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熱河日記

熱河日記

 

조선의 대문호라 불리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명성도 열하일기로 인해 더욱 높아졌다. 주지하다시피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중국 기행문이다. 그는 1780(연암 44. 정조 4. 235년 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다녀왔다.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연암... 호기심 천국, 놀라운 관찰력, 실학자이긴 하지만 기술자는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

 

창작/발표시기: 1901, 1911, 1932

간행/발행처: 김택영, 광문회, 박영철

분야: 문학/한문학

 

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朴趾源)이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일기(燕行日記).

 

[내용] 2610. 필사본.

 

간본(刊本)으로는 1901년 김택영(金澤榮)연암집 燕巖集원집에 이어 간행한 동 속집 권1·2(고활자본)에 들어 있고,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A5286면의 활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간행한 신활자본 연암집별집 권1115에도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편도 있고 1956년 자유중국의 대만대학(臺灣大學)에서 동 대학 소장본을 영인한 것도 있다.

 

1780(정조 4) 저자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압록강을 건너며도강록渡江錄

심양의 이모저모성경잡지盛京雜識

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일신수필馹迅隨筆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관내정사關內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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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당시 새로운 형식에 많은 논란. 생전에는 정식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읽힘. 컬쳐쇼크. 초등학생 일기장 같은 친숙함. 풍광과 시가지 묘사 - 사실감,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외국 통행이 제한적이었던 때 책으로 출판되지 못했지만, 많이 읽힌 이유를 알 수 있다. 시가지, 산하, 식물, 인물(역사적 인물, 당대 청인과 한인의 비교, 노름하는 사신), 건물, 벽돌(흙을 구워 만든 벽돌>흙과 돌), 가마, 구들장 등의 청나라 문물 집대성...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이 지혜의 보고라는 생각이 송두리째 날아감. 전통이라는 이유로 숭배하는 것은 금물. 중국어로 번역하면 더 인기 있는 책이 될 듯.

7월 10일, 심양은 청나라가 일어난 터전.
7월 11일 - 속재필담(성경 - 연경과 비교 -의 예속재에서 밤에서 새벽까지 대화) 뒷간에 간 것처럼 혼자 빠져나옴. 밤샘 주연.
진짜와 가짜의 문제. 174. 유리창
술로 취하고 덕으로 배부르다.
전사가- 연암의 풍채와 기세가 훤칠하다고 함. 공맹에 두루 통달. 주공의 도에 이르렀다고 함.
法酒, 燒酒가 있다고.
우리나라에는 5현의 향비파와 4현의 당비파가 전해진다.청- 康衢煙月
연암- 후출사표를 읽자 감탄.
유량의 ‘辭中書監表’
巡邏: 성경에는 야경꾼이 있다.
- 석달이 넘도록 촛불을 켜고 밤을 새운들 무슨 싫증이 나겠습니까?
- 찬 술은 폐를 해칠 뿐만 아니라 이빨에 독이 스며들 수도 있습니다.
- 골동품점에서 - 款識(골동품에 새긴 글자)!!!를 보니 모두 周, 漢 대의 물건!!
* 호, 고, 정(귀2, 다리3), 이(뚜껑이 있고 화려함)
- 선생을 뵈오니 백 명의 벗을 얻은 듯합니다.
7월 13일 - 붓글씨 써 주는 내용 더러 나옴. 서예를 잘 한 것으로 보임. 특히 미불을 좋아함.
참외 파는 한족 할머니에게 속을 것을 아쉬워 함.
기상새설 - 국수집 간판의 실수
鷄鳴副珈(머리꾸미개, 떨잠 가) - 시경 구

---------- 열하일기에 대한 많은 선비들의 평
정약용, 경세유표(經世遺表) > 경세유표 제2권 > 동관 공조(冬官工曹) 제6
내가 선조 때에 규장각에서 서적을 교열하였는데, 선조께서 《도서집성(圖書集成)》ㆍ《고공전(考工典)》 제240권을 내사(內賜 : 임금이 친히 내려주는 것)하였으니, 곧 기이한 기구(機具)를 도해(圖解)해서 설명한 것을 편집한 것이다. 그 후에 또 규장각 검서관(檢書官) 박제가(朴齊家)가 지은 《북학의(北學議)》 6권을 보았으며, 그 후에는 유신(儒臣) 박지원(朴趾源)이 저술한 《열하일기(熱河日記)》 20권을 보았는데 거기에 기록된 중국 기구(器具)의 제도는 보통 사람의 의견으로서 능히 추측하지 못할 만한 것이 많았다.

<다산시문집>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지어 20여 가지의 마술을 기록하여 놓았다. 이 이치를 안다면 지사의 말이 망령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 이동직(李東稷) : 자는 거경(巨卿). 정조 16년에 부교리(副郊理)로서 박지원(朴趾源)의《열하일기(熱河日記)》의 문체가 저속하다고 논박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
권상호
박지원은 당시 홍대용ㆍ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중심에 있었다.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롭고 재치있는 문체로 당시의 사회상을 포착,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썼다. 그는 문체반정 때 정조에게 문체를 타락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저서에 <연암집(燕巖集)>, <과농소초(課農小抄)>, <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 등이 있고, 작품에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마장전(馬駔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민옹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등이 있다.  박지원은 당시 홍대용ㆍ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중심에 있었다.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롭고 재치있는 문체로 당시의 사회상을 포착,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썼다. 그는 문체반정 때 정조에게 문체를 타락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저서에 <연암집(燕巖集)>, <과농소초(課農小抄)>, <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 등이 있고, 작품에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마장전(馬駔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민옹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