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혁명(革命)과 가죽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2
혁명(革命)과 가죽

4·19민주혁명 57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3일에서 19일까지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있는, 국립 4.19민주묘지 및 강북구(구청장 박겸수) 일원에서는 ‘깨어나라 4·19의 빛이여. 타올라라 희망의 등불로’라는 주제 아래 ‘4·19혁명 국민문화제 2017’이 펼쳐졌다. ‘국제학술회의’ ‘전국학생 그림그리기 & 글짓기대회’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순례길 트레킹’ ‘전국대학생 토론대회’를 비롯하여, 18일 오전에는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국립4·19민주묘지까지 달리는 ‘희망나눔 마라톤대회’, 오후에는 강북구 한천로에서 ‘1960년대 거리재현 퍼레이드’ 및 ‘전야제’ 등이 열렸다.
19일 당일에는 국가보훈처 주최의 ‘4·19민주혁명 기념식’이 열렸는데, 늘 참석해 오던 현직 대통령 대신에 19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참배하고 방명록에 나름의 시국관이나 혁명관을 적고 다녀갔다. 필자는 ‘라이브 서예’ 타이틀로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혁명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돌이켜보면 1960년 4월 19일 ‘자유(自由)·민주(民主)·정의(正義)’의 기치 아래 학생들이 주도하고 민중이 합세하여 일으킨 4·19혁명은 이승만, 이기붕 일당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조직화하지 못한 민중의 힘에 편승한 무능한 민주당 정권은 군사정권에 의해 역풍을 맞아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위기 때마다 이어진 민주 투쟁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일궈냈다. 이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로서, 여기에서 4·19혁명의 의의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장미 대선을 앞두고 맞이하는 올해의 4·19혁명 기념일은 어느 때보다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혁명(革命)’이란 말은 우리의 고전에도 흔하게 나타나지만,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주나라 때의 경전인 <주역>이다. ‘하늘과 땅이 바뀌어 네 계절을 이루듯이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의 혁명은 하늘의 뜻을 따르고 사람들의 소리에 응한 것이다. (天地革而四時成 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라고 했다. 이는 곧, 혁명은 사철이 바뀌듯이 천지의 때를 따라야 하고, 민심의 소리에 상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혁명(革命)은 ‘순천응인(順天應人)’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혁명은 ‘명(命)을 혁(革)하다’보다 ‘명(命)에 따라 혁(革)하다’라고 풀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서 ‘명(命)’은 ‘천명(天命)’을, ‘혁(革)’은 ‘변혁(變革)’을 뜻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혁명(革命)이라 하면 고려 왕건이나 조선 이성계처럼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생각해 왔다. 곧,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함은 천명(天命)에 의한 것이라는 사상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진정으로 민심이 천심을 대신하고 민중의 힘만으로 혁명을 이뤄낸 사건은 4·19혁명과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전부라고 본다.
혁명은 ‘프랑스 혁명’과 같은 시민 혁명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통치형태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제4차 산업혁명’처럼 사회적·경제적인 급격한 변화를 뜻하기도 한다.

가죽의 가공 과정에서는 반드시 ‘무두질’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손질하지 않은 짐승의 ‘생가죽’, 곧 ‘원피(原皮)’에서 털과 기름을 뽑고 잘 매만져서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가리킨다. 무두질을 거치면 원피가 부드럽고 연한 ‘다룸가죽’, 곧 ‘유피(鞣皮)’가 된다. 유피를 총칭해서 피혁(皮革)이라 하며, 특별히 털이 붙어 있는 상태로 무두질한 것을 모피(毛皮)라 한다. 벗겨낸 가죽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곧 부패해 버리지만 적당한 가공을 거치면 물에 적셔도 썩지 않고 건조해도 딱딱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은, 가죽을 각종 생활 용구로 사용하거나 몸을 꾸미는 재료로 활용하게 되었다. 무두질한 유피에서는 털이 달린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여기에서 가죽의 의미 속에 ‘혁명’의 의미가 탄생한다.
유피의 원료가 되는 원피는 소·말·개·돼지·양과 같은 포유동물의 가죽이나, 악어나 뱀과 같은 파충류의 가죽, 또는 타조와 같은 조류의 가죽도 이용된다. 이를테면 쇠가죽을 무두질해야만 북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무두질은 인류가 구석기시대부터 고민하며 터득해 온 가장 오래된 기술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수렵으로 잡은 짐승 가죽에 기름을 바르고 문질러서 연하게 하는 ‘기름 무두질법’과 불을 이용하여 가죽을 연기에 그을리는 ‘연기 무두질법’을 고안해 냈다.
국어에서 ‘가죽’이란 말은 사람의 피부를 낮잡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주로 동물의 몸을 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 가공한 물품을 뜻한다. 갖신(가죽신), 갖옷(가죽옷), 갖바치(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사람), 갖풀(가죽을 고아서 만든 풀, 아교) 등에서 보듯이 가죽을 줄여 ‘갖’이라 하고, ‘살갗’의 ‘갗’도 가죽과 동원어로 보인다.
‘가죽 혁(革)’ 자는 금문에 처음 보이는데, 짐승의 털을 완전히 제거하고 무두질하여 말리는 모습이다. 혁(革) 자의 금문 모양을 보면 머리와 꼬리도 온전히 남아있는데, 그 중간의 네모 부분이 가죽이다.
가죽을 뜻하는 최초의 글자는 금문에 나타나는 ‘가죽 피(皮)’ 자다. 죽은 짐승을 매달아 놓고 손(又)으로 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금문의 모양이 ‘짐승의 머리’와 ‘가죽’ 및 이를 벗기는 ‘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때,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일을 박피(剝皮)라고 하는데, 소전에 오면 짐승의 몸에서 완전히 떼어낸 가죽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서 가죽은 짐승의 몸을 싸고 있으므로 ‘표면’ ‘겉’ 등의 뜻도 나온다.
벗긴 가죽의 털을 제거한 뒤, 냇가에 반듯하게 펴 놓고 빙빙 돌며 무두질하고 있는 모습이 ‘가죽 위(韋)’ 자이고, 무두질과 가공을 거쳐 완전한 제품으로서의 가죽은 ‘가죽 혁(革)’이다. 그런데, 이 위(韋) 자를 성 주위를 돌아다니는 두 발의 모습으로 보고, ‘어길 위(違)’ 자의 본자로 파악하기도 한다. 구(口)를 중심으로 위아래에 하나씩 있는 발이 상반되는 방향으로 걷고 있으므로 ‘어긋나다’ ‘어기다’ ‘배위(背違)’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이 있다. 종이가 없던 옛날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가죽끈(韋)으로 묶은 책을 사용했었는데, 공자가 <주역>을 매우 많이 읽어서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에서 비롯한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요소는 의식주(衣食住)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추위를 막으며,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는 먹고, 입고, 집을 지어야 했다. 여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짐승의 가죽이었다. 어쩌면 가죽은 인간의 삶과 함께해 왔으며, 인류 첨단문화의 출발점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의·식·주가 인간 생활의 3요소라면, 4·19혁명정신인 자유·민주·정의는 민주주의의 3요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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