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8 - 월간묵가 원고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8

도정 권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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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 마주하는 것은 사람 아니면 일이다. , 인사(人事)이다. 글씨 쓰는 일은 당연히 사()에 해당한다. 대상이 인()이라면 예()를 다하고, 대상이 사()라면 성()을 다해야 한다. 예절(禮節)과 성실(誠實), 이 두 가지는 처세의 키워드다.

오늘은 글씨 쓰는 일, 그중에서도 임서(臨書)를 성실하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한다. 성실한 임서를 위해서는 정확한 안목을 길러야 한다.

사람의 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사물을 정확하게 살필 줄 아는 관찰의 눈, 두 가지 이상을 견주어 보고 장점을 취할 줄 아는 융합의 눈, 기존의 모든 것을 뒤집어 볼 줄 아는 역발상의 눈이 그것이다.

임서는 이 중 첫 단계인 관찰의 눈이 요구된다. 미안하지만 임서는 아무리 잘해 보았자 제이인자(第二人者)밖에 되지 못한다. 완당의 글씨를 죽으라고 임서해 본들 완당의 아류밖에 되지 못하고, 선생의 글씨를 평생 따라 써 본들 선생 이상이 될 수 없다. 허걱. 하지만 다음 단계의 눈을 뜨기 위해서는 관찰의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일.

두 번째 단계로는 여러 법첩을 임서해 보거나 여러 스승을 찾아 배우는 일이다. 그러면 융합의 눈이 길러지고 새로운 스타일의 글씨가 탄생하게 된다. 어떤 사람의 작품을 보고 학습 과정을 읽을 수 있음은 바로 융합의 눈 덕분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창조의 눈은 역발상의 눈에서 탄생한다. 이는 해가 뜬다.’가 아니라, ‘지구가 자전한다.’가 맞는 것처럼 기존의 모든 상식을 뒤집어 볼 때 생기는 창조의 눈이다. 기존의 모든 서체를 거부하는 역발상의 눈에서 새로운 서체가 창조된다. 앗싸.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귀찮아도 임서(臨書)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귀찮다는 말은 ()하게 여기지 않다는 뜻이렷다. 서예는 슬로우 아트이고, 게다가 준비가 번거로우므로 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구상의 모든 귀차니스트들이여 안뇽~. 어떤 일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번거롭고 성가시게 생각하면 되는 일이 없다. 오히려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도전의 가치는 올라가는 법이다. 옳거니. 서예로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하자!

오늘의 화두는 임서(臨書)이다. ‘(임할 림)’ 자는 (엎드릴 와) + (물건 품)’으로 이루어졌으며, 본뜻은 여러 물건을 굽어보다이다. 는 눈을 뜨고[] 편안히 드러누워 있는 모습니다. 졸려서 눈꺼풀이 드리워지면 (잘 수), 완전히 잠이 들면 (잠잘 면)이다. 자는 (눈 안) 자와는 달리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신하 신) 자는 당연히 위로는 임금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백성을 굽어보는 눈이다. 따라서 임서는 위로는 서예가의 심신(心身)을 읽고, 법첩을 뚫어지게 잘 살펴본 뒤에 따라 써야 한다. 우선 글자 전체의 윤곽을 살피고, 이어 점획의 길이와 모양을 살필 것이며, 마지막으로 운필 동작을 생각해야 한다. 메뚜기나 다람쥐가 뛸 때는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뛰듯이, ()은 위치를 획()은 목적지를 설정한 후에 붓을 대야 한다…….

사신비(史晨碑) 임서의 둘째 시간이다. 사신비를 잘 임서하기 위해서는 팔분예서의 일반적 보편적 특성과 사신비만이 갖는 특징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메모를 잘해 두고 염념하며 한 땀 한 땀 써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집을 지을 때는 설계도를 먼저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는 스케치를 먼저 한다. 임서를 쓰기 전에도 임본 관찰을 잘한 후에 그림 1과 같이 따라 써 보는 일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꼭 붓이 아니어도 좋다. 볼펜, 사인펜, 연필, 세필 등 무엇이든 좋다. 좀 더 전문적인 서예가가 되고자 한다면 임본 위에다 인찰지를 대고, 쌍구 뜨기를 해 보는 것도 좋다. 쌍구 뜨기는 획질 탐색에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된다. 오늘날에는 손안의 사진기나 복사의 편리성 때문에 사진이나 복사가 대세이나, 이는 깊이 있는 관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나뭇잎은 그냥 사진 찍어 보는 것과 잎맥을 직접 그려보는 정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서예에 입문하는 초심자 대부분은 막 바로 그림 2처럼 따라 쓰기, 곧 임서에 열중한다. 그림 1에서 (열 천), (높을 숭)’, 그림 2에서 (능할 능)’ 자 등의 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앞뒤 문맥을 통하여 짐작하거나, 사신비 안의 다른 글자를 통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서예자전을 자주 찾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그림 3). 이러한 작업들이 금석학(金石學)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작문을 잘하기 위하여 다독(多讀) · 다작(多作) · 다상량(多商量)이 필요하듯이,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시(多視) · 다임(多臨) · 다감상(多鑑賞)이 필요하다. 여러 법첩이나 글씨를 자세히 살피고, 많이 임서하고, 또 스승이나 동호인들의 비평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임을 할 때도 무조건 따라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 점획, 결구, 장법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허심탄회하게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나만이 옳다고 너무 싸우지들 말고 겸허하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씨도 마음처럼 비운만큼 채울 수 있다. 완전히 비울 때, 우주는 당신의 것이 된다. 하지만 진정한 창작을 위해서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관찰의 눈만으로는 안 된다. 융합의 눈, 역발상의 눈을 가져야 한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를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 한다. 이 말은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리는 행위,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하였다.

나의 모든 재물은 내가 죽는 순간 명의가 변경되는데……. 내가 쓴 붓글씨만은 명의 변경 없이 영원한 나의 것이 아닌가?” 무더운 여름나기의 하나로도 좋고, 버킷리스트의 하나로도 좋다. 붓을 잡아봄 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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