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월간묵가> 2014. 3월호 -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3

유쾌한 먹탱이의 예서야 놀자 3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라이브 서예가)

1월에는 건강과 장수를 위한 서예, 2월에는 한자 대부분의 점획 필법을 포괄하는 영자팔법(永字八法)’에 관하여 강의했다. 각각의 주된 내용은 나의 분신인 붓과 잘 놀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영자팔법은 모양이 아니라 동작에 대한 설명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3월호 원고를 미국 여행 중에 쓰고 있다. 서예원고는 일반 문예원고와는 달리 자료와 사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재를 떠나서는 쉽지 않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항상 모시고? 다니니까 문제없으나, 각종 서체자전과 같은 참고자료가 없으므로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보기로 했다. 서점은 커피 한잔에 도서열람이 가능한 곳을 택했고, 도서관은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 들렀다. 가는 곳마다 ‘calligraphy’로 검색해 보니 예닐곱 권씩 나왔으나 (사진 1), 서체자전은 찾을 수 없었다.

 

‘calligraphy’ 관련 서적을 읽고 나서 느낀 점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다양한 붓과 소재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양인들은 그들의 경필(硬筆)에다 동양의 붓도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다. 문화도 기술과 마찬가지로 수용적일 때 발전할 수 있다. 사진 3의 작품은 황토숯타일에 서예를 접목시켜 본 실용서예 작품이다. (사진 2)

 

둘째, ‘색채서예를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칼라서예라 해도 좋겠다. ‘calligraphy’는 결구(結構)라 할 수 있는 문자디자인은 물론 다양한 색깔과 무늬를 넣어 표현의 세계를 넓히고 있다. ‘일묵천색(一墨千色)’이라 하여 먹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단청(丹靑), 오방색(五方色), 자연채색, 혼합재료 등의 다양한 색채재료가 있지 않은가. (사진 3)

마지막으로, 한국의 서예가들도 영어권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Korean calligraphy’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겠다는 점이다. 서예도 국력인가? 중국이나 일본의 서예를 소개한 책은 많으나 한국이나 베트남 서예는 매우 소략한 실정이다. 백범 선생의 문화한국론이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는 시점이다. ‘K-pop’에 이어 ‘K-calli(케이 캘리)’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한국문화의 향기를 떨칠 때가 온 것이다. ‘K-calli’‘K-calligraphy’를 줄여서 만들어본 용어이다.

 

1. 번거로움을 버리고 간결하게

예서(隸書)는 본래 전서(篆書)예속(隸屬)된 서체의 의미였으나, 영어로는 ‘clerical script(official script)’로 번역되고 있다. ‘clerical’이란 서기(書記), 필사원(筆寫員)뜻이고 ‘script’손으로 쓴 글씨, 서체의 뜻이므로 문서를 관리하는 서기의 서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official script’ 역시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서체의 의미이므로 대동소이하다.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공용 서체의 개념이므로 쓰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함은 당연하다. 이처럼 예서가 발생한 것은 전서보다 쓰기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예서는 전서의 엄정한 결구를 보다 쓰기 쉽도록 변화시킨 서체이므로 쉽게 생각하고 편하게 접근해야 한다. 전서 대비 예서의 특징을 한 마디로 거번취간(去繁就簡)’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번거로움을 버리고 간결함을 쫓는다.’는 뜻이다. (사진 4)

 

2. 파임과 도법은 파도처럼

여행 중에 <묵가> 편집실에서 전화가 왔다. 짧은 2월이라 원고를 되도록 빨리 보내달라는 전갈이었다. 예서 관련 원고를 고민하던 차에 대서양의 파도를 바라보면서 ‘Oh, yeh. 바로 저거야!’ 하고 탄성을 질렀다. 파도가 예서체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묘한 웨이브(wave)파임을 만들고, 뭍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는 도법(挑法)’을 연상케 했다. 옳거니, 예서는 파도를 닮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 예서 운필은 파도타기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는 발음상의 조크(joke)이다. 예서를 예서답게 하는 대표적인 필법 두 가지가 (파세)’(도필, 튀기)’인데, 여기에서 두 단어의 첫 글자를 모으면 파도가 된다.

다른 하나는 예서 필법상의 이유에서다. ‘파임도법의 운필 동작과 닮은 자연 현상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파도라고 판단된다. 바닷가에 서서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모습을 보라. 물결이 넘실 구비치는 모습은 파임과 닮았고,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물결이 위로 는 모습은 도법과 흡사하다. (사진 5)

그렇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은 물론 산천초목(山川草木)까지 서예 아닌 것이 없다. 별똥별이나 구름 떨기, 사막 언덕이나 강의 흐름, 나뭇가지나 뿌리의 모습 등... 세상은 서예 아닌 것이 없다. 사진 6은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사할린 섬의 겨울풍경이다. 눈을 덮고 있는 선명한 강줄기는 영락없는 전서획이요 칼날처럼 서 있는 산줄기는 해서획이었다. (사진 6)

서예를 잘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 예서를 잘하기 위해서는 예서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파임과 도법 연습을 무수히 해 봐야 한다. 그 대안으로 파도의 모습을 제시한 것이다. 서예는 모양이 아니라 동작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붓 운전’, 운필(運筆)’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3. 굴림[]에서 꺾음[]으로

전서의 완성형인 소전은 세로로 길쭉한 종세장방(縱勢長方)의 형태였다. 이것이 고예(古隸, 秦隸)로 바뀌면서 처음에는 정방(正方)의 형태로 되었다가, 한예(漢隸, 八分, 今隸)로 바뀌면 가로로 납작한 횡세편방(橫勢扁方)의 형태로 바뀌었다. 여기의 편() 자는 납작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전서는 ‘high-five’ 때의 세운 손바닥처럼 길쭉하게, 예서는 악수할 때의 눕힌 손바닥처럼 납작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편방으로 쓰기 위해서는 가로획은 길고 세로획은 짧게 써야 한다. 그리고 전서의 전획(轉劃)이 예서에서는 절획(折劃)으로 바뀌었으므로 운필의 동선(動線)이 곡선 이동에서 직선 이동으로 바뀐다. 예서도 전서와 같이 좌우가 수평적이기 때문에 안정감을 주지만 해서체(楷書體)로 바뀌면 가로획의 오른쪽이 올라가게 되어 긴장감을 준다.

여기에서 예서의 가로획은 수평적이나 해서의 가로획은 오른쪽이 올라간 점은 매우 흥미롭다. 오른손으로 썼기 때문에 동선이 자연스럽게 오른쪽이 올라간다는 점과, 예서에서 파임이 있는 가로획의 시작점과 끝점을 곧장 연결해 보면 비스듬히 올라가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서는 길쭉한 형태이므로 세로획이 눈에 잘 띄고, 예서는 납작한 형태이므로 가로획이 눈에 잘 띈다. 따라서 전서는 글자 구성 곧, 결구(結構)를 할 때에 세로획이 몇 획인지 잘 살펴보고 구도를 잡아야 하고, 예서는 가로획이 몇 획인지 잘 살펴보고 구도를 잡아야 한다. 획과 획 사이의 간격을 조정하는 것을 분간(分間)’이라 한다. 전서와 예서는 이 분간(分間)을 잘 분간(分揀)하고 써야만 그 특징을 살릴 수 있다.

전서와 예서의 길고 납작한 형태적 차이는 근본적으로 다르되, 가로획이 수평적이라는 것과 세로획이 수직적이라는 점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서 획이든 예서 획이든 전체적으로 수평 또는 수직세를 취하고 있다 해도, 한 획 한 획을 살펴보면 전서 획은 원만한 곡선 형태를 취하고 있고, 예서 획은 꺾어진 나무처럼 직선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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