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15>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5 - 가을은 축제와 함께 여물어 간다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5

가을은 축제와 함께 여물어 간다

가을이 깊어지면 으로 바뀐다. 오잉? 날씨는 시원하다가 썰렁해지고, 마음은 스산하다가 쓸쓸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어의 맛이다. ‘사람, , 사랑, (), ()’을 연상케 하고, ‘은 두 사람이 나란히 쌩긋웃거나 쑥덕거리는이미지로 다가온다.

산뜻한 가을 날씨에 전국에서 축제가 한창이다. 축제에 참여하는 일은 세금을 돌려받는 적극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참여하면 심신에 축복이 오고, 빠지면 축난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에는 내 키만 한 붓 한 자루를 들고 박물관 도시인 강원도 영월의 16회 김삿갓 문화제와 서울 강북의 4회 주민화합 한마음축제에 참가했더니 오감이 만족을 넘어 춤을 추었다.

가을 축제는 다른 계절의 축제보다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봄 축제는 꽃이 많아 볼거리를 제공하고, 여름 축제는 물이 많아 더위를 잊게 한다. 가을 축제는 추수감사의 뜻이 짙고, 겨울 축제는 웅크린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질 좋은 축제는 볼거리, 들을거리, 먹을거리만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울림 속에 즐길거리와 배울거리도 덤으로 제공해 준다.

축제란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주어진 특별한 의미를 기리거나 단체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하여 벌이는 어울림 행사이다. 축제(祝祭)는 글자만 보면 제사의 뜻이 강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놀이 본능을 자극하고, 더불어 즐기는 문화 행사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삿갓 문화제는 김삿갓 개인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한 축제이고, ‘주민화합 한마음축제는 지역 주민과 상인들 사이에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축제라 할 수 있다.

오가는 길에 만나고 헤어진 산야도 계절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이따금 선선한 하늬바람을 맞으며 창공을 우러러보기도 하고 찬란한 황금빛의 대지를 굽어보기도 한다. 여름내 불볕 속에서도 하늘만 바라보며 부지런히 키를 키워왔던 논벼는 이제 자신을 지탱해준 대지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듯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읍()하고 있다.

올해는 태풍(颱風)이 우리나라를 패해갔기 때문에 대풍(大豊)이란다. 대풍(大風)과 대풍(大豊)은 양립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가을 태풍으로 때아닌 고난을 겪고 있다. 올봄에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연풍(時和年豐)’이라고 써 붙인 입춘첩의 기원이 딱 들어맞았나 보다.

영월의 서예가 김태숙님의 안내로 일찌감치 김삿갓 묘소에 도착했다. 마을의 안녕과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길놀이는 이미 길을 덮고 있었다. 김삿갓의 넋과 예술혼을 기리는 고유제(告由祭)에서는 초헌관 박선규 군수, 아헌관 대종회 대표, 종헌관 엄태성 문화원장의 순으로 잔을 올렸다.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의 본관은 안동, 별명은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라 하면 틀을 벗어난 음풍농월이나 음담패설을 떠올리지만, 이는 잘못이다. 그는 180여 편의 한시를 남긴 훌륭한 시인이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그때마다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권귀(權貴)의 잘못을 꾸짖는 내용이 많아 풍자와 해학의 민중시인으로 불린다.

일찍이 이응수(李應洙)1930년대에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김삿갓의 시를 채록하여 1939년에 <김립시집(金笠詩集)>을 출판한 바 있고, 2003년에는 최석의(崔碩義)가 일본어로 번역하여 동경에서 <김립시선(金笠詩選)>이란 이름으로 출판한 바 있다. 최석의는 김삿갓의 시를 방랑, 해학, 금강산, 산수 누각, 사계 풍물, 인생 유감, 자화상, 연가, 인물, 언문·파격시(諺文破格詩), 영물시(詠物詩), 과시(科詩-長詩)’ 등의 12편으로 구분하고 있다.

양동식은 2005년에는 순천향대학교에서 ‘<김립시집> 원전 연구로 석사학위를, 2008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김립시집> 판본과 번역 양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이어서 영월다도회 주관의 헌다례(獻茶禮), 그리고 오전 마지막 순서로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가 뒤를 이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영월을 복된 고을로 만들어 주소서……. 일월성신이시여, 영월에 희망의 빛을 내리소서……. 불초 소생 붓을 잡고 쓰나니, ‘난고풍류명인간(蘭皐風流鳴人間)’이라 하더이다. ‘난고 선생의 풍류가 인간 세상을 울리도다라는 내용이다. 김삿갓 묘의 비석은 물론 상석과 혼유석까지 모두 자연석으로 세워져서 측은한 느낌이 든다.

다음은 김삿갓길 걷기이다. 흰 두루마기에 봇짐 지고, 삿갓 쓰고 막대 집고, 갈바람 따라나서는 무리를 보라. 중식 이후에는 소화도 시킬 겸, 산속 깊숙이 숨바꼭질하고 있는 김삿갓의 거처까지 다녀오는 행사가 이어졌다. 물소리 새소리에 귀를 씻는다. 죽장에 삿갓 쓴 오늘의 시선(詩仙)이 평생 하늘을 보지 않고 살았던 김삿갓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약수 실컷 마시고 거리의 시화전과 김삿갓 문학관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언제나 가장 큰 장애물은 시간이다. 항상 동행하는 시간이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동강 시스타 리조트에서 원주 문인들과 하룻밤 주담(酒談)을 나누고 아침 일찍 서울 길을 재촉했다. 서울 미아삼거리 일원에서 펼쳐지는 주민화합 한마음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움직이는 버스보다 더 포근한 요람은 없다. 낮이 밤이 되었다. 눈을 뜨자 서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엄숙한 시간 속에 다시 나를 던진다.

조병렬 전 회장의 개회 선언과 김영계 현 회장의 내빈 소개로 축제의 문이 열렸다. 중앙무대에서는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차 없는 거리 한쪽에서는 풍덩예술학교 식구들이 축제에 예술의 옷을 입히고 있었다. 나는 광목을 널따랗게 펼치고 붓을 잡았다. 시민들의 소망 쓰기에서는 박겸수 구청장이 마무리를 지었다. 아나바다 장터, 도자기 만들기, 지점토 공예, 와인 시음…….

가을은 축제와 함께 여물어 간다. 소통과 화합의 목소리에 시리던 마음도 여물어 갈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이 석양과 함께 제법 단풍이 들었다. 설악산의 단풍도 그들만의 가을 축제를 벌이고 있겠지…….

어느덧 미아삼거리는 현란한 밤의 옷으로 갈아입고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


상화
(相和): 가을 축제처럼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서로 화목해질 수 있다.

최근 강원도 영월 16회 김삿갓 문화제에서는 삿갓을 쓰고 막대를 짚고 걸어보는 김삿갓길 걷기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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