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서법 예술과 흥취 및 학습 방법

 

가. 서법예술이란 무엇인가?


서법(書法)이란? 

탄력성이 풍부한 독특한 모필로 글씨를 쓰는 방법으로 한자(漢字)조형의 특질에 의하여 예술구상과 수법을 거쳐 만들어진 형태를 말한다. 형식상으로 본다면 서법은 정신과 풍채를 중요시하고 그 다음으로 형태와 바탕을 친다. 이것은 다시 말하여 지혜의 헤아림은 끝없이 넓고, 법이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풍채와 정 신을 으뜸으로 보고, 곱고 아름다운 효용성을 그 다음으로 본다는 말이다. 그중의 오묘함에 대하여 예사람은 "심오하고 현묘함은 사물의 곁에서 나오고 그윽하고 깊은 이치는 아득한 속에 숨겨져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서법예술이란 소리가 없는 소리요, 형태가 없는 형체인 것이다.


서법예술에는 자신의 규율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붓 잡는 법, 팔을 운용하는 법, 붓 을 운용하는 법, 먹을 사용하는 법, 글자를 구성하고 배치하는법, 운치를 나타내는 법 등등 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예술형식은 왕왕 예술수법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 또는 이상을 표한한다. 따라서 이치는 숨겨져 있으나 의미는 심장한 것이다. 때로는 종횡무진한 뜻을 표현하기도 하며, 때로는 울적한 심정을 토로하곤 한다. 작품안에 운치와 풍채 그리고 기세를 표현하기 때문에 붓은 정이요, 먹은흥취라고 한다. 서법이 비록 서사적인 면과 서정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지만, 한자라는 일정한 대상에 의 존하여야만 한다. 만일 서법이 한자의 기본 구조와 점과 선의 본질을 벗어나 추상적인표현 으로 진행되어진다면 이는 이미 서법이라 볼 수 없다.

서법의 표현수단은 회화나 조각과 같 이 사물의 외형을 본뜨는 것이 아니요, 문학과 같이 고사(故事)를 서술하고 내심의 감정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요, 오히려 음악에서의 악기와 비교적 서로 가까운 면이 있다. 악기는 선 율과 화임 그리고 연주 등의 음향효과로 직접 미감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서법이나 악기는 모두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뛰어나지만, 반대로 흉내내고 서사하는 데에는 뛰어나지 못하다.


이것은 서법의 각 체가 비록 다르다하나 조형상에 있어서 공통점은 점과 선으로써 구성된 문자의 형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점과 선 혹은 구성의 단위는 문자를 이루는 형태의 전제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가변성과 표현력을 구비하고 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 서체의 형태에는 허한 것 과 실한 것, 펴있는 것과 오므라져 있는 것, 성긴 것과 빽빽한 것, 기울어져 있는 것과 바로 세워져 있는 것 등이 서로 대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동일미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서예에 구비되어 있는 예술적 미학요소이다. 이러한 데에다 부드럽고 탄력성이 풍부한 모필 에 먹을 충분히 뭍혀 조형의 규율을 준수하면서 가변적요소를 운용하면, 문자의 짜임새에 독특한 풍격의 형식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형식미 안에 붓을 들거나 누르기도 하고, 무디게 하거나 꺾기도 하며, 천천히 쓸 때와 급하게 쓸 때의 조절을 잘하여 운율의 미를 창출한다. 또한 점과 선으로는 형태와 평면을 배치하고, 좌우로 기울어진 것과 바른 것을 균형있게 하며, 대소길이의 변화를 주며, 움직임과 고요함 그리고 거두어들임과 내쫓는 것을 알맞게 하여 정적인 맛과 동적인 맛을 자아내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서로 의존하고, 제어하고, 호응하여 어우러져야 한 다. 이렇게 하여 눈에 보이는 형상은 지면상에 표현된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점과 선에서 나 온 예술적 마력인 것이다. 서법의 경지는 고도의 법을 숙련시켜 법없는 가운데 법이 있어야만 지극한 법이 되며, 고 심은 극도로 하면서도 고심의 흔적이 없어야만 비로소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하겠다.


 나. 글씨를 배우는 흥취는 어떻게 배양하여야 하는가?


서예는 유규한 역사를 가진 중국 전통예술이다.

서예는 독특한 풍격과 무궁한 매력을 지 닌 동시에 생활환경을 미화시킬 수 있고, 심신을 길러 정서를 함양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서예가 형성된 이래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서예의 흥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이점에 대해서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면의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생리적으로 볼 때 어떤 종류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종류의 것을 좋아하면 반드시 무궁한 흥취를 자아내게 한다. 물론 좋아한다는 것은 와전히 생리적인 측면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적인 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정신적인 장용을 관념이라 한다. 흥취는 천성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연마와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문학을좋아하는 사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 등등 은 대개 사회환경의 영향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조건반사로 말미암아 어떤 종류의 것을 좋아하게 된 이후에 피나는 수련과 단련을 짷는데 이때 흥취도 저절로 생기게 되는 것 이다.

글씨를 배움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만 심도있는 흥취를 배양할 수 있는 것인가?


첫째, 먼저 글씨를 배우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서예란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것마 추구해서는 안된다. 서예는 일종의 유익한 활동이며, 개인의 사상과 덕행에 대한 수양이며, 예술수양이며, 문화수양이다. 그러므로 서예를 통하여 침착함과 인내심을 길러 심 신의 건강과 우아한 흥취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 방면에 대한 상식을 넓혀야 한다.

예를 들면, 전시회를 통하여 많은 작품을 보아 야 하며, 서예이론에 대한 많은 참고서와 지식을 쌓아야 하며, 명산대천과 각지에 흩어져 있 는 비석과 묵적(墨迹), 편액(篇額)들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셋째, 항상 서예의 대가와 기초가 잘 닦여진 동호인과의 교류르 통하여 서예의 흥취를 높이고, 명작들을 감상하여 안목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몇 가지의 요소를 구비하면 흥취는 더욱 증가될 것이다. 이정도가 되면 서예에 대한 흥취는 초보적완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사회의 관심과 끊임없는 서예교류와 보급, 높은 문화수준과 생활의 향상 등으로 서 예 인구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서예에 대한 흥취와 목적에 따라 성패와 영향이 달라진다. 뜻이 굳건한 사람은 흥취도 갈수록 농후하여져 성공률이 높지만, 뜻이 굳건하지 못한 사람은 흥취도 점점 감소하여 중도에 포기하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예와 그것에 대한 흥취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예를 배우려면 그것에 대한 정 확한 개념이 있어야 하며, 항심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비로소 그 성취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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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글씨를 배우려면 어떠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글씨를 배우려면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방법과 단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전 쟁을 함에 있어 만약 세부적인 계획이 없다면 승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문제는 초학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어떤 초학자들은 순서없이 글씨를 배우기도 하고, 혹은 되는 대로 배우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글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글씨를 배울때는 어떻게 시작하여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하느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있어야만 된다. 만일 이러한 개념이 없다면, 힘 만 들고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헛수고를 면할 수 없다. 글씨를 배울 때의 첫 단계는 붓을 움직이기 전에 준비작업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요한문제로 전쟁을 하기 전에 군사들을 충분히 훈련시키는 준비가 있어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 글씨를 쓰기 전에 어떠한 준비작업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먼저 글씨를 쓰는 목적을 분명히 한 다음 서예에 관한 기초적인 책들을 읽어야 한다.

그런 다음 어떤 비첩(碑帖)을 써야 하며, 어떤 글자들을 익혀야 하며, 어떤 붓을 써야 하며, 붓은 어떻게 잡아야 하며, 올바른 자세와 글씨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을 알아야 한다. 붓을 움직이기 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먼저 알아야만 헛수고를 줄일 수 있다.

두번째 단계를 곧 붓을 움직이는 초급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배울 때 먼저 글씨체를 받아서 쓰기 시작하는데 이것보다는 알맞는 비 첩을 선책하여 임모(臨摹)를 하여야 만직접적으로 초학자들의 모방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 만일 이것이 어겹게 느껴지면 먼저 점․가로획․세로획․삐침․갈고리 등등의 획들을 익히 고, 붓을 시작하고 끝내고 보내는 것 등을 알게 되면 훨씬 쉬워질 것이다. 글씨를 받아서 배 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판에 박은 듯한 글씨가 나와서 발전의 여지가 없게 된다. 따라서 초 학자는 임모로부터 시작하여야만이 좋은 글씨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떠한 서체(書體)에서부터 시작하여야만 옳은 길인가?

이 문제에 대한 서단의 의견은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예서(隸書)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고, 혹은 해서(楷書)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고, 혹은 초서(草書)나 행서(行書)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기도 하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해서를 시작할 때에는 당해(唐諧)나 위비(魏碑)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개인의 상황에 근거를 두어 결정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 단계는 해서의 기초가 비교적착실하다고 느껴졌을 때 행서로 들어가는 과정을 말 한다.

행서는 일반적으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敍)>, <성교서(聖敎序)>를 쓰거나 이북 해(李北海)의 <이사훈비(李思訓碑)>를 거쳐 안진경(顔眞卿)혹은 미원장(米元章), 황정견(黃 庭堅)의 행서를 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처음 해서를 배운 사람의 것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안진경의 해서를 썼으면 행서도 그의 것을 쓰는 것이 좋다는말이다. 만일 글씨의 조화를 이루려면 가장좋은 방법으로 처음 배운 비첩과 같은 계열의 것을 쓰는 것이다. 현격하게 다른 것을 쓴다면 그만큼 글씨의 진보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행서가 이미 숙달된 상태에서 전서(篆書)나 예서(隸書)를 쓰는 과정이다.

옛사람이 말하길 "예서를 배우려먼 먼저 전서를 써야만 고풍(古風)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저서를 배우려면 먼저 소전(小篆)을 배운 뒤에 대전(大篆)을 배우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소전의 가로획이 가지런하고 세로획은 곧바르고, 둥근 획과 꺾어지는 획들 이 손에 어우러지고, 짜임새를 쉽게 익힐 수있고, 붓을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 다. 어떤 사람은 "만약 소전으로 기초를 삼고 갑골(甲骨)․종정(鐘鼎)․석고(石鼓)를 넘본다 면 이루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처음 시작도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소전은 이양빙(李陽氷), 등석여(鄧石如) 등의 전서를 쓰고 <석고문(石鼓文)>을 쓰는 것이 좋다.

예서는 한(漢)나라의 비(碑)를 쓰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든다면 예기비(禮器碑), 사신비(史晨碑), 을영 비(乙瑛碑) 등이 그것이다.

다섯 번째의 단계는 이상의 여러 체를 골고루 습득한 후에 초서(草書)로 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초서를 배우려면 먼저 장초(章草)를 써야 한다. 왜냐하면 장초는 한 자씩 떨어져 있으면서 도 초법(草法)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서 초서의 필법(筆法)과 짜임새를 쉽게 파악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점을 무시하고 쓰기 때문에 초서를 마치 거미줄과 같이 이러 저리 엉기게하여 힘도 없고 심지어는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게 쓰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올바른 초서라고 할 수 없다.


이상을 종합하여 말하면 글씨를 배우는 단계가 바로 초학자의 열쇠이며, 좋은 글시를 쓰 느냐 못쓰느냐의 관건인 것이니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무시한다면 성공의 길로 가기에는 무척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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