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오랜만에 서예에 관심을 보인 언론 - 서예박물관 - 조선일보 만물상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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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중국 한나라 때 서예가 사의관(師宜官)은 술을 좋아했다. 때로 술 마시고 돈이 모자라면 술집 벽에 마음 가는 대로 글씨를 썼다. 그러면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보고 너나없이 돈을 주었다고 한다. 서예에 대해 온 사회가 그만큼 열정적으로 반응을 보였고 글씨 쓰는 사람을 존경했다는 얘기다. 사의관은 며칠 후 벽에 쓴 글씨를 파 가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술집 벽이 엉망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술집 주인과 종업원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역시 서예에 대한 경의(敬意)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문화혁명의 영향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중국에서 서예를 귀히 여기는 전통은 여전하다. 중국 교육부는 작년 초·중등학교에서 붓글씨 교육을 의무화하는 '서법(書法)교육 지도 요강'을 발표했다. 초등학교 1~2학년에는 글씨 쓰기의 기초를 가르치고, 3학년에는 해서체(楷書體)를 시작으로 저명 서예가들의 필체를 따라 쓰게 하는 식이다. 중국은 최근 서법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올리기 위한 전문가 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간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도 몇십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먹을 갈고 붓으로 글씨를 쓰게 하는 교육이 있었다. 살아가는 데 약이 될 명구(名句)를 붓으로 써 아랫사람에게 주는 걸 즐거움으로 아는 어른도 많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더 이상 붓을 잡지 않는다. 추사(秋史) 같은 명필의 글씨도 젊은 화가의 그림값만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는 팔순 나이에 문인화를 배워 화문집(畵文集)까지 냈다. 그에 따르면 붓을 들어 뭔가를 쓰고 그리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은 치유(治癒) 예술이다. 요즘은 글자를 쓰지 않고 친다. 자판을 치는 것은 남의 글자를 얻어 오는 것이고 서예는 자신의 글자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두껍게 혹은 가늘게, 빠르게 혹은 느리게, 짙게 혹은 옅게 쓰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의 창조 행위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일 년 예정으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한다. 1988년 문 연 이 박물관 건물은 애초 교실 용도로 지은 것이었다. 17년 동안 유물이나 작품 구입 예산이 단 한 푼도 없었으니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이 기회에 인력·예산과 박물관 운영까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만년필이나 연필·볼펜으로 쓴 예쁜 글씨나 간판 글씨, 컴퓨터와 연계된 서예 작업 등 현대의 문자 문화를 담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 서예가 우리네 생활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사회의 품격도 올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