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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찾은 매화
1. 사군자 - http://members.tripod.co.kr/dreamcule(신분을 숨기고 허락 없이 내 그림을 가져간 친구)
찬 겨울바람 속에서도
맑은 향기를 풍기는
고고한 품격의 매화
깊은 산골짜기에서
높은 인격의 향을 풍기는
아름다움의 난초
홀로 늦가을 서리 속에 피어
깨끗한 아름다움의 향
지조의 국화
추운 겨울에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절개의 대나무
실로 사군자(四君子)는
사군자(士君子)가 아니던가...
사군자(四君子)란?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회화(繪畵)의 제재(題材)가 되는 매화(梅)․난초(蘭)․국화(菊)․대나무(竹)의 총칭으로서, 이 4가지가 초목이나 꽃 중에서도 기품 있고 고결한 군자와 같다 해서 붙여진 호칭.
많은 문인고사(文人高士)들이 이 4가지 소재를 즐겨 그림으로써 스스로의 청고(淸高)하고 돈아(敦雅)한 정취와 품격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림의 소재가 되기 훨씬 이전에 시문(詩文)의 소재로 등장하였다. <사군자>라는 총칭이 생긴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명(明)나라 때로 추정되는데, 매․난․국․죽의 순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순서에 맞추어 놓은 것이다. 회화(繪畵) 소재로서의 사군자는 대체로 당(唐)나라때 이미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북송(北宋) 시대부터 크게 유행하였다. 1167년에 나온 등춘(鄧椿)의 《화계(畵繼)》에 의하면 북송 때 이미 4가지 식물이 모두 묵화로 그려져 후대 문인묵화로서의 사군자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사군자화는 산수화나 인물화에 비해서 비교적 그리기가 간단하고 서예의 기법을 적용시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기화가(餘技畵家)인 문인들에게는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또한 서예의 필획 자체가 쓴 사람의 인품을 반영한다는 원리의 연장에서 사군자화도 그 화가의 인품을 반영한다고 믿어져 문인화의 가장 적절한 소재로 발달되었다.
중국에서 묵죽(墨竹)을 사대부의 화목(畵目)으로 발달시킨 학자는 북송의 소식(蘇軾)과 문동(文同)인데, 이들은 <흉중성죽(胸中成竹)>을 제창하여 성정(性情)의 의경(意境)을 추구하였으며,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송대(宋代) 문인삼걸(文人三傑)로 꼽힌다. 그리고 역시 북송의 승려화가인 화광중인(華光仲仁)은 묵매화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원(元)나라 때는 몽골족에게 나라를 잃은 한족(漢族)문인들 사이에서 지조(志操)와 저항의 표현으로 널리 애호되었으며, 문인화 이론이 한층 발달하였다. 한편 송나라 때부터 개별적인 화보(畵譜)를 통해 일반에게 보급되었던 사군자화는 청(淸)나라 초기 이후 총괄적인 화보가 발간됨으로써 더욱 널리 유행하였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송․원나라의 영향으로 사대부화가 생기기 시작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묵죽․묵매를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계층은 물론 화원(畵員)들도 사군자화를 많이 그렸다. 그리하여 15~16세기부터는 매․죽의 그림이 청화(靑華)․진사(辰砂)․철사(鐵砂) 백자에 나타나고 난․국도 조금 늦게 백자의 표면그림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사군자화는 중국의 영향하에 발달되었으나, 김정희(金正喜)의 묵란과 묵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작가 개인의 특성이 잘 반영된 독자적인 양식이 수립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동양화의 정신과 기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화목으로 여겨 기본적 수련과정으로서도 많이 그려지고 있다.
매(梅)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서 피는 강인하면서도 고귀한 운치를 그 특성으로 한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도 풍기는 매화의 향기는 맑고 깨끗한 인품으로, 눈 속에서도 아름다운 자태는 봄을 알려주는 선구자적인 뜻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반드시 늦겨울 이른봄의 추위속에 피는 강건한 특성은 훌륭한 덕성을 지닌 군자의 강인한 절개와 지조 및 세속을 초월한 은일로 상징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매화를 가리켜 雪中君子, 淸香, 玉骨, 花御史, 淸客, 世外佳人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매화가 재배되고 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매우 오래 전부터였으나 수묵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북송 때였으며 창시자는 선승인 仲仁이었다. 그는 호남성 華光寺의 주지로 문인사대부였던 蘇東坡, 黃庭 등과 교유하면서 매화를 사랑하고 이에 대한 시를 읊고 지내다가 우연히 창문으로 매화나무의 성근 그림자가 빗겨드는 것을 보고 그 소쇄한 맛이 너무 좋아 붓으로 그 형태를 따라 그리다가 墨梅三味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발생된 묵매화는 같은 禪僧인 妙高에 의해 이론적 체계화가 시도되었으며, 南宋 때에는 꽃잎의 윤곽을 그리는 圈法이 완성되기도 하였다. 묵매의 이러한 전통은 원대에 와서 王, 吳太素 등에 의해 크게 성행되었으며 구도에서 북방식인 形式보다 남방식인 貫式이 더 유행하였다. 명대부터는 화보 등의 출현으로 다소 형식화되었지만 청대에 이르러 金農등의 개성파 화가들에 의해 보다 담채가 많이 곁들어진 화사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매화는 묵죽과 함께 고려 중기부터 그려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각 시기마다 구도와 기법을 달리하면서 독특한 양식으로 전개되었다. 조선 초, 중기에는 선비들의 기상과 밀착되어 고담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후기에는 문인화의 담백한 분위기가 강조되다가 말기에 이르러 趙熙龍 등에 의해 봄의 화사한 계절적 정취와 함께 보다 회화성을 짙게 나타내었다.
난초를 곡선미, 대나무를 직선미로 본다면 매화는 굴곡미에서 그 조형적 특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매화를 그리는 데는 전통적으로 다섯 가지의 필수적인 방법(五法)이 있다. 뿌리는 서로 얽혀야 하고 대목은 괴이해야 하고 가지는 말쑥해야 하며 줄기는 강건하고 꽃은 기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36가지의 병(三十六病)이 있다 하여 한 가지라도 잘못 그리면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기본수련의 중요성과 함께 매화 역시 높은 경지에 들기가 어렵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으로 문제는 형식의 충실한 모방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자신의 감성과 뜻을 얼마만큼 구현시킬 수 있는가에 참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필법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세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매화의 품종으로는 白梅, 紅梅, 朱梅, 時梅, 綠梅, 千葉梅, 九英梅 등이 있다. 그리고 많이 다루어졌던 화제로는 月梅, 雪中梅, 老梅, 羅浮梅, 西湖梅, 庭梅, 梅, 夜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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