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website is using a security service to protect itself from online attacks. The action you just performed triggered the security solution. There are several actions that could trigger this block including submitting a certain word or phrase, a SQL command or malformed data.
You can email the site owner to let them know you were blocked. Please include what you were doing when this page came up and the Cloudflare Ray ID found at the bottom of this page.
33기 박물관특설강좌 화요반
韓國 古文獻의 特徵과 印刷文化
南 權 熙(慶北大學校 文獻情報學科)
目 次 1. 개괄 2. 시대별 특징 3. 책의 크기 4. 편철의 방법 5. 표지 제작의 방법 6. 종이(紙) 7. 사경 8. 활자본 9. 목판의 판각과 간행부수 10. 간행장소 및 주제 11. 번각본과 판식 |
1. 槪括
古文獻은 기록과 기록물이란 측면에서 과거의 사상과 문화를 후대로 이어주는 교량적인 매체역할을 하여 왔으며 특히 한국의 출판 및 인쇄문화는 목판이나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문화면의 인류문화사에서 그 기반을 제공하는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되어왔다.
統一新羅時代의 木板印刷術과 製紙術의 발전을 더불어, 高麗時代의 大藏經을 비롯한 불교문헌의 간행, 朝鮮時代의 儒學書籍이 국가적인 중심인 가운데 왕실과 각 지역 사찰에서의 불교문헌의 간행,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金屬活字, 木活字의 鑄造와 인쇄방법의 고안과 개량 등 시대별로 특징을 가지고 발전하여 왔다.
記錄·出版文化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전제조건은 고대로부터 이미 中國에서 전파된 漢字와 이를 기록한 碑文, 金石文, 古墳의 벽화나 유물에 쓰여지거나 새겨진 기호로부터 문장에 이르는 초기의 기록문화단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中國에서 각종 서적이 유입되고, 기록매체의 보급과 유통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독자적인 板本을 만들어 다량으로 기록을 재생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은 먹(墨), 붓(筆), 종이(紙)와 인쇄기술이 일정수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그 결과 현존 최고의 목판본으로 慶州 釋迦塔에서 발견된 8세기 統一新羅時代의 「無垢淨光大陀羅尼經」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려시대는 인쇄기술발달의 전제조건들과 불교국가로서의 이념과 체제정비, 여러 학문분야의 발달 등의 요인이 국가, 사찰, 개인별 문헌 수요의 창출로 이어져 인쇄사적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또 문헌의 형태적 발전 단계라는 측면에서도 高麗時代는 卷子本, 折帖本, 蝴蝶裝, 包背裝 및 그 후에 線裝本의 이어지는 대부분의 유형이 망라되었던 시기이므로 각 유형별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기 용이하다.
여기서는 한국 고문헌의 일반적인 특징과 흐름을 바탕으로 高麗時代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기록과 기록물들의 유형과 시대에 따라 나누고 가장 기본적인 형태적 특색을 살펴보았다.
2. 時代別 特徵
三國時代로부터 高麗, 朝鮮時代에 이르기까지 고문헌의 형태는 韓·中·日 동북아 삼국은 같은 한자문화권의 영향아래 시대별로 비슷한 모양을 유지하고 변천과 발전의 단계도 같은 과정을 거쳐 왔다. 한국의 고문헌들은 중국과의 빈번한 교류에 의하여 여러 주제에 관련된 저술이 유입되고 그에 따라 내용이 수록된 매체로서의 책이나 자료들을 접하게 되어 두루마리 형태의 卷子本, 병풍형태의 折帖本, 실로 묶은 線裝本 등으로 기능과 목적에 맞게 나름대로 변용되었다.
線裝本이 등장된 이후 현존하는 가장 많은 책들이 만들어진 朝鮮時代 간행의 韓國版 변천의 특징은 학자들에 따라 시대별 구분 방법이나 특징적인 요소의 설명에는 각기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시기별로 네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15세기 초에서 16세기 말
이 시기의 刻板은 후대의 것에 비해서 字體 등이 힘찬 모습을 나타내고, 刻工 등에서도 후기의 것보다 그 정돈된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으나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高麗時代의 것에 비해서는 書體나 版式, 板刻術, 印出狀態 등 모든 면에서 정제되지 못한 느낌이 있다.
② 17세기
이 시기의 板本은 전란으로 인한 정치·사회·경제적인 급변의 시기였던 까닭에 版式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壬亂前에 유행하였던 판식중의 하나인 黑口本이 없어지거나 일부 책에서는 몇 장씩 혼입되는 현상과 3葉(6瓣)의 어미형식이 1-3葉으로 숫자면이나 위치면에서 혼재되어 있다.
③ 18세기-19세기 초
肅宗년간에서부터 純祖 초기까지 주로 18세기에 해당하는 시대는 康熙, 乾隆에 이르는 淸朝 문물의 융성한 영향을 받은 官板의 전성기로서 글자의 크기와 서체 등이 다양하고, 刻板의 기술은 정교하고 세밀하여 쓰며, 그 印出에서 용지와 제본에 이르는 모든 출판의 기술영역에서 정점에 달한 시기로 볼 수 있다. 書院版이나 私版 또한 모두 이런 풍조를 따랐기 때문에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寺刹版은 다른 시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후퇴한 느낌을 준다.
④ 19세기 중·후반 - 20세기 초
앞 시기의 다양한 면모는 남아 있지만, 그 판각의 기술이나 裝訂 등에 있어서는 상당히 퇴보하고 중국 서적의 영향을 받은 판식과 모방하는 판식이 성행하던 시기이다. 특히 20세기 초에서는 지방에서 지역 士族들의 문집이나 족보를 간행하기 위한 목활자 인쇄술이 성하였고 석판인쇄술의 보급으로 문집과 족보 등이 이 방식을 채택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져갔다. 목활자 인쇄술의 경우 영남지역에서는 尙州, 山淸, 陜川 등에서 1960-70년대까지 앞 시기의 기술을 이어 개인문집, 시집 등을 간행하였다.
그밖에 시대별로 나타나는 특징중의 하나로 避諱를 들 수 있어서 高麗時代의 불교, 유교 서적에서는 역대 왕들에 대한 避諱가 비교적 지켜지고 있었고 初雕大藏經과 再雕大藏經의 경우 宋 太祖와 관련된 諱에 대한 적용이 있으나 불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의 원본들을 바탕으로 飜刻하거나 다시 간행해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변화가 있으며 原本을 대상으로 충실하게 새겨내었을 경우와 아니면 정확한 校正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避諱를 없앤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冊의 크기
삼국시대와 고려 중기까지는 卷子本 형태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휴대나 보관의 측면에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펼쳐 보고 공부하는 열람이라는 관점에서 대단히 불편하여 이후 절첩본으로 발전되었지만 또 다른 보존관리라는 측면에서 단점이 노출되어 이를 극복할 목적으로 한 쪽을 고정시키는 包褙裝과 線裝本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변천과정에서 책의 전체 크기로 볼 때 당시 문헌들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후대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세로가 긴 편이었다. 그 이유는 高麗時代 중기이후의 책은 이전 시기에 유행된 折帖本에서 유래되어 권자본이나 절첩본의 기본 단위가 되는 1장이 처음에는 22-23행, 많게는 30행이 되었으며 이를 4등분으로 접어 만든 절첩본은 세로가 상대적으로 긴 형태였기 때문이다. 즉 절첩의 한 면은 4-6의 行數로 이루어졌으며 麗末鮮初에 線裝本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折帖 두 면이 합쳐져 8-12행까지 한 면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高麗末 元과의 교류에서 趙孟頫의 松雪體가 유입되어 서체의 유행에도 영향을 끼쳐 단위 글자로 볼 때 歐陽詢體보다는 가로가 넓어지고 굵어진 관계로 行數는 줄어들었지만 전체적인 비율은 늘어나게 되어 서체의 선호 등이 동북아 삼국 중에서 형태적으로 비교적 큰 책을 만드는 경향으로 발전되었다.
한편 책의 크기는 그 수록하고 있는 주제나 용도에 따라서 대소와 두께의 차이, 장정의 차이까지 영향을 주어 왕실과 관에서 사용돠었던 책은 상대적으로 크고 장정도 호화롭게 꾸며져 품위가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또 휴대용 地圖冊, 韻書, 喪禮書 등 항상 손쉽게 볼 수 있도록, 즉 시를 지을 때 韻字를 참고하거나, 의식을 치를 때 잊지 않도록 몸에 지니거나, 이동 중에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필요한 책들은 작고 다루기 쉽게 만들어져 유통되었다.
4. 編綴의 方法
卷子本, 折帖本에서 인쇄된 낱장물의 끝을 풀로서 연결하던 방법이 包背裝本으로 변천되면서 낱장을 겹치고 합한 뒤 책의 등을 천으로 감싸는 방법으로 제본하였다. 이 때 여러 장으로 겹쳐진 인출된 冊張들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書腦 부분에 5~11개(5, 7, 9, 11)의 구멍을 뚫고 종이 심지(紙念)를 만들어 박고 ‘I’형태로 아래 위에서 못머리처럼 두드려 끝을 늘리고 넓힌 다음 고정시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朝鮮 太宗 무렵까지 계속되던 이런 제본의 방법은 安心寺 간행의 「妙法蓮華經」 등까지 볼 수 있으며 이후 16세기 가 되면 2-3곳에 인접된 두 針眼을 뚫고 ‘U’자 형태로 종이심지를 끼운 후 매는 방식으로 바뀌어 구한말까지 계속되었다. 이러한 개선된 방법은 종이심지의 수를 줄이면서도 더 튼튼하고 견고한 제본을 유지할 수 있어서 전자의 방식보다는 훨씬 편리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따라서 표지에 외관상 나타나는 실매기는 앞뒤표지를 책의 본문과 합치는 기능이 주목적이며 책 전체의 편철에는 보조적인 기능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청색표지에 흰색의 실, 황색표지에 적색의 실, 옥색, 연두색 표지에 진한 청색의 실의 사용에 보듯이 표지 색과 끈의 색상조화가 고려된 미적인 아름다움도 포함하고 있다.
5. 表紙 製作의 方法
책의 표지는 종이, 베, 비단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책의 본문을 잘 보존하고, 외관을 꾸미며, 기록을 통해서 책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지닌다.
종이로 책표지를 만들기 위해서 한지에 치자물을 들이고 잘 건조시켜 여러 장 배접을 하였다. 치자물은 책의 색깔을 아름답게 하고 좀이 쓸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배접한 종이를 菱花板 크기에 맞추어 재단한 다음 종이에 물을 뿌린 후 菱花板위에 놓고 菱花板 문양이 드러날 때까지 두드린다. 이렇게 菱花紋을 누른 이유는 여러 장 배접한 종이들을 서로 밀착시켜서 표지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본문을 보호하고 여러 가지 문양으로 장식함으로서 외관을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菱花紋이 드러날 때까지 서로 밀착시킨 다음 蜜蠟으로 문지르고 잘 말린 후, 인두로 다려서 蜜蠟이 종이에 배이도록 한다. 蜜蠟이 종이에 배여들면 표지가 좀 더 견고하여 지며, 수분에 잘 견디고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적당한 크기로 재단하여 네 귀를 접어 손질하고 표지의 안쪽에 종이를 덧붙여서 배접하는데 이는 표지를 더 두텁게 하고 튼튼하게 한다. 이렇게 배접하는 종이는 白紙를 사용하는데 종이의 생산과 사용에 여유가 없을 때에는 한번 사용한 종이를 재활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고서표지에 새겨진 菱花紋이라 불리는 표지문양은 시대별로 다양하게 유행되었다. 이러한 문양은 유교․불교 등 책의 주제나 내용과는 관련 없이 이용되었으며 조선 전기의 연꽃․국화를 포함한 작은 花紋으로부터 15~16세기 연꽃․보상화문에 七寶가 포함되어 가장 대표적인 전형을 이루게 되었다. 또 작은 새와 물고기가 포함된 무늬도 간혹 보인다. 임난후 보상화문이 없어지고 주제무늬는 형태적으로 작아지면서 연꽃문양에 부수된 七寶도 점차 없어지는 경향을 띠고 연꽃도 바탕선으로 표현되거나 디자인화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매우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여 七寶․八寶․雜寶․圓形․덩굴무늬 등이 나타나고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까지 연꽃의 테두리만을 굵은선으로 처리하고 보상화문을 없앤 무늬가 주종을 이룬다. 또 이와 같은 시기에 ‘卍’자가 등장하여 독립적으로 쓰이거나 七寶와 연꽃․천도 등과 복합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四方連續의 정형화된 형태가 틀을 잡게 되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까지는 다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대담한 독립문양으로 국화․나비․龍․鳳凰․文字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완숙된 정제의 이미지는 없으나 여러 가지 수복 등 상징성을 띤 문양을 보여주고 있다.
6. 종이(紙)
통일신라때의 「無垢淨光大陀羅尼經」과 「華嚴經」에서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당시 寫經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종이는 닥나무를 기를 때부터 온갖 정성을 들였으므로 희고 좋은 품질의 우수한 書寫材料가 될 수 있었다. 그 중 책지로 쓰이는 종이는 발로 뜬 후 도침 즉, 두드리고 문지른 까닭에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난다.
한편 11세기에 완성을 본 初雕大藏經은 국내외의 전존본을 조사해 볼 때 여러 종류의 다양한 품질이 있으며 이는 닥과 함께 섞인 재료간의 차이와 종이의 두께, 밀도 등에 의하여 달리 나타난다. 문서의 경우는 종이의 물리적 요소들이 시대별, 지역별의 영향이 균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冊紙의 경우는 대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그 한 요소로서 가로발을 유지해주는 세로발끈의 폭이 高麗에서 朝鮮初期까지는 넓게 유지되다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다가 17세기에 이르면 1.5센티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볼 수 있고 16세기초인 中宗年間에는 冊張의 한 면 가운데 두 장을 이은 표시가 나는 冊紙를 간 혹 볼 수 있어서 이는 많아진 수요에 대응하는 절약책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밖에 冊紙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미 처결·파기된 公文書의 뒷면에 木版本을 찍어낸 것이 16세기 중후반에 간혹보인다.
14세기 후반부터의 현존본을 살펴보면 지질은 두꺼워지고, 거칠고, 여러 재료가 혼합되거나 불순물 섞인 종이가 자주 보이고 이러한 현상은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었다.
冊紙의 경우 世宗대부터 중국의 華紙와 日本의 倭紙 제작법을 받아들여 제지법을 개선하고, 각종의 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종이도 용도와 목적에 따라 개발되어 간경사업으로 늘어난 수요 때문에 노란 빛을 띤 얇은 닥종이로 찍은 불경들도 많았다. 세조때의 刊經都監에서 간행된 책은 볏짚을 많이 섞어 만든 藁精紙가 많고 그 藁精紙 중에 간혹 흰 색의 닥종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책의 간행을 위한 책지의 생산은 주로 兩南地方을 대상으로 닥나무를 키우고 종이로 만드는 제지업이 성해졌으나 壬亂後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 여러 사찰에 부과된 지나친 제지의 양으로 인한 많은 폐단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7. 寫經
寫經은 닥나무 종이의 바탕에 천연염료로 염색을 만든 紺紙나 麻紙에 金泥나 銀泥로 글씨를 정성들여 써서 발원자의 공덕을 밝히고 내부의 장식 그림을 그리며 표지를 호화롭게 장엄하여 눈에 띄게 하였다.
본문에 쓰여진 서체는 현존하는 자료로 살펴보면 統一新羅, 高麗初期의 墨書 寫經들은 분방하면서도 筆劃이 활달한 寫經體로 쓰여졌다. 이후 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이의 충족을 위한 목판인쇄술이 발달함으로써 板本類에서 점차 歐陽詢體로 통합되는 경향으로 나타나다가 고려말에 들어서는 趙孟頫의 松雪體로 바뀌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형태면에서 길이는 1장을 겹쳐 연결된 형태로 한 권이 끝나는 부분에는 두루마리를 마는 기능의 축이 있고 앞부분에는 내용을 보호하고 장엄하는 표지가 있다.
현존본들로 볼 때 高麗時代 후기에 만들어진 寫經은 주로 진한 紺紙나 麻紙 바탕에 金泥과 銀泥로 글을 써 이루어진 것이 많으며 朝鮮初期의 것은 수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搗砧이 잘된 白紙에 金沙로 쓴 「妙法蓮華經」 등의 佛經이 일부 남아있다.
寫經이 많이 이루어진 경전은 法華經과 華嚴經 등의 주요 경전이 많지만 14세기 초중엽 즉 元의 간섭기에는 국가의 주도하에 大藏經을 金과 銀으로 寫成하여 金字大藏, 銀字大藏을
만들었다. 또 이 시기에는 권신들에 의하여 眷屬들의 消災와 福壽無疆을 비는 개인과 가문의 祈求가 담긴 사경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8. 活字本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直指로 대표되는 高麗時代의 金屬活字 인쇄술은 쿠텐베르그의 서양활자와 비교할 때 현존 인쇄물로는 70여년 먼저 만들어진 것이며 蒙古의 침입으로 옮긴 江華島 정부때 번각된 「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최소한 기록을 비교할 때도 1세기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빠른 시기의 출판활동이었다. 13-14세기에 걸친 중앙과 지방에서의 보편화된 금속활자 인쇄술은 활자의 주조나 조판과 인출기술에 이르기까지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 본격적인 출판활동의 단계로 진입하였다.
高麗의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朝鮮初期로 이어지면서 錄券, 大明律(直解) 등 목활자본의 출현과 1403년에 주조된 금속활자 癸未字의 주조는 안정된 정치상황과 더불어 학문과 문물제도 정비가 본격적 궤도에 올랐던 世宗代의 庚子字, 甲寅字, 丙辰字로 이어지는 금속활자 주조와 조판·인쇄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국가적 필요성과 지원사업으로 추진된 서적간행과 인쇄사업은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 활자를 주조하거나 글자의 크기를 책의 용도에 맞게 주조하거나 조판의 형태와 방법을 개선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를 몇가지 범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書體의 多樣性 ; 歐陽詢體, 松雪體(甲寅字體, 安平大君字體)
② 活字의 크기와 종류 ; 漢字活字(大, 中, 小), 한글활자
③ 活字의 材料 ; 銅, 鉛, 鐵, 土·陶磁活字
④ 鑄造方法 ; 蜜蠟鑄造法, 鑄物沙鑄造法
⑤ 組版方法 ; 組立式, 固着式, 邊欄의 固定과 組立
이와 같은 활자인쇄술의 발달은 16세기에도 지속적으로 되었다가 壬辰倭亂 등의 전쟁으로 황폐화되었으나 17세기후반부터 다시 문예진흥의 기틀을 잡고 18세기 후반의 正祖에 이르러 활자 인쇄와 관련된 여러 분야가 눈에 띄는 발전을 보게 되었다.
9. 木板의 板刻과 刊行部數
책이 간행된 시대나 지역, 주제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출판방법은 목판으로 새겨 찍어내는 방법이었고 그 선호도에 있어서도 왕실과 관련된 책이나 聖賢의 언행이나 유명학자의 저작을 간행하는 방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된 내용은 활자보다는 목판이나 유명 書寫者가 직접 써서 책을 간행하는 것이었다. 이는 아름다운 筆跡의 수록과 오래도록 보관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볼 수 있도록 할 목적이었으나 목판제작과 인출에 소요되는 경비가 막대하여 부담이 되므로 후기에 와서는 지방에서 민간 목활자가 만들어져 손쉽게 상업 출판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간행된 책의 부수는 高麗, 朝鮮時期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지만 대개 50-100부를 기준으로 문집 등은 300부까지의 기록이 있고 예를 들어 국가적인 목적인 忠孝를 강조할 목적이나 민중들의 풍속을 교화할 의도를 가진 저술의 경우는 「三綱行實圖」과 같이 2900부나 인쇄하여 전국적으로 배포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책의 간행에 소요되었던 시간은 동원된 인력과 분량, 부수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각종 기록에 의하면 冊板을 새기는 기술자인 刻手는 1판을 새기는 데 평균 3일이 소요되었고
寫本의 책을 만들 때 筆寫者 1日 평균 3張을 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역시 熟練度에 따르며 전국적으로 기능이 우수한 각수들은 중앙에까지 알려져 있어서 중요한 일에는 수시로 교대·동원되기도 하였다.
10. 刊行場所 및 主題
책이 만들어진 장소와 주제는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佛經은 주로 사찰에서 간행되었고 역사, 법률, 경제류 서적과 교육을 목적으로 한 유가서적 및 사서오경류는 국가중앙기관에서 편찬, 간행되었으며 개인 문집이나 그 밖의 저술들은 서원, 향교 등 각종 단위에서 필요에 의하여 수시로 간행되었다.
그 중 書院板은 서원에서 배출된 先賢에 대한 추모로서 그 遺稿를 출판한 것인데, 그것이 곧 그 서원의 권위와 전통을 빛내 주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書院板이란 이런 것 외에도 기능면에서 교육기관이기도 했기 때문에 필요한 敎材를 활발히 출판하였다. 흔히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에서는 초급 교재인 千字文과 그 다음 단계인 童蒙先習, 唐音, 通鑑 등을 교육했고, 서원에서는 주로 經書를 교육한 까닭에 그런 종류의 책들이 끊임없이 출판되었던 것이다.
한편 중앙과 지방정부 주도하에 책을 출판하여 士大夫와 필요한 일부에게 배포한 것 외에도 독자의 수요에 따라서 시장에서 출판한 坊刻本이 있어서 소량으로 판매되었으며 비록 官에서 간행된 책과 비교할 때 기술수준은 낮았지만 필요한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에서 높이 평가된다. 즉 소량으로 간행된 坊刻本의 주제는 공부방 즉 書堂에서 쓰던 千字文, 童蒙先習, 十八史略, 四書 등이 중요한 것이고, 그 밖에 詩, 書, 易, 小學과 같은 것도 수시로 간행되었다.
11. 飜刻本과 版式
조선시대 간행의 문헌들에서는 고려로부터 전통적으로 전해지던 형식 즉 불교 경전에서 볼 수 있었던 卷子本, 折帖本의 변형된 형태가 15세기까지 유지되고, 개국과 더불어 새로운 국가 이념인 性理學을 바탕으로 한 유교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중국으로부터 四書五經類를 수입하여 이를 번각하고 각 지역에 보급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교육과 인재양성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에서 折帖本 형태로 간행된 22-30行의 한 張 단위는 한 面에 4,5,6행으로 접혀져 있고 이 목판본을 수입한 뒤 보급․유통시킬 목적으로 뒤집어 새기고 책을 간행할 경우 全匡 단위로 매겨진 장차와 板首題가 包褙裝이나 線裝本의 단위 면으로 바뀔 때 그 위치가 임의대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線裝本의 면수 표시와 중복되고 서로 맞지않은 혼란스러운 상태로 번각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예로 「梵網經」과 「佛說大報父母恩重經」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四書五經類의 경우는 기본적인 판식체제는 유지되지만 行間의 구두점이 飜刻 板本에 따라 없어져 16세기 이후의 판본에서는 판각의 상태도 나빠지고 새겨진 글자의 자획이 둔해지고 정교도가 떨어진다.
특히 불교서 중 宋版 飜刻의 경우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살펴보면,
① 上版口 內에 한 면에 새겨진 글자 수(大, 中, 小)가 표시되어 있고,
② 下版口 內에 刻手의 표시가 있으며(楞嚴經, 大藏一覽集),
③ 上下魚尾가 폭이 좁으면서 아랫부분은 두 곳에서 꺽어진 二重弧의 모양과,
④ 下版口 內 黑口 부분 小圓点과 연결된 絲黑口가 있고,
⑤ 佛經의 경우 魚尾가 없거나,
⑥ 上下單邊, 左右雙邊의 邊欄을 가진 판이 많다.
또 元版 飜刻의 경우는,
① 판 전체적으로 글자의 배열이 꽉 들어찬 느낌을 주고,
② 版心에 上下의 黑魚尾외에 중단부근에 魚尾가 하나 더 있는 경우도 있다.
한편 明版 飜刻의 경우는,
① 사서오경류는 句讀点, 聲榜点을 充實하게 반영하고 있고,
② 上下版口에 긴 大黑口가 많다.
이와 같은 중국본의 번각 이외에도 번각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책이 간행된 후 이미 殘本이 없어지거나 수요가 재창출되어 다시 간행의 필요를 느끼는 경우와 중앙에서 활자본으로 소량을 간행하고 이를 지방의 여러 곳에서 배포한 뒤 목판으로 번각하여 다량의 복본을 만들어 해당 지역에 배포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번각본의 경우 형태적으로 底本과 비교할 때 각 장에서 邊欄의 크기가 작아진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나무를 잘라 찌고 말린 후 목판에 새기고 먹을 발라 인출한 뒤 건조되는 여러 과정 중에서 목질의 섬유소 부분의 수분이 증발되어 수축되는 관계로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This website is using a security service to protect itself from online attacks. The action you just performed triggered the security solution. There are several actions that could trigger this block including submitting a certain word or phrase, a SQL command or malformed data.
You can email the site owner to let them know you were blocked. Please include what you were doing when this page came up and the Cloudflare Ray ID found at the bottom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