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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는 눈 내리고(江雪)- 유종원(柳宗元)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 중국 당 송 시대의 뛰어난 문장가 8인.

(당)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 구양 수(歐陽 修), 왕안석(王安石), 증공(曾鞏),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鐵).


강에는 눈 내리고(江雪)-유종원(柳宗元)/이은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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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마다 사람 자취 끊어졌는데,            

외로운 배 위에 삿갓 쓴 늙은이 

혼자서 낚시질, 강에는 눈만 내리고 


  千山鳥飛絶

작자 유종원이 유배를 떠나온지 1년이 지나고 있다. 장안에 있을 때는 친구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는데 지금 현재는 소식 한 장 보내오는 친구조차 없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회의가 생기고 차갑게 얼어붙어 가는 마음만 남았다. 그래서 을씨년스런 겨울산에 새 한마리 날아다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가장 자연스런 모습은 산에 새가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것일 텐데 작자의 눈은 정상적으로 사물을 볼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萬徑人蹤滅

승구

기구에 이어서 승구에서도 유종원의 외로움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사람이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길에서 사람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孤舟蓑笠翁

시상의 변화를 주는 것이 전구인데 자연을 읊다 사람을 등장시킨 점은 전구라 할 만하지만 시의 전체적인 느낌은 여전히 쓸쓸하다. 고주(孤舟)라는 표현은 특히 위진남북조의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한 번 쓴 이후로 외로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시어가 되어 버렸다.

또 시의 느낌이 활기 있으려면 등장인물이 아이들이나 젊은 청춘남녀라면 바로 그렇게 될 것을 시인은 노인을 등장시켜 더욱 처량하게 만들고 있다.


  獨釣寒江雪

이 시의 독특한 점은 기구와 연관을 갖는 소재가 결구에 나온다는 것이다. 만약 눈(雪)이 기구에서 나왔으면 어땟을까 ? 아마 눈의 맑고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작자의 뒤틀린 심사와 상충되어 시를 이끌어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오죽 했으면 어린아이와 강아지들이 좋아한다고 하였을까 ?

대신 눈은 작가의 차갑게(寒) 얼어붙은 마음을 하얗게 덮어 원래의 순수하고 깨끗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시어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시풍이 달랐던 송나라때에 범희문이 당(唐)의 오언절구중 유종원의 이 시를 제외하고 읽을 만한 것이 없다고 극찬하지 않았던가 ?


 이 작품은 경중정의 요소가 상당히 함축적이다. 고도로 생략된 동양화처럼 그림만 그리고 있다. 약간의 설명조차 아끼고 있음을 본다. 이미지만을 제시함으로써 충분히 느끼게 하고 있다.


유종원(柳宗元:773~819)

중국 중당기(中唐期)의 시인. 자 자후(子厚). 창안[長安] 출생.

유하동(柳河東)․유유주(柳柳州)라고도 부른다. 관직에 있을 때

한유(韓愈)․유우석(劉禹錫) 등과 친교를 맺었다. 혁신적

진보자로서 왕숙문(王叔文)의 신정(新政)에 참획하였으나

실패하여 변경지방으로 좌천되었다. 이러한 좌절과 13년간에

걸친 변경에서의 생활이 그의 사상과 문학을 더욱 심화시켰다.

고문(古文)의 대가로서 한유와 병칭되었으나 사상적 입장에서는

서로 대립적이었다. 한유가 전통주의인 데 반하여, 유종원은

유,도,불(儒道佛)을 참작하고 신비주의를 배격한 자유,합리주의의

입장을 취하였다. 《천설(天說)》 《비국어(非國語)》

《봉건론(封建論)》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 우언(寓言)

형식을 취한 풍자문(諷刺文)과 산수(山水)를 묘사한 산문에도

능했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관료를 비판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한편, 자신의 우울과 고민을 술회하였는데, 그 자구

(字句)의 완숙미와 표현의 간결․정채함은 특히 뛰어났다.

시는 산수의 시를 특히 잘하여 도연명(陶淵明)과 비교되었고,

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 등과 당시(唐詩)의 자연파를 형성하였다.

송별시․우언시(寓言詩)에도 뛰어나 우분애원(憂憤哀怨)의 정을

표현하는 수법은 굴원(屈原)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저서에 시문집 《유하동집(柳河東集)》(45권)

《외집(外集)》(2권) 《보유(補遺)》(1권) 등이 있다.

유종원(柳宗元) ( 773 ~ 819 )


 江雪 : 강에 눈은 내리고

자(字)가 자후(子厚)이고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정치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혁신정치가 실패하여 영주사마(永州司馬)로 귀향갔다가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 적지않은 저술활동을 하였고,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영도한 인물로서 문학관은 '도를 밝힌다'는 것이다. 한유와 달리 불교를 배척하지 않고 노장(老莊) 등 제자학설(諸子學說)을 수용하였다. 그의 시는 시경(詩經)과 초사(楚辭) 및 악부(樂府) 등 여러 장르를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산수시가 뛰어나 왕유와 맹호연에 비견된다.

이 시는 영정(永貞)혁신이 실패하여 호남성으로 좌천당해가서 지은 시다. 극심한 정신적 좌절과 고통을 체험하며 산수경치의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산수자연에 은거한 고기잡이 늙은이에 빗대어, 자신의 청고(淸高)한 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정치적 실의와 번뇌에서 헤어나려는 흔적이 보인다. 이 시의 특징은 객관적 세계(자연환경)를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는데 있다. 그래서 시인의 주관적 심정 역시 비교적 적막한 느낌이 들며 고독감 마져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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