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문화기획/인물탐방 서예가

 

문화기획/인물탐방 서예가 - 코리아 라이프


먹울림을 통하여 세상의 중심에서 서예를 알린다

라이브 서예가 도정 권상호 선생과의 만남.


‘붓꼴림’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생경한 말에다 어쩌면 속어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도정 선생은 이를 두고 ‘붓을 잡고 글씨를 쓰고 싶은 충동’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모든 일에 있어서 뭔가 하고 싶어 못 견디는 동기유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아날로그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컴퓨터 안에 온갖 폰트들이 난무하지만 5천년 동안 맥맥히 이어져 내려온 서예 작업을 하루라도 거를 수 없단다.

지난 10월 1일 청계천이 새로 열리고 제1호 청계천 아티스트가 된 라이브 서예가 도정 권상호 선생이 펼친 서예 퍼포먼스 현장과 그의 연구실인 부휴실(浮休室)을 찾아가 아날로그적 만남을 가져본다.



붓글씨를 늘 쓰시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글귀가 있으신가요.

‘Beautiful space & Delightful time’, 곧 ‘공간은 아름답고, 시간은 즐겁게’라는 말이지요. 실은 제 좌우명인데,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절대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것이 공간과 시간이라면 그 공간 아름답고, 그 시간 즐겁게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저의 경우 붓글씨 쓰는 일이야말로 그 실천의 최고 수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서 ‘라이브 서예’라는 주제로 퍼포먼스를 펼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흔히 서예라 하면 표구를 통한 완성된 작품만 생각하는데, 제가 퍼포먼스를 즐기는 이유는 서 있는 서예가 아닌 움직이는 서예, 박제된 서예가 라이브 서예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왕희지의 난정서와 같이 퍼포먼스 작품이 현장성과 생동감이 있어서 명필로 남아있듯이, 쓰는 과정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쓰는 사람은 더 큰 집중과 신명을 얻고, 관중은 붓놀림에 대한 감흥과 먹울림에서 오는 감동을 맛보게 되는 것이죠. 모 케이블 방송사의 TV광고 출연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다양한 붓놀림에 의해 순백의 화선지가 윤택한 먹물에 속절없이 잦아드는 재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High Seoul 페스티벌’등의 문화행사장에서도 봉고, 대금, 기타 연주에 맞춰 붓쇼를 보인 적이 있는데, 아가씨와 어린이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필흥(筆興)을 견디다 못해 등이나 가슴을 들이대고 티셔츠에다 글씨를 써 달라고 부탁하거나 체험을 하고 싶어 할 때면 신명이 뻗힙니다. 그로 인해 서예에 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늘어난다면 더 없는 보람이죠. 서예가 고리타분한 예술이라든가 특별한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어려운 취미라는 편견은 이제 버리세요.


강의도 많이 하시는데 학생들에게 무엇을 중심으로 가르치시는지.

쓰는 즐거움과 배움의 가치에 중점을 두죠. 글씨를 멋지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예를 하는 더 큰 보람은 늘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에 있어요. 더러는 시문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요. 그 뿐인가요. 자연 친화적인 사람인 된다는 사실입니다. 초기에는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인위적인 글씨를 쓰지만 점차 서력(書歷)이 쌓이면 자연스런 작품을 추구하게 되지요. 또 있습니다. 화선지는 식물성이고 붓털은 동물성이라 붓이 화선지 위를 달려갈 때면, ‘쥬라기 공원’ 영화 속에 뛰어든 것과 같은 느낌이 들어요. 붓글씨란 화선지라는 넓은 초원 위에 먹알갱이라는 씨앗을 붓이라는 파종기로 뿌리는 정직한 농사에 비유할 수 있습죠.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드는 것은 물이 없이는 씨가 발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죠. 붓이 금방 지나간 자리에는 먹이 번지면서 붓꽃이 피고, 마르면 열매로 맺어, 그 생명 영원하니, 대단하죠. 물론 더러는 갈필에 의한 척박한 사막으로 남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우리의 아름다운 영혼의 씨앗이 천년 가도 빛을 발하며 종이 위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비하죠. 우리가 죽는 순간 사유재산은 명의변경이 되지만 글씨는 비록 좀 못 썼을지라도 영원히 명의변경이 되지 않는 정신적 가보랍니다. 이런 등등의 서예의 덕성을 강의하다가 보면 사제간에도 먹과 종이처럼 하나가 됩니다.


서예를 지루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한 말씀.

단순히 글씨만을 쓴다고 볼 때, 키보드 치는 것보다 훨씬 느리고, 용구 준비에도 시간이 걸리며, 먹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먹을 갈아야 한다는 시간적 조급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죠. 게다가 어디 실력이라도 눈에 뜨이게 늡니까. 기다림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을 위해 패스트푸드를 즐기고 즉석복권을 선호하는 판에. 빨리빨리 문화가 자극적 미덕라면 서예는 분명 느림의 여유 미학입니다. 거기에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이지요. 디지털 기술로 가상공간(cyberspace)이 출현하고, 나아가 다중매체 곧 멀티미디어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실 가상공간이 많아질수록 인간은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인구가 많은 도시 사람들이 농촌 사람들보다 더 고독을 느끼듯이 말이에요. 인터넷을 통한 가상공간에 빠져 자신과의 대화가 절대 부족한 현대인에게 서예는 더 없는 좋은 반려자입니다. 자신과의 대화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지요.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가 웰빙의 노예이어야지, 웰빙이 컴퓨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서예 발전을 위해 활용되어야지, 인터넷을 위해 서예가 존재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건강에 나쁘다고 기계문명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기계문명을 통하여 세이브한 시간을 내어서 운동을 하죠. 컴퓨터를 통하여 세이브한 많은 시간에 붓을 잡아 보세요.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운동이 됩니다.

서예에서는 음양(陰陽), 흑백(黑白), 강유(剛柔), 경중(輕重), 농담(濃淡), 장단(長短), 대소(大小), 소밀(疏密) 등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듯이, 운동장에서 누구나 축구를 할 수 있듯이,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이 서예입니다. 일단 즐겨 보세요. 법에 너무 구속되지 말고, 붓꼴림대로 써 보세요. 절대로 지루할 틈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형태만 따라하지 말고 내용에 우선 빠져 보세요. 좋은 시문과 격언들을 접하고, 이를 일상에 접목시켜 보면 선비가 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니까요.

서예를 함으로 얻어지는 이익으로 정서 순화는 기본이고, 교양을 쌓음은 과정이며, 짧은 인생과 좁은 육신을 벗어나 영원과 무한에 연결됨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원한 먹에 대한 신뢰의 개념으로 먹을 믿고 따르자는 ‘신묵(信墨)’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5차례의 전시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미래 서예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솔직히 말하면 옛날에는 서예만 잘 하면 지위와 명예, 부귀와 영화가 따르기 때문에 종이, 붓, 먹, 벼루를 문방사보(文房四寶)라 했어요. 우리 선조의 경우 고독한 공부 시간의 벗이 되어 준다 하여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하지만요. 그러나 오늘날은 서예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적용되어 붓 잡고 먹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서예를 부업 또는 취미로 권장하는 데에는 전혀 주저 없지만 직업으로 권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초중등학교의 서예 교과목 개설, 사회교육원을 비롯한 문화센터의 서예 전공자 임용, 대학 서예전공자에게 2급 정교사 자격증 수여 및 서예교사 임용 등등 여러 제도적인 뒷받침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순수 서예 작품 판매를 통한 돈벌이는 국민 관습상 그저 써 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회화보다 어렵고, 학원 개설 또는 출강을 몇 곳에 뛰어 보았자 거마비 벌이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예를 전공하거나 서예로서 인생을 걸어보려는 젊은이를 만나면 애써 비전적으로 말해 주고, 제 딸의 서예 전공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황우석 교수는 젓가락문화론을 얘기하지만 저는 붓문화론을 주창합니다. 붓 다루는 기술이 젓가락 다루는 솜씨보다는 엄청나게 차원이 높으니까요. 많은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붓을 통하여 손 기능을 기른다면 IT강국 건설은 문제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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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 죽을 때까지 똑같은 점 하나 찍지 못하고 죽는단다. 역사 이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한 일(一)자’를 써 왔지만 똑같은 일(一)자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수 없단다. 이처럼 엄숙하면서도 신선한 즐거움에 빠져 사는 아날로그를 표방하는 라이브 서예가 도정 권상호 선생. 매일 연애하는 기분으로 글씨를 쓴다는 그는 글씨를 쓰기 전의 그 설렘, 쓸 때의 그 흥분, 완성된 후의 그 벅차오르는 감동을 아느냐며, 30년이 넘는 붓질작업의 고충을 뒤로 한 채 이내 표정이 환해진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매일 밥을 먹으며 몸에 자양분을 공급하듯이 붓질을 통한 정신적 성장을 맛보게 하고 싶다는 라이브 서예가 도정 권상호 선생. 그의 서예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프로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초대작가 겸 심사 역임

(사)서울미술협회 겸 서예분과 부위원장

(사)한국예술문화원, 한국서예학회 이사

(사)한국미술협회, 삼청시사, 판소리학회, 한국민속학회, 한국한문교육연구회 회원

노원서예협회 회장

신일고등학교 교사 / 경희대학교 강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예 겸임교수


홈페이지 : http://seoyea.com(서예닷컴)

이메일 : ksh-1715@hanmail.net

취재 - 황재선 기자

사진 - 방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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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靑禾
새벽 공기 마신것모냥 신선하면서도 뜀뛰기 한것처럼 숨이 찹니다. 조금은 어렵지만 어렵풋이 공감이 가기도 하는데 시간이 없어 건너 뛰며 읽었는데 다음번엔 더 자세히 읽어보아야 될것 가.타.요.
여니
한 자 한 자 눈을 뗄 수 없는 인터뷰 내용 잘 보았습니다~
역시나 멋지신 우리 싸부님!  ^^
권상호
아직 잡지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 11월호 예정 -
잡지사에서 교정을 봐 달라고 보내온 원고를
미리 홈피에 올려놓았습니다.
덕분에 청화, 여니 두 서예마니아를 만나서 반갑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