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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추가 시선(서예전 또는 시화전을 위한)

천상병 추가 시선(서예전 또는 시화전을 위한)

 

약수터

 

내가 새벽마다 가는 약수터 가에는

천하선경이 아람드리 퍼진다.

요순(堯舜)이 놀까말까한 절대미경이라네.

 

하긴 그곳에 벌어지는 사물은 평범하지만,

나무, , 바위, , 등등이지만.

그 조화미의 화목색(和睦色)은 순진하다네.

 

반드시 있을 곳에 자리잡고 있고,

운치와 조화와 빛깔이 혼연일치하니,

이 세계의 극치를 이루었다.

        (74. 9. <현대문학>에 발표)

 

 

꽃은 훈장

 

꽃은 훈장이다.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훈장이다.

산야에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

 

사람은 때로 꽃을 따서 가슴에 단다.

훈장이니까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의젓한 일인가.

 

인류에게 이런 은총을 내린 하느님은

두고 두고 축복되어 마땅한 일이다.

전진을 거듭하는 인류의 슬기여

           (79. 시집 <주막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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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별 시 모음

 

신춘(新春)

 

1 1일에 발표되는

신춘문예는

왜 신춘이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겨울에

봄을 생각하면서 사니까

신춘인 것이다.

 

눈길을 걸을 때도

항상 봄을 생각하며 걸으니

어찌 새로운 봄이 아니겠는가?

           (92. 봄호. <동서문학>에 발표)

 

 

봄소식

 

입춘이 지나니 훨씬 덜 춤구나!

겨울이 아니고 봄 같으니,

달력을 아래 위로 쳐다보기만 한다.

 

새로운 입김이며

그건 대지의 작란(作亂)인가!

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

 

아슴푸레히 반짝이는 태양이여.

왜 그렇게도 외로운가.

북극이 온지대(溫地帶)가 될 게 아닌가.

 

 

봄빛

 

오늘은 91 4 14日이니

봄빛이 한창이다.

 

뜰의 나무들도

초록색으로 물들었으니

눈에 참 좋다.

 

어떻게 봄이 오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다.

 

인생을 즐겁게 할려고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거다.

            (91.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놈!> 답게)

 

 

우리집 뜰의 봄

 

오늘은 91 4 25

뜰에 매화가 한창이다.

라일락도 피고

홍매화도 피었다.

 

봄향기가 가득하다.

꽃송이들은

자랑스러운 듯

힘차게 피고 있다.

 

봄 기풍(氣風)이 난만하고

천하(天下)를 이룬 것 같다.

 

 

봄바람

 

봄철이 되어

봄바람이 쏴 분다.

세상이 온통 날아갈 것만 같다.

 

어쩌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스리 풀려 나올 것 같다.

 

쉽게 말해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봄바람이 한가하게 불었으면 한다.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

 

 

오월의 신록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두살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91.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놈!> 답게)

 

 

장마

              

7월장마 비오는 세상

다 함께 기 죽은 표정들

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

 

이런날 회상(回想)은 안성맞춤

옛친구 얼굴 아슴프레 하고

지금에사 그들 뭘 하고 있는가?

 

뜰에 핀 장미는 빨갛고

지붕밑 제비집은 새끼 세마리

치어다 보며 이것저것 아프게 느낀다.

 

빗발과 빗발새에 보얗게 아롱지는

젊디 젊은 날의 눈물이요 사랑

이 초로(初老)의 심사(心思) 안타까워라 -

오늘 못다하면 내일이라고

그런 되풀이, 눈앞 60고개

어이할거나

이 초로의 불타는 회한(悔恨) -

            (91.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놈!> 답게)

 

 

계곡흐름

 

나는 수락산 아래서 사는데,

여름이 되면

새벽 5시에 깨어서

산 계곡으로 올라가

날마다 목욕을 한다.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의

제법 다정한 이야기들.

 

큰 바위 중간 바위 작은 바위.

그런 바위들이 즐비하고

나무도 우거지고

졸졸졸 졸졸졸

윗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더러는 무르팍까지

잠기는 물길도 있어서......

(내가 가는 곳은 그런 곳)

목욕하고 있다 보면

계곡 흐름의 그윽한 정취여......

           (79. 시집 <주막에서> 민음사)

 

 

가을

 

가을이 온다 가을이 온다

풍요로운 이 가을에

늙어서도 나는

책을 많이 읽어야지......

 

간마다 낙엽이요

물마다 고요하다.

자연은 큰 수확을 주고

또 하느님 같다.

 

가을에는 누구에겐가

편지를 써야지!

잘 있다고, 건강하다고

그런 안부편지를 써야지......

           (92. 12. <현대문학>에 발표)

 

들국화

 

84 10월에 들어서

아내가 들국화를 꽃꽂이했다.

참으로 방이 환해졌다

하얀 들국화도 있고

보라색 들국화도 있고

분홍색 들국화도 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우리 방은 향기도 은은하고

화려한 기색이 돈다

왜 이렇게도 좋은가

자연의 오묘함이 찾아들었으니

나는 일심(一心)으로 시 공부를 해야겠다.

              (84. 12. <월간문학>에 발표)

 

 

국화꽃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만이 내가 아니라도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69. 11. <현대시학>에 발표)

 

 

만추

-주일(主日)

 

내년 이 꽃을 이을 씨앗은

바람 속에 덧없이 뛰어들어 가지고,

핏발 선 눈길로 행방을 찾는다.

 

숲에서 숲으로, 산에서 산으로,

무전여행을 하다가

모래사장에서 목말라 혼이 난다.

 

어린 양 한 마리 돌아오다.

땅을 말없이 다정하게 맞으며,

안락의 집으로 안내한다.

 

마리아.

나에게도 이 꽃의 일생을 주십시오.

             (70. 11. <詩人>에 발표)

 

 

겨울 이야기

 

올 겨울은 따뜻한 겨울이다.

별로 추운 줄 모르겠다.

그래도 눈은 내리고

겨울은 겨울이다.

 

겨울의 하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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