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삼청시사전 도록 교정- 서문, 격려사 및 본문

三淸詩社展을 열면서

흔히 詩書畵라고 하는데 ‘詩’가 앞에 있고 ‘書畵’가 뒤에 있음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書藝人들은 대개 書畵를 먼저하고 詩를 뒤로 미루고 있다. 他人이 지어 놓은 詩나 名句를 筆로 쓰면서 다만 그 본래의 뜻을 강조하거나 美感만을 약간 더할 따름이니 어딘가 허전하고 다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게 된다.

그래서 書畵로 어느 정도 一家를 이룬, 이른바 서예계 삼단체 초대작가 중에서 詩 공부를 뒤로 미루어왔던 묵객들끼리 모인 단체가 우리 三淸詩社이다.

心은 主身이요 萬脈의 根源이라 했다. 그런데 今世에 와서 心은 방치한 채 顔面의 成形手術만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에는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의 마음의 善惡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얼굴만으로서는 그 사람의 心狀을 추측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서 他人이 지은 詩나 名句를 筆로 휘두르기만 하니 詩作者의 마음은 善과 幽인데, 筆者의 작품에는 喧과 忮로 나타나기 일쑤이다. 때로는 書寫者 본인조차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存心養性이라 했는데 詩人의 本心을 떠나 養性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이러한 현실을 自認하고 是正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이 우리 三淸詩社 會員들인 것이다.

漢詩하면 골치가 아픈 것으로만 생각하여 筆로써 옛 詩를 쓰면서도 詩學은 뒤로 미루고 있는 서예가들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을 외울 때, 어렵게만 생각되던 數學이 다 외우고 나니 그 다음의 계산은 얼마나 쉬웠던가 하고 스스로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미련하게 다섯을 아홉 번이나 더했었는데 ‘오구 사십오’ 하는 순간, 답을 얻으니 참으로 편리한 구구단이구나 하고 기뻐했었다.

그렇다 漢詩도 마찬가지이다. 唐詩 이래로 五言詩, 七言詩 하면 다섯 번째, 일곱 번째 글자에다 韻을 놓고 이에 따라 平仄만 맞추어 넣으면 한편의 한시가 되니 구구단과 무엇이 다른가? 여기에다 詩는 思無邪라 했고 感於物動이라 했으니 각자의 懷抱를 실어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絶景을 보았을 때 감탄사가 나오고, 기쁜 일을 만나면 喜悅로 심장이 뛰며, 슬픈 일을 당하면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이것을 공식에 맞추어 아는 자로 집어넣으면 시가 된다. 詩作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타고난 素質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부딪혀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마음으로 느끼는 心象은 男女老少 누구에게나 다 있다. 따라서 누구나 다 詩人이 될 資質은 갖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생각하면 漢文 실력이 없거나 모자라서 시 짓기를 시도했다가도 도중에 용기를 잃고 마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百字 연습한 명필은 없어도 百字 노력한 名詩는 있으니 염려할 바가 아니다.

書藝하는 사람들에게 膾炙되는 書與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이 書與其人이란 말 속에 글씨뿐만 아니라 그 內容마저 자신의 마음이 든다면 얼마나 완벽한 작품이겠는가. 차제에 감히 서예인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이제 나도 나의 詩를 쓸 수 있다’는 신념을 갖기 바란다. 아직 시도조차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구구단 외듯이 詩도 그렇게 한번 접해보기를 바란다. 필자도 늦은 나이에 漢詩 짓기를 시작하여서 후회스런 마음에서 한마디 해 보는 것이다.

우리 三淸詩社 회원들은 평소에 최선을 다해 詩를 짓고 이를 공들여 筆로써 표현하였지만 아직도 만인에게 들어내 보이기에는 부끄러운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 서단에서 漢詩를 하려고 모인 우리 회원들은 이번 전시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精進하여 서단의 새로운 방향 설정은 물론, 새 活路를 제시하리라 믿는다.

끝으로 전시를 성황리에 열 수 있도록 自作詩를 출품해 준 본회 회원들게 감사한다. 그리고 지금의 성숙한 三淸詩社가 있도록 지도해 주신 자문위원 兢齋 尹烈相선생님, 農山 鄭充洛선생님, 玄巖 蘇秉敦선생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린다. 또한 마지막까지 도록 편집에 심혈을 기울인 편집위원에게도 고맙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三淸詩社를 이끌어준 전 회장단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한다. 이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좋은 漢詩와 書畵 작품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갈 것을 全會員과 더불어 약속하며 인사말씀에 대신합니다.

檀紀 4342年 4月 日

三淸詩社 會長 安 秉 漢 拜

時代를 證據하는 藝術的 言語

- 三淸詩社 自詠 詩․書․畵展에 부쳐 -

정 충 락 / 서예평론가․삼청시사 諮問委員

詩卽言志也라. 識者들 사이에서는 人口에 膾炙된 말입니다.

漢詩作詩는 알고 보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簡單한 詩意의 意味를 알면서도 行動으로 接近하는 이가 많지가 않다는 것은 問題입니다. 이 말은 書藝를 하는 作家들이 作詩에 疎忽하다는 것에 상당한 問題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비록 漢詩든 韓詩든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多幸히 韓國書壇의 믿음직한 精銳作家群에서 吟詠을 즐기는 분들이 三淸詩社를 結成하여 今에 이르기까지 數次에 걸쳐 自作의 內容으로 書藝展示를 하거나 詩集을 따로 上梓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이미 알려진 事實입니다.

今年은 書藝作品展을 企劃하고, 그에 對한 序言을 請하니 拒絶할 名分이 없습니다.

詩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의 생각을 文字로 적어내는 것입니다. 이는 구태여 別途의 免許를 要求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 簾을 보고 韻字를 따라 字 모음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제대로 된 詩는 讀者들의 呼應을 自然스럽게 얻게 되고, 그렇지 않은 境遇에는 그럴 수도 있을 성 싶다는 것으로서 마감합니다.

詩가 잘 지어졌다거나 아니면 反對로 未洽하다는 것은 생각이 다른 他人의 異見일 뿐입니다. 누구든 지은이의 생각을 들어볼 것 같으면 作品에 對한 作家나름의 說明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韻文體의 妙味는 쉽게 斷定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當然히 이번 展示作品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이 相反된 見解의 登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그것이 나쁘다거나 다른 어떤 問題가 있다는 것은 決코 아닙니다.

지금, 나라 안에서 漢詩 作品活動을 하는 人口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줄잡아 2千에서 3千 사이에 있다는 것이 衆論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書藝까지 業으로 하는 詩家는 至極히 制限된 숫자에 그치고 있습니다.

公開된 書藝人으로서 作詩를 하는 그룹은 京鄕間을 다 털어도 몇 안 되는 少數에 不過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書藝造形을 熱心히 思考展開함과 同時에 心畵인 詩作發表를 不斷히 하고 있습니다. 實로 바람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려진 바대로 三淸詩社의 社員들은 書寫에 關한 限, 나라 안의 頂上級 書藝團體들이 認定하고 있는 招待作家의 位置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書寫에 對한 能力은 이미 定評이 나 있습니다. 거기에다 더하여 自身의 생각을 作詩로 내 보이는 것이므로 書藝作家로서 생각하는 마음의 그림을 加減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經驗하고 있는 詩의 世界는 實로 多樣합니다. 그 內容은 多樣한 作品으로 書寫되어 一括 公開되고 있으므로 차분히 읽어보시면 어렵지 않게 把握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書藝家로서의 本分을 제대로 알고 實踐하는 境遇의 作家들입니다.

一角에서는 ‘現今의 時代에 漢詩는 무슨' 하며 懷疑的인 생각을 하고 있는 境遇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앞서 적었듯이 相互異見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再論할 必要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어떤 時代가 되었건 吟詩를 通하여 作家의 文字遊戱에 對한 實狀을 把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重要한 일입니다.

지금껏 우리는 아무런 對策도 없이 남의 글만 베껴 쓰는 데에 熟達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書藝에 對한 바른 實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書藝家는 自身의 생각을 自身이 願하는 글씨꼴로 作品을 써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只今까지 알고 있는 수많은 法帖, 그 法帖들이 지니고 있는 意味를, 內容은 제쳐두고 形態에만 置重해 왔습니다. 이처럼 內容을 除外하고 글씨 形態에만 局限하여 學習하고 있었다는 데에 보다 根本的인 敎育的 問題가 있습니다.

形態置重이란 글씨의 基本을 익히기 爲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過程이므로 反對하고 싶은 생각은 秋毫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글씨예술의 根本이 어디에 있음인가를 알고 난 다음에는 形態도 重要하지만 內容 더욱 重要하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배우지 못한 까닭에 問題意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當然한 일이었습니다. 現場의 우리는 內容은 어떻든 글씨꼴만 잘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른 글씨를 쓰려면, 쓰는 內容도 作家와 直接的인 關係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內容의 愼重한 選擇은 至極히 平凡한 眞理입니다. 그 眞理를 只今까지 우리는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을 三淸詩社 社員들은 제대로 認識하고 現實에 맞게 實踐하고 있습니다.

앞서 적은 詩卽言志也라는 말은 알고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實踐을 해야 합니다. 李白이 언제 飛行機나 潛水艦을 타보기나 했겠습니까. 그것이 時代的 背景입니다. 그 時代에는 그 時代의 情況이 表現되어야 하듯이, 只今 이 時代에는 이 時代의 雰圍氣가 登場해야 합니다. 남의 생각을 빌려다 쓰는 일은 일찌감치 그만두어야 합니다.

三淸詩社 社員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은 이 時代를 그대로 證據하는 藝術的인 言語로 뚜렷이 남을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藝術家들이 오늘에 對한 環境을 적어놓지 않으면 그 누가 이 時代의 環境을 다음 世代에 傳해 주겠습니까. 書藝家는 글씨를 잘 쓰는 것도 重要하지만, 그보다는 內容의 重要性을 前提해야 합니다. 作詩를 强調하는 理由가 여기에 있습니다. 글씨 잘 쓰는 것은 當然之事이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苦悶하는 일이 核心입니다. 이 境遇에 굳이 名詩가 아니어도 相關 없습니다. 作家의 소리가 分明하게 傳達만 된다면 그것으로 根本的인 目的은 이루어진 것이라고 自信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意味에서 여러분의 吟詩書寫의 實踐은 우리나라 書藝歷史에 所重한 精神的 痕迹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行事를 主管한 野松 安秉漢 會長을 비롯하여 任員陣들의 애쓴 보람도 역시 오래도록 記憶될 것입니다.

이와 關聯하여 五言絶句 한 首로 要約하고자 합니다.

人間生有限, 不斷寫心痕, 今日吾餘滴, 後天靑史根.
인간 생애는 끝이 있어, 계속해 마음흔적 옮기자.
오늘 내가 남긴 물방울, 다음날 역사의 뿌리 되리.

感謝합니다.

激勵辭

凡此詩集者는 三淸詩友 以自作詩로 展示作品集也라 故로 會友皆好藝之書畵人也니 專攻書하야 敎育後進하고 養成藝術之人하니 後日是皆國家藝能棟梁之材라 所任이 重且大也라 然忙中偸暇하야 盡力於漢詩學習하고 以自作詩展示하니 人有言曰一藝惟難이어늘 詩書畵三藝能之하니 可不頌哉아 又發憤忘食하야 所欲爲者를 切磋琢磨하야 日就月將하니 多人이 欲入於三淸詩社者也라 詩序에 曰夫詩者는 旣有欲矣則不能無思하고 旣有思矣則不能無言하고 旣有言矣則言之所不能盡而發於咨嗟咏嘆之餘者가 必有自然之音響節族而不能已焉이 此詩之所以作也오 曰然則所以敎者는 何也오 曰詩者는 人心之感物而形於言之餘也니 心之所感이 有邪正故로 言之所形이 有是非하니 惟聖人이 在上則所感者無不正而其言이 皆足以爲敎라하니 作之敎가 不能無邪正是非也라 故로 詩有六義하니 風雅頌賦比興이라 風者는 如物因風之動하야 以有聲而又足以動物也라 雅者는 正也니 正樂之歌也라 本有大小之殊而先儒說하고 又各有正變之別이라 頌者는 美盛德之形客이니 以其成功을 告於神明者也라 賦者는 眞陳其事하야 如葛覃卷耳之類라 直指其名하고 直敍其事者賦也라 比者는 以彼狀此하야 如蠶斯綠衣之類라 引物爲說者比也라 興者는 託物興詞하야 關雎兎置之類라 本傳에 言其事而 虛用兩句釣起因而 接續者興也라 朱子曰風雅頌은 聲樂部分之名이니 三經이며 賦比興則所以製作風雅頌之體也니 三緯也라 하시니라 論語에 曰 君子는 不器라하니 君子는 無所不爲하고 無所不能하야 貧而無諂하고 富而無驕하며 卑而不猜하고 尊而無凌하며 己貴而勿賤人하고 己賤而勿妬人하야 雖富而恤貧하고 雖貧而佐富하며 寡慾而好義하면 克己復禮易得矣리라 周禮에 大司徒走以鄕三物로 敎萬民而賓興之하니 一曰六德이니 智仁聖義忠和요 二曰六行이니 孝友睦婣任恤이요 三曰六藝니 禮樂射御書數라 凡此十八者는 一日不可無者요 一物不可輕者라 故로 孟子曰 人之有道也에 飽食煖衣하야 逸居而無敎면 則近於禽獸일새 聖人이 有憂之하사 命契曰百姓이 不親하며 五品이 不遜일새 汝作司徒이 敬敷五敎하되 在寬하라 命蘷曰 命汝典樂하노니 敎冑子호대 直而溫하며 寬而栗하며 剛而無虐하며 簡而無傲니 詩는 言志요 歌는 永言이요 聲은 依永이요 律은 和聲이니 八音(金石絲竹匏土草木)克諧하야 無相奪倫이라야 神人以和하리라하시니 詩者는 世俗敎化에 必不可無者요 興味誘發에 亦不可無者라 故로 學者不可無詩者在此耳라 然則學者有學規하니 朱文公白鹿洞學規是也라 一曰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하며 夫婦有別하며 長幼有序하며 朋友有信이니 右는 五敎之目이라 二曰 博學之하며 審問之하며 愼思之하며 明辨之하며 篤行之니라 右는 爲學之序라 三曰言忠信하며 行篤敬하며 懲忿窒慾하며 遷善改過니라 右는 修身之要라 四曰正其誼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니라 右는 處事之要라 五曰己所不欲을 勿施於人하며 行有不得이어던 反求諸己니라 右는 接物之要라 此五者는 學者必存諸胸中하야 須臾不可忘也라 曏日에 野松安秉漢三淸詩社會長이 余于卷頭之辭하니 予以菲才淺學으로 不敢當也하야 固辭不得하고 以詩經大義와 爲學之方으로 粗敍如右耳라

2009年 己丑仲春
兢齋 尹 烈 相 謹識


삼청시사전 도록 교정

8. (프로필에서) 삼청시사 부회장

   국제서법연맹 상임이사

  (해설에서) 푸른 솔 벗을 삼던/ 血眼 되고/ 맹종인가./ 솔바람 불어/ 묵객을 기다리니...

9. (1행) 惟->唯/ 松栢->松柏/

   (6행) 己矣->已矣

   (7행) 수천 가지가/ 있으나/

   (8행) 푸르르고->푸르고

   (10행) 일 뿐이다./

   (13행) 다른 점이/ 겪고 난/

   (19행) 스승으로 삼노라.

   (20행) 아아,

   (21행) 초봄에

10. 찌든 마음/ 그려보니-> 쳐 보니/ 떠 오르네.

11. 大韓民國美術大展/ 大韓民國書藝文人畵大展/ 大韓民國基督敎美術大展

12. 떠날 제/ 매화 가지/ 임의 발소리인 듯하여 기쁨이 끝없어라.

14. 친애할 만한 것이/ 이십오 년/ 그 사람과/

15. 똑 같을 필요 없다는구려.

17. (프로필을 몽땅 아래 것으로 바꿔 주세요.)

Live Calligrapher(라이브 서예가)

水原大學校 美術大學院 書藝 兼任敎授

大韓民國美術大展 書藝 招待作家

韓國藝術文化院 副理事長

서울미술협회 理事

民主平和統一諮問會議 諮問委員

文化施設設置 및 運營審議委員會 委員

서울시노원구 民願調整委員會 委員

서북미 한국문화교류재단 해외부 후원이사

招待個人展 3회, 라이브 서예 70餘回

2008 Arts Exhibition & Live Calligraphy in Washington & Oregon State

----------- 해석 전체 바꿔 주세요.

설날 아침에 낙동강 지나

김천시 증산면에 이르렀네.

선방에서 시와 먹을 즐김에

오묘한 향기 이 얼굴 두르네.

 

아침 햇살 섬돌에 곱게 널리자

동산에선 뭇새 소리 맑게 들리네.

산기슭 삶 애써 땀 흘릴 일 없으니

단정한 자태로 붓이나 애무하리.

 

상서로운 눈 온산에 가득도 한데

수도암 암자에선 동안거 중이네.

날아든 까마귄들 독경 소리 모를까

미물도 불법을 염탐하는 듯하다.

18. (한시를 넉자씩 띄어쓰기)

19. 강화성에 오르니/ 파란 들판/ 갚아 주고/ 서리 맞은 / 내리고자 하여/ 흘겨보고/

    어제 저녁/ 청라 벌판 / 사립문/ 산수유꽃 만발하였구나.

20. (고유명사 붙여쓰기)

    보리 물결 푸른데/ 보릿고개/

21. 날씨/ 이어지고/ 흰 갈매기만

22. 그림 속/ 빌딩 가득

23. 긴 둑에/ 그 소리/ 금색 같아/ 꾀꼬리 소리

24. 迤(비스듬할 이)

    避(피할 피)

    하늘 격하고/ 고산 선생

28. 창 앞에

29. 곱게 빼어나

30. 모여 있네./ 잘 안 돼

32. (‘서석미암취덕용’의 해석이 되지 않았다.)

   ->상서로운 돌 미암은 덕스런 모습이라.

   듯하네./ 천추 동안/ 걸려 있구나.

34. 헤엄치는 듯하고/ 잊게 하네./ 어느 벗이 환영해 주리오

37. 맑은 물

38. 점잖은/ 제1연구실/ 제2연구실

40. 누대 앞에/

43. 어렴풋이/ 생각해 보니

44. 시 벗과/ 嶂(높고 가파른 산 장; -총14획; zhàng)

45. 찾아드네.

46. 세상 사람들/ 벗이 와 펼친 술자리/ 뉘 아니

49. 들리는구나.

50. 겨울까마귀/ 등불 아래/ 거울을 보는 듯

51. 고갯마루/ 번뇌 더하네/ 변하지 않는

52. 외론 몸/ 밝은 달/ 못 들고/ 향 연기

53. 고유명사 붙여 쓰기/ 눈 속/

54. 簷(처마 첨; -총19획; yán)

    嶽(큰 산 악; -총17획; yuè)

    巓(산꼭대기 전; -총22획; diàn)

   각벽에서/ 듯하네./ 산 구경/ 서산 머리에

55. 피고 지는/ 몇 떨기/ 국화 향기/ 기러기 소리

56. (제목과 시 내용 없음)

    한겨레서예대전

57. (제목과 시 내용 없음)

58. 杲(밝을 고)강서예학원 원장

60. (제목과 시 내용 없음)

61. (제목과 시 내용 없음)

62. 눈 속/ 업신여기며/

63. 단군 성군 건국 이래/ 온 나라에/

64. 책상 위에는/ 문장 있어/ 사람 마음을/ 경치 앞에

65. 사 절기 변치 않고 푸른빛을/ 가리고자/ 가득 있으며/ 늠름하게

66. 비단무늬 호숫가에/ 여름 속을/

67. 잎사귀/ 푸르고/ 바위산 곳곳에

68. 푸른 산/ 푸른 바다

69. 안 회장/ 해 저무니/ 큰 꿈

70. 장산 선생/

73. 남아 있네.

74. 청담씨티빌라트 402호

77. 서화로 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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