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氣論과 書法 - 書藝의 理論的 틀 - 미술평론가 정세근

  우리는 서예를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기(氣)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서예가와 기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상통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작품을 평가할 때도 기는 매우 중요해서 그것을 불어넣거나 그렇지 못함에 따라 한 작품의 성패가 결정되기도 하며 포폄(褒貶)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기'의 개념은 마치 추상사유의 원천처럼 여겨져서 설명될 수 없거나 표현될 수 없을 때 자주 인용되는데 과연 기란 무엇인가?
  동양기론의 탄생은 장자(莊子)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용법과 내용상 가장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단연코 「장자」이다. 기론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삼아 그를 바탕으로 철학을 전개한 인물 역시 역사적으로 장자가 최초인 것이다.
  장자 이전에는 그의 선배 격인 노자, 유가와 도가, 공자 등이 각기 기를 지향하고 있고, 특히 맹자는 자신이 기를 잘 기른다는 것을 강조하고 양기설을 주장하녀 하나의 수양(修養)론적인 체계 이른바 '처음으로 돌아가자'에서 전개한다. 장자의 기론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인간에서의 기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에서의 기론이다.
  사람의 기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숨이다. 장자는 직접적으로 '기질'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사람의 감정(人之情)을 이야기하면서 '지기(志氣)'를 내세운다. 특히 '신기(神氣)'는 기가 정신과 물질을 넘어선 그 무엇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둘을 맺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의 기는 여러 가지 특징 가운데 기는 '길러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확대되는데 '기를 기른다'고 말한 장자의 양기(養氣)설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것으로 보인다. 기는 불안하여 그것을 좋은 길로 인도해야 하고, 또한 기는 '심(心)'을 주도하는 것이기도 하며, '평정(平靜)'을 이루기 위해서는 양기가 필요하다.
  사람의 기는 한 부분일 뿐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자는 이를 '하늘과 땅의 한 기'라고 표현한다. 기가 실체로 이해되는 것은 만물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를 묻는 맥락과 같다. 세계의 실체를 깨닫고 그를 바탕으로 철학 및 예술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하늘과 땅의 한 기(遊乎天地之一氣)'는 주장이다. 천지가 한 기로 되어 있음을 알고 그 실체와 더불어 사유하고 행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인식은 삶과 죽음조차도 하나로 여기는 태도를 낳는다. 장자의 그 유명한 '장자처사(莊子妻死)'의 이야기는 '천하는 한 기로 통한다(通天下一氣)'는 입장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늘과 땅은 각기 음양이라는 두 기로 이루어졌다고 설명되는 일기설은 음양과 더불어 더욱 세밀한 논리적 구조를 갖는다. 천지는 한 기이다. 한 기가 운동하기 위하여 음양 두 기의 어울림이 나타나는 것, 음양 두 기는 이 세계가 한 기임을 우주만물에서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하늘과 땅의 한 기'를 알고 그 속에서 노닐고자 했다. 이때 '하늘과 땅이 무엇이다.'라는 사실은 '하늘과 땅이 무엇이라서 어떻다'는 가치로 바뀌며, 세계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장자의 기론이 예술적으로 중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장자의 기론이 예술적으로 중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감성은 곧 예술적으로 중요한 까닭으로 그는 후대의 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의 개념은 실로 매우 복잡하다. 철학자마다 매시대마다 그 정의가 다르며 내용도 다르다. 기는 작게는 인간에서, 크게는 천지에서 나누어지기도 한다. 서법이라는 용어는 그것이 하나의 法式을 따른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갖고 있다. 법식은 다름 아닌 전통과 만나는 길이다 서예에서 기를 이야기 할 때 인물화론에 근거한 謝赫의 '氣韻生動'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기는 '힘'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용법에 대입하여 가장 어울리는 용어이며 그 뜻을 가장 쉽고도 바르게 정해줄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기론의 한국적 전개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힘의예술'이다. 나는 그를 통해 삶이 예술화된다고 믿는다.
月刊書藝<1994년 7월호>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