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자료

[한자학강의-2]書體의 變遷

漢字의 뿌리를 찾아서

                                                 塗丁 權相浩의 漢字學 교실

 

1강: 書體의 變遷

 

  漢字(한자)의 원류를 살펴보면 중국의 上古時代(상고시대)에 속하는 夏(하), 殷(은), 周代(주대)에 사용하던 문자는 甲骨文(갑골문)과 金文(금문)이었다. 갑골문은 거북의 배뼈와 소의 견갑골(肩胛骨) 등에 새겨졌으므로 원래의 명칭은 '龜甲獸骨文(귀갑수골문)'이라 하는데, 이를 줄여서 흔히 갑골문이라 한다. 金文(금문)은 쇠로 만들어진 종이나 솥에 주조되어 있으므로 鐘鼎文(종정문)이라고도 한다. 그 후 秦(진)나라의 始皇(시황)에 이르러서 참다운 政治的(정치적)인 統一(통일)을 보게 되는데, 政治統一(정치통일)은 곧 文化統一(문화통일)을 가져왔다. 문화통일을 이룩했다는 것은 度量衡(도량형), 화폐(貨幣) 및 文字(문자) 등의 통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러 제도의 시작이 이 황제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여 특별히 ‘시작할 始(시)’자를 붙여 始皇帝(시황제)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中國(중국)이 서구에 처음 알려져 오늘날까지 CHINA로 불리어 지고 있으니, 이는 곧 秦(진)의 음을 빌린 것이다. 진시황은 기존의 모든 서적을 불사르고 전국의 이름난 선비들을 불러 모아 땅에 묻어 버리는 이른바 焚書坑儒(분서갱유)를 자행하여 유사 이래 최고의 실권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문자에 있어서 이때까지 사용해 오던 甲骨文(갑골문)이나 金文(금문)을 없애버리고 정책적으로 문자를 통일했으니, 小篆(소전)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중국의 문자를 통칭 漢文(한문)이라 하는 것은 秦(진)나라에 이은 강력한 漢(한)나라에 이르러 許愼(허신)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文(문)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文(문)은 문자(文字)라고 할 때의 문이다. 이어 唐(당)대에는 詩(시)가, 宋(송)대에는 사(詞)가 확립되었으며, 元(원)대에는 戱曲(희곡)이, 明(명)과 淸(청)에서는 각각 小說(소설)과 隨筆(수필)의 완성을 보았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仰韶文化 - 彩陶

* 龍山文化 - 黑陶 

   夏 --- 鳥跡文字, 結繩文字, 八卦

   殷 --- 甲骨文[龜甲獸骨文]

   周 --- 金文[鐘鼎文]

春秋戰國時代(韓,魏,趙,燕,齊,楚,秦) - 大篆(石鼓文)

--- 小篆(李斯) -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 隸書. 文章, 곧 漢文이 중심

 +- 東魏 - 北齊 -+- 五胡十六國 - 北魏 -+- 西魏 - 北周 --+-- 隋

三國(魏·蜀·吳) - 西晉 - 東晉(王羲之) - 宋 - 齊 - 梁 - 陳 -+-

   草書·楷書·行書 → 書體의 완성. 이후는 變用 단계

--- 詩가 중심1)

                  +- 金 -+

五代十國 - 北宋 -+- 南宋 -+

--- 詞가 중심

--- 戱曲이 중심

--- 小說이 중심

--- 隨筆. 考證學의 발달.

中國 ―- 簡體字 사용

    * 漢字不滅 中國必亡(魯迅)

 

  여기에서 다시 漢(한)나라의 許愼(허신)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허신은 '說文解字(설문해자)'를 지어 그 속에 9535자를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說文(설문)이란 말 그대로 '文(문)을 說明(설명)하다'는 뜻으로 文(문)은 곧 象形(사형)과 指事(지사)를 가리키고, 解字(해자)란 '字(자)를 풀이하다'는 뜻으로 字(자)는 會意(회의)와 形聲(형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文字(문자)'의 '文(문)'은 본디 紋(무늬 문)의 뜻으로 獨文(독문)이고, '文字(문자)'의 '字(자)'는 '(면)(갓머리, 지붕 면)' 밑에 '子(자)'자가 合하여 이루어진 글자인데, 곧 지붕 밑에서 '子息(자식)들이 불어나다'의 뜻에서 '글자가 불어나다'의 의미로 발전한다. 따라서 '字(자)'는 '文(문)'과 '文(문)'을 합하여 만들어지니, 이른바 合字法(합자법)에 의하여 불어난 글자를 가리킨다.

 

  '文(문)'은 본디 物(물)의 무늬를 나타낸다. 그러나 '文字(문자)'라고 할 때의 '文(문)'은 象形(상형)과 指事(지사)에 해당하는 글자에서 보듯이 한 글자가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는 獨文(독문)을 가리킨다. 그러나 '字'는 '文'과 '文'이 부딪혀 또 다른 事狀(사상)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보는 쪽이 정설이다. 文의 限界性(한계성)을 字로 극복하여 漢文字(한문자)는 무한히 수와 의미의 다양성을 가져오는 것이다.

 

  '說文'을 잘하면 '解字'는 쉽게 터득할 수 있다. 孔子(공자)는 文을 貫道之器(관도지기)라 하였다. 곧 文은 道를 꿰뚫는 그릇이라는 뜻인데, 文의 중요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2)

 

  文은 보통 500文으로 본다. 곧 500글자의 文이 있다. 이 文이 모여서 字가 되는데 이 字의 숫자는 무수히 불어난다. 그러나 500文만 철저히 연구하면 자에 대한 이해는 쉬워진다.

 

  예컨데, '人'이란 文만 알면 '仁'이란 字의 音이 '인'임을 알 수 있고, 거기에 둘이란 二자가 붙어서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생활해 나가면서 서로 사랑하고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는 데서 '어질다'의 뜻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北'자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모양으로, 여기에서 두 사람이 서로 '등지다', '달아나다'의 뜻으로 발전해 간다. 게다가 오랑캐들을 쫓으면 북쪽으로 달아나기에 '북쪽'의 뜻으로 확장된다. 사람의 등을 나타내는 背자, 두 사람이 서로 키를 견주는 모습인 比자, 두 사람이 짝하여 얼리어 누워 있는 모습인 匹자 등이 모두 人이란 文에서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人-> 仁-北-背-匹

 

이란 글자는 +止+隹 3개 文이 모여서 하나의 字를 이루고 있다. 새는 날아가다가 쉬곤 하지만 뒷걸음질하지는 않으므로 곧 '앞으로만 나아가다'는 뜻에서 '나아갈 진'이 되는 것이다.

 

  (착) = (척, 行의 뜻)+止. (척, 가다가)+止(그치곤 하는)+隹(추, 새의 뜻) = 進

 

  '日'이란 文만 알면 早(새벽 조), 旦(아침 단), 東(동녘 동),  旭(아침 해 욱), 明(밝을 명), 昌(창성할 창), 昱(빛날 욱), 昊(하늘 호), 杳(어두울 묘), 昏(어두울 혼), 時(때 시), 晴(갤 청), 旬(열흘 순) 등의 字도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유추해 나갈 수 있다.

 

  日->早-旦-東-旭-明-昌-昱-昊-杳-昏-時-晴-旬

 

  원래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 사물이 먼저 있었고, 또 그에 따른 名이 있었다.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보고 중국음으로 [위에]라 발음하고, '月'이란 문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두 마리라 생각하여 사이에 가로획을 두 번 그었고, '夕'자는 산 위로 달이 반쯤 떴을 때를 가리키는지라 토끼가 한 마리만 보이기 때문에 橫劃(횡획)을 한번만 그은 것이다. 그리고 '朗(밝을 랑)', '望(바랄 망)' 등의 글자도 그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夕-月->朗-望

 

  象形字(상형자)의 예로서 '日'이란 文을 살펴보자. '日'자는 원래 둥근 모습이었으나 모나게 바뀌었다. 그 이유는 붓으로 글자를 쓰기 이전에 칼로 글자를 새기는 刀筆文字(도필문자)가 선행하였는데, 칼로써 나무나 돌에 둥근 획을 새기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둥글 圓(원)'자도 둥근 원이 없이 모나고, '돌 回(회)'자도 어쩔 수 없이 모나게 썼음을 볼 수 있다. '日'의 가운뎃점은 '까마귀'를 나타낸다.

  '까마귀 烏(오)'자를 '새 鳥(조)'자와 비교해 보면 점 하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까마귀는 눈이나 털이 모두 까맣기 때문에 눈동자를 알아볼 수 없었고 따라서 '烏'자에는 눈동자를 나타내는 點이 하나 부족하다.

 

  日->圓-回     烏-鳥

 

  '文'이 생기기에 앞서 '文'이 가리키는 사물의 '名'이 먼저 있었다. 사물의 이름을 뜻하는 '名'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동서양 언어에도 문장 구조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차이는 서양의 말은 동사 중심의 언어이고, 동양의 말은 명사 중심의 언어라는 사실이다. 동양은 農耕社會(농경사회)이었기 때문에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람의 성품도 정적이고, 농사를 주로 하다가 보니 자연히 시간을 중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양은 狩獵社會(수렵사회)이었기 때문에 저절로 이동생활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람의 성품은 동적이고, 수렵을 주로 하니 자연히 장소를 중시하게 되었으며, 장소를 따라 이동하면서 살아가니 상공업의 발달을 보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람과 사귀는 절차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먼저 얼굴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성격을 알아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한자 학습에 대입시켜 보면 얼굴은 '形(형)'이고, 이름은 '音(음)'이며, 性格(성격)은 '義(의)'에 해당된다. 흔히 形, 音, 義 이 세 가지를 漢字의 삼요소라 하는데 모양(形), 소리(音), 의미(義)가 그것이다.

 

  漢文은 글자 만들기의 기원이 사물의 모양을 본떴기 때문에 象形文字(상형문자)이며, 한편 소리 기호가 아니라 의미 중심으로 나타내었기 때문에 表意文字(표의문자)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한문 혼용 덕택에 표의문자적인 요소와 표음문자적인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漢文이 표의문자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고 표음문자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이를테면 漢文의 75% 정도가 六書(육서) 중에서 形聲(형성)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漢字가 모양만 보아도 대부분의 글자는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형성에 해당하는 글자는 표의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성이라고 하여 반드시 소리 부분과 뜻 부분이 꼭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대개의 경우 형성자라도 회의자의 기능을 갖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일러 '形聲多兼會意(형성다겸회의)'라고 말한다.3)

 

  例컨데, 鴨, 鳩, 鴻, 雁 등의 글자는 形聲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압, 구, 홍, 안]으로 읽는다. 그런데 鴨은 오리가 울 때의 소리를 흉내내어 '甲'자를 붙였고, 비둘기도 그 울음소리를 흉내내어 앞에 '九'자를 붙였으며, 큰기러기는 강 위를 날아가므로 鴻자에는 '江'자를 붙였고, 작은 기러기는 언덕 위를 날아가므로 '雁'자에는 언덕의 의미를 나타내는 '(언덕 한)'자가 있으니 형성에만 그치지 않고 회의자의 요소가 충분히 들어있다고 본다.

 

  鴨-鳩-鴻-雁

 

  다음으로 會意字에 해당하는 글자를 살펴보자. 友, 及, 殳(창 수, 갖은등글월문), 急, 級 등의 글자들은 모두 又[손]과 깊은 관계가 있다. '友'자는 '又+又'로서 손과 손을 맞잡고 뜻을 같이 하는 사이, 곧 '벗'을 나타낸다. '及'자도 '又+人'으로 분석되며 곧 뒷사람의 손이 앞사람에게 미치는 형상에서 '미치다'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投(투)'의 몸에 해당하는 '殳(수)'자는 '几(궤)+又'로 이루어졌으며 오른손에 들고 있는 기다란 무기란 뜻에서 '창'이란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急'자는 '心(심, 가슴)'에 들어오는 '刀(도, 무기)'를 '(계, 손)'으로 막아야 할 정도로 급하다 하여 '급하다'의 뜻이 되었다. '級(급)'자는 전장에서 무기로 적의 머리를 벤 등급을 '糸(사, 실)'로 나타내었다고 하여 '等級(등급)' 또는 '階級(계급)'이라는 뜻으로 되었다.

 

  又-友-及-急

 

  갑골문[殷文:은문]은 1899년 중국대륙 하남성 殷墟(은허)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글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활을 잘 쏘는 東夷(동이), 아니면 창 잘 만지는 西戎(서융), 키가 작은 南蠻(남만), 아니면 사냥 잘하는 北狄(북적)일까? 아마도 文을 만들 줄 아는 민족이라면 東夷族(동이족)이리라.4)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한글 專用論者(전용론자)와 國漢文混用論者(국한문혼용론자) 사이에 상당한 의견 대립이 있으나, 어쨌든 교육부에서는 1800자의 한문교육용 기초한자를 정하고 중학교에서 900자, 고등학교에서 900자를 각각 가르치도록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중국의 문자개혁의 배경을 살펴보면 역시 엄청난 진통을 겪어왔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1949) 후 인민대중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새로운 정보와 문화에 접할 수 있도록 하려면 文盲退治(문맹퇴치)가 급선무였다. 중국에서 문맹률이 높은 이유는 한자가 어렵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한자를 개혁하기에 이르렀는데, 1952년에 中國文字改革委員會(문자개혁위원회)를 발족, 1955년 異體字(이체자)를 정리하고 1053자는 폐지, 1956년 한자 '漢字簡化方案(한자간화방안)' 공표, 그리고 1964년에 이르러서야 '簡化字總表(간화자총표)'를 확정 발표하기에 이른다. 간체자 사용은 기실 1955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이후 1982년의 조사에 의하면 중국 전국민의 문맹률은 23%라는 통계이고 보면, 전반적으로 한자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兒(아이 아)'자를 '(사람 인)'자로 대신 쓰고 있으니, 중국의 아이들은 머리가 다 떨어져 나가고 없다는 유머도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도 대학교수 정도의 지식인이라고 해도 일만 자 이상은 알기 힘들다고 한다. 사용 빈도가 높은 순서대로 한자 통계를 내 본 결과, 950자만 사용하여도 90%까지 의사를 나타낼 수 있고, 2400자를 사용하면 99%, 3800자를 사용하면 99.9%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자개혁작업에서 뜻과 음은 같고 글자 형태만 다른 이체자등 천여 자를 폐지하고, 또한 필획수가 많은 한자의 획수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줄여 2천여 자를 간화하였으나, 한자가 복잡하고 어렵기는 여전하다.

 

  1986년, 全國語言文字工作會議(전국어언문자공정회의)의 폐막식사에서 5·60년대에 한자 개혁의 기치였던 '簡化(간화)에서 聲化(성화)로'의 작업은 중단한다는 선언이 있었다.

 

-------------------------------- 주

1. 詩는 思와 情의 表現인데, 思는 머리의 作用이고 情은 가슴의 作用이다.

2. 物有本末과 事事終始를 밝히는 일을 貫道라고 한다.

3. 한자의 三要素는 形[모양] . 音[소리] . 義[뜻] 세 가지인데,

   '說文解字'는 形을 중심으로,

   '廣韻'은 音을 중심으로,

   '爾雅'나 '釋名'은  義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4. 漢字의 뿌리인 甲骨文을 우리의 선조들이 '殷(은)'을 세우고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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