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震黙大師 '大醉吟'

조선 진묵대사(震黙大師)  '大醉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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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衾地席山爲枕하고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하니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함에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일러라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하여 태산을 베개하고서

저 달은 촛불로 삼고 구름으로 병풍 치고 바닷물로서 차를 달이니

크게 취해 거나하여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춤에

아뿔싸 기나긴 소매 곤륜산에 걸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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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땅, 산, 달, 구름, 바다가 시의 소재로 동원되어 있어 그 흉회의 호방함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거기에 취하여 일어나 춤을 추는데, 긴 옷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된다 하였으니 그 기개가 또한 우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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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삼보사 법문> 중에서

우리가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승들이 출현 하셨다가 또 열반에 드시고 하셨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때 진묵스님 만큼 이적을 많이 남기신 분도 드뭅니다. 그런데 워낙 털털하신 분이 되어 별로 글을 남기지 않고 거의가 구전되어 오고 글을 남겨서 전해오는 것은 별로 흔치가 않습니다. 이 詩는 요즘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스님네들 본받아 갖고 술이라 하지 않고 곡차라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원래 곡차라는 말을 쓴 원조가 진묵스님입니다. 진묵스님 당신이 술을 마시면서 곡차라 했는데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으면 차가 되지만 술을 마시고 취하는 사람은 이름을 곡차라 한들 곡차가 아니고 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술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을 마셨더라도 취하지 않는 것은 차라고 이름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술뿐만 아니라 마약이든지 그 어떤 것이든지 사람의 마음을 생각을 혼미하게 하고 취하게 하는 것은 부처님 법에서 不飮酒戒에 포함해서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묵스님 같은 이는 무엇을 마셔도 차를 마신 것처럼 차 맛에 취하듯이 그렇게 이름을 곡차라 붙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詩속에서 보면 진묵스님의 하늘에 닿을 듯한 그런 기개가 엿보입니다.

天衾地席山爲枕하고 하늘을 이불 삼고 우리가 산에서 산을 베고 드러누워 하늘을 이불로 삼고 깔고 누운 땅을 자리로 생각하고 베고 있는 산을 베개처럼 생각하는 거라요. 이 우주 법계를 세상 전체를 그냥 내 집처럼 여기는 겁니다. 서산 스님이 萬國都城이 如蟻家라 해 갖고 저 한양성을 보고 개미집 같다고 했다고 간신배가 고자질을 해 나중에 귀양을 갈 뻔하고 죽음을 당할 뻔하고 했던 그런 일도 있습니다마는 스님네들이 당신의 활달한 기개를 읊음에 간신배들이 잘못 들어 갖고 역사 속에서 보면 곤욕을 치른 예가 참 많습니다마는 진묵스님처럼 이렇게 읊으니까 자기 기개를 잘 드러내면서도 전제군주시대에 허물이 되지 않을 만큼 잘 지나갈 수 있었단 말입니다. 月燭雲屛海作樽하니 했거든요. 하늘에 빛나는 달을 촛불로 삼는다 말입니다. 달밤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니 보름달이 둥실둥실 떠오르니 그대로가 촛불이나 다를 바 없는 거라요. 방안을 밝히는 것이 촛불이라면 이 세상을 밝히는 것이 日月이단 말입니다. 그 다음에 구름이 둥실둥실 피어오르니까 그것을 병풍 삼아서, 그 다음에 저 바닷물(스님이 계시던 곳이 서해안이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지리적인 위치도 이해를 하셔야 되거든요)로써 차를 달이니 大醉居然仍起舞함에 즉 차에 취하고 달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 갖고 크게 취해 갖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랬거든요. 그렇게 춤을 추니까 却嫌長袖卦崑崙이로다 했거든요. 각혐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제가 아뿔싸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장수란 긴소매 자락인데 그 소매가 곤륜산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곤륜이라 하면 중국에 있는 곤륜산을 얘기하는 것인데 산중에서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곤륜산입니다. 곤륜산맥이거든요. 티베트에 있는 것인데 흔히 세계의 지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머물고 있던 암자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자리 삼아 산을 베개삼아 누워 갖고 달빛에 취해 갖고 그렇게 차를 달여 마시니 일어나 절로 흥이 나서 춤춘단 말입니다. 춤을 추는데 당신의 작은 장삼자락이 저 중국의 곤륜산에 걸릴까봐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아뿔싸 긴소매가 곤륜산에 걸릴라 이렇게 멋있게 당신의 기개를 읊어 놓은 거지요. 이 우주법계가 내 집이다 말이라요. 바로. 내 집안 일처럼 법계가 다 내 속에 있는 것이죠. 나를 여의고 그 어떤 우주도 어떤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당신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그런 게송이다 싶어서 오늘 진묵스님의 이야기를 좀 할까싶어 첫머리에 스님의 게송을 먼저 이야기 해드리고 시작을 했습니다.

곡차 얘기 조금 더 할까요. 진묵스님이 주로 전라도 전주 김제 서해안 월명암 봉서사 그쪽으로 많이 주석하셨습니다. 하루는 전주 땅을 지나서 금산사로 가면서 지나다 보니까 곡차 생각이 난 거요. 그래서 지나던 어느 술집에 들러 곡차를 한 잔 하려고 들어가니 실제 주머니에 돈도 별로 없습니다. 최고 좋은 곡차로 한 상 차려 주고 안주도 제일 좋은 걸로 차려 주라고 합니다. 술값이 열냥이고 안주 값이 스무냥인데, 안주가 뭐냐하면 방금 물에서 건져온 펄떡펄떡 뛰고 있는 생고기입니다. 주모가 스님을 골려 준다고 안주가 제일 좋은 것이 이것밖에 없는데 이걸 드시겠냐 그러니까 아 그거 좋지 가져 와 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곡차에 생고기를 스님이 잡수었으니 어쩌는가 보고 있을 거 아니요. 술을 곡차라고 잡수시고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대청에 벌렁 나자빠져 한숨 주무시는데 주모가 살짝 가서 스님들 보면 허리에 복주머니 같이 생긴 거 차고 다니거든요. 돈이 몇 푼이나 들었나 싶어 만져 보니 몇 냥 되지도 않은 겁니다. 술값 겨우 될까 말까 싶은데 그래도 혹시 딴 주머니 차고 있는가 싶어 기다려 봤는데 자고 일어난 뒤에 술값과 안주값을 내놓으라 하니 술값만 달랑 내어놓고 외상 합시다 그러는 거요. 그러니 주모가 아이고 내가 스님을 언제 봤다고 외상을 하느냐 지나가는 객스님한테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그럽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니, 그러면 안주를 도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아 그러냐고 그러면 도로 돌려주지 뭐 하고 손을 목구멍에 넣고 왝왝 하고 토하면서 그릇 갖다 바치라는데 생고기가 뱃속에 들어간 놈이 살아서 펄떡펄떡 물에 뛰어 놀아 버려요. 그러니 주모라든가 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기겁할 일 아니오. 도로 안주 내놓으라 하니 참말로 뱃속에 있는 고기를 도로 토해 버린단 말이요. 진묵스님이 신통하기로 조선시대에 가장 유명합니다. 서산, 사명이 신통을 많이 부리기도 하지만 사실 진묵스님에 비하면 오히려 신통력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곡차만 마시고 고기는 도로 토해 놓고는 멀지 않은 곳에 누이동생이 시집와서 살고 있었는데 그리로 갑니다.

전에 듣기로 누이동생이 스님 혹 이쪽을 지나다가 시간이 나시면 집에 들러서 곡차 한 잔 하고 가시오 했는데 집에 찾아가 보니 누이동생은 외출하고 없고 뒤뜰에 어디가면 곡차단지가 안 있겠냐 싶어 살펴보니 마침 단지가 두개 있는지라 그중 하나를 열어 젖히고 실컷 마시고는 방에 드러누워서 한숨 자고 있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누이동생이 와서보니 곡차 마시라 했더니 곡차 단지는 그대로 있고 식초 단지가 비어 있는 거라요. 식초를 마셔놓고도 곡차를 마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술 마시고만 곡차가 아니고 마시면 다 곡차라요. 식초를 한 단지 다 마셔 놓았으니 놀래 갖고 뛰어들어가서 아이고 우리스님 내가 죽였다고 가보니까 코만 골고 잠만 잘 자고 있는 겁니다. 깨워서 큰일났다 하니 무슨 얘기하는 거야 너 덕에 곡차 잘 마셨다 하는 겁니다. 아이고 스님 그게 곡차가 아니고 식촙니다 하니 너는 농담도 잘하는구나 이 맛있는 곡차를 담아놓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겁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차란 말이요. 뭘 마셔도 차가 되어야 되는데 이 분별시비망상을 다 일으키는 상황에서는 그게 곡차가 될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님의 일화 중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요즘 자칫 공부도 못하고 세간 사람들이 술을 곡차니 어쩌니 흉내 내면 안되거든요 우리가 먼저 공부가 된 다음에도 사실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데 공부도 되지 않으면서 술을 곡차라 하며 마신다든가 살생을 함부로 한다든가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출가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재가 불자들도 사실 보살계를 받으면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면 안됩니다. 비구계에는 고기 먹지 말란 말이 없습니다. 비구계 받은 사람은 고기 먹어도 엄격하게 말해 계율을 어겼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러나 대승 보살계에는 나오거든요. 그럼 여러분들도 대부분 보살계를 받았을 텐데 사실은 파 마늘도 먹으면 안되고 고기도 먹으면 안되고 술 마시면 안 된단 말입니다.

하루는 진묵스님께서 상원암이라는 암자에 계실 때 이야깁니다. 겨울 여름에 안거가 다가오면 스님네들이 한달 전쯤에 산철에 탁발을 나갑니다. 지금도 동남아 불교국가에 가면 스님들이 나가서 아침 탁발을 해서 공양을 합니다. 그런데 상원암에 7~8명 스님들이 암자도 조그마한데 큰스님보고 사는데 이제 중구일이라 하면 9자가 겹친다는 얘기니까 9월 9일인가 봅니다. 9월9일이 지나면 얼마 안 있으면 결제가 되잖아요. 9월9일이 지나고 모든 대중이 탁발을 나가면서 스님보고 스님 반찬도 좀 해놓고 어데 뭐 쌀 있고 등등 조실 스님한테 말씀 드리고 탁발을 나갔는데 한 달이 넘어서 돌아와 보니까 탁발 나갈 때 스님 잘 다녀오너라 하고 봉창문에 팔 한 쪽 걸쳐놓고 인사했는데 와보니 그대로 계시는 거라요.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해 가지고 손등에 찧어 갖고 피도 좀 나다가 멍도 들어 그 지경이 되어 있는 거라요. 그런데 대중들이 아이고 스님 스님 왜 이렇게 계시냐고 하니까 도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왜 이렇게 빨리 돌아 왔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스님 빨리가 뭐냐고 하니, 너희들 한나절도 안되었을 텐데 탁발 안하고 벌써 왔냔 말이야 겨울을 어떻게 날려고 하시는 겁니다. 당신의 경계에서는 한 나절 밖에 안된 거죠. 삼매에 들어 버렸거든요. 이 공부가 익어 꼭 가부좌 틀고 앉아 삼매에 들고 정에 들고 그러는 것이냐면, 아니거든요. 정에 들면 길 가다가도 정에 들고 밥 먹다가도 정에 들고 하는 거죠. 옛날 어떤 스님들은 밥 먹다가 정에 드니까 밥을 먹는다는 게 입에 안 떠넣고 옷에 다 떠 붓는 겁니다 밥 먹는 생각도 없는 거죠. 국도 떠다가 자기 가사 자락에 붓고, 옷에다 밥이고 반찬이고 자꾸 떠다 부어도 모르는 것이라요. 아무 데서나 삼매에 들고, 또 죽으면 어때 도를 모르고 죽는 게 억울할 일이지 도를 알고 죽는다면야 어느 사항 어디에서 정에 든들 무슨 상관이 있어요. 범부가 생사를 걱정하지 도인이 무슨 생사를 걱정하겠습니까.

제가 언젠가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만 상원암에서 결제할 때 이야깁니다. 거기서 전주 송광사하고 오늘날 부여 지방의 무량산데 그때는 홍산인가 그랬답니다. 그 송광사와 무량사 두 군데서 동시에 부처님 점안식이 있으니까 證師(증사)로 청하게 됐는데 결제중이라 상원암 대중들을 떠날 수도 없고 또 송광사만 가면 무량사가 삐질 거고 무량사 가면 송광사가 섭섭해 할거고. 그래서 송광사에는 주장자를 보내고 무량사에는 스님이 갖고 계시는 단주를 보냅니다. 심부름 갔던 스님이 주장자를 받아다가 부처님 탁자 위에 올려놓으니까 눕혀 놓은 주장자가 벌떡 일어나 스님이 짚고 있는 것처럼 점안식이 끝날 때까지 꼼짝을 안 하는 겁니다. 또 무량사에는 단주를 갖다 올려놓자마자 단주가 사람이 없는데도 저 혼자 딸그락딸그락 넘어가는 거라요. 근데 무량사에는 단주를 주면서 부탁을 한 게 있어요. 점안식 다 끝날 때까지 산문출입을 하지말라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설판 단월로 삼천 냥을 시주한 분이 오지를 않는 거라요. 점안식을 할려니까. 이상하다 싶어 기다리다 못해 궁금해서 화주한 스님이 산문 밖을 나가보는 순간에 철퇴에 맞아 죽어버린 거요. 일설에는 그 단월이 부정한 것을 봐 가지고 그날 절에 가지 말라고 전날 꿈에 신장이 나타나서 일러주기에 기이해서 못 오고 다음날 왔다고 합니다. 점안식을 할 때 도량을 장엄하고 잡신들의 접근을 막아 놓고 하게 되는데 밖에 나가면 안 된단 말했는데 나가서 철퇴를 맞았다는 얘기도 있고, 또 일설에는 시주한 단월이 목신이라 부처님을 조성해 놓고, 자기가 차지할려고 했는데, 진묵 스님만 빼고 누구를 증명법사로 청해도 좋으니까 진묵스님만 청하지 말라고 해서 진묵스님을 청하지 않고 대신 단주를 갖다 놨는데 그만 목신이 화가 나서 화주 스님이 문밖으로 나오려는 차에 목을 쳐서 보복을 해버렸다는 얘기가 있어요. 어떻든 간에, 진묵스님의 단주가 철퇴로 맞는 순간에 탁 멈춰버렸다고 하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큰스님이 말씀하시면 들어야 되는데, 우리가 가급적이면 큰스님네들이 법문 하시고 큰스님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법사가 법문을 할지라도 법에 대해서 가벼운 생각을 내면 안됩니다. 우리는 마치 이 법을 들을 때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하라 그랬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데 조금만 힘을 줘도 물에 빠지고 가만히 있다가도 얼음이 녹으면 사람이 물에 빠지는 겁니다.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것이 살얼음이거든요. 이 법문을 들을 때에도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조심해서 법문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묵스님의 시자 중에 가장 아꼈던 시자가 이름이 기춘이라는 시자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 기춘이와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졌냐 하면, 진묵스님이 스물아홉살 날적에 마산지방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산지방에 사는 신심 있는 부잣집의 거사님 꿈에 오늘 부처님이 오시니까 집안 청소를 잘하고 그 부처님 오시는 것을 맞이하라 이럽니다. 그래서 꿈이 하도 기이해서, 아침부터 하인들과 온 식구들이 서둘러서 청소를 하고 사시 공양 때가 되어 부처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스물아홉 살 난 젊은 스님이 문으로 들어갈려니까 하인이 어림없는 소리 하지마라 오늘 주인 어른 꿈에 부처님이 오신다 하니, 모르긴 해도 큰스님이 오실 것이니까 이 젊은 스님이 건방지게 들어오려 한다고 내어쫓는 것입니다. 자네 주인이 나를 기다리지 않던가? 큰스님을 기다리지 언제 당신 같은 젊은 스님을 기다렸냐고 내쫓는 거라요. 그래도 진묵스님이 덩치도 좋고 힘이 좋아 하인을 옆으로 밀치고 턱 들어가니, 그래도 주인은 불심이 있고 안목이 있었던 지라, 아이고, 큰스님 오셨냐고 맞아 공양을 올리고 잘 대접하고 법문을 들었는데, 그 집에 딸의 이름이 기춘이었어요. 그 스님의 법문에 반해서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기춘이가 스님에게 묻기를 스님은 왜 출가하셨습니까? 여쭈니, 나는 나와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출가했느니라 하셨습니다. 일체중생 중에는 이 몸도 포함됩니까? 물으니 그야 물론이지 그대 뿐만 아니라 개미나 벌레 같은 미물까지도 포함되느니라. '그렇다면 금생에는 이 몸부터 제도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제도해 주는 것이 지금 남편이 되어달라 이 소리라요. 그러니까 진묵스님 말씀이 그 인연이라는 것이 한번에 제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니, 정 네가 그렇거든 출가해서 공부를 좀 해봐라 그러십니다. 그래서 스님 뜻이 정 그렇다면 이 몸도 세속의 정으로 스님을 얽매고 싶지 않으니까 불연으로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하니까, 너가 출가해도 나하고는 같이 살 수 없다. 너는 여자니까 비구니 처소로 가야되고 나는 비구니까 비구스님들과 함께 산다 하시니, 그러면 좋습니다. 제가 십 년 뒤에 스님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하고 그 길로 죽어버립니다. 그 부잣집 딸이 죽어서 12년 뒤에 다시 진묵스님을 찾아오니, 진묵스님은 벌써 알고 계시는 거예요, 기춘인 줄을 . 그래서 다른 어느 상좌보다도 귀여워하셨어요. 어린 사미를.

그런데 옆의 다른 권속 상좌들이 보기엔 기춘이만 귀여워한다고 마음이 좀 언짢았던 모양입니다. 그래 스님이 잠시 출타하고 안 계신 동안 이걸 골탕을 먹이자 싶어 오늘은 국수를 하는데 너 혼자 다 해라 하고 기춘에게만 다 맡겨놓고 스님네들이 좀 골탕을 먹였습니다. 하니 스님이 밖에서 돌아와 가만히 보니 그 지경인지라, 연하여 저 놈이 그렇게 되었구나 싶어 국수를 삶아 놓으니까 바늘을 한 쌈지 들고 와 대중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발우에다 바늘을 꽂아 두라 하시고는 대중들에게 지금부터 공양을 하는데, 그 바늘로 휘 저어서 자기 그릇대로 국수가 남거든 공양을 하고 국수가 없는 사람은 공양을 굶는다고 하시는 거라요. 그래놓고 당신은 바늘로 휘 저으니까 국수가 한 발우 넘치도록 가득한데, 입승스님은 보니까 그래도 반 발우 쯤 되고, 나머지 대중들은 보니까 휘저으니 국수도 바늘도 온데간데 없고, 그만 그날 점심을 굶어버리게 된 거라요. 그래서 나중에 당신은 맛있게 공양을 하고 나서는 입승스님하고 오늘 너희들이 한 행동을 내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같이 공부하는 스님네를 함부로 대하고 업신여기고 하지 말라고 일러주셨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이것저것 진묵스님의 얘기를 제가 여러분들께 들려드렸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오늘 사십구재 중에 2재를 지내는 재자도 있고 해서 진묵스님께서 마지막 어머님의 임종을 맞아서 사십구재를 지내면서 지었던 재문을 제가 잠깐 소개하고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아마 오늘 재자들에게도 좋은 이야기가 되고 또 우리 신도들에게도 좋은 이야기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진묵스님의 어머니가 임종이 다가오자

"임종시에는 어떻게 用心하는가요"하니

"옛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洽洽用心時에 洽洽無心用이라 하셨습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 마음을 쓸 때에 무심히 쓰라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나 임종 때나 어느 때고 간에 무심으로 용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어머니가 어떻게 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냐고 물으니까 有心으로 용심하면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나서 극락을 가야하지만 無心으로 용심하면 이 자리가 바로 정토입니다 하고, 극락을 갈려면은 무심의 경지에서 아미타불을 불러야 아미타불의 인도하심을 받아 九品蓮臺에 날 수 있다고 하니 어머니가 듣고 좋아하셨습니다.

도인이 된 아들에게 무심법문을 듣고 사색에 잠겼던 어머니가 임종을 하자 진묵스님은 無子孫千年香火之地를 정해 장사 지내고(참고로 무자손 천년향화지지란 스님이 손이 없는 어머니를 위하여 누구나 어머니 묘에 와서 향사르고 잔 올리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향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였으나 뒷날 무덤을 보수하고 영험이 사라졌다고 함) 일출암에서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드리고 봉서사에서 사십구재를 지냈습니다.

胎中十月之恩을 何以報也리오

膝下三年之養도 未能忘矣어다

萬歲上更萬歲라도 子之心猶爲嫌焉인데

百年內未滿百年이니

母之壽何其短也오

單瓢路上行乞一僧은 旣云已矣어나

橫 閨中未婚小妹는 寧不哀哉오

上壇了下壇罷하니

僧尋各房이라 前山疊後山重한데

魂歸何處오 嗚呼哀哉라

태 속에서 열 달 동안 품고 길러주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으오리까?

슬하의 삼 년 동안 길러주신 것 잊을 길이 없나이다.

만세 위에 만세를 더할지라도 아들의 맘은 오히려 부족한 마음 앞서는데

백년 안에서 백년도 채 못되시니

어머니의 수명이 어찌 이다지도 짧으시나이까

표주박 하나로 걸식하며 사는 이중은 이미 말할 것 없사오나

규중에 홀로 남은 어린 누이로서는 어찌 슬프지 않으리까?

이제 벌써 상단의 법요도 마치고 하단의 법요도 마쳐서

스님들은 각기 처소로 돌아가옵니다.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 또한 겹겹이 싸인 이 산중에

혼은 어디로 돌아가시렵니까? 아 슬프고 슬프오이다.

뱃속에서 열 달 동안 길러 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으며 슬하에서 삼 년 동안 보살펴 주신 걸 어찌 다 잊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진묵스님이 일곱 살에 출가를 하셨고, 당신이 보통 사람과 다른지라 이미 세 살 이후에는 부모님이 길러주신 것이 아니고 당신 스스로 컸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서는 삼 년 동안에 길러준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위해서 만 생에 만 생을 더해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부족한 마음이 앞서는데 백년 안에서 백년도 채 못돼서 세상을 떠나니(왜냐하면 어머님이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기에 백년 중에서 그 백년도 다 못 채웠단 말이라요)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이다지도 짧습니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미 출가한 자신이야 알아서 살아가지만 임종을 앞두고 마음을 놓지 못하던 혼자 남은 누이동생은 시집을 안가고 있었어요, 아들이라고는 진묵스님 하나 뿐인데 출가해버리고 딸의 이름이 정옥이었는데 그 딸 입장에서는 홀홀 단신이 되어버렸으니 어찌 애달픈 일이 아니겠는가.

상단불공도 다 마치고 중단 퇴공하고 하단 곧 영단의 사십구재까지 다 마치니 스님네들도 산중 대중들이 다 동참을 해서 어머니 재를 모셨는데, 그 스님들은 각각의 처소로 돌아갔는데 산중이 앞도 첩첩이 싸였고, 뒤도 또한 겹겹이 싸인 이 산에서 이 혼백은 어디로 돌아가시렵니까?

아 슬프고 슬프도다

여기서 혼기하처오 이 혼백은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고 하는 것이 돌아가는 곳을 몰라서 이렇게 물었었냐 하면 아닙니다. 그 영가를 위해서 한번 더 깨우쳐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49재 중에 2재를 지내는 영가도 이 재문을 참고로 해서 미망의 세계에 떨어지지 말고 부디 왕생극락하거나 인도환생해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법문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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