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료

양주 소놀이굿(무가연구)

敎科目名 : 巫歌硏究 / 指導敎授 : 이정재 敎授님

일시 : 2001. 5. 31.(木) / 발표자 : 권상호


楊州소놀이굿

1. 名稱과 由來

  楊州소놀이굿은 매년 4월 마지막주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京畿道 중앙 북부에 위치한 楊州郡 백석면 방성리 양주소놀이굿 전수회관에서 펼쳐진다. 금년에도 楊州郡 주관으로, 지난 4월 29일(日) 오후 1시에 擧行되었다.

  楊州소놀이굿은 1980년 重要無形文化財 제70호로 지정된 이후 매년 1회의 정기공연이 소놀이굿전수회관에서 시행되는 이외에도 각종 행사에 초청되어 數次의 公演이 이루어지고 있다. 1980년에 국립극장에서 최초 공연이 이루어진데 이어 國風81, 서울올림픽, 광주비엔날레, KBS 방송국 등에도 초청되어 공연된 바 있다.

  소굿․쇠굿․소놀음굿․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는 楊州소놀이굿의 起源에 대하여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현지의 演戱者들 사이에 그 유래에 관하여 여러 설이 口傳되어 오는데 대개 다음의 다섯 가지로 추정되고 있다. 첫째는 양주지방에서 신령스런 산으로 여기는 紺岳山의 紺岳祠라는 사당에서 나왔다는 것, 둘째는 豊年을 祈願하는 儀禮에서 나왔다는 것, 셋째는 소장수가 잘 되기를 비는 것, 네 번째는 宮中儀禮에서 나왔다는 것, 다섯째는 굿의 餘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등이다. 이들은 楊州소놀이굿의 어떤 性格을 말해주고 있으나 직접적인 기원으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楊州소놀이굿은 牛馬崇拜와 農耕儀禮인 소멕이놀이에 기원을 두고 巫俗의 帝釋巨里1)와 마마崇拜굿에 影響을 받아 형성된 演戱로 일찍이 農耕國家로 발달한 우리 문화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를 등장시켜 노는 놀이굿이며, 제석거리와 더불어 동네와 가정의 惡鬼를 쫓고 農事나 事業 또는 子孫이 繁昌하기를 기원하는 굿으로서 단순한 농경의식이나 巫俗에서 벗어나 일종의 娛樂的 성격을 갖춘 演戱이며 그 가사는 長篇敍事詩로 연희뿐만 아니라 文學的 측면에 있어서도 대단히 세련되어 있다. 물론 다른 지방에서 소놀이굿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현재 그 온전한 형태가 남아 있는 곳은 양주소놀이굿 뿐이다.2)

  韓國巫俗의 기능을 司祭, 占卜豫言, 巫醫, 娛樂藝能의 넷으로 구분한다면 ‘소놀이굿’은 그중 娛樂藝能的 기능에 속하며 儀禮에서 演戱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놀이라고 볼 수 있다. 양주소놀이굿은 소를 끌고 온 馬夫가 무당과 諧謔的인 才談을 하고 소의 각 부분의 치레를 소리로 하고 祝願, 德談을 나누는 것으로 演戱的인 특성이 강하다.

  소를 위하고 또 祭物로 쓰던 전통적 신앙관념이 조선왕조에 들어와 재수굿에 수용되고 그 성격상 제석거리에 부속되어 놀아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소놀이굿은 그러면서 점차 각종 打令과 놀이를 갖추고 조선조 후기에 오늘날의 演戱形態를 확립하여 전승되어 왔을 것이다.


2. 演戱 과정

  ① 길놀이

  소놀이굿은 길놀이로 시작되는데 樂士를 앞세우고 風物을 울리며 마을입구에서 출발해 공연장으로 입장한다.

  ② 소와 馬夫의 등장

  먼저 송아지가 춤추며 들어와서 이리저리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며 마당을 돌다가 굿당에 뛰어들어 巫女들의 입을 맞추면서 장난을 치고 뛰어간다. 나가던 소가 다시 돌아와 먼저보다 빠른 동작으로 마당을 돌며 才弄을 부리고 馬夫와 만신3)의 대화가 시작된다.

  ③ 帝釋巨里

  이후 만신의 제석거리가 시작되는데,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祭祀床을 마련하여 豊年이 들기를 祈願하는 만신의 제석거리로 막이 오른다. 만신과 장고치는 사람이 주고받는 만수받이4)가 끝난 다음 만신이 한바탕 춤을 추고 부채를 펴가며 소장수를 불러 才談이 시작된다.

  (축원-만수받이-재담)


만수받이: 

  어라제석 만신몸주 대신제석 대한제석 전제석여 제불제천 석가여래 세준제석

  해가돋아 일광제석 날이돋아 오광제석 빛이곱다 과살명예 자세치 고깔제석

  석자세치 전대제석 박아지 넝쿨제석 백항아리 어항제석 부리제석 신의제석

  삼제성님 이내하에 받으시고 기사년 해우년에 달로공사 某월某일

  某씨 가중에 소놀이 정성 받으시고 財數所望 이루소서

  ④ 馬夫打令

  元馬夫5)와 곁마부6) 등이 등장하여 소의 생산지와 절의 來歷, 소의 색깔 등을 살펴가며 재담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부타령이다. 帝釋巨里가 끝나면 장고 앞의 木斗에 콩을 수북히 담고 북어 한 마리를 거기에 꽂아 소고삐를 맬 말뚝으로 삼는다. 악사와 장고를 맡은 助巫가 마당을 향해 앉고, 굿거리장단이 울리면 흰고깔에 흰장삼을 차린 主巫가 오른손에 제석부채를 들고 마루 끝에 선다. 송아지가 먼저 들어와 놀다가 대문께로 가서는 마부와 소를 인도해 들인다. 고무래를 짚으로 싸서 머리를 만들고 멍석을 반으로 접은 속에 5․6인이 들어가 소를 가장한다. 송아지는 한 사람이 짚멍석을 뒤집어쓰고 논다. 원마부는 검은 戰笠에 남색 전복을 입고, 오른손에 삼신부채, 왼손에 고삐를 쥔다. 소놀이굿은 巫堂과 馬夫와의 대화, 馬夫의 打令과 德談 및 춤과 동작, 소의 동작 등으로 엮어지고 연희의 구성이 갖춰있다. 참여자는 무당과 마부 외에 樂士와 조무, 곁마부, 만든 소와 구경꾼들이다. 馬夫가 부르는 打令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馬夫가 唱하는 路程記는 神을 찬양하기 위한 것으로 대개 敍事詩的이다. 이 소놀이굿의 馬夫打令에 路程記가 있었다고 하나 巫夫 彭壽天씨가 자기 후계자인 高寬成, 禹龍辰씨에게 路程記 부분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하니 아쉬움으로 남는다.7)

  (원마부타령-곁마부타령-소지명-절내력-은자보물-소빛 내력)


원마부 打令:

  그누구라서 나를찾나 그누구라서 나를찾나

  기산영수 別乾坤에 소부허유가 나를찾나

  천하문장 김생월이 풍월하자고 나를찾나

  수양산 백이숙제 채미나로 나를찾나

  설중기기려 맹호연이 방매차로 차를찾나

  주중천자 이태백이 술을먹자고 나를찾나

  상산사호 옛노인이 바둑을두자고 나를찾나

  당명황에 양귀비가 후면화계 너른꽃밭 물을주자고 나를찾나

  풍풍우우 이첨자외에 날찾을이 없건마는 그누구라서 나를찾나

  그런데 왜 불렀나


곁마부타령: 

  원마부도 대령하고 곁마부도 대령했는데 어떤 마부를 찾으시오.

  외사부에 단영마부 내사부에 입번마부 죄편우편에 평마마부

  각영문에는 고마마부 어사부중에 말마분에 어떤 마부를 찾으시오


  위와 같은 소리들을 帝釋巨里에 이어서 놀고 있음은 巫歌와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독립되어 있다. 제석거리의 연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獨立된 하나의 演戱이다. 독자의 형식을 가진 소놀이굿이라는 놀이가 慶事굿인 제석거리와 결합되면서 지금과 같은 연희형태를 갖춘 듯 싶다.

  소거리굿 중에서 제석거리와 결합하게 된 이유로는 제석거리라는 것이 子孫의 繁昌과 壽命長壽를 빌고 豊年을 기리고 있다는데서 서로 무리 없이 융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⑤ 소의 마모색打令

  마부타령이 끝나면 마부의 마누라인 만신이 令監(元馬夫)을 불러서 소의 마모색(소의 생김새)을 물으며 진행되는 마모색打令이 시작된다. 마모색타령은 만신의 물음에 영감이 소의 머리부분부터 몸 전체에 대한 來歷을 打令調로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런 굿을 하는 도중 소장수가 나타나고 마부는 소장수와 소값을 흥정하는데 이때 만신이 소값을 가로채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머리치레-뿔치레-귀치레-눈치레-코치레-입치레-혀치레-이치레-꼬리치레-다리치레-굽치레-질마치장-굴레치장-마부치장-논밭갈기-글가르치기-부인치장-종자타령-말뚝치장-집치장)


머리치레:

  양금지평은 용머리요 양금문엄은 두머리

  용산삼계 누애머리 용대기 위에 용두머리

  서양사람은 노랑머리 우불고불 곱슬머리 너울너울 조바머리

  칠십노인 흰머리 늙은 마누라 쳇머리 낭자 쪽도리 큰머리

  이십안에 각시머리 당신의 응덩머리 제일인데 어떤 머리를 찾으시오.


뿔치레:

  우걱 뿔이면 작박뿔 별백힌 노구뿔

  쌍쌍을러 사족뿔 둘둘말어 방석뿔

  위로 뻗은건 천지각 옆으로 뻗은건 비녀불

  흑각니바는 물소뿔이요 개천 바닥에 새우뿔

  오뉴월 영천에 보기뿔 정월 보름엔 횃뿔인데

  어떤 뿔을 찾으시오.


3. 소 흥정

  굿을 하는 도중 소장수가 나타나고 馬夫는 소장수에게 큰 소는 오천냥, 작은 소는 칠백이른네냥이라 하고 소값을 흥정하는데 마부의 주장에 관계없이 마부 마누라 만신이 간섭하여 돈을 가로채어 세는 것으로 소 흥정은 마무리된다.

  (소흥정하는 대목-주모의 권주)


4. 意義

  양주소놀이굿이 전수회 회원들에게는 소놀이굿에 대한 남다른 愛着과 自負心을 가지고 하여 능동적인 자세로 전통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그리고 관련 지역 주민에게는 소놀이굿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하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 귀중한 無形文化財가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로 긍지와 호감을 가지게 하고 있다.

  일반 관람자들 역시 招請公演이나 定期公演時 연희의 遊戱的 기능에 興趣를 갖고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5. 楊州소놀이굿 保存

  양주소놀이굿은 양주의 巫夫 彭壽天(1901~1937)에 의해 이 지역에 전승되었다. 이미 1937년 세상을 떠난 박수였던 팽수천은 양주 소놀이굿의 中始祖로 전한다. 팽수천은 어려서부터 巫堂인 작은 어머니의 굿에 따라다녀 어정도 잘했고 민요와 잡가에도 능했었다 한다.

작은 어머니의 신딸인 무당 이씨와 재혼을 해서 무당서방이 되어 巫業에 종사한 인물이다.

그의 장기의 하나인 소놀이굿은 무속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민간전승의 놀이에 그가 무가를 첨가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팽수천의 곁마부로서 마부타령을 배운 白石面의 禹龍辰, 南面의  高寬成․ 吳福三  등이 작고하고 禹龍辰에게서 배운  趙萬奉도 타계하였으며, 그의 곁마부역을 맡던 金仁起와 악사 高熙貞이 보유자로 전승하고 있었는데, 김인기는 2000년 9월에 타계하였다. 현 보존회장은 김병욱, 부회장은 박형배, 총무는 정지광으로 모두 22명이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拜送굿과 소놀이굿, 한국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1968

소놀이굿과 巫歌 帝釋巨里에 대하여: 경기도 양주지방을 중심으로 한 농경의례의 고찰, 최길성, 1965, 고려대 석사

‘양주 慶事굿 소놀이굿’, 김수남외,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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