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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글서체의 역사
한글서예는 세종 28년(서기 1446)에 訓民正音이 반포됨에 따라 비롯되었다. 이보다 앞서 훈민정음은 세종 25년에 창제되었으나, 훈민정음의 해례(解例)와 같은 원리를 연구하게 하는 한편, 그 보급책의 일환으로 '龍飛御天歌'를 짓고 '운서(韻書)'를 번역하는 등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실제로 한글의 사용을 징험(徵驗)하였으므로 공식적으로는 訓民正音의 정식 반포를 기원으로 삼는 동시에, 서체또한 이에 근거하여 논하게 된다.
훈민정음의 특징으로는 우리나라 말과 문자, 즉 한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데서 오는 모순과 불합리를 제거하고 우리나라 말의 음운체계에 맞고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어, 만민에게 문자이용의 혜택을 균등하게 입게 하려는 세종대왕의 슬기로운 창제동기와, 집현전 학사들의 예지를 모은 과학적인 제작원리를 들 수 있으며, 우리나라 말의 완전표기라는 실용적인 면에 있어서도 더는 바랄나위 없을 만큼 완벽하고 아름다운 문자라 하겠다. 한자는 표의문자임에 반하여 훈민정음은 표음문자이며 모두 28자로서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이 합쳐져야만 발음이 가능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훈민정음의 제작원리는 象形이며 기본자체는 한자의 고전에서 취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한글은 고전의 서법을 따른 원필이고 그 중심을 맞추어 쓰게 되어 있으며, 또 자체의 장단을 임의로 할 수 있어 획의 수가 적고 모양이 간단한 데 비하여 풍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특징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원필이던 한글은 방피로화하여 둥근점이 짧은 획으로 변하였고, 이는 다시 필사 판본체, 궁체로 변천을 거듭하게 되는 데 이는 마치 한자의 서체가 전서에서 예서로 바뀌고 다시 楷書, 行書, 草書로 정비되어 나간 과정에 비할 수 있다.
아무튼 서체라는 것은 시대와 사회의 변천에 대응하여 필연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므로 그 변천 과정을 문화사적 측면에서 살핀다는 것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하겠다. 즉 한글 서체는 판본체(板本體), 필사체(筆寫體), 궁체(宮體), 상체(常體) 등으로 나눌 수 있겠으며, 훈민정음체 또는 반포체라고 하는 판본체는 원필, 방필, 필사의 세 서체로 분류된다. 필사체는 효빈체라고도 하며, 사서(寫書), 사경(寫經)에서의 속필을 위한 것이었다. 이후 궁중에서 체계화된 서체를 궁체, 일반 여염집에서 써오던 것을 상체라 하며, 궁체가 한글서체를 대표하게 되었다. 훈민정음의 반포당시 원필 판본체이던 한글서체는 그 이듬해에 간행된 '용비어천가'와 3년 후인 세종 31년(1449년)에 나온 '월인천강지곡'에서는 방필 판본체로 바뀌었다. 그후 줄곧 방필이던 판본체가 세조 연간부터는 필사체화하는 경향을 띠게 되어 판본체와 필사체의 일치로 향하는 필사판본체로 변하게 되었는데, 세조 4년(1459년)의 '월인석보(月印釋譜)'와 성종 12년(1481년)의 두시언해(杜詩諺解)가 같은 맥락으로 꼽히고 있다. 선조의 필적을 끝으로 한글서체는 궁체로 이행한다. 한글이 여류사회에서만 사용되는 풍토에서 발생한 궁체는 정사, 반흘림, 진흘림의 서체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는 곧 한자의 해서, 행서, 초서와 같은 관계라 할 수 있다.
2. 훈민정음의 제작원리와 서법
우리가 한글서체를 논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훈민정음의 기본원리에 따라야 하며 반포당시의 서체로부터 분석해 나가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의 제자 및 결구의 이론적 배경은 성리학의 삼극지의(三極之義)와 이기지묘(二氣之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삼극은 天, 地, 人의 삼재, 이기는 陰(음)과 陽(양). 성리학적으로 이 삼재와 이기는 우주의 모든 사상을 주재하는 기본 이념으로 이해되며 따라서 사람의 성음 또한 근본적으로는 이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마소리의 체계는 삼재, 이기의 체계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언어관이었다.
그리하여 훈민정음은 음의 분류에 있어서나 제자원리에 있어서 그 철학적 이론이 모두 이러한 언어관에 입각하고 있다. 즉, 성음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분류하되 종성은 초성을 復用하게 했다. 또한 하늘을 우러러 그 형상을 보고, 구부려 땅의 법을 보며, 조수(鳥獸)의 자취를 보아 그 마땅함을 알고, 가까이는 창호에서, 멀리는 사상(事象)에서 28개 자모를 취하여(현재는 24자), 각 글자는 일정한 자음이나 모음을 나타내고, 모든 낱말은 이들을 결합하여 표기하도록 했다. 이리하여 훈민정음은 천지간 이치에 합치될 뿐만 아니라 만가지 소리를 모두 표기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흠이 없는 음운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서체는 고전을 따라 원필이던 것이 얼마 후 방필로 바뀌었음은 전술한 바 있으나 결구상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고, 다만 [ ․․]이 독립할 때에 한하여 원점 그대로 표기되고 그밖의 경우에는 원점이 세로나 가로의 단획으로 변하여 세로획이나 가로획에 이어졌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의 서법에 있어서 그 획이나 결구가 전(篆)이라 한다면 그후의 방필은 고예(古隸), 즉 팔분예(八分隸)의 서법을 곁들였다 하겠다. 다시 말하여 한글 서체에 있어서 훈민정음의 서체를 판본체에서 따로 분류하여 원필이라 이르고,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등을 방필로서 계를 이루게 하는 것은 한자의 예가 방필로서 전에 대체한 것과 동일하다고 하겠다.
문자란 본래 정확하고 서법은 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더욱이 한글은 소수의 간결한 점, 획을 여러모로 결구하게 되는 만큼 서버이 제작원리에서 벗어난다면 문자로서의 정확성을 잃어 무엇을 그려 놓았는지 판독조차 어렵게 되니, 이는 문자로서의 기능을 이미 잃은 것이라 하겠다. 한자에는 고문(古文), 기자(奇字), 대전(大篆), 소전(小篆), 팔분(八分), 예(隸), 해(楷), 행(行), 초서(草書)등의 많은 서체가 있으나, 문자로서의 정확성을 이탈하여 변화된 서체는 전무하다는 것을 볼 때 훈민정음의 경우 28개 자모가 모두 상형이어서 임의로 변화시키면 문자상의 혼란이 더욱 크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圓筆 板本體의 서법
원필 판본체, 즉 정음체는 그 필획이 원필이며, 자방고전이라 한 제작원리에 따라서 전법으로 쓰게된다. 즉 집필, 운필, 용필이 한자의 전서의 경우와 같다는 것이다. 본래 전서는 용필에 있어 호(豪:붓털)의 사면, 팔방을 활용하여 음양의 표현을 명확히 하고 획의 조세가 균일하여야 함이 전제되는 만큼, 이 점에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정음체를 비롯한 판본체는 한자의 서법 그대로이기 때문에 어느면으로 보면 궁체에 비하여 書로서 점획이 분명하여 힘이 있고 보다 남성적인 서체라 할 수 있겠다.
4. 方筆 板本體의 서법
방필 판본체는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으로 대표되며 원필 판본체의 원형점이 선형 단획으로 변하여 중성의 세로획이나 가로획에 연결되는 변화를 가져왔다함은 전술한 바와 같다. 따라서 그 서법에 있어서도 원점이 획과 분리되지 않고 완전히 불되 그것도 점이 아닌 획의 형태로 변하였을 뿐 초성과 중성 및 종성과의 결구방싱이 같고 획의 조세가 균일하다. 결국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의 서체는 훈민정음 반포후 얼마 안되어서 사용된 서체이어서 모두가 그 제작원리에 가장 충실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훈민정음이 전의(篆意)를 따랐다면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은 예의(隸意)를 띤 것이라 하겠으며, 중성기본자의 합용자에서 독립성을 버리고 연결시켰다는 것은 실용의 편의를 취한 필연적인 추세였다고 할 것이다.
5. 筆寫 板本體의 서법
세조때에 이르러 판본체는 또다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 [-]으로 변하고 [ㅡ]와 [ㅣ]가 기(起), 송(送), 수(收)의 필치를 보이게 되어 모든 점획에서 붓의 자취를 뚜렷이 하고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글자의 장단, 광협에 변화가 이루어져서 한자와 병용했을 경우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상통된 기운을 띄고 있음이 특징이다. 이는 또한 한글은 판본체뿐 아니라 궁체나 그밖의 서체에 있어서도 장단, 광협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조 4년(1459년)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는 결구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종성이 초/중성자보다 커졌으며 [ㅏ/ㅓ]에서 좌우의 가로점이 세로획의 중앙에 있기도 하고 혹은 약간 위에 위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ㅑ/ㅕ] 좌우의 두 가로점도 세로획을 3등분한 곳에 위치하지 않고 중앙으로 몰려 있고 [ㅗ/ㅜ]의 세로확은 가로획의 중앙에서 약간 우측으로 이동하였으며 [ㅛ/ㅠ]의 두 세로점, 세로획이 가로획의 중앙에서 우측으로 쏠린 듯한 감을 주고 있다. 성종 12년(1481년)에 나온 '두시언해(杜詩諺解)'에서는 [ㅠ]의 오른쪽 세로획이 왼쪽에 비해 길어지는 변화가 있었다. 또 [ㅐ/ㅒ]등에서 성종 이후로는 합용된 [ㅣ]가 [ㅏ/ㅓ]의 세로획보다 위아래로 길고 하부가 상부보다 길어졌다. 그리고 위아래 글자의 배합은 역시 중심을 글자의 중앙에 맞추고 있다. 자음과 모음이 병렬로 될 경우, 자음이 모음보다 약간 작던 것이 성종 이후에는 자음이 더욱 작아지고 모음이 길어진 것은 종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또 초성보다 종성이 약간 작던 것이 반대로 종성이 커졌다가 인조 이후에는 다시 초성이 커졌다가 또 작아지는 등 이 관계에 통일성을 잃어 오다가 영조 12년(1736년)에 간행된 '경서언해(經書諺解)'에서는 종성이 초성보다 약간 작아져서 세종때의 서체와 상통하는 바 적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언뜻 생각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이는 곧 초성과 종성에 구별이 있음을 말해주며 또한 같은 자음이라 해도 초성과 종성으로 놓일 때 같은 크기로 쓰지 않는 점을 명백히 하는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6. 筆寫體의 특징
판본체는 원필이나 방필이 한문의 전,예서체와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어 사서(寫書)하는 데는 비경제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봉건사회의 성숙과 함께 문자생활이 질적, 양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속필(速筆)을 위한 서체가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생활양식의 급격한 변화로 신속한 필사체(筆寫體)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자의 행,초체의 필법이 쉽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필사체는 시대적 요구에서 발생하였으나 한자의 행,초체를 마구 모방함으로써 해독의 어려움을 가져왔고 우미한 품격도 갖추지 못한 까닭에 바로 도태되어 궁체가 필사체를 대표하게 되었다.
7. 宮體의 서법
판본체는 해독에도 편리하였으나 사서에 불편하였고, 필사체는 사서에서 유래하였으나 해독에는 불편하여 다시금 한글의 고유성에 적합한 서체가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한글 사용이 활발했던 궁중에서 체계화하고 발전시킨 궁체와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던 상체(常體)로 변하였고 궁체를 필사체를 대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궁체가 체계를 갖추었고 서법상으로도 아름다움이나 기운이 연면하게 흐르며 아담하고 미려한 품격을 상체로서는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궁체에는 정자, 반흘림, 진흘림의 세가지 서법이 있고 양식으로는 등서체와 서한체(書翰體)가 있다. 등서체는 규칙적으로 질서를 지키는 데 반해, 서한체는 불규칙적이며 자유분방한 면을 보이고 있다. 궁체를 익히려면 등서체부터 익혀나가야만 궁체의 예술적인 기틀을 세울 수 있다. 한글은 어디까지나 그 제정원리에 부합되어야 함은 판본체에 있어서나 궁체에 있어서나 변함이 없다. 그리고 한글은 한자와는 달리 단순한 점획의 조합인 표음문자이며, 그 제작원리에 어긋나면 한글이라 할 수 없을뿐더러 해독도 어렵게 된다. 특히 궁체의 흘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글의 모음은 기본자만을 상하좌우로 짜맞추어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자음은 아,설,순,치,후의 5음으로써 초성과 중성을 겸하고 있는데 그 형태는 음운별로 서로 같기 때문에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만 알아두면 어느 글자든 다 쓸 수 있다.
(1) 정체의 서법
본래 궁체는 한자처럼 까다로운 필법에 따른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여 온 서체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너무 외양에만 치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붓끝이 획의 중앙을 지나는 중봉(中鋒) 필법을 엄수하여 선이 곧고 단정하고 아담하게 이루어지게 해야한다. 역봉은 획이 거칠어질 염려가 있어 정자에서는 금물이다. 그리고 특히 유의할 것은 궁체는 판본체와 달리 문자의 중심을 중앙에서 맞추지 않고 오른쪽을 맞추어 쓴다는 점과 정자에는 흘림자를 섞지 않으나 흘림에서는 정자를 섞어서 써도 무방하다는 사실이다.
(2) 반흘림체의 서법
반흘림에서는 정자의 모든 원칙이 적용되먼서 운필의 속도가 빨라지며 점과 획, 자음과 모음 또는 모음과 자음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음이 독립한 경우와 자음과 이어진 경우는 서로 다르게 된다. 즉, 전자의 경우는 정자와 같으나 후자에 있어서는 자음과의 관계로 [ㅓ/ㅕ/ㅗ/ㅛ/ㅜ/ㅠ]와 [ㅘ/ㅝ]는 정자와 다르게 된다. 또한 자음에 있어서는 [ㄷ/ㄹ/ㅅ/ㅈ/ㅊ]이 모음[ㅓ/ㅕ/ㅗ/ㅛ/ㅡ/ㅘ/ㅝ]와 이어질 때 정자와 다르게 된다. 자음에서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ㅇ]이다. 정자의 경우 일단 붓을 대면 단번에 완전한 원의 상태로 썼던 것을 반흘림, 진흘림에서는 좌우 두 개의 반원으로 나누어 쓰되 왼쪽 반원의 꼭지와 오른쪽 반원의 기필 부분을 뚜렷하게 한다. 그리고 [ㅈ/ㅊ]도 단번에 쓰는 것이 정자와 다르다.
(3) 진흘림체의 서법
진흘림은 정자와 반흘림을 모두 섞어 쓸 수 있는 극히 자유분방하며 예술적인 서체이다. 개성을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고, 또 품격면에서도 가장 우아하여 궁체 중에서는 어려우면서도 분방한 특징을 함께한 것이 진흘림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정자와 반흘림을 거치지 않고 진흘림을 쓸 수 없다. 시작에서 끝까지 단번에 구슬을 꿰듯이 써 나가야 하며 또 거침없이 흘러나가는 품이 물이 흐르듯 해야만이 비로소 진흘림으로서의 진면목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궁체는 결구상의 특징으로서 정자, 반흘림, 진흘림을 막론하고 글자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음을 들 수 있다. 특히 진흘림의 경우 긴 글자는 보통 길이보다 몇배가 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를]과 같은 글자는 [느]보다 세배나 되는 길이로 써지기도 한다. 이러한 자간의 문제는 세로로 쓰게되는 한글이 초성과 중성으로 성립하기도 하고 또 초성/중성/종성이 세로로만 배합되기도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그]와 [를]을 비교할 때 [그]는 간가(間架)가 하나라면 [를]은 여섯이나 되는 만큼 그 길이를 길 게 늘여도 어색하지 않다. 결국 궁체는 글자의 크기를 맞추기 보다는 한 글자가 차지하는 간가를 고르게 하면 그것이 도리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된다. 그리고 특히 진흘림은 숙달된 운필이 아니고서는 조그만 차이도 전혀 다른 글자가 되는 만큼 엄격하게 법칙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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