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고문과 전서

 

1) 갑골문(甲骨文)

  갑골문은 상대문자이다. 물론 주대 초기의 갑골문이 70년대 이후에 다량 발굴되었으나 이는 상대문자 내지는 상대문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므로 갑골문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갑골문은 상왕실의 점복(占卜)기록으로서 상왕조는 국가대사를 비롯하여 왕의 사적인 일까지 모든 일의 결정을 거북점에 맡겼다. 정해진 과정에 따라 점을 치는데, 거북딱지와 소의 어깨뼈에 홈을 파서 불에 쪼여 갈라지는 금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였다. 그리고나서 그 점복과정을 바로 해당 거북딱지나 소어깨뼈에 기록하였는데, 거북딱지 중에서도 조로 거북의 배딱지와 소의 어깨뼈에 글자를 새겼다. 그래서 이 귀甲과 우骨명을 따서 갑골문이라고 부른다. 또한 옛도읍지 은의 폐허에서 출토된 문자라서 은허문자(殷墟文字)라고도 부른다. 백년간 발굴된 문자가 새겨진 갑골은 15.6만 편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 흩어져 소장되어 있다.

2) 금문(金文) 
  금문은 상대에서 서주를 거쳐 춘추전국시대까지 1200여년에 걸친 기간동안 주조된 禮器, 車馬器, 樂器, 兵器, 工具, 計量器, 雜器 등 각종 청동기물에 새겨진 문자를 통틀어 가리키는 개념이다. 물론 금문의 대표적인 시기는 주대이므로 흔히 “상대의 갑골문”과 대비해 “주대의 금문”이라고 한다. 고대에는 동(銅)을 가리켜 흔히 금(金)이라고 하였으므로 금문(金文)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금문은 3700자 정도이며 그중 삼분의 이 정도가 되는 약 2400자 가량이 해독되었다고 한다. 청동기의 제한된 수량으로 전체 글자수는 갑골문보다 적으나 갑골문과 비교하여 명문의 보존상태가 훨씬 양호하고 연구역사가 길며(송대부터) 갑골문보다 시대적으로 뒤에 나온 글자이므로 해독된 글자수가 갑골문의 배 이상이 된다.

3) 대전(大篆)

  대전에 대하여는 갑골문이나 금문처럼 실물이 고스란히 실려 전해오는 서사자료도 없으며 후에 나온 소전(小篆)처럼 <설문해자>라는 문헌에 실려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고문헌에 이에 관한 상세한 설명도 없어서 아직까지 이 대전에 대해서는 여타 자체처럼 확연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만 았았지만, 일반적으로 주문(籒文)과 동일한 개념으로 본다.

  대전은 원래는 주문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었으나 소전이 생긴 이후에 소전과 대비시키기 위한 명칭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소전은 어디까지나 대전을 모태로 하여 만들어진 글자체이므로 의미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주문이라는 명칭을 대체한 것으로 여겨진다. 문헌기록에 의거해서 다음과 같이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진통일왕국의 진시황이 이사(李斯)의 건의를 받아들려 당시 六國에서 사용하던 이형(異形)의 문자들을 모조리 폐지하고 그동안 진에서 써왔던 글자체로 보여지는 주문이라고도 불렸던 대전을 개량해서 만든 소전으로 천하의 문자를 통일하였다.”


4) 고문(古文)

  고문이라 함은 전국시대에 진과 자웅을 겨루던 소위 전국칠웅 중에서 진을 제외한 여섯나라, 韓魏趙齊楚燕에서 사용하던 소위 이형문자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六國문자 또는 동방육국문자 또는 전국문자라고도 한다. 이들 문자에 고문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괸 연유는 이렇다. 전한(前漢)의 경제(景帝)때 노지방에 봉해진 그의 아들 노공왕(魯恭王, 155-129 BC)이 궁실을 확장하기 위해 공자의 구택을 허물었다가 벽 속에 감추어진 <고문상서>, <예기>, <춘추>, <논어>, <효경> 등 수십편의 경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문헌들은 진시황의 분서령을 피해 감추어 놓은 것으로 은닉할 당시 통용되던 육국문자로 씌여진 것이다. 이 문서들을 “벽중서(壁中書)”라고 부른다. 발견 당시 학자들이 이 벽중서에 씌여진 글자체를 옛날옛적 상고시대의 고문자체로 오인하여 고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실제로는 칠팔십년의 세월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정치적으로 강행되었을 육국문자의 폐지, 소전으로의 문자통일, 한대의 예서로의 공식서체화 등등, 급격한 변화로 인한 글자체의 커다란 변모가 전한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육국문자의 존재를 전혀 알아 볼 수 없도록 만든 것이 아니었겠는가?


5) 소전(小篆)

  소전은 진전(秦篆)이라고도 불리는 진의 공식서체이다. 소전은 이사가 대전을 개량하여 만들었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전국의 여러 지역의 돌에다가 소전으로 공훈을 새겨 넣었는데 이 또한 이사의 필적이라고 전해진다. 전해 내려오는 설처럼 이사가 소저을 창작한 것이든 아니면 현대의 일부 학자가 주장하듯 이사가 당시 이미 형성되어 있던 소전을 정리한 것이든 소전은 이사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 것은 확실하다. 소전은 한자의 역사에서 최초로 규범화된 문자체로서 후한의 허신(許愼)이 AD100년에 지은 자서 <설문해자>에 표제자로 9353자가 실려 고스란히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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