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5-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5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어리석은 백성의 문맹 퇴치를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세종은 1397년(태조 6년) 음력 4월 10일에 태어났는데, 이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15일이 된다.
지난 15일 경기도 여주시 영릉(英陵)에서는 ‘세종대왕 탄신 620돌 숭모제전’이 펼쳐졌다. 이에 앞서 영릉광장에서는 한글서예 솜씨를 겨루는 ‘제7회 세종대왕 전국한글휘호대회’가 열렸다. 여주 시장의 3번의 타고(打鼓)와 함께 6백여 명의 묵객은 과거를 치르듯이 현장에서 붓글씨를 써 내려갔다. 필자는 식전 행사로서 ‘온 누리 빛 되신 세종 큰 임금’이라는 글감으로 국악의 반주에 맞추어 긴 천에 대붓 퍼포먼스를 펼쳤다.
세종은 인류에게 지혜를 열어줄 한글을 창제한 공로로 겨레의 스승을 지나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9월 8일은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 문해(文解)의 날’로, 이날 전 세계 문맹 퇴치를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 또는 단체를 뽑아 시상하는데, 이 상의 이름이 자랑스럽게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문해란 ‘literacy’의 번역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세종의 성명은 ‘이도(李祹)’이고, 자는 ‘원정(元正)’이다. 임금의 시호를 묘호(廟號)라 하는데, 세종의 묘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이를 줄여서 흔히 세종대왕(世宗大王)이라 하는데 이는 ‘세상의 으뜸인 대왕’의 뜻이다. 사실 세종에게만 대왕의 호칭이 붙은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모든 왕의 묘호 끝에는 대왕(大王)이 붙어있다. 나라가 작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는 대한민국, 한강대교, 대성공, 대선배 등의 예에서 보듯이 ‘큰 대(大)’ 자 붙이기를 좋아한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들로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 비는 심온의 딸 소헌왕후이다.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되었으며,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조선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세종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다. 그런데 ‘스승’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뜻일까.
‘선생(先生), 사부(師傅), 은사(恩師)’로 부르기도 하는 ‘스승’은 나를 가르쳐서 바른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스승이란 말이 사용된 예를 살펴보면 <석보상절>에는 ‘화상(和尙)은 스승을 이르니라’, <월인석보>에는 ‘법(法) 가르치는 사람은 스승이고 배우는 사람은 제자이다’ ‘늘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하여’, <능엄경언해>에는 ‘스승 아니면 깨닫지 못하나니(非師不悟)’, <법화경>에는 ‘스승님을 존(尊)하오며’, <내훈>에는 ‘스승을 섬기되’, <훈몽자회>에는 ‘스승 ᄉᆞ(師), 스승 부(傅)’, <소학언해>에는 ‘어버이를 사랑하며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존대하며(愛親敬長隆師)’, 조선 시대 사역원에서 간행된 중국어 어휘집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스승: 사부(師傅)’ 등이 있다.
위의 예에서 보면 스승이란 ‘승려, 인도자, 법을 가르치는 사람, 깨닫게 해 주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섬김을 받는 사람’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승이란 말이 ‘무당’의 뜻으로 쓰인 예도 있다. <초간두시언해>에는 ‘옛 임금이 스승 불사름을 삼가시고(前聖愼焚巫)’, <정속언해(正俗諺解)>에는 ‘세속에 스승이 간대로(함부로) 비손함(두 손 비비며 신에게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빎)에 미침이 심하여(世俗巫禱狂妄尤甚)’ 등의 용례를 살필 수 있다.
소리나 의미로 볼 때, ‘스승’과 가장 닮은 한자어는 ‘사승(師僧)’이다. 이는 승려(僧侶)가 자신의 스승을 이르는 말이었다. 사승(師僧)의 중국어 발음이 /shi seng(스성)/인 것을 보면 우리말 ‘스승’과 말 뿌리가 서로 같다고 판단된다.
그도 그럴 것이 ‘스님’이란 말도 ‘사(師, shi)님’에서 왔거나, ‘승(僧, seng)님’에서 ‘ㅇ(이응)’이 탈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결국 ‘스승’의 어원은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으며, ‘무당’의 뜻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어에서 ‘스치다’는 ‘생각하다’의 뜻이었다. 스스로 바른길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신 스승을 스승의 날에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늘 마음속으로 스승을 스치며(생각하며) 살아가야 내 언행이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각의 근육을 기르다가 생을 마감한다. 스승의 핵심적 역할은 제자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세종 시대에 정치·국방·경제·과학·음악·언어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특출한 재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승 세종으로서 궁궐의 도서관인 집현전(集賢殿)을 통하여 뛰어난 인재들을 길러내고, 대왕 세종으로서 신분이나 가문을 따지지 않고 훌륭한 인물을 고루 등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요순보다 뛰어난 공적을 세우고 조선의 황금기를 일구어냈다.
그렇다면 세종은 이와 같은 정의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어떻게 길렀을까. 독서로부터 생각의 근육을 길렀다. 세종은 손에 책을 들고 있어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독서는 세종에게 마음의 안식처이자 국가 경영의 산실이었다. 부왕 태종은 왕자의 건강을 염려하여 지나친 독서를 금지하기까지 했지만, 실은 <태종실록>의 기록과 아들 세종의 고백을 보면 부왕도 독서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정치를 잘하려면 널리 책을 읽어 이치를 깨닫고 마음을 바로잡아야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내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습관은 아버님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매일 사경(四更)이 되면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32년의 재위 기간(1418~1450) 동안 세종이 이루어 낸 위대한 업적 뒤에는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독서에 매진했던 노력이 있었다.
사실 유교 사회에서 왕위계승에는 장자가 1순위다. 태종의 네 아들 중 셋째인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왕자 시절부터 심취했던 독서 덕분이라 생각한다.
세종이 22세 되던 8월에 왕위에 오르고, 원년인 23세에 이종무를 통하여 쓰시마 섬을 정벌한 데 이어, 세종 2년 24세에 집현전을 설치한 것을 보면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국방과 학문에 주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의 겨레 스승으로서의 면모는 세종 32년 54세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특히 젊고 재주 있는 신하들을 집현전에 모아 놓고 기초 학문을 연구하도록 늘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결과 1443년 세종 25년 47세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 IT 시대에 더욱 빛나는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하기에 이른다.
文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지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택한 것은 세종대왕의 첫 국정 업무였던 쓰시마 섬 정벌을 통한 국방태세 정비와 닮았다. 바라건대, 文 대통령의 하루 시작도 태종이나 세종처럼 독서였으면 좋겠다.
여덟 살부터 드나들기 시작했던 교문을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드나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종보다 더 오래 살았고, 책을 가까이 한 기간도 더 길었다. 그런데도 쓴소리가 들려온다. 선생은 많되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되 제자는 없단다. 온 누리 빛 되신 세종 큰 임금님,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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