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자료

노원신문 54- 봄[春]의 이미지

[]의 이미지

 

도정 권상호

  저 산 너머 어디쯤 봄이 오고 있다. 오는 길에 혹여 먼지라도 날세라 온종일 비가 토닥이고 있다. 대지는 간지러움에 꽃 웃음 피우고, 속살 부끄러워 새 옷을 입으리니.

  봄임을 알리는 立春(입춘)이 지나고, 봄비 내리자 싹이 튼다는 雨水(우수)도 지나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 절기가 돌아왔다. 대개 3 5~6일에서 春分(춘분)까지가 경칩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春(봄 춘)’ 자와 놀아볼까.

  (봄 춘) 자의 갑골문, 금문, 전서 등을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원래 春() 자는 ‘(풀 초)+(언덕 둔)+(해 일)’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멋쟁이 글자였다. 태양[]의 온기를 받아 언덕[] 위에 풀[]이 돋는 그림 같은 글자이다.

  여기에서 屯()은 풀이 지상으로 나오려고 하지만 남은 추위 때문에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주역 64() 명칭 중의 하나이기도 한 ‘屯(언덕 둔)’은 새싹이 발아는 했지만 아직 땅을 쉬이 뚫고 나오지 못하므로 ‘주저하다’, ‘조아리다’ 등의 뜻이 있다.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頓首(돈수), 그러면서 두 번 절하는 것은 頓首再拜(돈수재배), 과장하면 頓首百拜(돈수백배)가 된다.

  말을 주저하면 (말 분명치 못할 둔), 벌레가 주저하면 蠢(벌레 꿈틀거릴 준)이 된다. ()의 의미는 더욱 확대되어, ‘둔하다’는 의미도 있으니, 여기에서 鈍(무딜 둔) 자가 탄생한다. 둔한 말은 鈍馬(둔마)요 둔한 붓은 鈍筆(둔필)이다. 聰明不如鈍筆(총명불여둔필)이란 총명함도 둔필만 못하다는 뜻이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그때그때 메모해 두어야겠다. 사람을 상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몽둥이 따위의 기구를 鈍器(둔기)라 한다. 鈍才(둔재), 鈍濁(둔탁), 愚鈍(우둔)이로다.

  그런데 주저하던 새싹이 한꺼번에 힘차게 돋아나오는 모습에서, ()은 ‘진 치다. 주둔하다’의 의미로 확대된다. 예컨대, 駐屯軍(주둔군)은 한 곳에 진 치고 있는 군인을 말한다. 보통사람들이 ‘진 치고 살아가는 곳’은 ‘邨(마을 촌)’인데, 지금은 읽기 쉽게 村(마을 촌)으로 쓰고 있다. 村落(촌락), 村民(촌민), 村長(촌장), 農村(농촌)이로다.

  () 자를 뜯어보면 태양[]의 열기를 받아 두꺼운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의 이미지가 있다.

  (봄 춘)은 발음이 비슷한 ‘推(밀 추, 밀 퇴), ‘出(날 출)’처럼 ‘밀어 올리다’의 의미도 있다. 이를테면, 순우리말인 ‘춤’, ‘추스르다’, ‘추켜올리다’ 등은 발음상으로도 春()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推進(추진), 推薦(추천), 推測(추측), 類推(유추), 推敲(퇴고)로다.

  春花(춘화)는 봄꽃이지만, 春畫圖(춘화도)는 남녀 간에 성교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春秋(춘추)는 ①봄과 가을 ②어른의 나이에 대한 존칭 ③공자(孔子)가 엮은 오경의 하나 ④춘추시대 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은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쓰는 말이다.

  ‘봄꽃과 가을 열매’를 뜻하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은 문장력과 덕행이 훌륭할 때 쓰는 성어이다. 春若不耕 秋無所望(춘약불경추무소망)이라 했으니,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게 없다.

  靑春(청춘), 春信(춘신), 春光(춘광), 春氣(춘기), 春風(춘풍), 春色(춘색), 春困症(춘곤증), 春夏秋冬(춘하추동), 一場春夢(일장춘몽)이로다.

  <명심보감>에 一生之計在於幼(일생지계재어유) 一年之計在於春(일년지계재어춘) 一日之計在於寅(일일지계재어인)이란 격언이 있다.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는 말씀.

  이제 곧, 꽃도 피려니……. 꽃길을 걸어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나비처럼 향기 터널을 몇 번이고 지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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