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제18대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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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한 가지...


  동그라미 안에 '卜(ㅅ, 人) 표가 들어있는 투표인장...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선거'의 첫글자 'ㅅ'인가?

  피스 마크와 너무나 닮았다. 피스 마크네서 한쪽 날개가 없으면 똑같다.

  여기 조형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풀이해 좋은 것이 있다. 
  투표 인장의 모습 -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60도(卜의 내각)
                          너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120도(卜의 외각)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180도(卜의 내각 + 외각)

                          모두가 바라보는 세상은 투표도장(360도)

VOTE IS PEACE.
VOTE FOR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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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스마크와 너무나 닮은 투표 도장 -  실은 '卜' 자, 그렇다고 점과는 의미상 관계가 없다. 단지 원형도장에서 '人' 자를 넣다가 이런 마크는 반대쪽에 찍힐 경우 식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바뀌었다는데...

  이유는 단순한 권리 행사가 아니다. 입으로만 떠들면서 이 나라에 한탄만 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국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를 알림으로 국민을 허수아비로 아는 일부 정치가들에게 행동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자신이 판단했던 결정이 비록 틀린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결과와 그에 따르는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함이다.
  투표를 해야만 나의 소신이 유효표로 인정되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의무적이라는 부가적인 것이 따라오게 된다고 본다. 투표를 하지도 않으면서 이러쿵 저로쿵 남의 잘잘못을 떠들며 잘못된 권리를 남용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2012. 12. 19. 이제 투표 종료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당신의 소중한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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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한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 - 시사용어사전 2005
대통령선거는 48년 정부수립이후 총 9번의 헌법개정을 거치는 동안 직선제와 간선제를 오가는 제도상의 변화를 거쳤다.

제헌헌법에서 채택된 간선제는 1대, 4대, 8~12대때 실시됐고 직선제는 2~7대, 13대~16대때 실시됐다. 특히 4대때는 4·19를 전후해 선거가 직선제와 간선제로 두번 실시되는 난맥상을 보이기도 했다.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와 달리 간선제는 선출 방법이 세번 바뀌었다. 1, 4대때는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했고 8~11대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12대는 대통령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았다.


■1공화국
초대 대통령선거: 1948.7.20 - 간선제

대통령 선거의 국회간선제, 1차중임, 임기4년의 내용을 담은 초대헌법이 제정.
광복 3년만에 제헌국회에서 초대 대통령 선거가 간선제로 실시됐다.
선거결과 180표를 얻은 이승만이 13표 획득에 그친 김구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2대 대통령선거: 1952.8.5 - 직선제(투표율88.1%)

1952년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지로한 개헌안을 심야 날치기 통과.
이승만, 조봉암, 이시영 등이 후보로 나와 이승만은 74.6%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

3대 대통령선거: 1956.5.15 - 직선제(투표율94.4%)

1954년 이승만은 대통령의 연임제한을 철폐하는 4사5입 개헌을 강행.
이승만과 조봉암이 후보로 나왔으며, 이승만이 70%, 조봉암이 30%의 득표율을 얻어 이승만이 장기집권에 성공.

4대 대통령선거: 1960.3.15 - 직선제(투표율97.0%)

여당(자유당)과 정부가 전국적,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감행.
이승만과 조병옥이 출마하여, 이승만이 10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이승만 하야.


■2공화국
4대 대통령선거: 1960.8.12 - 간선제

4·19이후 제2공화국 내각책임제 헌법에 따라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간선제로 실시.
민주당 구파의 윤보선이 재적의원 263명중 208명의 찬성으로 대통령에 당선.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 발생.


■3공화국
5대 대통령 선거: 1963.10.15 - 직선제(투표율85.0%)

박정희 등 5·16 주체세력은 1961년12월6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통과된 대통령 직선제개헌안을 국민투표에 회부, 찬성률 78.8%로 채택하고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5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박정희후보는 46.6%를 득표, 45.1%의 득표율을 얻은 민정당의 윤보선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

6대 대통령 선거: 1967.5.3 - 직선제(투표율83.6%)

박정희가 51.5%의 득표율을 얻어 40.9%를 얻은 윤보선을 이기고 재선에 성공.

7대 대통령 선거: 1971.4.27 - 직선제(투표율79.8%)

박정희대통령은 69년 대통령의 3선연임 허용을 골자로 3선개헌으로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
71년 7대선거에서 53%의 득표율을 얻어, 45.3%의 지지를 받은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됨.


■4공화국
8대 대통령 선거: 1972.12.23- 간선제

박정희는 1972년10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제정.
12월 8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99.9%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

9대 대통령 선거: 1978.7.6- 간선제

박정희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99.8%의 지지로 당선
그러나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사망.

10대 대통령 선거: 1979.12.6- 간선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대통령 권한대행을 10대 대통령으로 선출.
그러나 6일 후 전두환 등 신군부에 의한 12.12 쿠데타 일어남.

11대 대통령 선거: 1980.8.27- 간선제

정국주도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80년8월 통일주체국민회의 투표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공화국
12대 대통령 선거: 1981.2.25- 간선제

1980년 10월 대통령 임기 7년 단임과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 공포.
12대 대통령선거에서 전국 77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대통령선거인단' 투표결과 전두환 후보가 90.1%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야당후보였던 유치송, 김종철, 김의택 등을 물리치고 당선.

미국식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모방한 12대 대통령선거방식은 유신시대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체육관선거'와 크게 다른점이 없다는 비난이 제기됨.


■6공화국
13대 대통령 선거: 1987.12.16- 직선제(투표율89.2%)

1987년 '6월민주화 항쟁'과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5년 단임의 대통령직선제로 헌법개정.
여당의 노태우와 야당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이 출마하여 노태우 후보가 36.7%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 김영삼은 28%, 김대중은 27.1%, 김종필은 8.1%의 지지를 얻음.

14대 대통령 선거: 1992.12.18- 직선제(투표율81.9%)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 백기완 등이 출마하여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의 김영삼이 42.0%로 당선됨. 김대중은 33.8%, 정주영은 16.3%, 박찬종은 6.4%, 백기완은 1% 득표율.

15대 대통령 선거: 1997.12.18- 직선제(투표율80.7%)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권영길 등이 출마하여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이 40.3%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38.7%, 이인제는 19.2%, 권영길은 1.2%의 득표율.

16대 대통령 선거: 2002.12.19- 직선제(투표율70.8%)

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등이 출마하여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48.9%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이회창은 46.6%, 민주노동당 권영길은 3.9%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