거에 합격을 했으나 후에 광해군이 이를 알고 과거합격을 취소시키는 파동이 일어난 사건을 비난하여 쓴 시이다.  이 일의 배후에는 광해군의 처남이었던 유희분이 있었다. 유희분이 외척으로 그 세도를 이용해 정권을 마구 휘두른 것이 이 사건을 생기게 한 근원적 원인이었다. 후에 광해군이 여러 대신들의 청으로 임숙영의 급제를 다시 허락을 했으나 이 사건을 보고 참지 못하고 권필이 이와 같은 시를 쓴 것이다. 궁궐 뜨락의 버들은 광해군의 처가인 유씨집안 형제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벼슬도 하지 못한 포의는 임숙영을 가리킨 말이다. 유희분이 이 때문에 권필을 매우 미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매우 드라마틱하게도 권필은 이 시 한 편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봉산군수 신률이 도둑을 잡아 매우 혹독하게 고문하였는데 도둑이 죽음을 늦추려고 문관 김직재가 모반하였다고 꾸며대었다. 그래서 김직재를 서울로 묶어 올렸다. 김직재는 또 황혁과 함께 진릉군을 새 임금으로 추대하려 했다고 거짓말 하였다. 황혁은 진릉군의 외할아버지였는데 황혁의 집을 수색하다가 문서 가운데서 권필의 이 시를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 유씨 형제들이 광해군에게 권필을 잡아다 국문하기를 청했다. 권필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좌의정 이항복의 간청으로 겨우 풀려 났으나 심한 고문으로 결국 44세의 나이로 죽음 맞게 된다. 


2. 한 인간으로서의 권필 -감동으로 만나는 그의 시 세계

 

그는 이마가 넓었으며 , 입술이 늘어졌다. 눈썹은 성겼는데, 그 풍모가 위대하고 기백은 호탕했다. 그는 꺼리낌없이 말을 했는데 ,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따금 우스갯소리를 즐기기도 했는데, 술에 취하면 말이 더욱 호방해졌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의 권필은 이따금 우스갯소리도 할 줄 알고 종종 좋아하는 벗들을 불러다 술을 마시며 시를 짓기도 하고  때때로 아내와 함께 오붓하니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형제가 보고파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해야 할 말, 자기가 느낀 세상의 잘못된 점들은 지적할 줄 아는 날카롭게 날이 선 비판은 찾기 힘든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런 권필의 모습이 여러 시를 통해 나타난다.


아내와 술을 마시며

夜雨雜詠 四首.

春宵小雨屋簷鳴  봄밤에 부슬비 내려 / 지붕 처마엔 물 흐르는 소리 들리니

老子平生愛此聲  노자가 평생토록 / 이 소리를 사랑했네

擁褐挑燈因不寐  베옷으로 몸 가리고 등불 돋우며 / 잠도 이루지 못한 채

對妻連倒兩三觥  아내와 마주 받으며 / 두세 잔 거푸 들이키네


 이 시를 읽으면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밤에 집에서 오붓하게 아내와 술을 한잔, 두잔 나누어 마시고 있는 다정한 남편으로서의 권필이 떠오른다. 좀 의외라 놀랐던 점은 조선 시대에 부부가 서로 대등하게 앉아 술을 마주 받아 마셨다는 점이다. 여성에 대해선 특히 폐쇄적인 사회로 기억되어서일까? 그래서 그런지 권필의 모습에서 아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 더욱 더 그에 대해 호감이 느껴지는 시이다.

의주에서 형님을 만나고

龍灣逢仲氏

京口分離後  서울에서 헤어진 뒤로

音書久杳茫  오래도록 편지 한장 없었네

相思今幾月  벌써 몇 달 서로 그리다가

玆會却殊方  하늘 끝에서야 오늘 만났네

雪裡生春色  눈 덮인 속에서도 봄빛은 피어나니

天涯似故鄕  하늘 끝이라도 오히려 고향 같구나

仍懷倚門望  문에 기대어 바라보노라니

喜極輒悲傷  기쁨이 다하고 문득 슬픔이 오는구나


 권필은 형제들 중에 특히 넷째 갑과 주고 받은 시가 많다고 한다. 이 시도 오랜만에 형을 의주에서  만나 지은 시이다. 형제간에 시를 주고 받았다는 것 자체가 왠지 흐뭇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다. 온 나라 안을 떠돌아 다니다 그립고 또 그리웠을 때 만난 형제. 그 곳이 낯선 이국의 땅이었을지라도 나의 핏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디디고 있는 땅이라는 것 만으로도 마치 고향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늘 끝이라도 오히려 고향 같구나"는 구절에서 형제간의 만남의 반가움과 사랑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리움과 반가움을 시로 나타난 권필에게서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솔직함도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 중에는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 많다. 반가워도 반가운 내색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할까? 마지막 시구 "기쁨이 다하고 문득 슬픔이 오는구나"는 오랜만에 만난 기쁨이 극에 이르니 그들 형제가 이토록 반가운 것은 그들이 헤어져 지내야 했던 현실의 슬픔이 새삼 떠오른 것이다.


술을 만나 벗을 생각하며

尹而性有約不來獨飮數器戱作俳諧句

逢人覓酒酒難致  벗을 만나 술을 찾으면 / 술이 날 따라오기 힘들고

對酒懷人人不來  술을 만나 벗을 생각하면 / 벗이 날 찾아오지 않네

百年身事每如此  한백년 이 몸의 일이 / 늘 이와 같으니

大笑獨傾三四杯  내 홀로 크게 웃으며 / 서너 잔 술을 따르네


 이 시는 가까운 벗 윤이성이 약속을 해 놓고도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홀로 술을 몇 그릇 마시면서 희롱삼아 지은 시라고 한다. 찾아오지 않는 친구를 탓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다소 장난기 있는 시구로 보고 싶은 친구가 오지 않은 서운함을 달래고 있는 듯 싶다. 한편에서 보면 벗과 술 한잔 기울이는 사소한 일도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평생 사람의 일이야 말할 나위 없지 않는가 하는 자조 섞인 쓸쓸함도 엿보이는 듯 하다.

 이렇게 아내와의 한잔 술에 기뻐하고 형제와의 만남에 감동하기도 하고 보고픈 친구가 오지 않아 외로움을 호소하기도 하는 소박한 인간 권필의 삶에는 세상에 섞일 수 없는 슬픔이 따라다녔다.


천향녀에게

贈天香女伴

仙姿不合在風塵  그대 선녀의 모습은 / 티끌세상에 어울리지 않아,

獨抱瑤琴怨暮春  홀로 가야금을 안고서 / 저무는 봄을 원망하네

絃到斷時腸亦斷  줄이 끊어질 제면 / 나의 애도 또한 끊어지는 듯,

世間難得嘗音人  이 세상에서 그 소리를 알아주는 이 / 참으로 만나기 어려워라


 티끌같은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그. 줄이 끊어지도록 열심히, 애타게 가야금을 타지만 아무도 그의 소리를 알아 듣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강직하고 꿋꿋한 성품의 그라도 메아리 없는 외침의 삶이 주는 공허함은 있었으리라...... 우리가 한 곡의 음악을 듣고 불러 마음의 슬픔과 눈물을 날려보내듯 권필도 이와 같은 슬픔과 공허를 시라는 마음의 음악을 지어 부름으로서 해소하고 위로했던 것은 아닐까?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幽居漫興 四首

老去扶吾有短笻  늙어 가면서 나를 붙들어 주는 건 / 짧은 지팡이뿐인데,

林居無日不從容  숲속에 살면서 하루도 / 고요하지 않은 날이 없다오.

淸晨步到澗邊石  맑은 새벽이면 걸어서 / 시냇가 바위에 이르니,

落日坐看波厎峯  해질녁까지 앉아서 / 물결 밑에 비친 그림자만 바라본다오.


 이 시를 보면 한 사람으로서 권필이 매우 측은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물결 밑에 비친 그림자만 바라본다오"에선 진한 슬픔을 느꼈다. 그는 맑은 새벽에 일어나 시냇가 바위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걸어갔을까? 해질 때까지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물결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조용한 숲속에서 오래도록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그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안타까움마저 일어난다. 조용히 다가가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며 '당신의 삶은 헛되지 않았어요. 힘내세요'라고 위로해주고  싶다면 너무 건방진 생각일까?


Ⅲ. 마치면서


 석주 권필의 시는 기이한 산봉우리에 구름이 이는 것 같고, 깎아지른 벼랑 위에 노을이 깔리는 것 같다.(임경<<현호쇄담>>)

  여장(汝章)의 시는 마치 뛰어난 미인이 화장을 하지 않고, 구름을 막을 듯한 목청으로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의 노래를 촛불 밑에서 부르다가, 곡이 끝나기 전에 일어나 가버리는 것 같다. (허균)


 위와 같이 평가되는 권필의 시를 850여수 중의 단 몇 수만 뽑아서 제대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의 삶의 행적과 그 삶 속의 날카로운 정신이 투영된 시를 통해 그의 정신을 이해하고, 한 인간으로서 살펴본 그의 시를 통해 그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의 삶과 시를 살펴보면서 점점 권필이라는 한 인간에게 빠져 들게 되었다. 처음엔 권필이라는 한 시인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호기심으로 그의 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시를 어떻게 썼기에 죽기까지 했는지,  목숨을 시 한수와 바꾼 그에 대한 다소간의 야유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시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조선 시대 선비에 대한 야유는 친밀감과 존경심 그리고 측은한 마음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 가 본 그의 극적인 죽음은 더이상 호기심의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호기심을 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슬픔으로 느껴졌다. 오래된 예전의 문학의 이해는 표면적 감상의 차원을 넘지 못하지 않을까 했던 다소 건방진 나의 편견은 권필이라는 시인의 삶과 시를 통해 깨어진 것 같다. 


<참고문헌>


허경진,  <마음의 때는 물로 씻기 어려워라>  청아출판사  1981

김상홍,  <한국 한시의 향기>  박이정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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