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參寥師송참요사
참요 대사를 떠나보내고
蘇軾
소식
上人學苦空 상인학고공
百念已灰冷 백념이회냉
劍頭惟一吷 검두유일혈
焦谷無新潁 초곡무신영
胡爲逐吾輩 호위축오배
文字爭蔚炳 문자쟁울병
新詩如玉雪 신시여옥설
出語便淸警 출어변청경
退之論草書 퇴지논초서
萬事未嘗屛 만사미상병
憂愁不平起 우수불평기
一寓筆所騁 일우필소빙
頗怪浮屠人 파괴부도인
視身如丘井 시신여구정
頹然寄淡泊 퇴연기담박
誰與發豪猛 수여발호맹
細事乃不然 세사내불연
眞巧非幻影 진교비환영
欲令詩語妙 욕령시어묘
無厭空且靜 무염공차정
靜故了群動 정고료군동
空故納萬境 공고납만경
閱世走人間 열세주인간
觀身臥雲嶺 관신와운령
鹹酸雜衆好 함산잡중호
中有至味永 중유지미영
詩法不相妨 시법불상방
此語當更請 차어당갱청
대사께서는 불법을 공부하셨고
온갖 생각 맘속에서 재가 되어서
칼 끝에 부는 바람 부드러운 콧노래요
불에 타버린 알곡처럼 싹이 돋지 않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네를 따르시나
문장의 화려함이 앞을 다투네
새로 지은 시편들 옥구슬처럼 아름답고
하시는 말씀은 맑고도 가르침 있네
한유가 장욱의 초서를 논할 때
마음속 온갖 일 감추려 한 적 없고
오히려 슬픔과 불평들을 일으켜서
모두다 붓끝에 실어 내달렸다 했고
승려였던 고한의 글씨 오히려 이상해서
사람 몸으로 보자면 마른 우물 같은데
고요하게 담박한 기운을 보여주니
누가 그처럼 호기로울 수 있겠느냐 했네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데
진실한 기교란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니니
시구를 교묘하게 짓고 싶거든
불법 속의 공과 정 싫어하지 말 일이네
정이야말로 만물의 변화를 바로 알리고
공 또한 만 가지 경계를 받아들이니
겪는 몸은 인간세상에 사는 것이고
보는 몸은 산과 구름 바깥에 두네
짠맛 신맛 여러 가지 섞여서 좋고
그 안에 지극한 맛 오래가는 것이네
시문과 불법은 서로 걸림 없으니
내가 한 이 말들 맞다고나 해주시오
한유는 《송고한상인서送高閑上人序》에서 장욱張旭의 초서草書를 높이 평가하면서 고한高閑의 서법이 장욱을 따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한유는 그 이유를 고한이 승려인 것에 두고 말하였는데 “泊與淡相遭, 頹墮委靡, 潰敗不可收拾. 則其於書, 得無象之(맑고 조용한 것이 서로 만나면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해져서 무너진 것을 수습할 수 없게 되므로 글씨의 상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불법佛法을 배우고 수양을 통해 함양한 선적 평온함이 예술적 감정을 일으키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소식은 한유의 그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면서 선과 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임지에 이를 때마다 지역 사찰의 선사들과 교류하면서 불교와 선禪을 배운 소식의 입장에서 당연한 반박이라 해야 할 것이다.
◈ 소식蘇軾 [1037~1101]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애칭은 파공坡公, 파선坡仙이고 이름은 식軾이다.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린다. 미주眉州 미산眉山(지금의 스촨四川 메이산眉山) 사람이다. 북송北宋 제일의 시인이며 문장으로도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대문호로 시詩, 사詞, 부賦, 산문散文에서 고르게 높은 성취를 이뤘다. 또 서법과 회화에서도 뛰어나 중국 문학예술사상 드물게 보는 팔방미인형 인재로 수천 년 중국 역사상 문학예술방면에서 가장 걸출한 대가의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산문은 구양수歐陽脩와 더불어 구소歐蘇로 병칭되고, 시는 황정견黃庭堅과 더불어 소황蘇黃으로 병칭되며, 사詞는 신기질辛棄疾과 더불어 소신蘇辛으로 병칭된다. 또 서법에서는 황정견, 미불米芾, 채양蔡襄과 함께 북송사대가의 한 명으로 꼽히며 호주서파湖州書派를 열었다. 천성이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까닭에 "독서가 만 권에 달한다 해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가 사상 초유의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 대표작인「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송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