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자료

노원신문 5 - 노원신문 칼럼- 필받다 : 반안반심(半眼半心)

반안반심(半眼半心)

 

도정 권상호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부모, 조국, 고향, 모교 따위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임의대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주소, 물건, 취미, 종교 따위는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 이럴 때, 늘 고민하는 대상 두 가지는 배우자와 친구이다.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

  판단이 서지 않을 때, 그 해결 방법으로 반안반심(半眼半心)을 제시한다. 반은 눈으로 보고, 반은 마음으로 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반은 육안(肉眼)으로 보고, 반은 심안(心眼)으로 보란 말이다. 맨눈으로만 보면 판단에 오류가 많으니, 마음의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어떤 물건을 사러 시장이나 백화점에 들렀다가 나올 때는 전혀 엉뚱한 물건들만 손에 들고 나올 때가 있다. 이는 육안에 홀렸기 때문이다. 아내나 남편의 모습이 살아갈수록 밉게 보인다면 이 또한 육안에 홀렸기 때문이다. 첫 만남으로부터 오랜 세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한 배우자나 친구를 심안으로 바라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잘 발효된 감동의 만남을 누릴 수 있다.

  오늘은 ‘눈 안()’ 자에 대하여 살펴본다. ()은 ‘눈 목() + 그칠 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은 그야말로 겉에 드러난 외관상의 눈을 가리키고, ()은 안에 있는, 안 드러난, 시각이 그친 부분, 안구의 끝 부분, 수정체를 지나온 빛이 상으로 맺히는 망막을 가리킨다. 시신경이 모여 있는 망막을 조정해 주는 거울이므로 안경(眼鏡)이라 한다. 목경(目鏡)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 자의 옆에 붙어있는 ‘간() 자’는 주역의 간괘(艮卦)로 산()을 가리킨다. 금문의 간() 자는 ‘目 밑에 人’이 붙어있다. 더 나아갈 수 없는 끝인, 산을 보고[] 놀라며 좌절한 사람[]의 모습이다. 따라서 艮은 ‘끝’을 가리킨다. 마음의 끝은 ‘한할 한(), 나무의 끝은 ‘뿌리 根’, 흙의 끝은 낭떠러지 은(), 땅의 끝은 ‘경계 한(), 백성이 가질 수 있는 금속의 끝은 ‘은 은(), 따라서 눈의 끝은 眼이 당연하다. 한계에 부딪히면 ‘물러날 퇴(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정한 이치이다. 이 같이 안목(眼目)을 조금만 넓히면 모든 한자가 웃으면서 다가온다.

  세상을 육안(肉眼)으로 보면 명암(明暗)만이 나타나므로 선악(善惡), 시비(是非), 빈부(貧富), 여야(與野), 보혁(保革) 등의 갈등(葛藤)의 대립 구조로 보게 되어 싸움밖에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심안(心眼)으로 보면 대상의 속을 헤아릴 수 있게 되므로 화해(和諧), 협상(協商), 절충(折衷), 양보(讓步), 타협(妥協) 등의 화합(和合)의 통일 구조로 보게 되어 평화(平和)밖에 모르는 행복한 바보세상(?)을 이룩할진저.

  지위가 올라가더니, 돈 좀 벌더니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었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에 진입하더니 안하무국(眼下無國)이란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

  오늘따라 눈 속에 그리운 사람, 늘 생각나는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그런 안중지인(眼中之人)이 그립다. 찾아가 빙긋이 웃고 싶다.

  하지만, 순간 밴쿠버에서 들려오는 동계올림픽 금메달 소식에 모든 걸 접고 TV 앞으로 달려간다.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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