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10> 바람도 쐬고 추석도 쇠고

바람도 쐬고 추석도 쇠고

구르지 않으면 구름이 아니고, 흐르지 않으면 강이 아니다. 어쩌면 하늘의 강은 구름이요, 땅의 구름은 강일지도 모른다. 오는 줄 몰라도 오는 추석인 걸 보면, 가는 줄 몰라도 가는 세월이다. 그런데 굽이치며 흘러야 할 강인 줄 알면서도 물길을 막는 인간을 보면, 어이 하리야, 어이 하리야! 흘러야 강이지 막히면 강이 아니다. 호수다. 인간이여 어찌타 호수(好手)로 악수(惡手)를 두나니. 가는 세월이나 막지 흐르는 강물은 왜 막나.

계사년 추석(秋夕)도 계산해 보니 며칠 남지 않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설날과 함께 2대 명절의 하나로 꼽히는 추석 명절도 절로 다가온다. 추석은 그 인기만큼이나 별명도 많다.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가배(嘉俳), 팔월대보름…….

달력에 ‘추석’이라 씌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명칭을 대표로 사용하고 있는가 본데, 개인적으로는 ‘추석’보다 순우리말인 ‘한가위’를 더 좋아한다. ‘추석(秋夕)’이라 하면 글자의 의미대로 ‘가을 저녁’을 뜻하니 쓸쓸한 느낌이 들지만, ‘한가위’라 하면 왠지 여유 있고 넉넉하게 다가온다.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란 속담에서 보듯이 한가위에는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한가위라는 말의 어원은 시간적으로 가을의 ‘한가운데’를 뜻한다. 그래서 중추절(仲秋節)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아예 ‘가운데 중(中)’자 중추절(中秋节)이라 하고,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양력 8월 15일을 전후로 오본(お盆)이라 하여 연휴를 즐긴다.

음력으로 7, 8, 9월이 가을인데 중추(仲秋)는 곧 8월에 해당하고, 중추절(仲秋節)은 8월의 한가운데, 곧 8월 보름을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중추절은 가을의 정중앙에 있는 날이다. 보름의 고어는 ‘보롬’인데 ‘블옴(배부름)’, ‘곰(밝음)’과 의미가 서로 통한다. 보름달은 볼륨(volume)이 있어 좋다.^^ 달로서는 배가 가장 부르고 밝기도 으뜸이기 때문이다. 이날만은 하늘의 달도, 지상의 인간도, 제사상의 배마저도 모두 평소의 배로 배가 부르다.

가배(嘉俳)는 가위의 옛말로,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 조에 나타난다. “7월 보름부터 길쌈을 시작하여 팔월 보름에 그 승부를 가렸는데, 진 편이 술과 음식을 갖추어 이긴 편을 대접하였다. 이때 가무백희(歌舞百戱)를 행하였으니, 이를 가배(嘉俳)고 하였다.”라는 것이다.

추석(秋夕)의 반대말은 춘조(春朝)렷다. 옛날에 천자께서 봄 아침에는 해님께 제사를 올리고 가을 저녁에는 달님께 제사를 올렸다. 지금도 천자가 천지일월(天地日月)에 제사지내던 사단(四壇)이 남아있는데, 월단(月壇)도 그중의 하나이다.

추석은 철저하게 달과 관련한 명절이다. ‘추석(秋夕)’의 ‘저녁 석(夕)’자는 동산에 달이 반쯤 얼굴을 내민 모습이다. 달이 완전히 얼굴을 내밀면 ‘달 월(月)’이 된다. 그래도 월(月)자의 모양만 두고 보면 만월(滿月)과는 거리가 멀다. 반달 모양이다. 기운 방향으로 볼 때 반달 중에서 하현달이 아니라 상현달이다. 상현달은 미완(未完)의 달이기 때문에 희망을 상징한다.

추석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 보름달을 닮은 온달 송편을 만들기도 하고, 상현달을 닮은 반달 송편을 만들기도 한다. 특별히 솔잎을 사용하는 이유는 솔잎의 ‘1’자와 달의 ‘0’자 모양이 음양으로 어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송편을 만들 때 솔잎을 사용하면 서로 엉겨 붙지 않고, 또 솔향이 떡에 배면 맛도 좋기 때문이다. 이때다. 동산에는 어제 진 달 떠오르고, 솥 안에는 송월(松月)이 부풀어 오른다. 얼쑤.

송편이라 할 때 ‘송(松)’은 ‘솔’과, ‘편’은 ‘병(餠)’과 발음이 서로 통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송편 대신에 보름달을 닮은 월병(月餠)을 먹는다.

전통적으로 추석에는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것에 감사하며 조상님께 차례(茶禮)를 지낸다. 만일 외국인이 물어오면 ‘Chuseok is the Korean Thanksgiving Day.’ 정도로 소개하면 되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 대신에 술을 제상에 올리는 것으로 보아, 차례가 아니라 주례(酒禮)가 되었다. 그래도 차례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 ‘주례’라 하면 다른 의미와 충돌이 일어나기 쉽지만, ‘차례’라 하면 경건하고 순차적인 느낌마저 들기 때문으로 본다. 순서를 가리키는 ‘차례’는 고어 ‘뎨(次第)’에서 온 말이며, 한자어 차례(次例)는 나중에 음차한 말로 보인다. ‘뎨 > 차례’의 변화는 ‘목단(牧丹) > 모란’, ‘보뎨(菩提) > 보리’의 변화와 같은 맥락이다.

현시점에서 추석이라 하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는가? 보름달, 고향, 친척, 민족 대이동, 귀성객, 벌초, 성묘, 한복, 차례, 보름달, 송편, 연휴, 날씨, 풍요로움, 선물, 상여금, 용돈, 여행, 특선영화, 그리움 등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에게는 아마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우선이겠지만, 어른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원시안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먼 고향과 옛 친척을 찾고자 한다. 그리운 불알친구를 만나는 일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곧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리라. 뭍길은 물론 물길, 하늘길까지 만원이 예상된다. 고향길엔 언제나 교통체증이 심하지만 그리움이 이를 거뜬히 감내하게 한다.

‘고향길’엔 뭔가 모르게 ‘고소하고 향기롭고 길(吉)한’ 일만 생길 것 같다. 그래, 길은 길어야 맛이 아닌가? 추석빔 차려입고 고향길을 찾아 떠나는 마음은 가을 하늘처럼 휑하다. 하늘가의 떨기 구름처럼 외로이 타향객지를 떠돌다가 헤어졌던 피붙이와 고향 친구들을 만나 쌓였던 얘기를 황금 들판처럼 나눈다면……. 마음은 이미 취했다.

올 추석에는 갈바람도 쐴 겸 고향에서 추석을 쇠어 볼까. 앞동산에 오메가(Ω)처럼 동그랗게 돋아올 온달이 보고 싶다. 천상병 시인의 시 ‘소릉조(小陵調)’로 종을 칠까나. 땡이로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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