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14> 한글로 부르는 꽃 노래 새 노래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3

한글로 부르는 꽃 노래 새 노래

 

인간은 태어나서 말과 짓(행동)만 보여주다가 죽는다. 말과 짓은 본능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생각과 느낌의 산물이다.

그러면 글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글은 말에서 나왔으며 말을 적는 수단이다. 글은 말의 내용을 써서 나타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말이 없는 글은 없다. 말이 먼저 있고 글은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말이 가지고 있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는 수단이다. 한글 창제 전의 우리 선조는 모두 말은 할 줄 알았지만, 어려운 한자를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이에 세종은 백성과의 소통을 위한 우리말을 제대로 표기할 문자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한글의 전신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입으로 소리를 내고 귀로 듣는 말만 사용하다가,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글자를 만들고 난 그 감동과 흥분은 얼마나 컸을까.

왕이 백성에게 선물로서 만들어준 한글, 유일하게 창제 과정이 정확하게 기록된 한글,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한글, 가장 실용적이고 익히기 쉬운 한글, 정보화 시대에 더욱 편리하고 아름다운 한글, 마침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글이다.

한글의 으뜸 장점은 익히기 쉬운 글이라는 데에 있다. 정인지 서문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라고 했다. 게다가 지금은 , , , 등의 넉 자가 줄었으니, 24자만 익히면 되지 않는가.

외국인에게 한글을 더욱 쉽게 가르치는 방법은 없을까? ‘기본자음 5(, , , , )의 발음기관 상형, 기본모음의 3(, , )의 천지인 상형을 설명하는 두 장의 그림이면 충분하다. 기본자음 5자의 순서를 달리한 것은 발음기관 위치의 순차적 이동에 따른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의 순서보다 , , , 혀뿌리, 목구멍순서로 가르치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그리고 나머지 자음은 기본자에다 금을 하나씩 더해가면서 지도하면 된다. 영어와 비교해 가면서 모양이 비슷하면 발음도 비슷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면 한글이 영어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신비롭게 깨닫게 된다.

 

--, --, --, -, -(닮음)

m-b,p-p, s-j-ch, n-d,t-t, g,k-k, ng-h (닮지 않음)

 

모음은 더욱 쉽다. 동쪽에 해가 있으면 ’, 서쪽에 해가 있으면 ,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글자는 ’, 해가 지는 글자는 로 설명한다. 해가 동쪽에 있거나[],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면 양성모음으로 밝은 소리가 나고, 해가 서쪽에 있거나[], 해가 지는 모양[]이면 음성모음으로 어두운 소리가 난다. ‘밝아, 솟아는 밝은 소리, ‘어두워, 저물어는 어두운 소리가 난다.

, , 와 같은 단모음만 주의하면 나머지 이중모음은 쓰는 순서대로 발음하면 된다. 참으로, 아침에 배울 수 있는 글 아침글’, 화장실에서도 배울 수 있는 글 통싯글’, 상놈의 글이 아닌 선비의 글 언문(諺文)’, 남성 전용이 아닌 여성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글 암글이로다. 옳거니.

다음은 ㅎㅏㄴㄱㅡㄹ처럼 풀어쓰지 않고 한글처럼 음절 단위로 모아쓰기를 가르치면 끝이다.

창제 당시는 점·획을 엄정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가획원리에 대한 창제자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과 달리 , 의 첫 획은 보다 앞부분이 튀어나왔다. ‘의 첫 획은 점이 아니므로 의 점과는 달리 내리 그어 붙였다. ‘, 에서 나왔기 때문에 중간이 휑하게 비어있고, ‘, 위에 가획했기 때문에 뾰족한 끝을 다치지 않기 위해 살짝 얹어 놓았다.

옛날에는 붓으로 쓰지 않고, 칼로 새겼기 때문에, ‘이라 하지 않고 이라 했다. 획을 획 그으면 이 생긴다. 그어서 씨를 뿌리면 글씨이다. ‘긋다에서 파생된 단어는 ’, ‘’, ‘글씨’, ‘긁다’, ‘그리다’, ‘그림’, ‘그립다’, ‘그리움’, ‘그늘’, ‘그림자’, ‘그을다’, ‘그을음’, ‘()’ 등과 같이 매우 많다. 금을 그으려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이 필요하다.

정보화시대에 오달지고(야무지고) 암팡진(다부진) 한글은 더욱 빛난다. 한글을 온이로(모두) 사용하여 꽃 노래, 새 노래 부르며 마칠까 한다.

 

(기역)은 개나리

(니은)은 나팔꽃

(디귿)은 도라지

(리을)은 라일락

(미음)은 무궁화

(비읍)은 봉선화

(시옷<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함초롬바</bod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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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http://blog.daum.net/costmgr/1289
김립 이야기
권상호
이를테면 중국인에게 기본자음을 가르친다고 하자. 다음의 글자를 제시하면 그 글자의 시작 획과 기본자음이 닮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한다. 단, ‘ㅇ’의 경우는 ‘公’의 ‘厶’를 ‘받침 ㅇ[ng]’으로 설명하면 된다.

嗎(mȧ)-ㅁ, 錫(xī)-ㅅ, 納(nà)-ㄴ, 敢(gǎn)-ㄱ, 公(gōng)-ㅇ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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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린이들 만화 참 좋아하죠. 그런데 만화 속 인기 캐릭터들을 보면 뜻 모를 영어를 반복해 외칩니다. 무엇이든 흡수할 나이의 우리 아이들은 캐릭터가 쓰는 영어는 멋지고, 같은 뜻의 우리말은 촌스럽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김종원 기자의 생생 리포트입니다.

<기자>

텔레비전에서 만화가 나오자 아이가 이목을 집중합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트랜스포메이션!]

서툰 세 살배기 말로 어떻게든 따라 해봅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합체하자! 또봇 X, Y 인테그레이션(합체)]

[또봇! 트랜스포메이션(변신)]

[더블유! 테이크 오프(날아라)]

인티그레이션은 통합, 트랜스포매이션은 변신이라는 뜻의 어른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단어입니다.

외국에서 수입한 만화영화는 한 술 더 뜹니다.

[GT02 고릴라, RH03 래빗(토끼). 석 대의 버스터 로봇들이 컴바인 오퍼레이션(합체 작동)! 필살기 트랜션 플래시로 적을 무찌른다.]

요즘 최고 인기라는 이 만화도 골드 드래곤, 에픽 드래곤 배틀 등 어려운 영어가 줄줄 나옵니다.

문제는 언어를 막 익히기 시작하는 6살에서 8세 아이들이 주로 본단 겁니다.

[김시내/유치원 교사 : 어릴수록 쓰기보다는 읽기, 들려주기, 말하기로 (한글을 배웁니다.) 지금 시기가 그런 시기이기 때문에, 봤을 때 멋있으면 그냥 (잘못된) 언어도 가차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또봇 변신할 때 뭐라고 그래요?) 트랜스포메이션.]

[(그러면 합체할 때 뭘라 그러는지 아는 사람?) 알알아요! 인티그…레션]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

이런 착각까지 합니다.

[(어느나라 말 같아요? 우리나라!]

[('또봇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하는 게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이쪽으로 와주시고요, '또봇 변신' 이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시작!)]

물어보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영어가 더 멋있다는 쪽으로 우르르 이동합니다.

[유치원생 6살 : 미국 말인 거 같으니까 더 재미있어서요. '합체'는 약간 이상한 거 같고, 이쪽(영어)은 좀 멋져요.]

[초등학교 3학년 : '합체'라고 하면 폼이 안 나니까 '트랜스포메이션'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고창운/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문제는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가 문제죠. 외국어라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쉬운 우리말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인데, 그걸 그대로 갖다 쓰는게 문제죠. 제가 보기에는 아마 역사이래 가장 극심한 외국어 사대주의에 빠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지나친 언어 쇄국주의도 문제겠지만 언어습관이 시작되는 유아 단계에서부터 뜻 모를 영어는 멋있고 한글은 촌스럽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선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영상취재 : 김태훈, 영상편집 : 박진훈, VJ : 김종갑)
김종원 기자terryable@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