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0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병신년 입동이 지났다. 겨울이 시작됐다. ‘최순실의 국정논단’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이자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야 3당은 국회의 총리 추천권을 넘기겠다는 대통령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공식 거부하고, 당 차원에서 ‘민중 총궐기 집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는 등 대여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정국 혼란이 더할 전망이다. 또 예상 밖의 트럼프의 미 45대 대통령 당선으로 방위비 부담, FTA 재협상 등의 숱한 난제가 가시덤불로 다가오고 있다.
지진과 태풍으로 인한 아픔은 벌써 옛이야기로 들린다. 이처럼 안으로는 전례 없는 악성 바이러스에 의한 감기몸살에 걸린 대한민국이, 밖으로는 눈보라 몰아치는 찬바람까지 맞으며 황량한 벌판을 걸어가는 형국이다. 일제 강점기 1940년 <문장(文章)> 지에 발표된 이육사의 시 ‘절정’의 마지막 구절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지사적이고 남성적인 강렬한 언어로써 시인의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조국상실과 민족수난이라는 뼈아픈 역사적 현실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역설로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겨울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무지개가 보이는가. 굳고 딱딱한 계절에 아름답고 부드러운 무지개가 그립다.
오늘은 희망의 대안을 ‘부드러움’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나무들은 내년 봄꽃을 피우기 위하여 가을에 부드러운 꽃눈을 미리 준비하고 겨울을 맞이한단다.
‘부드러움’을 뜻하는 한자는 ‘부드러울 유(柔)’ 자이다. 글자 안에 딱딱한 ‘나무 목(木)’ 자가 있는데, 부드러움을 뜻하다니 수긍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위에는 날카로운 ‘창 모(矛)’ 자 있으니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냥 보기에는 기다란 나무막대 끝에 창이 달린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전서 ‘유(柔)’ 자를 곰곰이 살펴보면 ‘금방 돋아난 가늘고 긴 어린나무’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자에서 ‘가늘고 길다’라는 개념을 ‘털 모(毛)’ 자처럼 구부려서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면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따라서 ‘유(柔)’ 자 위의 ‘모(矛)’ 자는 ‘창처럼 뾰족이 돋아난 나무의 새순’을 뜻한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딱딱하지만, 그 끝은 부드럽다. 가지 끝은 보기에 따라서는 창끝처럼 뾰족하지만, 나무의 생장점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건 당연하리란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나무를 감고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의 모습으로 볼 수 도 있다. 좌우지간 부드러움이라는 촉감을 시각적인 문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이 대목에서 발음의 상징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모(矛)/라는 발음에는 ‘가늘고 길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털 모(毛)’, ‘창 모(矛)’가 그러하다. ‘사모(思慕)하다’의 ‘그리워할 모(慕)’ 자도 그리움의 특성상 가늘고 긴 이미지가 있다. 가장 강한 그리움은 역시 ‘어머니 모(母)―’라고 하면 지나친 발상일까. 그리움이 깊어지면 사진이나마 지니고 싶어지는데, 사진이 없던 옛날에는 얼굴 ‘모습’ 곧, ‘용모(容貌)’를 ‘모사(模寫)’하여 두고 보거나 몸에 지니고 다녔으리라. 해가 저물면 그리움은 더하게 되니, 여기서 온 글자가 ‘저물 모(暮)’이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술 한 잔 나눌 벗을 부르고자 ‘모색(摸索)’해 보지만, 찾아오는 이 없이 외로움에 ‘모가지’만 길어진다. 에라, 이 인생 에러로다. ‘모주(母酒)’ 한 사발 벌컥 들이키고 술기운에 잠에 든다.
다음에는 /유(柔)/ 자 발음의 상징성을 ‘유연(柔軟)’ 하게 살펴볼까나. 한 마디로 /유(류)/라는 발음 속에는 ‘부드러움’의 의미가 있다. 어린아이를 뜻하는 ‘유아(幼兒)’는 어른보다 더 부드럽다. 젖먹이를 뜻하는 유아(乳兒)’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빠는 ‘모유(母乳)’도 부드럽다. ‘흐를 류(流)’ 자는 본래 물이 흐르는 모습이 아니라 ‘태아가 양수와 함께 순조롭게 어머니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모습’이다. 거꾸로 선 ‘아들 자(子)’ 자를 보면 태아의 머리와 두 팔은 이미 빠져나왔고, 몸과 다리가 나오고 있으니, 영락없는 출산의 모습이다. 연료 중에는 에너지 공급원인 ‘석유(石油)’가, 나무 중에는 잔바람에도 몸을 맡기는 ‘양류(楊柳)’가 부드럽다. ‘교류(交流)’는 필요하지만 ‘표류(漂流)’는 위험천만이다. ‘화류계(花柳界)’에도 해어화(解語花)가 기다리고 있지만, ‘유들유들한’ 몸짓 속에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조심할 일이다.
다음은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 나오는 문구다.

노자 가로되,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며,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했다. 까닭에 혀는 부드러워 보존될 수 있으나 이빨은 강하여 부러지는 것이다.(柔勝剛 弱勝强 故舌能存 齒剛則折也)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떡하면 더 강하고 굳셀 수 있는가’ 만을 생각하고 있다. 작은 분쟁에도 큰소리가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화에서는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떠벌린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도 큰 문제다.
‘들을 청(聽)’ 자와 ‘덕 덕(德)’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잘 듣는 자가 덕이 있는 사람이다. 차제 청와대(靑瓦臺) 명칭을 ‘청와대(聽蛙臺)’로 바꿔 쓰면 어떨까. ‘개구리들의 함성을 듣는 집’이란 뜻이다.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사과는 하면서도 국기문란 원인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음은 아직도 국민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가 보다. 국가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한 아줌마의 농단을 보고도 이를 견제하지 못한 모든 잘못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 앞에서 털끝 하나 숨김없이 실체를 털어놓고 권력에 대한 미련은 아낌없이 버려야 한다.
정치에도 부드러움[柔]과 흐름[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소통의 시대에 딱딱한 ‘고집불통(固執不通)의 대통령’으로 일관해 왔다. 이는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는 얘기이다. 함량 미달의 인사와 재계와의 결탁 등 전근대적인 불미스런 일로 인하여 임기마저 다 채울 수 있을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한(恨)민국’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염려된다. ‘대를 이은 대통령’,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선거의 여왕’ 등의 아름다운 타이틀을 일순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말았으니, 본인의 말 대로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라는 말이 수긍은 간다. 하지만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자탄이기를 바랄 뿐이다. 야 3당도 여론에 편승하여 대통령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 통합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대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이기고 거친 것이 부드러운 것을 이긴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틀린 말이다. 강은 또 다른 강을 불러 투쟁을 낳거나, 인류에게 불안만 더해주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이 힘이 되는 것은 그 속에는 적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과 진정성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여야도, 트럼프 대통령도 유승강(柔勝剛)의 지혜를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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