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4- 유시유종(有始有終)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4

유시유종(有始有終)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있다. 이른바 유시유종(有始有終)의 철칙이다. 문자는 영원하나 그 연재는 유한하다.

오늘로 세계일보 문화기획 칼럼 문자로 보는 세상은 문을 닫는다. 두툼하면서도 읽을거리가 쏠쏠하던 세계일보의 지면 축소 소식은 안타까우면서도 수긍이 간다. 전자시대를 맞이하면서 종이신문의 다이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문화면이 가장 많이 줄어든다고 하니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왠지 아쉬움이 앞선다.

그런데도 신문은 여전히 문자를 통하여 세상을 밝혀주는 가장 강력한 정보 발전소이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지면에는 다양한 폰트의 문자가 크고 작은 목소리로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듯이, 문자를 보면 그 당시의 세상이 보인다. 문자를 보면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자를 보면 귀와 눈이 밝아지므로 총명(聰明)해진다는 말이 성립된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음성언어인 말과 문자언어인 글을 사용해 왔다.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말로만 살아가는 미개인들도 있지만, 말의 시간적·공간적 제약 때문에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끼리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또 그들이 일궈낸 문명과 역사를 후손에게 남길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문자(文字)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자는 문명과 미개를 구분 짓는 척도가 됨은 물론, 오늘날의 각종 신문, 잡지, 사전 등의 기록을 가능케 해 준다는 점에서 문자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인생도 만남도 유시유종(有始有終)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죽을 일도 없을 테지만, 태어났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이른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이는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리는가 보다. 일이든 사람이든 만나지 않았다면 헤어질 일도 없을 테지만, 만났다면 반드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른바 회자정리(會者定離)이다. 따지고 보면 시간도 공간도 모두 유시유종(有始有終)이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의 일차적 의미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시작도 잘하고 끝마무리도 잘해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작한 일은 끝까지 잘 마무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시작한 일은 끝을 보라는 속담과 상통한다.

시작이 반이다(Well begun is half done)’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등의 속담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노자(老子)>에 나오는 다음 구절도 시작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합포지목(合抱之木) 생어호말(生於毫末), 구층지대(九層之臺) 기어누토(起於累土), 천리지행(千里之行) 시어족하(始於足下)’ ‘아름드리의 큰 나무도 털끝만한 씨앗에서 싹이 트고, 9층의 높은 누대도 한 무더기의 흙을 쌓는 데에서 시작하며, 천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

시작의 종결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다.

 

시작을 뜻하는 한자로는 처음 시()’ ‘처음 초()’ ‘비롯할 창()’ 등이 있다. ‘처음 시()’ 자는 인생의 시작, ‘처음 초()’ 자는 일의 시작을 뜻한다. 여기에서 시초(始初)’라는 단어가 생성된다.

처음 시()’ 자는 배 속에 아기가 생기는 일이 인생의 시초라는 데에서 비로소’, ‘처음을 뜻하는데, 좀 더 자세히 시() 자를 들여다보면, 여인 뱃속 아기의 숨구멍인 기도(氣道)와 목구멍인 식도(食道)가 보인다. 지금은 를 뜻하는 ()’ 자는 본래 의 모양을, 지금은 을 뜻하는 ()’ 자는 본래 목구멍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였다.

처음 초()’ 자는 옷 의()’ 자와 칼 도()’의 합성인 걸 보면, 옷을 만들기 위해 칼로 재단하는 모습으로 일의 시작을 뜻한다.

창조(創造)라 할 때의 비롯할 창()’ 자도 일의 시작을 뜻한다. ‘곳집 창()’ 자와 칼 도()’ 자의 합성으로, 이는 창고에서 칼을 들고 일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공간, 사물 따위에서 마지막 한계가 되는 곳을 가리키는 이란 말은 다소 절박하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우리말에 끝을 보는 성격이라 하면 일단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맺음하는 과단성 있는 사람의 성격을 뜻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란 말도 있는데, 이 말은 일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 (All’s Well That Ends Well)’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만든 희곡명이기도 하다.

행백리자(行百里者) 반어구십(半於九十)’<시경>에 나오는 구절로,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일은 마무리 단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만, 이 말은 특히 등산 교훈으로도 많이 사용되는데, 정상에서 거의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신종여시(愼終如始) 즉무패사(則無敗事)’<노자>에 나오는 구절로, ‘무슨 일이든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정성을 다하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는 처음과 끝을 매우 중요시한 철학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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