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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속과 용
홍태한
Ⅰ. 머리말
인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여러 동물들이 있다. 특히 십이간지라 불리는 열두 동물은 우리 한국인과는 친연성이 깊은 동물들이다. 오죽하면 사람의 운명이 어느 동물의 해에 태어났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었겠는가. 쥐, 소, 양, 말, 토끼 등을 비롯한 여러 동물은 가축으로 오랜 역사를 인간과 함께 살아왔을 것이고 쥐나 뱀 또한 우리네 생활 가까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물들로 때로는 숭배의 대상으로, 때로는 경원의 대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십이간지 중 실재하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상상 속에 존재하는 동물이 있으니 바로 용이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이 실재하는 다른 동물과 함께 십이간지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용이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는 뜻으로, 한국인들은 용이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동물이라고 믿었다는 의미이다.1) 따라서 우리 생활에서 용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이 발견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어서 ‘용’자가 들어가는 산들이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고, 설화 속에도 용에 대한 이야기가 다수 발견되며, 심지어는 용꿈, 용되었다 라는 말처럼 우리의 실제 생활 속에서도 용은 살아 있다.
왜 이렇게 용인가. 도대체 용은 어떤 상징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한국인들이 기층심리를 분석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한국 문화의 중요한 하나의 특질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 용에 대한 집중 분석이 이루어지는 이번 세미나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용을 발견하기는 어렵지가 않다. 용과 관련있는 사실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 글은 이 중에서도 범위를 한정하여 한국 민속에 나타난 용의 의미와 상징에 대해서 고찰하기로 하겠다. 이때 민속에 대한 개념 정립이 선행되어야 할 것인데, 민속의 개념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것은 논지와 관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상당한 논의가 진전되어 있어, 이 글에서는 민속의 개념을 통념적인 민속의 의미로 사용한다. 다만 넓은 의미의 민속에 포함될 수 있는 설화는 독립된 하나의 항목으로 다루어지고 있어서 이 글에서는 제외한다.
그 동안 용에 대한 상당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다.2)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용과 관련이 있는 민속 현상을 일별한 후 용의 의미를 정리하도록 한다.
Ⅱ. 한국 민속에 나타난 용의 모습
1. 마을 신앙에 나타난 용의 모습
마을 신앙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동 신앙이다. 서낭당, 산신당, 국사당, 장승, 솟대 등이 마을 신앙에 속하는데 숭배받는 대상으로 용이 존재하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용을 숭배하는 마을 신앙의 제의를 일반적으로 용왕제라고 부른다. 용왕은 바다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는 신으로 용을 인격화한 표현이다. 용왕제는 지금까지 조사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충청도, 전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행해진다. 각 지방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지만 제를 올리는 장소가 모두 물과 관련된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용왕이 바다를 주재하는 신이라면 바닷가에서 용왕제가 올려지는 것은 이해할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내륙 지방의 경우에도 용왕제가 거행되는데 이는 용과 인간의 친연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만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바다를 가져올 수 없고 그래서 주로 샘이나 우물에서 지내는 것이 관찰된다.3)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풍년이나 풍어, 일년간의 무사 항해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농촌에서의 풍년과 어촌에서의 풍어, 그리고 무사 항해는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즉 용에게 제를 올리는 것은 제의 담당층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이렇게 용이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은 서해안에서 고기잡이를 주관하는 신이 용이라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다음과 같은 서해안 지역의 용 설화는 용이 어촌 사람들의 생활과 직결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황룡은 서산 황금산 앞 바다의 신이고 청룡은 먼바다인 칠산 앞 바다의 신이다. 공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꿈에 이 황룡이 나타나 조기 떼를 걸고서 싸움을 하게 되었다며 싸울 적에 활로 청룡을 쏴 줄 것을 부탁한다. 다음날 청룡과 황룡이 싸움을 하는데 활을 잘 못 쏴서 청룡이 맞지 않고 황룡이 맞는다. 그날 저녁 꿈에 황룡의 아들이 나타나 내가 커서 청룡을 이겨야 조기를 빼앗아 올 수 있으며 그러자면 몇 백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과연 황금산 앞바다에는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4)
용은 이 마을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그래서 싸움에 이긴 용이 조기떼를 모두 몰고 가서 더 이상 앞바다에는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용이 조기잡이를 관장하는 풍어신이었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실수로 인해서 용은 사라지고 그 결과로 이 마을은 고기가 잡히지 않고 있다.5) 자신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조기잡이를 용이 관장한다고 믿고 그 용신을 숭배함으로써 그들은 풍어가 지속되기를 바란 것이다.
마을에서 용이 물과 관련하여 숭배되는 또 하나의 예를 경상도 지방의 ‘풋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 풋구는 한자로 草宴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풋구먹는다는 말이 사용된다.
예천군 통명동에서 거행된 풋구를 살펴보자. 샘의 물을 친 뒤 정화수, 시루떡 등의 제물을 차려놓고 제를 올리는데 제를 받는 대상이 바로 용 또는 용신이다. 용신이 비를 잘 조절하여 농사가 풍년이 들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특히 우물 속에 들어가 물을 치는 사람은 장수하고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이 있고, 실제로 이런 효험을 보았다는 사람도 존재한다. 통명동의 이러한 샘에 대한 관념은 평상시에도 작용하여 아들 낳기를 바라는 아낙네들이 이 샘에 와서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 샘 옆에 있는 노가지나무에 아이 팔기를 하여서 아이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것도 샘에 있는 용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풋구의 경우도 샘에 좌정한 용이 풍년이나 아들을 낳아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역시 풍년을 드는 것은 농민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며,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주는 것은 이전의 아낙네들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소임이었다. 그런 점에서 풋구에서 숭배되는 용은 민중들의 願望의 표현이다.
마을굿에서 용이 샘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용알뜨기라는 풍속을 낳았다. 용은 우물 속에 알을 낳고 그래서 제일 먼저 우물물을 떠온 사람은 재수가 있다고 여기고 우물물을 남보다 먼저 뜨기 위해 우물에 가는 것이 바로 용알뜨기다. 이러한 민속에서도 용이 물을 상징하고, 그 물을 통해서 사람들은 어떤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마을 신앙과 관련한 중요한 민속 현상 중의 하나에 기우제가 있다. 지금도 가물 때 행해지는 기우제는 지방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나 용과 관련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다. 조선시대 왕조실록을 보면 비가 오지 않을 때 호랑이 머리를 물 속에 넣었다는 기록이 몇 차례 발견된다. 용과 상극인 호랑이를 집어넣음으로 잠 든 용이 깨어나 노여워하면 비를 뿌린다는 믿음에서 호랑이 머리를 넣는 것이다. 또는 개의 머리나 피를 뿌린다고 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비가오지 않을 때 여자들이 고쟁이만 입고서 물을 흐리게 하고, 그렇게 하면 용신이 노여워해서 비를 뿌린다는 것도 용이 물, 나아가 생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용을 실제로 만들어 비를 비는 경우도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사정리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 경우 짚으로 용을 만들어 사랑채에 들여놓은 후 비가 올 때까지 징을 울리며 하늘에 치성을 드린다.6) 강원도 강릉에서는 흙으로 용을 만들어 비를 빌었다.7) 용에 대한 관념으로만 부족하다고 느껴서 실제로 용을 만들어 비를 비는 경우이다.
2. 무속 신앙에 나타난 용의 모습
무속 현상에서도 용의 모습이 발견되는 다양한 사례가 있다. 특히 바닷가에서 주로 행해지는 굿에서는 용과 관련된 굿거리가 존재하고 있다.8)
제주도 영등굿에는 용왕맞이 거리가 있다. 영등굿은 바람을 일으키는 신인 영등할매를 모시는 굿으로, 이때의 바람은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흔히 말하는 우순풍조해야 풍년이 든다는 말에서 바람과 농업의 관련성이 확인된다. 영등굿에서는 초감제와 불도거리가 행해진 후 용왕맞이가 행해진다.9) 용왕상 등 제상을 마련하고 용왕길이 마련됨으로써 용왕맞이 거리는 준비가 끝난다. 무당은 용왕과 영등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용왕질치기를 하고, 용왕문을 하나씩 열어서 용왕을 맞아들인다. 용왕문이 완전히 열려서 용왕을 모신 후에는 풍년을 가늠하는 씨점을 친다. 용왕맞이에서 용왕은 풍년을 주재하는 신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용왕을 영등할매와 함께 모시고 한 바탕 굿을 행한다.
이러한 용왕맞이가 죽은 이를 천도하는 굿에서는 조금 성격이 달라진다. 제주도 무혼굿에서 행해지는 용왕맞이는 용왕을 모시기 위해 길을 치우고 청배하는 점은 영등굿과 일치한다. 그러나 용왕을 맞아들이는 이유가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잘 인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데에서 구별된다. 길이 완전하게 닦여야 용왕과 용왕차사(거북차사)가 그 길을 통하여 망자의 혼을 잘 인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용왕문이 잘 열림으로 인해 영혼은 용왕국으로 들어가 고이 잠들 수 있는 것이다.10)
이렇게 용왕이 망자와 관련이 있음은 경상북도 영일군 강사리에서 행해지는 범굿에서도 발견된다. 범굿은 별신굿이라고도 불리는 굿으로 마을의 풍어를 위하여 행하는 굿이다. 여기에도 용왕굿 거리가 있어서 용왕님과 물에 빠져 죽은 영혼들을 불러 위로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행해진다. 용왕은 망자와 관련이 있으며 풍어를 주관하는 신이라는 의미이다. 거제도 별신굿에서도 이러한 요왕굿이 있다. 경남 거제군 죽림마을에서 행해진 요왕굿은 마을 사람들이 굴 어장을 잃은 후 무녀가 요왕굿을 하자고 권유하여 비로소 별신굿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요왕이 마을의 모든 어물을 관장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선뜻 요왕굿을 받아 들인 것이다11). 바다일이 잘되기를 바라고 수중 고혼이 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요왕굿은 결국 풍어를 위한 굿인 셈이다. 위도 띠뱃굿에도 용왕굿이 있다. 용왕을 모셔 놓은 후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한 후 차려 놓은 음식을 조금씩 떼어내어 바다에 던짐으로 끝나는 용왕굿은 다른 지역에서와 한 가지로 바다를 관장하고 풍어를 들게 해 주는 용왕에게 바치는 굿이다.
이러한 무속 현장의 여러 용왕굿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의미는 용왕이 마을의 풍어를 관장할 뿐 아니라 물에 빠져 죽은 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물에 빠져 죽은 이들의 혼을 반드시 불러서 위로하는 것은 사람들이 망자의 혼으로부터 해꼬지를 당하지 않으려는 한국적인 사고의 발상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용왕이 물을 관장하는 신이어서 항상 신적인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위로해주고 다독거려 주어야만 인간에게 유익함을 준다는 의미가 함께 있다. 이러한 것은 한국인들이 숭배하는 신은 인간과 같아서 잘 어르고 달래주어야만 인간에게 혜택을 돌려준다는 보편적인 신관이 깔려있다.
3. 가신 신앙에 나타난 용의 모습
가신 신앙은 집안에서 모셔지는 신으로 성주, 조왕, 업신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가신 신앙에서 용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우물과 관련된 관념에서 찾을 수 있다. 충청도 단양 지역의 경우 마을의 공동 우물이 아닌 집안에 있는 우물은 용궁과 통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항상 신령스럽게 대한다. 만약 우물이 부정을 타면 용신이 화를 내고 그러면 물이 그쳐서 더 이상 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우물은 앞에서 살펴본 물과 통하는 것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물과 용이 연결된 것이다.
용이 발견되는 가신신앙의 대표적인 것에는 경상북도 안동, 예천, 풍기 지방에서 모셔지는 ‘용단지’이다. 용단지는 대개 농경신, 재산신, 업신, 터주신으로 간주된다.12) 용단지는 용이 드는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하는데 여기 용이 든다는 말은 재산이 들고 가정을 잘 수호해주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개 용단지가 놓이는 자리는 부엌, 고방, 또는 돈궤를 놓아두는 다락 등이다. 여러 가신 중에서 농경신으로의 의미가 강한 것이 용단지로 그래서 성주, 삼신, 조왕 등은 건궁으로 모셔도 용단지만큼은 신체를 함께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13)
주지하다시피 업신은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지방에 따라서는 두꺼비, 구렁이로 상징화되기도 하며, 업둥이라는 말처럼 사람과 관련을 가질 수도 있다. 용단지를 업신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용이 재물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고, 이러한 관념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용이 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재물의 의미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문에 용자를 쓰거나 용 그림을 붙이는 것도 가신 신앙의 일부로 생각될 수 있다. 가신 신앙에서는 대문간에도 신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용 그림이나 용 글자를 써서 대문에 붙임으로 인해 대문간이 수호를 받는다고 믿었다.
4. 민속극에 나타난 용의 모습
민속극에도 용이 등장한다. 직접적으로 용이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영노, 비비, 이시미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유사용으로 이해된다.14) <동래들놀음>, <수영들놀음>,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등에 영노가 등장하는 마당이 있고 꼭두각시놀음에서는 이시미가 등장한다. 이 중 <동래들놀음>의 영노가 등장하는 마당의 한 대목을 통해 민중들이 용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살펴본다.
비비양반 :(이상하여 뒤돌아 영노를 보고) 늬가 무엇고?
영노 : 날물에 날 잡아먹고 들물에 들 잡아먹는 영노다. 양반 아흔 아홉 잡아묵고 네 하나 잡아 묵으면 등천한다.
비비양반 :(겁을 내는 표정으로 약간 뒤로 물러서며) 나는 양반이 아니다.
영노 : 그러면 뭐고?
비비양반 : 내가 똥이다
영노 : 똥은 더 잘 묵는다.
비비양반 : 내가 개다.
영노 : 개면 맛있고 더 좋다.
비비양반 : 내가 돼지다.15)
영노는 양반을 잡아먹어야 登天을 할 수 있는 존재로 표현된다. 양반은 잡아 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을 똥이라고 비하한다. 민속극이 조선시대 후기의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형성 발전되었다는 주장을 참고로 하면 영노에는 민중들의 양반에 대한 의식이 숨어 있다. 그들은 영노를 등장시켜서, 양반을 비하시켜 마침내는 양반이 똥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계속 궁지에 몰린 양반은 자신을 개, 돼지, 풀쐐기, 구렁이라고 더욱 비하한다. <수영들놀음>에서는 양반에 대한 풍자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영노는 계속 회피하는 양반에게 참 양반이 호령을 하면 물러가겠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양반은 엉뚱하게 자신의 문벌을 자랑하며 그래서 내가 참양반이라고 해서 결국은 영노에게 잡아 먹힌다16). 영노가 말하는 참양반과 양반이 인식한 참양반의 개념이 서로 다르고 그래서 양반은 비참하게 영노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용은 양반을 징치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민중들은 양반에 대한 징치를 용이라는 가상 동물을 내세워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용이 민중들의 대변자라는 의미이며 용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용이 除厄招福의 기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과 농업을 주관하는 속성이 있다면 민속극에 나타난 양반은 이러한 삶의 기본적인 영위를 방해하는 요소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된 양반의 모습을 용이 등장하여 치죄하고 있다.
5. 기타 여러 민속에 나타난 용의 모습
이와 함께 단편적이지만 몇 몇 민속에서도 용의 모습이 발견된다. 남원의 용마놀이, 대전의 용독기놀이, 무안의 용호놀이에도 용의 모습이 있다. 남원의 용마놀이는 남원군 산내면 달궁에서 행해지던 민속놀이로서, 용 때문에 풍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용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용마놀이를 했다고 한다. 용마를 만들어서 남부와 북부로 나누어 진행되는 이 놀이는 상대방 용마를 먼저 부수는 편이 이기는 놀이로서 북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이 있다.17) 무안의 용호놀이18)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어서 용과 호랑이의 다툼을 놀이화한다. 길놀이와 지신밟기를 마친 후 용호놀이가 행해지고 뒤를 이어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용호놀이는 일종의 싸움을 통한 祈豊 의례로,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싸움을 통해 풍년을 비는 의식이 여러 곳에 행해지고 있다.19) 다른 지방과 달리 무안에서는 용과 호랑이의 싸움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용과 호랑이가 서로 상극이어서 충돌로 인해 비가 내려서 풍년이 든다는 기우제의 관념과 통한다. 용호놀이에서도 용은 물과 관련이 있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빌기 위하여 줄다리기를 하는 경상남도 진주의 사례에서도 놀이와 용과의 관련성이 확인되는데 이는 용을 즐겁게 하여 비구름을 몰고 오게 하는 의도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20)
해몽에서 용은 상서로움을 상징한다. 용꿈을 꾼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말로 꿈에 용이 들어오면 사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용이 사람들의 소원을 성취해주는 대상임을 알 수 있다.
풍수 신앙에서의 용은 산을 상징한다. 산의 모습이 천태만상이어서 높고 낮고, 크고 작고, 호은 굽고 곧아서 모양이 일정치 않고 지척간이라도 옮김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므로 이런 형태는 용이 꿈틀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산을 용이라 부른다.21) 특이하게 풍수설에서는 하늘에 북극성이 있듯이 지상에는 산이 있고 그 산에 용이 산다고 믿는다. 그래서 산을 용이라 한다고 한다.22) 그리고 산이 풍수에서 기운을 모으고 정혈처를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 용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가 풍수 신앙에 반영되었음이 확인된다.
부적에서도 용자를 쓴 용부적은 영험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다. 용자를 먹이나 주사로 써서 사주와 이름을 기입하여 집안, 사무실, 사업장 등에 걸어두면 사업이 번창하고 가정이 화평하며, 특히 잡귀를 퇴치하고 만사 형통한다고 한다.23)
Ⅲ. 민속에 나타난 용의 상징 의미
이상에서 민속에 나타난 다양한 용의 모습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용이 가지고 있는 상징 의미를 규명하고, 그러한 용의 상징성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용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상징 의미는 물이라는 것이다. 마을 신앙에서 용이 샘을 관장한다는 것이나 바닷가에서 풍어의 대상으로 용을 숭배하는 것에서 물과 용의 친연성이 확인된다. 또한 용의 인격화라 할 수 있는 용왕이 거주하는 곳인 용궁도 바다 속에 있는 것으로 상상되고 있다.
물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아주 소중한 존재이고, 물의 상징인 용을 숭배하고 있다. 기우제의 대상신이 용이라는 것은 농업의 주재신으로서 용의 존재까지 상정할 수 있다. 이렇게 용이 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용의 우리말인 ‘미리’가 ‘물’이라는 말과 상통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물을 상징하는 용은 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으로 인해 생명이라는 의미로까지 확대된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고 稻作 농업국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물은 힘이고 생명력이 된다. 앞에서 살펴본 마을 신앙의 여러 양상도 용이 물을 상징하고, 그 기저에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이 발견된다. 우물에서 용알을 뜬다는 것은 결국은 용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을 가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물을 상징하는 용과 생명을 상징하는 용은 사실상 상통하는 관점이다.
기우제에서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물을 상징하는 용을 자극한다는 것은 만물의 생명력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풋구에서 우물을 침으로 인해 아들을 낳을 수 있고, 풋구와 관련이 없이 수시로 치성을 드려서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용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얻어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이러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용은 유감주술적인 맥락에서 남성의 성기로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용두질친다는 말에서 발견되는 용두-용머리의 의미이다. 남성의 성기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음을 옛 사람들은 믿었고, 이러한 남성 성기에 대한 관념은 남성 성기 숭배 신앙까지 낳게 했다.24) 성기를 숭배하는 신앙은 성기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에 대한 숭배로 확장되고 나아가서는 용을 생명의 상징, 남근의 상징으로까지 숭배하게 된 것이다.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 용이기 때문에 용은 풍년과 풍어까지를 주재할 수 있고 기자치성의대상으로 용이 존재한다. 그리고 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그 의미가 확대되어 재물을 관장하는 신의 의미까지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단지를 모시고, 용부적을 써서 복을 비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물이 생명력을 주고, 그 생명력은 재산을 준다는 믿음이 용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러한 양상을 동래 지신밟기의 사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신밟기 사설에서 용과 관련이 있는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어허여루 지신아 용왕지신 올리자
동방청제 용왕님 남방적제 용왕님
서방백제용왕님 칠년 대한 가물에 물이나 철철 실어 주소
구년 장마 홍수에도 물이나 철철 맑아 주소
잡귀 잡신은 물 알로 만복은 이리로
잡귀 잡신은 물 알로 만복은 이리로25)
용은 물을 관장하고, 농사의 풍흉의 관장하고, 나아가서 잡귀 잡신을 몰아내는 존재로 생각되고 있다.
물과 생명의 상징인 용은 그 생명력으로 인해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까지 확대된다. 바닷가에서 숭배되는 용왕은 단순히 어업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들을 관장하는 신으로까지 확장된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그런 죽은 이들을 위무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많은 천도굿을 행한다. 물에 빠져 죽은 이들을 위한 굿이 바닷가에 많은 것도 죽은 이들의 천도를 위한 의식이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죽은 이들을 주재하는 신이 바로 용왕이다. 무신도에 용왕이 용과 함께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용왕은 용의 인격화한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왕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물에 빠져 죽은 이들의 영혼까지 주재할 수 있는 존재이다.
힘을 가진 용왕의 존재는 정치적으로도 이용되어서 국왕을 상징하는 대상으로까지 확장된다. 중세사회에서 용은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의 신성성을 강화하는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백제의 무왕은 용과 사통하여 낳은 자식으로 전해지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지렁이(토룡)의 아들로 구전되는 것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의 할머니가 용녀였고 그래서 비범한 자손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제일 먼저 훈민정음으로 용비어천가를 창작했다는 것도 용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절대 권력에 이용했다는 의미이다.26)
용이 가지고 있는 힘과 생명의 의미는 피지배층에도 수용된다. 지배층에 대해 저항하는 피지배층은 용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저항 의식을 드러내었다. 아기장수 설화에서 지배층에 저항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아기가 죽었을 때 용마가 울며 나타났다는 것은 용이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식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용과 관련된 지명도 이러한 용에 대한 관념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민속극에서 영노를 등장시켜서 양반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마침내는 쓸모 없는 존재로 만들어서 잡아 먹어 버리는 것도 용이 가지고 있는 저항적인 의미의 표현이다.
물을 상징하고 생명력과 힘을 가진 존재로서의 용 상징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러한 것은 앞에서 살펴본 용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용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물을 주재하는 신적인 존재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바라는 소망을 이루어 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용왕을 모심으로 풍어가 들고, 샘을 침으로 인해 마을이 평안하고 아들을 낳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용이다. 둘째, 재물을 불려주는 존재다. 용단지를 통해 용이 가지고 있는 재물의 의미가 확인되고 문간에 용그림을 붙임으로 집안에는 더 이상의 액은 끼지 않는다. 셋째, 용은 보통과는 다른 차별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피지배층이 용마를 통해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식을 북돋우거나. 지배층이 용을 이용해 자신의 권능을 강화하는 것은 용이 가지고 있는 비범성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용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욕망의 상징이다. 그것은 현실의 어려움이 모두 극복될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힘을 의미한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고달픈 것이고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있어서 자신들의 어려움을 풀어주기를 강하게 바란다. 고등종교에서 여러 신들은 일반 민중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어떤 존재가 필요했다.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자신들의 삶에서 발생하는 생존과 관련이 있는 생계, 자손 잇기를 해결해주는 어떤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러한 막연한 관념이 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여 다양한 민속 현상에 받아들인 것이다.
용 상징은 이러한 절대성에 대한 희구에서 만들어지게 되고 생활 속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물을 관장하고 생명력과 힘을 가진 존재가 되어서 다양한 민속 현상에 그 모습을 남긴다. 그리고 용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힘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싶었고 지배층에서도 이러한 용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징표로 삼은 것이다.
민속에 나타난 용의 상징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열망 → 용 ← 물(농업)
↓
생명력
↓
힘
↓
현실변화, 차별적 이미지
Ⅳ. 맺음말
이상에서 한국 민속에 나타난 용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민속의 담당층인 민중은 예사롭지 않은 존재여서 자신들이 바라는 어떤 초월적 존재를 용으로 상정했음을, 그리하여 용은 탁월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고, 농업의 기반이 되는 물의 상징성과 결합하여 생명력과 힘을 가진 존재가 됨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힘있는 존재인 용을 수용하여 현실 변화를 시키려는 욕구를 나타내었으며, 지배층에서는 용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비범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이용했음을 규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용이 민속에 어떻게 다양하게 나타나는지를 여러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용의 기원과 관련이 없이 용은 우리 민족의 꿈과 현실에 대한 열망이 결합된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은 살아 있어서 그 이미지를 다양한 여러 사무로 변신하고 있다. 운동 선수단의 상징으로 용이 사용된다든지, 학교나 어떤 기관의 상징으로 사용된다든지, 또는 자신의 우월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신으로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용의 상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 민족과 용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민속이라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것이고, 이러한 민속의 성격에 맞추어서 용이 가지고 있는 상징 의미 또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화한다는 뜻이다. 용은 죽은 상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상징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며 나타나는 것이다.
민속 현상에서 좀 더 많은 사례를 수집하여 용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살펴볼 것을 앞으로의 과제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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