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료

거위와 바꾼 글씨(펌)

거위와 바꾼 글씨

[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116.

안견(安堅)의 용 그림이다. 작품은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품이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수백 점의 그림을 창작하였다. 안평대군이 꿈속에 보았다는 내용을 담은 <몽유도원도>는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몽유도원도>는 복사꽃이 만발한 평화로운 꽃동산을 웅장하고 환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상사회를 동경하는 작가와 후원자의 혼이 담긴 작품이다. 산을 그린 수법은 북송시대 화가 곽희(郭熙)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 안에 펼쳐진 농촌 풍경은 우리나라 현실을 묘사한 것이다.

 

석공은 화선지의 용을 돌에 새기기 시작했다. 한 해 여름이 다 지나갔다. 드디어 용이 위용을 드러냈다. 보통 여의주는 입에 무는데 신생 용은 왼발에 들고 있는 모습이다.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으면 금방 던져줄 것만 같은 기세이다. 용궁세계도 있다. 용궁에서는 좌선하고 있는 물고기도 있고 반대편에는 하늘세계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간경하는 물고기도 있다. 간경하는 물고기는 경을 읽다 숨이 가쁜지 물나팔을 연발하는 듯하다.

 

계곡물을 공급받는 분수(噴水)도 만들었다. 다슬기 형상으로 조성하여 분수공(噴水孔)에는 다슬기 혀를 통하여 물이 뿜어져 나오게 하였다. 보통 절의 수곽에는 물고기나 용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관세음보살의 소지품이 연꽃, 수레바퀴, 소라, 곤봉이라는데 착안하여 다슬기로 장식한 것이다. 다슬기는 직립이 아니고 피사의 사탑 같이 기울어져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 보라는 배려도 있다.

 

앞산과 뒷산도 있다. 뒷산은 덕산(德山)이라 명명하였다. 단출한 도량도 마련하였다. 운치가 더 한다. 주금강(周金剛)과 얽힌 주막도 있다. 주금강은 요기를 하고자 하여 주막에 들러 걸망을 내려놓았다. 떡 한 접시를 시켜 놓은 객승에게 노파가 말문을 열었다. 금강경과거의 마음도 없고, 현재의 마음도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없다고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심을 드시렵니까? 주금강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쩔쩔매고 있는 그에게 노파는 친절한 안내자가 된다. 드디어 용담숭신의 제가가 되어 덕산선감(德山宣鑒)으로 새롭게 태어나 선맥의 큰 줄기를 이룬다.

 

우리말로야 연못이나 못으로 표현하지만 한자의 표기는 구분이 된다. 못의 형태에 따라 달리 부른다. 원형이면 못 지()로 쓰고, 곡형이면 못 소()로 표현하고 있다. 연전에 마련한 못은 생김새로 보아 곡형에 가깝다.

 

못 이야기를 하니 불현 듯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07~365)가 생각난다. 그의 자는 일소(逸少)이고, 호는 우군(右軍)이다. 우군장군의 벼슬을 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왕우군이라고 부른데 연유한다.

 

그는 글씨체의 구조와 필법을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면서 손가락으로 옷에 한 획 한 획 그려보는 습성이 있었다. 마침내 옷이 닳아서 구멍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붓글씨 연습을 마친 후 붓과 벼루를 집 앞에 있는 연못에 씻곤 했는데 그 연못물이 다 검어졌다고 한다. 드디어 왕희지는 해서행서초서의 각 체를 완성했다. 왕희지의 글씨가 많이 사라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 태종이 그의 글씨를 워낙 좋아해서 죽을 때 천하에 있는 왕희지의 글씨를 수집해서 자기 무덤에까지 가지고 갔다는 설이 있다.

 

어느 날 왕희지는 도사에게 도교의 경전인 황정경(黃庭經)을 써 주고, 답례로 거위 한 쌍을 받았다. 여기에서 환아(換鵝)라는 말이 생겼다. 청나라 궐람(闕嵐, 1758~1844)이 그린 작품 화제(畵題)를 보면 뚜렷해진다.

 

書錄黃庭墨生彩

逸少妙筆換白鵝

 

잘 쓴 황정경의 먹빛은 광채가 나고

일소의 신묘한 운필은 흰 거위와 바꿨느니라

 

채색이 없는 묵향 속에서 연봉무지기 보다 빼어난 운필은 어디서 나올까. 평소 한 획 한 획에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서체에 있다. 보통 사람은 몇 번 읽는다거나 몇 번 써보는 것으로 익혔다고 책장을 넘기는 배냇버릇 같은 습성이 만연해 있다.

 

누구라 할 것이 없다. 나의 어린 시절만 해도 그렇다. 천자문(千字文)을 임서(臨書)할 때 일이다. 한 획 한 획을 검증받지 않고 진도 나가기에 급급했으니 결구(結構)가 엉성했을 것이다. 속도만 추구하다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만다. 냇가에 나가 붓과 벼루를 씻어 그 물이 냇가를 검게 물들인 사실도 없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일소와 견줄만한 서성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도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속도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은 생각할 점이 있다. 신기루 같이 순간순간 보였다 사라지는 화면에 매달려 성과만 올리려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좀 느리고 더디지만 책장을 넘기는 여유가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차에 묻은 흙더버기를 닦아내기 위하여 세차장에 가듯이 마음에 덕지덕지 낀 번뇌 더버기를 씻어내기 위하여 우선 파란 창공에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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