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자료

노원신문 10 - 화간시주(華間詩酒)

花間詩酒(화간시주)

 

도정 권상호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漑)를 구경을 가세.

 

  작자 미상의 유산가(遊山歌)는 이렇게 시작한다. 봄이 오자 성 안에는 꽃이 만발하여 화려하고, 만물은 바야흐로 기지개켜고 자라나누나. 화창 이때를 놓칠세라 친구을 불러 산천 경치를 구경가자는 노래이다.

  봄 경치의 특징은 아무래도 꽃 花()에 있다. //라고 발음할 때의 입 모양의 변화는 꽃이 피는 모습과 비슷하다. 훈민정음 해례에는 ‘ㅎ은 喉音(후음)이니 여허자 초발성(如虛字初發聲)이라.’ 했다. ㅎ은 목소리이니 虛() 자의 첫소리와 같다는 뜻이다. ㅎ은 가슴 깊은 곳의 따스한 기운이 목을 스치며 나오는 소리로, 오행으로 보면 겨울에 해당한다. //는 꽃봉오리처럼 둥글고 작게 벌린 입술 모양의 //에서 꽃잎이 피어나는 입모양의 //까지 이어지며 나오는 소리이다.

  // 음에 해당하는 글자들은 華(빛날 화), (꽃 화), (벼 화), (그림 화), (화목할 화), (말씀 화), (재화 화), (변화할 화), (불 화), (재앙 화) 등이 있고, 이들은 의미상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자 한 자 발음을 연상해 보면 한자도 원초적으로는 소리글자임이 확인된다. 음이 같으면 뜻도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꽃을 의미하는 글자는 원래 華(꽃 화)였는데 花() 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이 글자는 그 뜻이 빛날 華()로 바뀌었다. 빛나는 결혼식은 華婚(화혼)이요, 빛나는 회갑은 華甲(화갑)이다. 들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禾(벼 화)이고, 종이 위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畵(그림 화)이다.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야 마음에서 和(화목할 화)가 싹트고, 그래야 입에서도 고운 話(말씀 화)가 나온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조화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은 돈이다. 여기에서 貨幣(화폐)라고 할 때의 貨(재화 화)가 나온다.

  (꽃 화)의 근본 속성은 化(변화할 화)에 있다. (풀 초)가 변하여 꽃 花()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꽃이 아름답지만 거침없이 자신을 버릴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견줄 비)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형상이지만, (변화할 화, 될 화)의 전서 모양은 그 중 한 사람이 고꾸라진 모습이다. (비수 비)를 맞아 ‘변화’를 맞은 것이다. 사람도 과일도 匕首(비수)를 맞으면 쉬이 변한다. () 자를 匙(숟가락 시)의 원형으로 보는 이도 있다. 동물도 먹을 때 건드리면 물듯이 원시 인간의 수저도 때론 무기로 변하기도 했다. 양식을 할 때 포크와 나이프를 잡으면 섬뜩한 생각이 드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꽃 화)와 火(불 화)는 붉다는 점에서 똑같다. 불도 꽃이다. 그래서 불꽃이라 한다. (빛 광)은 ‘火() + ()’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소중한 불씨를 머리에 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화창한 봄날엔 전통적으로 花煎(화전)놀이가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산불을 조심할 일이다. 꽃지짐 맛있게 먹고 자칫 잘못하면 火魔(화마)를 피할 수 없다. 이것이 禍(재앙 화)의 근원이다. 산불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명절이 찬밥으로 하루를 보내는 寒食(한식) 날이다. 和睦(화목)을 위해 산에 올랐다가 홧김(火김)에 禍()를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 찾다가 家禍萬事敗(가화만사패)하기 일쑤이다. 재앙 災()에도 위에는 물난리요 아래에는 불난리다.

 

  화창한 봄날인데 어찌할거나. 화전놀이 대신에 좋은 벗 만나 꽃 속에 앉아 시와 술이나 즐겨야겠다. 이른바 花間詩酒(화간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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