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玉’과 ‘石’을 구별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없는 書壇이 되어야 / 김병기

I. 머리말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다”는 말이 있다. 긍정적인 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부정적인 일도 늘어난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최근 1, 2년 전부터 한국의 서예계는 여러 가지 전환기적 양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러한 양상 중에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아서 한국 서예의 장래를 밝게 하고 있다. 서예계 원로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서단의 권력과 권위가 집중현상을 탈피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일이고, 스승세대와 학생세대 간에도 과거의 맹목적 전수를 벗어나 무엇을 전수받고 무엇을 단절하고자 하는지 계승과 단절의 범위를 분명히 하려고 하는 의지가 신장되고 있는 점도 바람직한 일이며, 그동안 도제식(徒弟式) 교육으로 일관해오던 서예교육이 다양한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창작 성향이 비슷한 작가끼리 그룹을 형성하여 상호간의 관마(觀摩)를 부지런히 하려는 현상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서예의 본질과 변화, 변용과 변질 사이의 계한을 더욱더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의식 즉, 서예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환기적 변화를 맞음으로써 서예에 대해 더욱 근원적인 정의를 하려는 학구적 조짐도 차츰 노골화하고 있는데 이 또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국제적 지위향상 및 세계를 휩쓰는 한류 등에 힘입어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고취되면서 서예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신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개최 이후 배가된 국가 이미지 향상과 한국 문화의 세계 진출 등에 편승하여 한국 서예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이 전환하고 있으며 한국 서예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한 국내 서예가의 기대도 배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환기적 양상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양상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듯이 이러한 긍정적인 양상에 대해 노골적으로 역행하거나 아니면 외양만 긍정적 양상을 따르면서 내면적으로는 긍정적 양상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사이비(似而非)’적 행태도 속출하고 있다. 한국 서예의 발전을 위하여 이러한 역행과 ‘사이비’적 행태는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의 서예계는 아직 ‘옥(玉)’과 ‘석(石)’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집단적 바른 눈(正眼)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동안 서예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연구업적을 많이 쌓지 못한 탓에 학문에 근거한 바른 평론이 활성화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아직 한국 서단에는 사이비의 준동을 자연스럽게 봉쇄할 수 있는 집단적 바른 눈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옥’과 ‘석’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훌륭한 안목을 가진 서예가나 서예학 연구자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 구안자(具眼者)가 개인적으로 안목만 갖추고 있을 뿐, 연구 논문이나 평론을 많이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안목을 전체 서단에 객관적으로 보급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아직 한국의 서단은 서단 전체의 평균적 역량으로 ‘옥’과 ‘석’을 구별하는 힘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이비들이 횡행해도 일부 연구자의 외로운 질정 외에 서단이 나서서 자연스럽게 자정(自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심한 경우 함량미달의 사이비 서예가나 사이비 연구자가 형성한 사이비 조류(潮流)가 서단을 인도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위험한 현상도 야기되고 있다. 한국 서단에 기왕에 나타난 긍정적인 전환기 양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옥과 석을 구별하는 집단적 정안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한국 서단은 지금 서예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학문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평론을 매우 필요로 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미래의 한국 서단은 ‘옥’과 ‘석’을 제대로 구별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없는 서단(書壇)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와 희망 아래 2005년도에 한국의 서예계에서 일어났던 일 중에서 긍정적인 면들을 주로 이야기하되 그 긍정적인 면에 대한 하나의 골(谷)로서 야기된 부정적인 현상을 거론하여 대비해가면서 2005년 한국서예 1년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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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2005년 한국 서단의 긍정적 현상들과 그 골(谷-그림자)

2005년 새해 벽두부터 서예계를 놀라게 한 사건 아닌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삼문전(三門展)>이다. 광주의 학정 이돈흥의 지도를 받고 있는 문하생들과 서울의 하석 박원규와 소헌 정도준의 지도를 받는 문하생들이 연합하여 공평화랑에서 대대적인 합동전시회를 가진 것이다. 각 문하에서 15명 총 45명이 1인당 3점씩 대형작품을 출품하여 공평화랑 1, 2층을 꽉 메웠다. 지금까지 한국 서단은 큰 문중이 연합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인 적이 없다. 각 문중끼리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는 서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삼문전>은 그러한 한국 서단의 풍토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관마(觀摩)의 장을 연 것이다. 따라서 〈삼문전>은 한국 서예계의 지각 변화를 예고하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삼문전>이 기폭제가 되어 앞으로 한국 서단이 더욱더 공개적인 양상, 민주적인 양상을 보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06년도 우리 서예계에는〈삼문전>의 이러한 참신한 성과에 긴장이라도 한 것인지 상호교류라는 이름 아래 ‘세(勢)’를 규합하기 위한 문중 간의 연대나 여러 계열의 작가를 일시적으로 모아 새로운 ‘세’의 창출을 기도한 전시도 적지 않았다. ‘옥’을 모방한 ‘석’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러한 ‘석’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출품도 하고 관람도 하였다. 옳고 그름과 바람직함과 바람직하지 못함을 따지기 전에 일단 하나의 ‘세’로 보일 만한 기획전이나 행사가 있으면 우리 서예인들은 일단 참여하고 보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아직 서단에 옥석을 구분하는 집단적인 정안과 자정 능력이 충분하게 자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앞으로 바람직한 관마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서단의 모든 눈들이 나서서 옥과 석을 구분해내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2005년도 한국의 서예계에서 치러진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그 의미도 컸던 행사는 역시 『2005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일 것이다. 이번에 제5회를 맞은 『2005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전시행사 11건, 학술행사 2건, 부대행사 8건, 관련행사 2건 등 총 22개 행사에 세계 23개국 1000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만남’이라는 주제 아래 <문자를 위한 축제>, <우리 서예 유산 임서전>, <명사서예전>, <서예술의 실용화 전>, <깃발 서예전>, 『국제서예학술대회』 등 다양한 전시와 행사를 치름으로써 대내적으로는 한국 서예의 내실과 응용의 역량을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한국 서예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세계화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이미 10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종합성 서예축제로 성장한 만큼 한국의 전 서예계가 나서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2005년 한국의 서예계에서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외에 두 개의 서예비엔날레가 새로이 탄생하였다. 그 하나는 『서울서예비엔날레』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서예비엔날레』이다. 경쟁을 통한 질의 향상과 특성화 추구라는 점에서 볼 때 ‘난무’만 아니라면 서예비엔날레가 많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 서예계는 서울서예비엔날레와 부산서예비엔날레의 탄생에 대해 적지 않은 기대를 했다. 그런데 두 비엔날레 중에서도 특히 『서울서예비엔날레』는 우리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서울서예비엔날레』는 한국 서예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고 한국에서 열리는 서예비엔날레에 대해 외국 서예가들에게 우리 서예에 대한 인상을 매우 나쁘게 심어주는 실수를 하였다. 있을 수도 없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사건이 『서울서예비엔날레』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서울서예비엔날레』 내의 한 기획전인 <조선유학자 유묵 특별전>에 출품된 작품에 많은 가짜가 끼여 있었다는 이른바, ‘서울서예비엔날레 가짜 작품전’ 사건이다. 『서울서예비엔날레』는 이 특별전에 200점의 유작을 전시하였는데 그 중 많은 작품이 가짜로 판명이 났고 또 의심을 받았다. 큰 소동이 벌어졌다. 언론은 연일 ‘가짜’임을 규탄하는 보도를 하였고 한국서예학회에서는 전시를 중단하고 도록을 회수하라는 건의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주최측에서는 극히 일부 작품을 철거하고 나머지 상당량의 가짜 작품을 그대로 전시하는 가운데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전시기간을 다 채웠다. 오히려 주최측은 수많은 정치인들을 배후에 고문이나 자문위원으로 둔 탓인지 퍽 의기양양하게 정당성을 강조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양상마저 띠기도 하였다.

『서울서예비엔날레』측의 그러한 행위는 지금까지 쌓아온 한국 서단의 명예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행위였고, 한국 서예사를 왜곡하는 치명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한국의 서예계는 한국서예학회(회장 조수현)에서 건의문을 내고 최효삼씨 등 일부 고서화 수집ㆍ연구자가 지적과 규탄의 글을 발표하는 외에 다른 반응은 아무데서도 나오지 않았다. ‘옥’과 ‘석’을 구분할 수 있는 바른 눈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안타까운 현상이다. 한국의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 자극을 받아 중국도 2005년에 제1회 북경서예비엔날레를 개최한 마당인데 우리는 내부에서 경쟁적으로 서예비엔날레를 하나 더 만들어 이처럼 엄청난 소동과 수모를 자초하였으니 서예계의 바른 판단이 참으로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서예계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2005년에는 <삼문전>이나 서예비엔날레 외에도 의미있는 전시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 코엑스 지하 1층 호수길에 마련된 임시전시장에서 <필가묵무 2005전>이 열려서 서예도 다른 미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거리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였고, 고암 정병례도 코엑스 태평양홀에서 열린 세계 Book-Art전에 초대를 받아 전시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병례는 예총화랑 전시실에서 전각전을 갖기도 하고, 또 불일미술관에서 <풍경소리 전>이라는 이름의 참신한 전각전을 가짐으로써 그가 구축한 특유의 전각예술세계를 선보였는데 많은 사람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나현 이은설도 경인미술관에서 <칼질의 흔적 전>이라는 이름의 전각전을 열어 서예의 한 분야로서의 전각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부각시켰다.

한편, 2005년에는 중국의 북경대학에 서법연구소 석사과정이 개설되어 초정 권창륜, 학정 이돈흥, 근원 김양동, 심석 김병기 등 한국의 서예가 네 명이 초빙교수로 초빙되어 임명장을 받았다. 북경대학에 서법연구소 초빙교수로 초빙을 받은 교수들은 초빙을 기념하여 한국의 초빙교수 전원과 중국의 진카이청, 왕위에촨, 리우정청, 쉬한 등이 출품한 <한ㆍ중 서예교수작품전>을 서울의 중국문화원에서 개최하였다. 이 전시와 함께 열린 학술강연과 토론회에서는 무려 4시간 동안 한ㆍ중의 서예 전반에 관한 난상토론이 벌어져 양국의 서예를 상호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서울 평창동에 있는 이응로 미술관에서는 고암 이응로의 서예전이 열렸는데, 고암이 비록 유명한 화가이기는 하지만 서예 분야에서는 한계를 드러내어 역시 서예는 화가의 몫이 아니라 서예가의 몫이라는 교훈을 주었다.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산정 서세옥의 작품전이 열렸는데 서세옥은 서예의 필획과 발묵을 이용한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서예가들의 관심도 적지 않았다. <호치민 옥중시 서예전>이라는 이름 아래 베트남과의 첫 교류전이 열린 것도 2005년도 한국 서예계에 의미있는 일이었고, 국당 조성주가 연극 <매창(梅窓)>에 출연하여 일필휘지 휘호하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우리의 연극이 서예를 현장감 있게 수용하게 된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홍운 김창수와 청랑 김근희 부부가 <금서슬화(琴書瑟畵) 전>을 연 것도 매우 아름다운 일이어서 서예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 광복 이후 한국에서 결성된 서예그룹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가 있었으나 한때 활동이 침체해 있던 한국서예가협회가 많은 신입회원을 영입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전시를 가진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으며, 창작 의욕이 강한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 ‘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를 결성하고 전시를 가진 것도 한국 서단의 활력을 상징하는 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자칭 ‘정예작가’라고 한 점에 대해서는 한때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청미술관이 새로이 개관되어 개관기념으로 <한국서예 100인전>을 가진 것도 서예계의 한 경사였다.  

그 밖의 개인 작품전으로는 서산 권시환의 서예전도 의미가 있었고, 밀물 최민렬의 서예전도 한글서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광주의 학정 이돈흥이 광주 시립미술관 초대로 대형 개인전을 가졌다. 시립미술관 전관을 꽉 채운 수준높은 작품들이 전국의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전국의 서예인들에게 서예의 진수를 보여준 전시라고 하기에 충분한 전시였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원로 서예가 운암 조용민이 8순 기념 서예전을 백악미술관에서 가짐으로써 노익장을 과시했고, 한국서협 이사장의 임기를 다한 효당 김훈곤 초대전이 한전프라자에서 있었다. 전각가로 더 잘 알려진 석헌 임재우의 개인전이 있었고, 한뉘 조주연의 서예전도 있었다. 겸와 김진익이 새로운 모습을 보인 전시를 하였고, 서예학 연구자이자 서예학에 관한 양질의 중국도서를 많이 번역한 철견 곽노봉이 서론 문장 99종을 골라 작품화하여 전시함으로써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남천 정연교가 오랜만의 침묵을 깨고 사군자전을 열어 깊이 온축된 실력을 내보임으로써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취림 강복영과 야정 강희산도 작품전을 열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외전시로는 역시 소헌 정도준이 프랑스에서 전시를 갖는 동시에 여러 가지 학술활동을 함으로써 한국 서예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2005년에는 서예 창작 활동뿐 아니라 서예 학술활동에도 의미있는 일이 많았다. 2005년도 한국 서예학계의 괄목할 만한 큰 수확은 원로 서예가 동강 조수호가 평생동안 쓴 논문과 평론, 시론(時論) 등을 모아 「서예술 소요」라는 책으로 편찬해 낸 것이다. 총 411쪽에 달하는 이 책은 서예사와 서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또 창작 경험이 많은 노대가가 현신의 설법으로 서예를 말한 책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다. 2005년에 이룩한 한국 서예학계의 또 하나의 성과는 전북대 김병기 교수가 광개토대왕 비문의 변조를 서예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하여 심도 있게 증명하고 나아가 변조하기 전의 원문을 복원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올린 김병기 교수의 저서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글씨체로 밝혀낸 광개토대왕비의 진실」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하였다. 2005년에 열린 학술대회로는 우선 한국서예학회의 춘ㆍ추계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춘계학술대회에서는 ‘한글 자ㆍ서체(字ㆍ書體)의 명칭 통일방안’을 주제로 깊이있는 발표와 열띤 토론이 이루어져 한글의 자ㆍ서체 명칭을 연구하고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학술대회 과정에서 김병기 교수가 한국서예학회 산하에 ‘한글 자ㆍ서체 명칭 조정위원회’를 설치하여 통일안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서예학회는 그 의견을 즉각 수용하여 위원회를 설치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추계학술대회는 ‘서예, 서법, 서도, 명칭의 적의성(適宜性) 탐색’이라는 주제 아래 한, 중, 일 3국의 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또 서예, 서법, 서도에 대한 영역(英譯) 문제까지 거론함으로써 명칭 통일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서예학회의 임원 개편도 있었는데 원광대학교 조수현 교수가 회장을 맡았고, 전북대학교의 김병기 교수와 대구예술대학의 백영일 교수가 부회장을 맡았다. 과천문화원에서는 제2회 추사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과천 시절의 추사를 조명하였다.

2005 한국 서예계에서 일어났던 일 중 또 하나의 바람직한 일은 각 대학 서예과의 졸업 작품전이 예년에 비해 진지해야 할 부분은 훨씬 더 진지해지고 참신해야 할 부분 역시 훨씬 더 참신해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작품 중에 오자나 탈자가 적지 않게 보였는데 작년에 어느 평자로부터 호된 지적을 받은 탓인지 2005년의 도록에는 오자나 탈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이 매우 진지해진 점이다. 예전의 도록에는 지도교수의 작풍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많이 있었는데 2005년에는 그러한 현상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작품의 소재나 경향도 매우 다양하였다. 이 점이 참신한 점이다. 기존의 서예 그룹이 노정하던 상투성이 많이 줄었다는 점에서 각 대학 서예과 졸업작품전을 통하여 한국 서예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2005년도 한국 서예계 최대의 행사는 『서예의 독립교과 채택을 위한 국회 공청회』였다.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에 2000여 명의 서예인들이 운집하였다. 우리 서예계는 그날 정말 오랜만에 단합하여 한마음으로 한 목소리를 내어 이 시대에 서예가 왜 중시되어야 하고 서예 교육이 왜 강화되어야 하며 서예가 왜 독립교과로 채택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뜨겁게 외쳤다. 공청회는 원광대학교 조수현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동학사 승가대학의 김두한 선생이 <인성교육과 서예의 가치>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고, 곽노봉 박사가 <서예는 독립교과여야 한다>는 글을, 전북대 김병기 교수가 <서예는 21세기 첨단문화산업의 주요 콘텐츠>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경기대학교의 박영진 교수, 대구예술대학의 백영일 교수, 한글서체연구회장인 허경무 선생이 성실하고 깊이있는 토론을 해주었으며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정 정책과의 박삼서 과장이 교육부의 입장을 설명해주었고, 대전대학교 서예과 김영봉 학생이 질문을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우리 서예인들의 외침을 듣고서 국회의원들도 마음이 움직였고 교육부의 관계자도 머리를 끄덕였다. 장차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 밖에 2005년도 한국 서예계에서 있었던 특별한 일들을 들면 초정 권창륜이 옥관 문화훈장을 받았고, 마하 선주선은 원곡 서예상을 받았다. 위창 오세창의 제자로서 전서를 특히 잘 썼던 원로 서예가 정향 조병호가 별세하였고, 동애 소효영도 작고하였다. 대불대학교에서 서예 문인화 전공 신입생을 모집하기로 결정한 것도 서예계로서는 고무적인 일이었다.

2005년도 한국 서단의 가장 부정적인 현상은 역시 함량미달의 공모전이 난무한 것이었다. 한국 서예계의 모든 부정적인 일은 공모전의 난립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만큼 공모전의 폐해가 심각한 실정인데도(2004년도 『문예연감』 서예평 <한국 서예,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야한다> 참고) 2005년 한 해 동안 어림잡아 170여 종의 공모전이 개최되었다. 게다가 신설된 공모전도 적지 않다. <대구경북 진사서예대전>, <대한민국고불서예대전>, <부경서도대전>, <국제유교문화서예대전>, <광개토대왕서예대전>, <대한민국시서화전람회>, <한국서예올림픽> 등의 공모전이 신설되었다. 물론 이 중에는 스스로 공모전으로서의 권위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공모전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지금까지 난립해 있던 여타 공모전과 특별한 차이점이 없는 공모전이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한중서화부흥협회라는 단체에서는 제1회 <붓(筆)의 예술의 전도자(傳道者) 작품전>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개최하였는데 전시명의 영문 표제를 ‘Mission of Brush-Art’라고 한 점이 상당히 의외였다.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한 붓을 서양의 ‘Brush’와 동일시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야기되었고 ‘Brush-Art’의 범위 안에 서예를 포함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얘깃거리가 되었다. 한자문화권 고유의 문화이자 예술인 서예와 서예에 관한 도구를 영역함에 있어서는 더욱 깊은 사고와 논의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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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맺음말

지난 2005년 1년 동안 한국의 서예계에는 바람직한 일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바람직한 일의 반면에는 하나의 골 혹은 그림자로서 부정적인 일들이 대부분 다 따라다녔다. 특히 서울서예비엔날레의 가짜작품 소동은 한국 서예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짜 작품 소동의 전말을 밝히고 당시에 전시되었던 전 작품에 대한 진위 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여 ‘옥’에 대한 ‘석’을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석’이 ‘옥’의 탈을 쓰고서 발간된 도록 안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도록은 반드시 회수하여 폐기해야 한다. 만약 훗날 누군가가 이 도록에 수록된 가짜 작품을 자료로 삼아 논문이라도 쓰게 된다면 가짜로 인하여 서예사가 왜곡당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된다. 악화에 의해 양화가 구축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한국 서단은 패거리를 지어서 서로 부추겨가며 조성한 허울에 불과한 권위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실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우리 서단의 30-40대 작가들의 역량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눈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젊은 패기만으로 서단을 활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은 제대로 갖춘 눈을 통해 서단을 다시 보려고 하고 있다. 이제 한국 서단은 실력을 토대로 정직한 서단을 조성하고자 서로가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부분적으로는 껍데기도 있고 사기꾼도 있다. 비열하고 비겁하게 요행이나 바라며 구시대의 유물인 ‘줄타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악화(惡貨)적인 인물의 농간에 의해서 진정으로 실력이 있는 양화(良貨)적인 인물이 구축당하던 시대는 서서히 가고 있다. 내년 2006년에는 이러한 바람직한 현상들이 더욱더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筆者 : 김병기  전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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