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禾(화) 자 타령
도정 권상호
禾(벼 화) 자가 들어가서 나쁜 글자는 없다. 어디 ‘禾(화) 자 타령’을 한 곡조 때려 볼거나...
볍씨만은 실한 놈으로 - ‘種(볍씨 종)’,
모두 모여 모 옮기세 - ‘移(옮길 이)’,
여긴 내 논, 저긴 네 논 - ‘稱(일컬을 칭)’,
모를 심되 세워 심세 - ‘秧(모 앙)’,
피란 놈은 뽑아 주세 - ‘稗(피 패)’,
벼란 놈이 잘 자라면 - ‘秀(빼어날 수)’,
늘어진 이삭 은혜롭다 - ‘穗(이삭 수)’,
벼가 익어 고개 숙이면 - ‘禿(대머리 독)’,
낫을 갈아 벼를 베세 - ‘利(날카로울 리)’,
이삭 하나 흘리지 말고 - ‘穡(거둘 색)’,
기분 좋게 벼를 베세 - ‘穫(벼 벨 확)’,
한 포기 잡으면 - ‘秉(잡을 병)’,
두 포기 잡으면 - ‘兼(겸할 겸)’,
가을 햇살에 잘 말려서 - ‘秋(가을 추)’,
화목하게 탈곡하세 - ‘穆(화목할 목)’,
까끄라기 조심하소 - ‘秒(까끄라기 묘, 초 초)’,
볏짚은 말려 소 먹이세 - ‘稿(볏짚 고, 원고 고)’,
찧어야 먹을 수 있지 - ‘稻(벼 도)’,
또랑또랑 알 나온다 - ‘米(쌀 미)’
바라는 건 풍년이나 - ‘稀(드물 희)’,
말로 할 땐 언제나 - ‘謙(겸손할 겸)’,
추수 감사 하러 가세 - ‘程(길 정)’,
곡식 신은 직신일세 - ‘稷(오곡 신 직)’,
벼로써 받든 나라 - ‘秦(나라 진)’,
말로 되어 세금 내세 - ‘科(과정 과)’,
무슨 세금 또 나오냐 - ‘租(구실 조)’,
이왕 낼 거 기꺼이 내세 - ‘稅(세금 세)’,
남는 것으로 익혀나 보세 - ‘香(향기 향)’,
도둑맞으면 곤란하다 - ‘秘(숨길 비)’,
부족하면 다른 것 있으니 - ‘黍(기장 서)’,
한술 떠서 입에 넣으면 - ‘和(화할 화)’,
벼 없이는 나도 없네 - ‘私(사사 사)’로다.
얼씨구~ 잘 헌다.
* 社稷(사직): 땅의 신은 사(社), 곡식의 신은 직(稷).
穆(화목할 목)의 갑골문은 벼가 익어 이삭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오른쪽의 白(백)은 이삭, 小(소)는 떨어지는 알곡, 彡(삼)은 바람이다. 벼를 추수하여 말리고, 바람을 일으켜 탈곡하는 모습이다. 和睦(화목)이라 할 때의 睦(화목할 목)은 눈[目(목)]으로 언덕[坴(륙)]을 바라볼 여유를 가질 때 비로소 화목해 질 수 있다는 의미렷다. 발음은 目(목)에서 왔다.
科學(과학)이라 할 때의 ‘科(과정 과)’는 ‘말[斗(두)]로 벼의 분량을 되다’가 본뜻이며, 나중에 ‘조목’, ‘등급’ 등의 뜻도 가지게 되었다. 과학은 말로 벼를 되듯 정확해야 한다. 벼의 등급을 매긴 다음에 할 일은 租稅(조세) 납부이다. 租(세금 조)의 且(또 차, 장차 차)는 벼를 차곡이 쌓아서 나라에 바치라는 뜻이요, 稅(세금 세)의 兌(기쁠 태)는 벼를 기분 좋게 바치라는 뜻이다. 헐~ 살림 되네.
秘密(비밀)의 秘(숨길 비)와 密(빽빽할 밀)의 공통점은 ‘必(반드시 필)’ 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 必(필)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斗(두)와 흡사한데, ‘긴 자루가 달린 도량형기’이다. 여기에서 ‘비밀은 반드시 지키라.’는 것과 ‘도량형기처럼 정확히 지키라.’는 두 가지 지혜를 일깨워 주고 있다. 아싸.
香氣(향기)라고 할 때의 ‘香(향기 향)’ 자의 밑에는 曰(왈)이 붙어 있다. 이는 입[口(구)] 안에 혀[一]가 보이는 曰(왈)이 아니라 ‘발 없는 솥’의 상형이었다. 그러므로 최고의 香(향)이란 ‘솥에서 밥이 끓는 냄새’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구수한 밥 냄새보다 더 좋은 향기가 어디 있으랴. 꿀꺽. 달콤한 밥을 먹고 싶어 전서에서는 曰(왈) 대신에 甘(달 감)로 썼는데, 사실 굉장한 코미디이다.
기실 香(향) 자는 본디 ‘黍(기장 서)+口(구)’이었다. 기장은 요즈음 보기가 쉽지 않지만 오곡의 하나로 벼과에 속하며, 달콤한 향기가 좋아서 술, 떡, 엿 등을 만들어 먹었다. 香臭(향취), 芳香(방향), 香水(향수), 國香(국향)이로다. 은은한 蘭香(난향)이나, 찐한 커피 향까지도 좋다. 하지만 향기 나는 미끼 아래 죽는 고기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위기 스캔을 잘 해야 할 것이구먼. 아싸가오리.
인간을 움직이는 두 축인 名(이름 명, 명예 명)과 利(날카로울 리, 이로울 리)를 합쳐서 名利(명리)라고 한다. 名(명)에는 어두움[夕(저녁 석)]이 짓누르고 있음을, 利(리)에는 매서운 칼날[刂(도)]이 옆구리에서 껄떡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 쉿. 떠가는 구름 위에 명리를 던질 거나? 오케이바리. 利益(이익), 利子(이자), 漁父之利(어부지리), 甘言利說(감언이설), 利害得失(이해득실), 見利思義(견리사의)로다.
여름 석 달이 벼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계절이다. ‘秋(가을 추)’ 자를 보면 벼는 가을에도 불을 필요로 한다.
여름은 더워서 좋고, 겨울은 추워서 좋다. 여름은 오곡백과를 성숙하게 하고, 겨울은 땀 흘려 일한 그들에게 안식을 준다. 성숙과 안식이 번갈아가며 나이테를 연출하는 게 아닌가. 고로 이 여름이 더울지라도 벼의 결실을 위하여 참자. 파이팅.
때마침 한 줄기의 소나기가 대지를 때린다. 하늘의 대지 사랑이 없다면 무슨 맛으로 여름을 나리. 지금쯤 고향집 앞 논둑에는 토끼풀이 무성히 자라 하얀 별들을 토해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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