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자료

노원신문 11 - 寺談(사담) 私談(사담)

寺談(사담) 私談(사담)

도정 권상호

  불기 2554년 음력 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다. ‘부처님 오신 날’ 또는 ‘釋迦誕辰日(석가탄신일)’이라 부른다. 마침 2010년 경인 사월 초파일은 양력 5 21일로 ‘부부의 날’과 겹쳤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석가탄신일이든 부부의 날이든 ‘출가’가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점이다. 절에는 出家(출가)한 승려가, 가정에는 出嫁(출가)한 아내가 있다. 出家(출가)란 세속의 집을 떠나 불문에 드는 것을 일컫고, 出嫁(출가)란 처녀가 시집을 가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가끔은 출가 대신에 家出(가출)을 선택하여 망신살이 뻗치기도 한다.

  오늘은 寺(절 사) 자의 족보를 캐볼까 한다. () 자는 갑골문 시대에는 없었고 나중에 금문 시대에 와서야 생긴 글자이다. 금문의 寺() 자는 之(갈 지) 밑에 又(오른손 우)의 형태로, ‘걸어가서 손으로 잡은’ 모양이니, ‘持(가질 지)’의 본자로 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의 발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의 寺() 자 뿌리는 전서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생겼다. , ‘之()+()’이다. ()은 ‘헤아리다’의 뜻이니, 결국 寺()는 ‘걸어가서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하면 ‘윗사람을 받들어 모신다.’라는 承奉(승봉)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면 寺()는 ‘侍(모실 시)’의 옛글자로 볼 수도 있다. 궁중에서 임금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며 시중을 드는 벼슬아치를 內侍(내시)라 하고, 웃어른을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을 近侍(근시)라고 한다. 모시어 받드는 일을 侍奉(시봉)이라 하고, 그런 아이를 侍童(시동)이라 한다. 시중드는 여인을 일러 侍女(시녀)라 하고 시중드는 계집종을 侍婢(시비)라 한다.

  (모실 시)에는 (사람 인) 자가 붙어 있어 ‘몸소 모시는 일’을 가리킨다. 아름다운 말[()]로 즐겁게 모실 줄 아는 사람은 詩人(시인)이라 한다면 是認(시인)하시겠습니까. [()]를 잘 맞추어 시중드는 사람이라야 時(때 시)를 아는 사람, 철을 아는 사람이라야 ‘철든 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말 ‘시중들다’와 벼슬아치 ‘門下侍中(문하시중)’은 때를 잘 맞춘다는 의미의 時中(시중)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상호간에 모시는 마음[()]으로 대하면 믿음이 쌓이니 이를 恃(믿을 시)라고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自恃(자시)라 하고, ‘어딘가 믿는 것이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음’을 恃而不恐(시이불공)이라 한다. () 자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千字文(천자문)에 나오는 ‘망담피단(罔談彼短)하고 미시기장(靡恃己長)하라.’는 구절이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기의 장점을 믿지 마라.’는 뜻이니 본받을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날의 寺() 자는 승려가 거처하는 곳, 곧 ‘절’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연유가 특이하다. ()는 본디 중국 東漢(동한) 때에 외교업무 담당기관인 홍로사(鴻艫寺)에서 비롯하였다. 당시 明帝(명제)는 인도의 고승 섭마등(攝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을 홍로사에 머물게 하면서 극진히 대접하고, 중국의 구도자들이 인도에 가 초기 불교경전을 白馬(백마)에 싣고 온 것을 기념하여 기원 68년에 중국의 최초 절 白馬寺(백마사)를 짓기에 이른다. 이로부터 사()는 불교사원의 범칭이 된 것이다.

  불교 사원을 한자어로는 寺刹(사찰) 또는 伽藍(가람)이라 한다. (절 사)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란 의미가 있고, (절 찰)에는 나무[()]를 칼[()]로 베어[()] 세운 건물의 의미가 있다. ()의 발음은 // 또는 //이었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로 바뀌었다고 본다. 伽藍(가람)의 어원은 불도를 닦는 곳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상가람마(Samgharama)에서 왔다. 중국인들이 소리 나는 대로 /승가람마(僧伽藍摩)/라 하였다가 줄여서 /가람/이라 하는 것이다. 승가람마의 승가란 중(), 람마란 원()의 뜻으로 衆園(중원), 즉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이란 뜻이다. () 자를 사용한 것은 불도[()]가 늘어나고[()], () 자를 사용한 것은 靑出於藍(청출어람)의 경사가 있기를 바람에서라고 본다.

  ()를 우리말로는 //이라고 하는 까닭을 양주동의 경우 寺刹(사찰) /()/의 발음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佛陀(불타)에서 /부처/라는 말이 생긴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누구나 절에 가서는 ‘절’을 많이 하고, 그러면 바라던 일이 ‘절로’ 풀리기 때문에 //이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산절로 수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우리나라는 그래도 종교 간에 갈등 없이 잘 지내는 天幸(천행)의 나라이다. 혹여 정치인들이 종교를 이용하려 든다면 끔찍한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종교 분쟁은 나라도 갈라놓는다. 조심할 일.

  메리 석가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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