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3- 올여름 추천 화장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3
올여름 추천 화장법

초복(初伏)이 지나고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가 여름방학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휴가철이 시작된다. 열나는 여름, 하품 나는 하절, sun이 이글거리는 summer이다. 우리나라 여름의 기후적 특성이라 하면 한마디로 ‘무덥다’이다. 이를 한자어로는 ‘고온다습(高溫多濕)’이라 한다.
‘무덥다’의 뜻을 국어사전에서는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렵게 덥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까 ‘무’는 ‘습도가 높음’을, ‘덥다’는 ‘온도가 높음’을 뜻한다. 여기에서 ‘무’는 ‘물’에서 ‘ㄹ’이 탈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덥다’는 말은 ‘덮다’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뭔가로 덮으면 더 덥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비가 내린 뒤에 생기는 ‘무지개’는 ‘물+지게’에서 온 말로 ‘물이 만든 문’의 뜻이 아닐까 한다. 여기의 ‘지게’는 ‘지게 호(戶)’라고 할 때의 ‘지게’로서 옛날식 가옥에서 돌쩌귀를 달아 여닫는 ‘외짝문’을 뜻한다.
실은 덥기만 해도 견딜만하다. 그러나 여기에 습기가 더하여 무더워지면 불쾌지수도 치솟는다. 무더위를 피하려면 아무래도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이 좋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던 시절,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여름이면 들마루 위에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그다지 높지 않은 동네 뒷동산 잿마루 마당에 올라 밤 깊도록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잿마루에는 바람기도 있으려니와 무엇보다 모기가 없어서 더없이 좋았다.
국어사전에는 ‘마루’의 의미로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집채 안에 바닥과 사이를 띄우고 깐 널빤지’,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 ‘어떤 일의 근원이나 으뜸(宗)’ 등의 의미로 나누고 있는데, 대체로 ‘높다’는 뜻을 공통으로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마루’는 바닥보다 높으므로 ‘마르다(乾, dry)’와도 의미상 서로 통한다.
‘들마루’는 마당보다 높은 평상(平床)으로, 그늘을 따라, 바람길을 따라, 때로는 연기를 피해 이리저리 ‘들고 다닐 수 있는 마루’이다. 이동이 가능한 마루이므로 여름에는 마당에 내놓아 평상(平牀)처럼 사용하고 겨울에는 봉당(封堂)에 올려놓곤 했다. ‘대청마루’는 ‘한옥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로 봉당보다 높다. 남향의 집일 경우 여름에는 대청마루에 빛이 들지 않으나 겨울에는 빛이 들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잿마루’는 ‘재(고개)의 맨 꼭대기’를 뜻한다. 높은 재를 넘으려면 반드시 시원하고 탁 트인 잿마루에서 쉬었다가 가는 것이 상례였다. 이런 곳에는 일산(日傘) 역할을 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야 제격이다. ‘산마루’는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용마루’는 지붕 가운데 부분의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킨다.
척추동물에도 마루가 있다. ‘등마루’ 또는 ‘등성마루’라고 하며 ‘등골뼈가 있는 두두룩하게 줄진 곳’을 일컫는다. 척추동물(脊椎動物), 척수(脊髓)라고 할 때 ‘등마루 척(脊)’ 자를 쓰고, 앞서 말한 용마루는 사람으로 치면 집의 척추에 해당하기 때문에 ‘옥척(屋脊)’이라고도 한다.
요즈음처럼 후텁지근한 날씨에는 인간의 행동은 흐트러지기 쉽고, 음식은 쉬이 상하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은 자신의 몸 관리와 먹을거리 단속에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여기에서 ‘식(食)은 식(蝕)하기 쉬우므로 식(飾)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된다. 풀이하자면, ‘여름철에는 음식이 상하기 쉬우므로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식(食)’은 ‘밥’ 또는 ‘먹을거리’를 뜻하고, ‘식(蝕)’은 밥에 벌레(虫)가 붙어있는 모양으로 ‘좀먹다’의 뜻이며, ‘식(飾)’ 자는 사람(人)이 수건(巾)으로 음식물(食) 주변을 닦는 모양으로 ‘청결하게 꾸미다’의 뜻이 된다.
그러니까 장식(粧飾)의 ‘단장할 장(粧)’은 ‘집(庄) 단장’을, ‘꾸밀 식(飾)’은 ‘음식 단장’을 뜻한다. 한여름 장마철에 가장 중요한 일은 집 단장과 음식 단장이다. 집이 무너지고, 식중독 사고가 나는 일은 거의 이때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전에는 장식(粧飾)의 의미를 ‘얼굴 따위를 매만져 꾸미는 일’로 풀이하고 있으니 본뜻에서 상당히 멀어졌다.
장마철에는 또 담장도 잘 보살펴야 한다. 대개 흙으로 두른 담장인 ‘담장 장(墻)’ 자를 쓰는데, 더러는 나무로 두른 ‘담장 장(牆)’ 자를 쓰기도 한다. 담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은 글자 모양이나 발음으로 보더라도 당연히 장미(薔薇)이다. 찔려도 죽지 않을 만큼 가시까지 많으니 안성맞춤이다.
날씨가 들고 외출하고자 한다면 ‘옷매무새’를 잘 꾸며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장식(裝飾)’이다. ‘꾸밀 장(裝)’ 자에 ‘옷 의(衣)’ 자가 들어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꾸밀 장(裝)’ 자는 ‘선비(士)가 마루(爿)에 앉아 옷(衣) 단장을 하는 모습’인데, 요즈음 장식(裝飾)이라 하면 오직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만 알고 있으니 이 또한 본뜻에서 조금 멀어졌다.
화장품을 바르거나 문질러 얼굴을 곱게 꾸미는 일을 ‘화장(化粧)’이라 한다. 화장에 ‘변화할 화(化)’ 자를 쓰는 걸 보면 화장을 하고 나면 분명 달라지기는 하는가 보다. 그리고 화장을 영어로 ‘메이크업(makeup)’이라 하는 걸 보면, 화장하면 기분이 ‘업(up)되는’ 건 사실인가 보다. 우리와 일본은 화장(化粧)이라 쓰는데, 중국에서는 ‘화장(化妆)’으로 쓰고 있다. 신사(紳士)가 평상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씩씩할 장(壯)’인데, 숙녀(淑女)가 평상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꾸밀 장(妝)’이다. 아무래도 화장은 여성의 몫인가 보다. 장(妆) 자는 장(妝)의 간체자이다. 화장의 다른 말로 단장(丹粧)과 치장(治粧)도 있다. ‘붉을 단(丹)’ 자를 쓴 걸 보면 꽃처럼 붉은 단장을 좋아했을 법하고, ‘다스릴 치(治)’ 자를 쓴 걸 보면 꾸미는 행위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순우리말 가운데 화장과 비슷한 뜻으로 ‘가꾸다, 꾸미다, 다듬다, 차리다, 매만지다’ 등과 같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한민족이야말로 화장을 매우 소중한 일로 여겼다는 증거가 된다. 이 중에도 ‘가꾸다’는 말이 마음에 쏙 든다. 그 까닭은 화장이란 갑작스러운 자기 변신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하면서도 늘 성장하고 있는 식물을 보살피며 손질하듯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가꾸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화장비법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우선 퀴즈를 낸다. “가장 쉽게 왕(王)이 되는 방법을 먼 데서 찾지 말고 왕(王) 자 속에서 찾는다면?” 정답은 ‘와토위왕(臥土爲王)’이다. 땅(土) 위에 ‘한 일(一)’ 자로 벌렁 드러누우면, 누구든지 ‘왕(王)’이 된다는 말씀.
왕이 된 이상, 피서(避暑)를 위해 북새통을 이루는 곳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더위를 즐긴다는 낙서(樂暑)의 마음으로 들마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이따금 들마루 곁의 잡초와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왕이라도 ‘매무새’는 ‘매만져야’ ‘맵시’를 낼 수 있다. 지금, 여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나. 어디부터 매만질까? 머리와 옷만 매만질 것이 아니라 감성과 고독도 매만져 보면 어떨까. 이것이 올여름 추천 화장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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