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갑골학

 갑골학


甲骨學 갑골문(甲骨文)을 연구하는 학문. 갑골문이란 중국 은(殷)나라 때 거북의 등딱지나 - 필자는 거북의 등딱지가 아니라 거북의 배뼈라고 생각한다. 모양을 잘 살펴보면 알수 있다.- 소의 어깨뼈[견갑골]에 문자를 새겨 기록한 글이다. 복사(卜辭)·계문(契文)이라고도 한다. 이 갑골문은 1899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 샤오툰[小屯]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아주 오래 된 문자이기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 후 샤오툰 일대에서 농민들에 의한 도굴이 빈번하게 행해져 갑골문이 입수됨과 함께 학자들에 의한 수집과 연구가 실시되었다. 1903년 최초의 갑골문 자료집인 유악(劉顎)의 《철운장귀(鐵雲藏龜)》가 출판, 1058편의 자료가 소개되었는데, 편자 유악은 서문(序文)에서 갑골문에 기록되어 있는 선조명(先祖名)은 은나라 사람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듬해인 1904년에는 고전 금문(金文) 연구의 대가(大家)였던 손이양이 《철운장귀》의 자료를 기초로 해서 《계문거례(契文擧例)》를 출판하여 해독 방법을 개척하였다. 게다가 안양의 땅이 예로부터 은나라의 수도였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에 갑골문이 출토되는 샤오툰 부근이 고고학자들에 의한 학술적 발굴이 실시되게 되어, 2만 8000여 편의 갑골문이 발굴된 것 외에도 은나라 왕실의 궁전터와 왕묘를 포함한 다수의 묘와 유물이 발견되어 은나라에 대한 역사연구는 비약적으로 진전하게 되었다. 특히 종래 단편적이었던 갑골문 자료에 비해 완전한 형태를 지닌 거북등껍질이 발견되어, 그 위에 기록된 많은 갑골문을 비교하여 개개의 갑골문 시대를 결정하는 대강(大綱)이 둥쭤빈[董作賓]에 의해 발견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 갑골문은 은왕조의 후기 제30대 무정(武丁)에서 최후의 제신(帝辛)까지의 것으로, 그 사이를 5기(期)로 나누는 것이 확실해졌다. 여기에 갑골문은 역사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확립되어, 은나라 때의 종교·정치·사회구성·지리·역법(曆法) 등을 역사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제사제도와 그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갑골문의 해독은 금문(金文)이나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說文)》에 실린 고문자(古文字)와 글자 모양을 비교하여 연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방법은 기본적으로는 옳지만 《설문》에 설명된 의미와 고전에 사용된 의미를 그대로 갑골문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갑골문 속의 동일문자의 용례를 모아 비교하거나 같은 문형 속에 사용되는 다른 문자와 비교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갑골문에는 생략형 문장이 많기 때문에 기본적인 문형을 파악한 뒤에 문자의 용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최근의 언어학연구의 성과를 이용하여, 문법상에서의 연구도 개시되어 특히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갑골문--------

  중국 은(殷)나라 때 점치는 데 사용했던 귀갑(龜甲) ·우골(牛骨)에 새긴 문자를 말한다.

  귀갑문자 ·귀갑수골문자(龜甲獸骨文字)라고도 한다. 1899년 은나라의 옛 왕도 자리인 은허(殷墟)에서 발견되었다. 쓰여진 내용이 복점(卜占)에 관한 것이므로, 이것을 ‘은허복사(殷墟卜辭)’ 또는 간단히 ‘복사’라고도 한다. 귀갑이나 짐승의 뼈를 사용한 복점은 신석기시대부터 행해졌지만, 여기에 문자를 새긴 것은 오직 은나라시대만의 특색이다. 현재 알 수 있는 한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회화적 요소를 다분히 남기고 있으나, 순수한 그림문자보다는 상당히 진보되어 있다.

   문자의 수는 대략 3,000자, 그 중 해독된 것은 약 절반이다. 그 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반경(盤庚) 때부터 은말(殷末)까지 약 2백 수십 년에 걸친 것으로, 보통 이것을 5기(期)로 나누어 연구하고 있다. 내용은 제사(祭祀) ·군사(軍事) ·천상(天象) ·전렵(田獵) ·농경(農耕), 임금의 행행(行幸)과 안부(安否)에 관한 것이 많고, 이것으로 은대의 정치 ·사회 ·경제 등이 밝혀져서 전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던 은왕조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임이 싫증되었다.

  이것이 발견된 것은 청(淸)나라 말기 1899년 국자감 제주(國子監 祭酒: 국립 대학 총장격)였던 왕의영(王懿榮)이 말라리아를 오래 앓았는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용골(龍骨)이라 부르는 땅 속에서 파낸 어떤 오래 된 동물의 뼈를 샀다. 왕의영이 이 뼈를 보다가 표면에 글자 같은 것이 새겨진 것을 보고 더 많은 용골을 사들여 고대 문자에 조예가 깊은 유악(劉顎)과 검토하여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대 문자임을 밝혀 냈다. 후에 나진옥(羅振玉)이 이를 대규모로 수집, 탁봉하였고, 왕국유(王國維)와 동작빈(董作賓)이라는 학자는 갑골문 자체에 대한 연구에 몰두, 문자를 해독하고 갑골문의 역사학적 가치를 입증하였다. 중화인민 공화국 수립 후 곽말약(郭末若 1892-1978)이 주도한 중국 과학원은 그 당시까지 연구된 갑골과 그 성과들을 <갑골 문합집(甲骨 文合集)>이라는 책으로 편찬하였다. 또한 갑골문자는 지금부터 3천년 전 이상의 시대에 쓰인 문자인데 발견 뒤 겨우 몇 십년의 연구 성과로 후대에 알려지지 않은 인명이나, 지명 등의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거의 해독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