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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먹 (원제목〈고장묵제발(古藏墨題跋)〉)

오래 묵은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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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梨湖)에 있는 집의 옛 물건 가운데 오래 묵은 먹 수십 정(丁)이 있는데 자기로 만든 항아리에 넣어서 단단히 봉해 두었다. 이 먹은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옥천(沃川) 원님으로 계실 때 만드신 물건이다. 이제 백여 년이 지난 물건인데 내가 한 정을 가져다 쓰면서, 해가 너무 오래 지나 분명히 색이 거무튀튀하게 바뀌리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몇 푼(分)쯤 갈자 광택과 색깔이 번쩍여서 어린아이 눈동자처럼 맑고 옻칠한 듯 짙어 검었다. 검은 먹물이 기묘하여 비교할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 나온 해주(海州) 먹과 중국, 일본의 진귀하고 좋은 먹을 함께 갈아서 살펴보았더니 모두 그 먹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이하고도 기이한 일이었다.

증조부께서는 글과 글씨에 고질병이 있으셨고,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모범으로 삼으셨다. 자손들 가운데 증조부의 글씨를 보물처럼 보관하는 분도 있다. 고을 원님이 되어 먹을 만드실 때 혹시라도 특별한 비방이 있어서 먹이 오래 묵어도 색이 변하지 않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당(唐)과 송(宋) 나라 이래로 문인학사(文人學士)들 가운데 먹을 아끼는 고질병을 가진 분이 많았다. 진품(珍品)의 옛 먹을 얻으면 차마 갈아 쓰지 못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이정규(李廷珪)가 만든 먹을 소장한 이공택(李公擇)이, 자신도 그 먹을 갈지 않고 남이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은 짓을 소동파(蘇東坡)는 비웃었다. 이공택이 죽은 뒤에 이정규 먹은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그 때문에 소동파가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간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먹을 아끼는 고질병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 게다가 마유묵(麻油墨)을 만들 때 사향 재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많은 세월을 보내면 색이 변하여 쓸 수 없다. 오래 묵을수록 더욱 좋아지는 중국 먹과는 다르다. 이 먹도 마유(麻油)로 만든 물건인 듯한데 백여 년을 지내고도 색과 광택이 오히려 이와 같은 까닭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먹을 보관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먹을 감싸서 습기가 차거나 건조한 곳에 놓아두기 때문에 오래 지나지 않아서 색이 변한다. 자기 항아리에 넣어서 두는 것이 먹을 잘 보관하는 법이라고 한다. 정말 이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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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먹이 이제 오대(五代)를 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쓰기에 좋다면, 앞으로 분명히 십대(十代)를 전해 내려가도 좋으리라. 나는 일찍이 북경 시장에 오가는 사람으로부터 수백 냥의 돈으로 이정규가 만든 먹 한 덩이를 사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 먹의 진귀하고 특이함은 이정규 먹에 비교해서 덜하지 않다. 기꺼이 일백 냥의 돈으로 이 먹을 바꿔가는 사람이 설마 우리나라에 있을까? 그저 자손들이 전해가며 보물로 여기는 것이 옳으리라.


◀◁ 먹_ 경기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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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숙(金相肅), 〈고장묵제발(古藏墨題跋)〉, 《배와시문필적(배¹窩詩文筆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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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 : 굽지 않은 기와, 언덕[土+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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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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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숙(1717∼1792)이 쓴 글이다. 김상숙은 호를 배와(배窩)라고 하는 저명한 서예가이다. 그의 자필로 쓴 글을 모은 《배와시문필적(배窩詩文筆蹟)》에는 글씨와 문방구를 소재로 쓴 여러 편의 글을 모은 〈문방한기(文房閒記)〉가 들어있다. 이 글은 그 속에 실려 있다.

원제목 〈고장묵제발(古藏墨題跋)〉은 ‘오래 보관해온 먹에 붙인 글’이라는 뜻으로, 오래 묵은 먹에 관한 짤막한 네 편의 글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두 편은 바로 증조부가 만들어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먹을 두고 썼다. 백여 년이나 묵었는데도 광택과 빛깔이 새로 만든 최고급 먹이나 중국 일본의 최고급품과 비교해도 우수하다는 것을 발견한 기쁨과 이러한 오래된 골동품 먹을 아끼는 심경을 담았다.

낡고 오래된 먹이지만 선대로부터 내려온 물건이기에 함부로 하지 않고 애지중지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또 문방구를 아끼는 취미도 엿보인다. 그 자신은 글을 통해서 낡고 오래된 것이나 고급의 문방구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당시 조선 사람의 심미안을 개탄했지만, 글의 이면에서는 오히려 고급 문방구의 수요가 적지 않았던 당시 지성인 사회의 풍토를 볼 수 있다.

필자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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