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

 

1)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川前里刻石)


국보 147호

소재지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207-8

시 대 신라 법흥왕

종 류 각석


태화강 물줄기인 내곡천 중류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이다. 아래․위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하다.


윗단에는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조각되어 있다. 사실성이 떨어지는 단순화된 형태인데 중앙부의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네 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과 맨 왼쪽의 반인반수(半人半獸:머리는 사람, 몸은 동물인 형상)상이 눈에 띈다.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는 듯한 이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아랫단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는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배를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기마행렬도는 세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간략한 점과 선만으로도 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배그림은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글자는 800자가 넘는데 왕과 왕비가 이 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느 특정 시대를 대표한다기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



2)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山大谷里盤龜臺岩刻畵)

 

국보 285호

지정일 1995.06.23

소재지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3

종 류 각석

 

신석기시대말부터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암각화. 1972년 3월에 대곡리의 강안 암벽상에서 발견되어 암각화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준 유적이다. 이때에 발견, 조사된 내용은 주로 수렵과 어로의 광경과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들이었다. 사슴, 고래, 거북, 물고기, 호랑이, 멧돼지, 곰, 토끼, 여우, 그리고 사람의 모습 등이었다. 또한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암각화가 새겨져 한 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람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이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다시 말하면, 풍요주술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형식 및 내용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스칸디나비아, 시베리아 등지에서 발견되는 것들 가운데 일부를 들 수 있다.물론 직접적인 관련성은 찾을 수 없으나 시베리아의 암각화와는 지역적인 연관으로 보아 비교될 수 있는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이 암각화는 형식에 의하여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대상동물의 모습을 모두파기로써 표현한 가장 오래된 형식, 윤곽선을 가지고 생동감 있는 동물을 표현한 윤곽선파기와 같은 기법으로 내부 기관을 표현한 형식, 굵은 선 하나로써 대상동물을 표현한 아주 상징적인 형식이 모두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을 한반도 인접지역과 연관시켜 보면, 첫 번째 모두파기 형식은 신석기시대말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에 걸친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두 번째 윤곽선파기형식의 것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이 많이 알려지고 있고, 세 번째 방식은 청동기문화 말엽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 두 번째 형식이 주가 되고 있으며, 이것은 시베리아의 암각화 분류의 내용과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儀器文樣과 비교하여 보아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소산으로 분류되고 있다. -> 바위그림


  <<참고문헌>>

蔚山의 先史時代 巖壁刻畵(문명대, 문화재 7호, 1973)

한반도 先史時代 巖刻의 製作技術과 形式分類(황용혼, 考古美術 127,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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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 선사 암각화의 세계

<a href=http://blog.naver.com/solhanna.do?Redirect=Log&logNo=80003231664 target=_blank>http://blog.naver.com/solhanna.do?Redirect=Log&logNo=80003231664</a>
권상호
** 울산 반구대 암각화 [ 蔚山盤龜臺岩刻畵 ]

1995년 6월 23일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울산으로 흐르는 태화강 상류 반구대 일대의 인공호(人工湖) 서쪽 기슭에 북쪽으로 향한 암벽에 새겨졌다. 댐의 축조로 인해 평상시에는 수면 밑에 있다가 물이 마르면 그 모습을 보인다. 그 크기는 가로 약 8m, 세로 약 2m이고, 조각은 암벽 밑에까지 부분적으로 퍼지고 있어 밑에서부터 암각화 상단선까지의 높이는 3.7m쯤 된다.

반반하고 매끈거리는 병풍 같은 바위 면에 고래·개·늑대·호랑이·사슴·멧돼지·곰·토끼·여우·거북·물고기·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을 쪼아서 표현하였다. 여기에 표현된 동물들이 주로 사냥 대상 동물이고, 또 이들 동물 중에는 교미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과 배가 불룩하여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동물의 모습이 보인다. 이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이, 동물들이 많이 번식하고 그로 인해 사냥거리가 많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춤추는 남자의 모습에서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된 것은 인간의 생식능력이 자연의 번식력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옛날 산신제(山神祭) 때에 성기를 드러내고 춤을 추었다는 보고가 있다.

어로(漁撈)의 행위를 묘사한 고기잡이배와 그물에 걸려든 고기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실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일종의 주술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아마도 당시에는 반구대 지역이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빌고 그들에 대한 위령(慰靈)을 기원하는 주술 및 제의(祭儀)를 행하던 성스러운 장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물의 표현 중에 소위 X레이 화법(畵法)이라고 하는 배 부분의 내장(內臟)을 표시한 것이나 입에서 시작하여 내장까지 닿는 음식을 내장으로 보내는 일종의 생명선의 표현은 동물들의 생명 운영과 그를 위한 기본기관이 들어 있는 부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의 한 표현으로 보인다.

이 암각화의 연대에 관해서는 신석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설과 청동기시대의 작품이라는 설 등이 있다. 시기가 차이가 나는 표현양식과 내용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암각그림 모두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원하는 그림을 추가하는 등 신앙행위의 장소로서 계속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울주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 고령 양전동 암각화(보물 제605호) 등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여러 가지 동물과 물고기, 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울주 천전리와 고령 양전동 암각화에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영일 칠포리, 경주 석장동 금장대, 남원봉황대 등과 같이 산과 물, 옛 무덤과 어우러진 바위그림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1976년 8월 6일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3m, 너비 5.5m의 직사각형 암벽에 새긴 그림으로, 1971년 알터[卵峴]에서 발견되었다. 바위그림[岩刻畵]은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으로, 주로 풍요로운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을 바위나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고령 양전동 암각화는동심원(同心圓)이 3개, 十자형이 1개, 가면모습의 목책형(木柵形) 2∼3개가 대체로 좌·중·우의 3군(群)으로 나누어 추상양식으로 음각(陰刻)되어 있다. 이 중 목책형 방형(方形) 무늬는 가면 같기도 하나 목책(木柵)에 둘러싸인 특별 성역(聖域)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 곳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원시신앙 유적지로 추정된다.

또한 ‘알터’에 이 바위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구간(九干)이 귀지봉(龜旨峯:김해 소재)에서 노래를 부르자, 6개의 알이 든 금궤가 하늘에서 내려와 뒤에 옥동자가 탄생, 가야국을 다스렸다는 건국설화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난생설화(卵生說話)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고, 6가야의 중심지가 김해가 아니라 고령으로 추측하게도 한다.

TM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 산탄데르 델 마르에 있으며 구석기 시대 후기에 그린 벽화가 유명하고 또 역사적 가치가 높아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알타미라 벽화를 통해 당시의 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수렵의 방법이나 무기·신앙 등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산 울주군을 포함한 16곳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어,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황기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