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월간묵가> 2014. 2월호 -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2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2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라이브 서예가)

 

1. 서예는 밥이다

서예는 영혼을 살찌우는 밥이다. 따라서 매일 먹어야 한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영혼의 배가 고프다. 서예 밥을 먹는 숟가락은 붓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꼭 붓이 아니어도 된다. 맨손으로 밥을 먹는 민족도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점잖은 체면에 붓으로 잘 차린 묵향을 먹어야 제격이 아니던가. 옳거니.

세필이 아니라면 글씨는 되도록 서서 쓰는 게 좋다. 서서 온몸의 관절을 돌리며 먹 갈고, 운필해야 건강에 유익하다. 서예를 즐기는 사람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주로 선 상태에서 끊임없이 온몸을 돌리는 운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덴마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서서 근무하는 회사가 늘고 있는데, 이 역시 건강과 창의적인 발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호모에렉투스[직립원인],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 호모파베르[일하는 인간],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아카데미쿠스[공부하는 인간], 호모모빌리쿠스[휴대전화 인간]에 이어 호모헌드레드[백 세 인간]’라는 신조어가 하나 더 생겼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은 이제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육십은 단지 신중년일 뿐이다.

서예 밥은 노인이라면 반드시 즐겨야 할 밥이다. 붓과 먹을 통한 유연한 동작과 연속되는 사고 활동이 노인에게 특히 좋다. 이런 노래라도 부름 직하지 않은가? ‘내 나이가 어때서~ 서예 하기 딱 좋은 나이야~.’ 이참에 호모캘리[서예 인간]’라는 학명을 하나 더 만들어 본다. 잘헌다.

오늘의 메뉴는 예서이다. 서예를 뒤집으면 예서가 되니, 이를테면 이로구나. 허걱. 예서는 한 획 한 획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시루떡이나 샌드위치를 닮았다. 케이크를 꽃으로 장식하듯 예서는 파임으로 장식한다.

대표적인 예서로는 을영비(乙瑛碑), 예기비(禮器碑), 사신비(史晨碑), 서협송(西狹頌), 조전비(曹全碑), 장천비(張遷碑) 등이 있다. 그런데 예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면 가늘지만 골격이 탄탄한 예기비, 소박하고 단아한 사신비, 섬세하고 수려한 조전비, 굳세고 투박한 장천비 등과 같이 각 비의 특징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서로 비교, 대조해 가면서 공부하는 편이 흥미롭고 빠르게 익히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자신의 개성적인 필체를 얻게 된다.

 

2. 영자팔법(永字八法)

영자팔법은 ()’ 자 한 글자로써 모든 한자에 공통되는 여덟 가지 운필법을 가리킨다. 너무나 신비로운 나머지 예서 시대인 후한 때에 채옹(蔡邕)이 숭산(嵩山)의 석실(石室)에서 글을 배우던 중 신수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후한 때의 최원(崔瑗장지(張芝)를 거쳐, ()의 종요(鍾繇), ()의 왕희지(王羲之) 등에게 전수되고, 다시 수()의 지영(智永)과 우세남(虞世南)에게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성(書聖) 왕희지가 창작했다는 설도 있다. ·송 이후 꾸준히 연구되어 72법으로 늘어나기도 했으나, 여전히 영자팔법은 초심자가 글씨를 배우는 데 피할 수 없는 필수 과정으로 남아있다.

8법이란 측(((((((() 등을 말하는데, 어려운 글자들이 많아 되도록 우리말로 새 명칭을 만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쇠뇌 노)(힘쓸 노)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둘 다 발음이 /nu(3)/, 발음이 같으면 의미도 서로 통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또 영자팔법의 요체는 점획의 모양이 아니라 동작(動作)’에 대한 설명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얼쑤. (그림 1)

 

    

(그림 1)

 

() - ‘이다. 누운점, 엎드린점, 가운뎃점, 왼점, 오른점 등으로 발전한다. 높은 언덕 끝자락에 바위를 비스듬히 얹듯 조심스레 눌러 써야 한다. 기울어서 불안한 듯하지만 굴러떨어지지 않음에 묘미가 있다.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물속에 농구를 밀어 넣듯 신중하고 균형 잡히게 써야 한다. ‘()’ 자 안에 법칙 칙()’ 자가 들어있음을 보면 점이라고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알 수 있다. 예서 영() 자에서는 아직 점이 나타나지 않고 짧은 가로획으로 남아 있다. (그림 1)

() - ‘가로획으로 북한에서는 건너금이라 한다. ()은 한자에 가장 많은 획으로 글자 전체의 모양을 좌우하므로 굴레 늑()’이라 한다. 마소의 나아갈 방향, 거리, 속도 등을 굴레로 조정하듯이 가로획의 길이와 방향으로 글자 전체의 크기와 모양을 조정하게 된다. 수필할 때에는 경쾌하게 고삐를 당겨 과감히 멈춰야 한다. ()+으로 혁()처럼 질기고 깔끔하게, ()처럼 힘차게 써야 한다. 예서나 해서 영() 자에서는 가로획이 독립된 획이 아니라 꺾은획[절획(折劃)]의 앞부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림 1)

() - ‘세로획으로 북한에서는 내리금이라 한다. ()는 여러 개의 화살이나 돌을, 잇달아 쏘는 큰 활을 가리키는데, 한문은 종맥(縱脈)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또 세로획은 글의 척추 역할을 하므로 줄다리기 하듯이 여러 번 나눠서 끝까지 힘차게 당겨야 한다. 예서나 해서 영() 자에서는 세로획이 독립된 획이 아니라 꺾은획의 뒷부분에 해당한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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