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혈기에 미치고
장년에는 일에 미친다.
이제 50줄 후반에 접어드니
고향과 동창에 미치기 시작하는구나.
동창회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미래에 대한 얘기가 없으니
추억 속에서 목욕하다가 나오는 법이다.
약속 시간보다 40분이나 늦어도 문제되지 않는다.
장로님도 교회를 버리고 산으로 쫓아온 걸 보니
동창회를 소중히 생각하는 분도 계신가 보다.

늙은 선배는 生死 확인장
중년 동문은 成敗 확인장
젊은 후배는 인생 탐색장이라고나 할까.

내빈 및 원로 소개는 끝없이 이어지고...
찬조를 한 분들의 함자(이럴 때 이름이라 하면 결례)는 새끼줄에
정확히는 비닐 줄에 걸리고...
박명기 교육위원
정재훈 감천중 동문회장
예중 5회 누구누구
예중 13회 박영서 회장
대창고 6회 안준 선생님
5회 황병극 선배
동기 머슴애들의 가슴을 아직도 벌렁벌렁하게 한다는
예천여중고 이명숙 회장
예천중 송재철 회장의 멋진 맨트
대창중고 이상연 회장의 쉰 목소리지만 열정의 메아리
산행대장 이주영 재현고 체육선생의 체조는 추억 속으로...
노상우, 김익기 선배님들
정철호, 장한기, 강성일, 황중호, 고계숙, 권오진(불견), 권오봉,
정하준, 이기준 시인, 권은, 심규학 장학사...

드디어 산에 오른다.
장뇌삼 향기가 흐르는 불암산에 오른다.
정확히는 밤꽃 향기가 질펀히 흐르는 불알산에 오른다.
모든 산에 등산의 오르가즘이 시작되는 깔딱고개가 있다.
많은 이는 이 전에서 내려간다.
육상선수였던 7순의 안준 선생님께선 잘도 올라가신다.
김교용 교장선생님께선 현재 92세란다.
저리 가면 불암산성 헬기장
이리 가면 불암산 정상길
이쪽 길을 택했다.
밧줄에만 의지하여 오르던 길을
정상까지 거의 목계단으로 공사중이다.
산상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누며 구로구에 사는 성일이와 잠시 쉬다가
드디어 507미터의 불암산 정상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양주목사 고언백이 왜병 42명을 무찔렀다고 전하는
불암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 밑으로 비행기장처럼 드넓게 펼쳐진 대지는
얼핏 보면 누런 보리밭 같으나
자세히 보면 양주군 별내지구 아파트 개발지역이다.
불암산은 그 끝이 붓처럼 생겨서 筆岩山(필암산)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하늘이 내린 보배산 곧, 天寶山(천보산)이라고도 한다.
자주 보면 필암의 '필(Feel)'을 받아 문장가나 서예가가 될 수 있다.
워낙이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애무하여
닳고 닳아 둥근 돌만 발기하여 남아 있다.
저으기 수락산은 어렴풋이 보이지만
맞은편에 병풍처럼 처 놓은 삼각산과 도봉산은 운무 때문에 얼굴을 가렸다. 

불암산 정상 정복은 좋았으나
문제는 내려와서다.
택시 타고 당고개역 1번출구 '감악산'에 가서
노원을 방문해 준 친구들에게 한턱 쏘았다.
노원 문화 길라잡이 이수걸 과장님을 모시고
노원 이야기와 백백교 설교를 들었다.
문제는 답장이 이어지는데
3차는 창동역 안동국시집에서
4차는 맥주집에서 시간을 잊은 게 문제다.

역시 황장군만은 34년 동안 자기 단련이 잘 되었는지
정확히 자신의 신체 바로미터에 따라 미리 도망쳤다.
어, 강사장도 사라졌뿌럿네.
고계숙 동창의 남본동 추억담
정철호의 끝없는 육두문자로 스트레스 풀기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장환기 친구야 긴 세월 동안 얼마나 아팠겠니.
내 교통사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2, 3일마다 피에서 물을 걸러서 다시 다시 넣어야 한다니...
콩팥 급구 상태란다.
막내의 눈물겨운 효도 이야기도...
제발 건강 회복을 빈다.

모두들 잘 가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