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월간묵가 원고 -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11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11

- 라이브 예서 -

권상호 (라이브 서예가)

산을 오름에 그 산의 높이와 관계없이 정상에 올랐을 때만 사방팔방을 조망할 수 있다. 산의 높이에 비하면 내 키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에서 내 키만큼 못 미쳐도 산의 한쪽 면밖에 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안(事案)에 따라서는 99.9%의 노력에도 부족한 0.1% 때문에 절반 또는 그 이상을 놓쳐버리는 야속한 때도 있다.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이라 했다. 백 리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구십 리를 반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끝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말씀. 우리는 여기에서 예서 공부의 아름다운 끝마무리를 위해 고민할 때이다.

서예는 등산을 닮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발을 내디뎌야 넘어지지 않고 정상에 올라갈 수 있듯이 붓도 한 점 한 획 신중하게 찍으며 그어나가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지나친 욕심을 내어 급히 올라가다가는 다치기 쉽고 주위 풍광을 놓치고 만다. 서예 학습도 너무 급히 서두르면 안고수비(眼高手卑)를 둘러대며 중도 포기하기에 십상이다. 매 순간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붓을 잡아야 할 것이다. 산을 오를 때 주변 풍광을 놓치지 않듯이 서예 공부를 하면서 주변 학문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체본만 베껴 쓰면 먹탱이가 되고 만다.

우리는 지금까지 5체 중에서 예서를, 예서 중에서 사신비(史晨碑)를 모본(模本)으로 하여 공부해 왔다. 다시 말하면 지난 10개월 동안 사신비라는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왔다. 지난달부터 사신비 봉우리에 올라서서 주변의 다양한 예서 봉우리들을 조망하기 시작했다. 예기비(禮器碑)봉, 조전비(曹全碑)봉, 장천비(張遷碑)봉 등의 다양한 봉우리들을 살피며 그 특징을 살펴보았었다. 이제는 이 산 저 산의 아름다운 유혹에 기분 좋게 넘어가야 한다. 저 멀리 전서(篆書)산맥과 해서(楷書)산맥이 이어지고, 까마득히 행초(行草)산맥도 졸린 듯 화려한 자태로 유혹의 몸짓을 뒤척이고 있다.

이달에는 ‘라이브 예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노래와 춤을 모르면 서예를 잘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역사적으로도 문약(文弱)한 문인보다 호기(豪氣) 넘치는 무인이 서예를 더 잘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무인은 무예를 온몸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글씨를 온몸으로 써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는 그렇게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필가묵무(筆歌墨舞)의 경지에 들었다 함은 말 그대로 필묵(筆墨)이 가무(歌舞)를 만났다는 의미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라이브 서예야말로 필흥 속에 산의 정기(精氣)와 물의 자적(自適)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고 본다. 특히 예서는 도법과 파책의 절묘한 동작의 조화가 있어서 필흥을 더하게 한다. 작업실을 벗어나 행사장이나 잔치에서 만나는 라이브 서예에는 분명히 실내에서 느끼는 정적인 글맛과는 다른 동적인 맛이 있다.<도>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는 <논서(論書)>에서 ‘서(書)에는 반드시 신기골육혈(神氣骨肉血)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 중에 첫째가 ‘신(神)’인데 이것이 바로 ‘정신(精神)’이다. 정신이 없는 육신은 죽은 생명이다. 라이브 서예는 바로 육신에 원기 왕성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때로는 휘발유처럼 휘몰아치는 격정으로, 시너처럼 신 나는 신명으로 붓을 잡아 보자.

그러다가 낙엽이 대지를 어루만지고 옷깃에 차가운 바람이 엄습해 올 때에는 찻물이 끓는 따뜻한 실내에서 헛헛한 가슴을 라이브 서예로 달래 보자. 그래도 외로움이 엄습해 오면 이름 없이 소리 없이 어느 한 곳을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꽃처럼 은은한 묵향을 피워 보자. 머뭇거리지도 뒷걸음치지도 않는 물처럼 붓 가는 대로 마음을 맡겨 보자.

참고 작품 :
건강지성(健康至誠) - 한국에이즈퇴치연맹 회장 이취임식장에서
선유재(仙遊齋) - 경기도 연천
우화보궁(雨華寶宮) - 경남 김해 정암사
취옹예술관(炊翁藝術館) 개관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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