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고대문자의 예술성, 현대 타이포그래피와 통하다

바라캇 서울 ‘수행하는 문자…’전 열어 / 의미 전달 넘어 미적 감상의 대상 형상화 

문자의 기원에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고대인은 동식물의 형상이나 자연환경, 의식주와 같은 생활 모습, 그리고 내면의 염원을 사물의 형태나 특징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그림이 단순화 과정을 거치면서 문자의 형태로 발전했다. 문자는 인류 최초의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바라캇 서울에서 28일까지 열리는 ‘수행하는 문자, 문자의 수행자’전은 고대 문자와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접점을 모색하는 자리다. 과거에는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곧 권위와 특권의 상징이었다. 각 문자에 담긴 의미는 주술과 같은 힘을 가졌다고 믿어졌기에 문자와 책은 모두 신성시되었다. 고대 문자가 실용적인 수단이면서 예술작품이었고, 더불어 제의적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상형 문자인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hieroglyph)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옛 이집트인들은 죽은 이의 관에 미라와 함께 ‘사자의 서’ 같은 장례문서를 안치했다. 사후 세계의 여정을 안내하는 정보서다. 삽화로 표현된 장면들은 미술품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부활과 영생을 위한 주문과 기도 등 제의적 기능도 담았다. 문자가 정보 전달을 위해 정확해야 했고, 예술로서 아름답게 형상화되어야 했으며, 강력한 주술적 힘도 갖춰야 했다. 


문자는 날로 쓰임에서 점점 실용성과 보편성이 강조되면서 추상적 기호로 진화했다. 문자가 예술로서의 성격이나 제의적 역할을 미술, 종교, 과학 등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문자를 위한 인간의 갈고 닦음과 그 문자들이 선보이는 예술적 승화는 고대 이후에도 그 명맥을 이어왔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필경 수도사들은 성서의 필사를 성스러운 노동으로 여겼고, 장식적인 머리글자나 아름다운 그림을 더하는 삽화가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채색 필사본이라는 종교적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신의 이미지화를 꺼린 이슬람교에서는 글로 된 경전 ‘쿠란’을 더 중시하면서 서체 미술인 캘리그래피가 발달했다. 동양의 서예 문화 역시 ‘글과 그림은 근원이 같다’는 서화동원의 개념 안에서 발전했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디자이너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는 문자의 배열을 통해 예술적으로 구성된 이차원적 표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일컫는다. 문자가 갖는 실용성을 넘어서 미학적 상징성에 주목하는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를 쓰는 일상적 행위에 예술적 의미를 더한다. 의미 전달의 수단이라는 실용적 기능을 넘어 문자를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글자의 예술적 성취를 이뤘던 과거의 장인과 현대의 타이포그래피 작가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전시에는 이집트왕조 고위관직자의 명문 석비를 비롯해 수메르 상형문자가 새겨진 원뿔 테라코타, 기원전 4000년 전 ‘눈의 우상’ 등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현대 타이포그래피 작가 안상수, 노지수, 이푸로니가 정보 전달의 목적으로 작업을 수행(遂行)하는 역할을 넘어서 수행(修行)적 차원의 작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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