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예원십취(藝園十趣) - 김창흡

入山讀書。課滿歸家。心充氣溢。下筆如神
산에 들어가 독서하고, 
공부 충만하여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내키고 기운이 넘쳐
붓을 대면 신과 같아라.

이 얼마나 멋있는 구절인가.
원문을 찾아 옮긴다.
----------------------------------- 

三淵集拾遺卷之二十四


藝園十趣 

崖寺歲暮。風霰交山。夜寒僧眠。孤坐讀書。

春秋暇日。登高遠眺。形神散朗。詩思湧發。

掩門花落。卷簾鳥啼。酒瓮乍開。詩句初圓。

曲水流觴。冠童畢會。一飮一詠。不覺聯篇。

良夜肅淸。朗月入軒。擊扇誦文。聲氣遒暢。

經歷山川。馬頓僕怠。據鞍行吟。有作成囊。一作助

入山讀書。課滿歸家。心充氣溢。下筆如神

良友遠阻。忽然相値。細問所業。勸誦新作。

奇文僻書。聞在交友。送奴乞來。急解包裹。

分林隔川。佳友對居。釀酒報熟。寄詩佇和。



김창흡 [金昌翕, 1653~1722]

본관 안동. 자 자익(子益). 호 삼연(三淵). 시호 문강(文康). 서울 출생. 영의정 수항(壽恒)의 셋째아들. 이단상(李端相)에게 수학하고, 1673년(현종 14) 진사가 되었으며, 1684년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진도(珍島)의 배소(配所)에서 사사되자 형 창집(昌集) ·창협(昌協)과 함께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1721년(경종 1) 집의(執義), 다음해 세제시강원진선(世弟侍講院進善)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성리학(性理學)에 뛰어나 형 창협과 함께 이이(李珥) 이후의 대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유배된 형 창집이 사사되자 지병(持病)이 악화되어 그 해에 죽었다.


1709년(숙종 35)부터 5~6년간이나 계속된 심성론(心性論)의 치열한 시비에서 호론(湖論)인 형과는 반대로 낙론(洛論)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역시 형과 함께 이황(李滉)과 이이를 절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죽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숙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울진의 신계사(新溪祠), 강릉의 호해정영당(湖海亭影堂) 등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삼연집》, 저서에 《심양일기(瀋陽日記)》 《문취(文趣)》, 편서에 《안동김씨세보(安東金氏世譜)》가 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