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국가와 나 그리고 대통령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4
국가와 나 그리고 대통령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지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다녀보지 않았던 낯선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긴 터널도 통과했다. 하지만 터널의 끝은 다시 바다였다.
대통령의 도중하차라는 70년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로 대통령이 파면되고, 그로부터 60일째에 해당하는 5월 9일 지난날의 아픔을 기억이라도 하듯 전국에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대선을 무사히 치렀다.
5월 10일 마침내 대한민국호를 이끌 새 정부 출항의 닻을 올렸다.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 각지의 고른 지지 속에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되어 방향키를 잡았다. 그동안 대통령 부재 상황에서도 내우외환의 풍파를 잘 견딤은 위대한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도 온 국민이 지혜로운 손길을 모아 선거를 통하여 법치국가다운 면모를 세상에 보여준 것은 그나마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자랑이라 할 수 있겠다.

국가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 허물은 덮어주고 부족은 채워주는 관계인가. 아니면 약점은 들춰내고 잘못은 전가하는 관계인가. 국가는 크고 나는 작으니 대소관계인가. 국가는 강하고 나는 약하니 주종관계인가. 국가가 나를 안고 지켜주니 모자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가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갑을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가와 나의 개념에 대하여 문자를 통하여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나라 국(國)’ 자와 ‘나 아(我)’ 자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창 과(戈)’이다. 국가도 나 자신도 창을 들고 잘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
국가의 순우리말은 ‘나라’이다. ‘나라’와 ‘나’ 사이에도 ‘나’라는 공통되는 글자가 있다. 이는 나라와 내가 동일체로서 나라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통합’과 ‘소통’으로 새로 태어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새로 나야(生)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대한민국의 국민인 나도 꾸준히 거듭 나야(生) ‘나 다운 나’가 될 수 있다.
국가와 나의 관계는 하나의 생명체와 이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세포 관계이다. 살면 함께 살고 죽으면 같이 죽게 된다. 손가락을 다쳤다 하여 내 몸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내 몸의 어느 한 부분에 암세포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국가와 나는 동일체로서 결코 이분법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와 나는 공존공생(共存共生)의 공동운명체(共同運命體)라 할 수 있다.
국가(國家)라고 할 때의 ‘나라 국(國)’의 원형은 ‘혹(或)’이었다. 무기(戈)를 들고 작은 성(口)을 지키는 모습이다. 이 글자의 처음은 ‘혹시라도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한결같이 잘 지키자’라는 뜻에서 ‘나라’의 의미였으나, 나중에 ‘혹시’라는 부사로 바꾸어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나라’의 본뜻을 살리기 위해 작은 성 밖에 커다란 성을 하나를 더 둘러싼 모양인 지금의 ‘나라 국(國)’ 자를 탄생시켰다.
이어서 국토의 경계를 뜻하는 ‘지경 역(域)’ 자와, 이 지경을 돌면서 지킨다는 의미에서 ‘둘레 위(圍)’ 자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예를 든 ‘혹(或)·국(國)·역(域)·위(圍)’ 등의 모든 글자에 국가와 국경을 상징하는 네모가 들어있음을 볼 수 있다.
‘나라 국(國)’ 자를 보면, 국방과 외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안보위기를 서둘러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라고 한 것은 그야말로 동서남북의 안보를 부지런히 지키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한 것은 국가와 개인을 한 몸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글자가 하나 있다. ‘무엇에게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매다’라는 뜻의 ‘미혹(迷惑)하다’는 단어가 있다. ‘혹시나 하며 기대를 거는 마음’이 바로 ‘미혹될 혹(惑)’ 자이다. 글자 모양을 보면 ‘혹시나(或) 하는 마음(心)’이 깔려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소통(疏通)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의 불통에 대한 미혹이 급기야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을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한다. 남의 눈과 마음을 ‘현혹(眩惑)’시키는 말이나, 근거 없는 ‘매혹적(魅惑的)’ 태도에는 함정이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의혹(疑惑)’에 빠지면 혹독한 대가를 치를지도 모를 일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했다. ‘혹’이란 발음이 들어간 단어는 일단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국가는 나를 감싸고 있는 큰 집이다. 그래서 국가(國家)라고 할 때 ‘집 가(家)’ 자를 붙인다. 국가가 몸이라면 국민은 세포에 해당한다. 그래서 같은 겨레붙이를 말할 때 ‘세포 포(胞)’ 자를 써서 ‘동포(同胞)’라 한다. 외국에 살더라도 혈통이 같으면 ‘교포(僑胞)’라 칭한다.
‘집 가(家)’ 자는 집안에 돼지가 있는 모습이다. 이 글자를 두고 파충류인 뱀이 무서워 뱀과 상극인 돼지를 집 아래층에 길렀다는 설, 집안의 대소변이나 음식물 찌꺼기를 돼지에게 먹였다는 설, 집안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는 설 등 이견이 많다. 하지만 다양한 동물을 길들여 집안에서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했음은 분명하므로, 그중 가장 먼지 길들인 동물이 돼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돼지를 집 안에서 기르는 일은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위해, 유용하고 편리한 먹거리로서, 나아가 가정 제사용 제물로 쓰는 등의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었음은 분명했다고 본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國家)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나라 국(國)’ 자는 국방과 외교를, ‘집 가(家)’는 생활과 경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법률에 의하면 대통령이란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로서 행정부의 실질적 권한을 가진 권력자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취임사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 광화문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라며 모든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의 자질로 국민의 40%가 민주적 소통(疏通)의 리더십을 꼽았다. 대통령(大統領)이라 할 때의 통(統) 자는 ‘통합할 통(統)’이다. 모두 합쳐 하나로 만든다는 뜻이다. 소통(疏通)의 ‘통할 통(通)’과 통합(統合)의 ‘통합할 통(統)’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으면 국가를 거느릴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재조산하(再造山河)’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한자성어로 전한다. 산하, 곧 나라를 다시 만들라는 뜻인데, 명나라 특사가 전란에 빠진 조선을 안정시킨 영의정 유성룡을 높게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금주는 대(大)한민국의 대(大)통령을 뽑은 대대(大大) 주간이었다. 대대(代代)로 ‘소통과 통합의 통통 대통령’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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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재
형님,
문비어천가로 보여서 고향후배들 싫어 합니다
그 반골기질 어디  두고 오셨나요?
권상호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은 대한민국 정부(대한민국 외교부) 지원으로 1989년에 제정돼 1990년부터 시상해오고 있는 상으로서, 문해, 특히 개발도상국 모어(母語) 발전·보급에 크게 기여한 개인/단체/기구 2명(곳)에게 매년(9월 8일 문해의 날=문맹퇴치의날) 시상하는 상이다. 후보는 유네스코 회원국 정부, 또는 유네스코와 공식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들이 각 2명까지 추천할 수 있다. 수상자는 국제심사위원단의 추천으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선정한다. 국제심사위원단은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세계 각 지역별로 안배해 임명한 문해 분야의 남·녀 저명인사 최소 5명으로 구성되며, 국제독서협회 문해상, 공자 문해상 국제심사위원단을 겸한다. 각 수상자에게 상금 미화 2만불과 상장, 세종대왕 은메달을 수여하며, 시상식은 매년 9월 8일 세계 문해의 날에 열린다.
권상호
유네스코 직지상(영어: UNESCO/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인 직지를 기념하기 위해, 기록유산의 보전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 2년에 한 번씩 수여되는 상이다. 2004년 4월 28일 유네스코 제169차 집행위원회에서 직지상의 제정이 결정되었다. 시상식은 2005년부터 청주시가 지정한 '직지의 날'에 청주 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상금액은 3만 미국 달러로서, 청주시에서 지급한다.유네스코 직지상(영어: UNESCO/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인 직지를 기념하기 위해, 기록유산의 보전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 2년에 한 번씩 수여되는 상이다. 2004년 4월 28일 유네스코 제169차 집행위원회에서 직지상의 제정이 결정되었다. 시상식은 2005년부터 청주시가 지정한 '직지의 날'에 청주 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상금액은 3만 미국 달러로서, 청주시에서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