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게시판

이제 왔습니다

선생님 박진규입니다.


스승의 날에 감사글 하나 남기려 했는데 여러날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아서 이제 글을 올립니다. 건강하시지요?


10여년을 가르치는 일은 했지만 제가 가르친 학생들에게 스승이라는 말을 들기가 어직 어색하네요. 제가 아직 학생이고 싶어 그런가 봅니다. 선생이라는 이름이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제 한마디에 상처를 입거나 저로인해 바른 길로 가지 못하는 학생이 있을 까봐 담임을 하는 것도 두려워 했던 지난 날보다 지금은 더욱 어떤 사람의 선생이 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린이 영어교육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이제는 부모라는 이름도 많이 무거워집니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지 가끔은 답이 없음에 좌절도 많이 합니다. 한 인격체로 자식을 대하면서도 학생을 가르치듯 거리를 두는 것, 지나친 애정에 홀로서기를 잃지 않게 그러면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내 자식으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바르게 성장하게 돕는 것,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균형있는 생각과 열린 마음을 갖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너무도 풀기 힘겨운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균형있는 언어교육과 인성교육을 생각해 저의 학위가 끝나지 않았지만 귀국을 결정했습니다. 여름에 귀국을 해서 일을 하면서 논문을 써야하니까 여기에 있을 때보다는 힘들 것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어린이 이중언어교육와 영어교육이라 제 자신이 우리 아이들을 균형있게 가르쳐야 할 학자적 책임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한글과 영어를 균형있게 잘 하지만 점점 힘들어지네요.


인사를 드린다는게 저의 푸념을 적은 글이 되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늘 선생님의 기르침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장 큰 가르침이 늘 배우는 자세였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어제 선생님의 글씨(有敎無類)를 우리 학과에 기증 했습니다. 선생님 글씨와 제 학생들의 성의가 배어있는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지만 버리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이 교육임을 생각해 학과에 기증하기로 한 것입니다. 교육의 교(敎)자에 대해 긴 설명을 함께 전했습니다. 교육의 본질인 교학상장의 의미와 서양 교육의 문식성(literacy)과 동양의 문 중심의 교육에 대해 비교 설명을 했는데 우리 학과가 문식성으로 아주 유명해 글씨의 내용이 더없이 의미있는 것이 될 것같습니다.


‘敎’ consists of three different characters: ‘counting sticks (爻)’ representing ‘modeling’; ‘a child (子)’ representing ‘student(s)’ or ‘child(ren)’;  and ‘text’ or ‘literature’ representing ‘literacy (文).’ The combination itself means ‘education’ or 'teaching.’ Like this, etymologically the English word also represents the active role of  teachers. However, the character 敎 implies the importance of literacy, which is almost like multiple literacies, as our department emphasiz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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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반가우이, 박선생.
아니 곧 박박사가 되겠네.
가족은 다들 편하고?
멀리 미국에서 그것도 다른 문화에 적응해 가면서,
자신을 가꾸어 나가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는가!
자네의 내공을 믿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잘 적응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선생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학생으로서...
역할 분담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시공간을 구분하여 인식할 수는 있으나 나눌 수는 없듯이
따지고 보면 '나'란 인간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겉보기엔 3 jobs, 4 jobs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선,
내 머리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모두 '하나'일 뿐이지... 

정성이 가득 담긴 진솔한 편지 선물은 내게 최고야.
나도 편지로 가르치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점점 게을러서 줄어들고 있으니...
이 사연도 마음 같아서는 붓글씨로 써 보내야 하는데...

각설하고,
'有敎無類'는 이미 내 손을 떠났지만
처리는 차암 잘 한 것 같네.
낙관문에 병자 경칩이라 쓴 걸 보니
만 10년이 넘은 끌씨로세.
좀더 소박하게 쓸 걸...
40대 초반의 글씨라 그런지,
구수하고 치졸한 맛이 없구먼.

그래, 錦衣還鄕, 아니 學衣還鄕하면
지난 얘기들 실컷 나눠 보세나...
지금부턴 내가 배우고 싶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