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2- 부끄러움은 미덕이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2
부끄러움은 미덕이다
- 부끄럼을 모르는 대통령, 부끄러워 치를 떠는 국민 -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에도 부끄럼을 많이 타는 잔부끄럼쟁이 친구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에게 부담을 주거나 신의를 저버린 적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성질이나 느낌 또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를 ‘부끄럼성(-性)’이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인간이 아니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란 얘기다. 인간다운 인간이란 ‘인간의 자격’이라 할 수 있는 ‘인격(人格)’을 갖추고 있는 인간을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은 ‘인격의 완성’이다.
인간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 ‘부끄럼타기’이다. 부끄럼을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패자의 감정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잘못된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성숙으로 가는 진솔한 인간의 미덕이다. 부끄럼이 남에게 때로는 겸연쩍고 열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부터는 공감을 얻어내고, 자신으로부터는 겸손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끄럼은 때로 소통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부끄러움을 피해의식과 열등감의 표출로 보고, 위장된 가식 행동으로 포장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대통령과 비선실세는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부정입학을 종용하여 정유라의 이화여대 ‘학사농단’을 만들어 내고, 손부끄러운 줄 모르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하여 53개 기업을 상대로 하여 총 774억 원의 출연을 강요하였다.
현직 대통령이 범죄 혐의 피의자로 검찰에 입건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나 부끄러워할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살펴보건대 부끄럼은 부숴버리고, 어떡하면 부러움을 살 수 있을까 하고 부산하게 기춘 대원군을 비롯한 측근들에게 자문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은 찍어준 손이 부끄럽고, 믿은 마음 민망하여 촛불과 격문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피의자로 전락한 박 대통령께 국민은 더 바랄 게 없다. 버티기는 그만하고 정권 퇴진 요구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깨닫고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양심(良心)의 소리를 시원하게 쏟아주길 바라고 있다. 부끄러움에 치를 떠는 국민이 4차에 걸쳐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생업을 포기한 채 촛불집회를 펼친 이유는, 박 대통령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적시(摘示)를 듣고자 함이 아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박 대통령이 주도한 배경과 재정 모금 과정, 청와대 문건 180건 유출로 인한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 내용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참회의 고백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도덕적 의식 곧, 양심(良心)이란 것이 있다. 양심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자 최고의 선물이다. 양심만으로도 행복한 세상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양심은 딱 하나다. 국민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일이다. 그러면 자신의 기본적인 부끄럼이 오롯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말 ‘부끄러움’은 ‘부끄러워하는 느낌이나 마음’을 뜻한다. 부끄러움의 느낌이나 마음은 얼굴에 나타난다. 그래서 흔히 부끄러울 때, ‘얼굴이 붉어진다’라고 한다. ‘부끄러워하다’의 옛말은 ‘붓그리다’로, ‘붓’과 ‘그리다’의 합성어로 보인다. 옛말 ‘붓’은 ‘볼[頰]’이나 ‘얼굴[顔]’의 뜻으로 여겨지므로, ‘붓그리다’는 ‘(부끄러움을) 볼에 그리다’라는 뜻이 된다.
‘볼’과 비슷한 말에 ‘뺨’이 있다. ‘뺨’은 ‘볼’보다 큰말로 뺨의 한복판이 ‘볼’이다. 그래서 볼에 키스하면 뺨 전체가 붉어진다.
‘부끄러움’을 뜻하는 말로 ‘수치(羞恥)’가 있다. 맹자는 “수치심과 혐오감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라고 했다. 맹자는 또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한 네 가지 마음을 ‘사단(四端)’이라 규정하고, 이 사단은 사덕(四德)의 단서(端緖)가 된다고 보았다. 사단은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이른다. 이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수(羞)’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오(惡)’는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덕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수치(羞恥)는 ‘부끄러울 수(羞)’와 ‘부끄러울 치(恥)’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의 ‘수(羞)’ 자는 원래 ‘양 양(羊)’에, 손을 뜻하는 ‘축(丑)’ 자를 더한 글자로 ‘바치다’의 뜻이었다. 손가락을 펴고 있는 손은 ‘우(又)’이지만, 손가락으로 뭔가 움켜쥐고 있는 손은 ‘축(丑)’이다. 따라서 수(羞) 자의 본뜻은 ‘양고기를 바치다’였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의 예에서 보듯이, 수(羞) 자는 ‘맛있는 음식’의 뜻으로도 파생되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수(羞) 자가 ‘부끄러움’의 뜻으로 쓰이는 것이 특이한데, 이는 아마 진수성찬으로 대접하면서도 ‘부끄럽다’고 말하는 우리의 전통 미덕에서 나온 뜻이 아닐까 한다.
폐월수화(閉月羞花)란 성어가 있다.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한다는 뜻으로, 여인의 얼굴과 맵시가 매우 아름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의하면,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애인인 여희(麗姬)는 절세미인으로, 그녀를 보면 달은 구름 속에 모습을 숨기고, 꽃은 부끄러워했다고 전한다.
‘부끄러울 치(恥)’ 자는 처음부터 같은 뜻으로 쓰였다. 치(恥) 자를 만든 부족은 부끄러움이 얼굴보다 귀[耳]에 잘 나타난 듯하다. /치/라는 발음은 부끄러움과 상관이 있다. ‘다스릴 치(治)’하는 자는 ‘부끄러울 치(恥)’를 알아야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면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끄러움[恥]은 ‘가치[値]’ 있는 마음이다.
괴로울 정도로 부끄러움을 ‘참괴(慙愧)’라고 한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고[斬(벨 참)]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이 ‘부끄러울 참(慙)’이고, 귀신(鬼神)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부끄러울 괴(愧)’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은 ‘수치’ 수준일까 ‘참괴’ 수준일까. 아니면 끝내 ‘뻔순이’일까.
부끄러움은 모르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가는 위태한 국가이다. 오늘날은 부끄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사라져가는 부끄러움을 반드시 회복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인간은 부끄럼 속에서 자란다. 부끄럼 속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행복을 나누며 성장해 왔다. 이 땅에서 무릇 정치를 하거나,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돈이 들지 않아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이란 네 글자를 선물하고 싶다.
부끄러움이 있었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가 그립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소설에서 한국 전쟁과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잃어버렸던 부끄러움을 일깨워주는 소설가 박완서가 그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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