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교실

난초(한국문화상징사전)

 蘭草

  어원

  난초는 본디 한자어 ‘蘭(난초 란)’과 ‘草(풀 초)’의 합성어로서, 우리 고유어는 없다. ‘蘭’자가 ‘艸(풀 초)’와 ‘闌(나간 란: 성부)’이 합쳐져 된 형성 문자인 것을 보면, 문자가 형성되기 전부터 ‘난’이라는 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甲骨文이나 鐘鼎文에는 ‘蘭’자가 없고, 漢代의 ‘說文解字’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蘭’이라는 말이 우리 나라에서 사용된 것도 중국 한나라 이후 시기로 추정된다.  <陳泰夏>

  신화

  [변신, 재생] 지리산의 산신인 聖母神 摩耶姑(마야고) 신화가 구전되고 있다.

  마야고는 사랑하는 반야를 기다리면서 나무 껍질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짰다. 그리고 그 베로 옷을 만들어 천왕봉에서 기다렸다. 구름에 휩싸인 반야는 마야고의 앞을 스쳐 쇠별꽃밭으로 갔다. 쫓아가 잡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해, 화가 난 마야고는 만들어 둔 옷을 갈가리 찢어서 버렸다. 그것들은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걸려 나부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마야고는 반야를 현혹시킨 쇠별꽃을 지리산에서는 피지 못하게 하고, 천왕봉 꼭대기에서 성모신으로 좌정하였다. 그 후, 마야고가 찢어서 버린 옷의 실오라기들은 風蘭이 되어 지리산에 서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천왕봉 정상에는 성모신의 석상이 있다.1)

  [여름] 신화 체계에서 난초는 여름의 신인 火星을 상징하며, 번창과 향락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난초를 정성껏 기르거나 그린다는 것은, 풍요의 계절이 여름이듯이 農産의 신을 받드는 행위로 볼 수 있다. <金鍾柱>

  풍습

  [귀녀] 사군자 중에서 대가 남성적이라면, 난초는 여성적이며, 특히 명문의 貴女에 비유된다. 그것은 왕비의 궁정을 蘭殿, 미인의 침실을 蘭房이라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蘭’자를 파자해 보면 ‘艸(풀 초)+門(문 문)+柬(고를 간)’이니, 香草 중에서 고른 명문의 귀녀라는 의미가 된다. 난초 기르듯이, 不淨한 것을 멀리하며 원만하고 청순하게 딸을 기르면 귀녀가 나온다 한다.

  [벽사]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 주고, 잎을 달여 먹으면 해독이 되며, 오래도록 마시면 몸이 가뿌해지고 노화 현상이 없어진다고 중국의 ‘본초경’에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난초 그림을 집 안에 걸어 두고 辟邪를 염원하였다.

  특히 난초를 그리는 법은, 붓끝이 처음에 거꾸로 들어가 못머리를 만들다가, 가볍게 뽑아 약간 누르면서 사마귀 배통[螳螂腹]을 만들고, 붓을 들면서 옆으로 돌려 쥐꼬리처럼 길게 뽑는다.2)

  사마귀는 해충을 잡아 먹는 곤충으로, 지네, 거미 등과 같이 辟邪 동물로 상징된다. 또, 쥐는 十二支神의 첫째로서 음양을 한 몸에 구비한 多産의 대표적 동물이며, 가문의 번창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난초잎을 그리는 마음 속에는 邪惡을 쫓고 貴人이 거듭 나게 하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손 번창] 난초는 자손의 번창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난초꽃이 번창하면 그 집에 식구가 는다.”는 말이 있고, 충북 지방에서는 “꿈에 난초가 대 위에 나면 자손이 번창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말이 전한다. 또, 난초와 관련된 속담으로 “난초에 불 붙으니, 蕙草가 탄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동류의 괴로움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金玟基>

  종교

  [군자, 선인] 유교의 가르침 중에 ‘孔子家語’에서 “芝草와 난초는 숲 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왆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君子는 덕을 닦고 도를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 “착한 사람[善人]과 함께 살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오랫동안 그 향기를 알지 못한다.”고 하여, 지초와 난초를 군자와 대응시키고 있다. 易經에도 “마음이 착하여 나와 서로 잘 맞는 사람의 말은 그 냄새(말의 맛)가 난초와 같다.”라고 한 것은 난초를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으로 인식한 바탕에 근거한 말이다. <宋寯鎬>

  동양 문화

  [아름다움, 상서] 난초는 중국에서 그 문화와 정신적 가치가 부여되어 우리 나라와 일본 등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난초에 대한 문화 상징적 관념은 세 나라가 거의 공통적이다. 세 나라에서 난초가 향기로운 식물로 사랑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것의 한 표본으로 같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淮南子’에는, 남성이 난초를 심으면 외양이 아름답게 자라기는 하지만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남성과 난초가 서로 정이 통하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난초를 여성만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楚辭’의 離騷에는 “가을 난초를 꿰어 패물로 찬다.”라고 하였다. 이 때의 가을 난초는 君子와 같은 인격체의 상징으로 쓰였다.

  그밖에, 꿈에 난초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춘추 시대 정나라 임금 목공의 어머니가 난초를 꿈꾼 후에 목공을 낳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정몽주의 어머니가 난초를 꿈꾸고 나서 정몽주를 낳았다고 전한다. <宋寯鎬>

  역사․문학

  [그윽한 향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아유타국의 공주 許黃玉과 그 일행을 맞이할 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蕙草로 만든 술로 대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말의 문신 李齊賢은 ‘櫟翁稗說’에서 “일찍이 餘杭에 객으로 머물러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난을 분에 심어서 선물하였다. 이것을 서안에 놓아 둔 후, 손님을 접대하고 일을 처리하느라고 그 향기를 몰랐는데, 밤은 깊어 고요해 달은 휘영청 밝고, 난향이 코를 찌르는 듯하니, 맑고 그윽한 향기를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난초는 우리 나라에도 오래 전부터 자생하여 시인 묵객의 사랑을 받았고, 문학 작품에서는 은군자 등 여러 가지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은자] 난초를 즐기는 계층은 일정한 정신적 차원의 생활이 가능한 귀족층이었기 때문에, 우리 문학에서는 매화나 국화, 대에 비하여 적게 다뤄지고 있다. 소재화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난초의 이미지는 대개 관념적으로 답습, 수용되어 왔다.


  그윽한 난초는 이미 시들었으니,

  저무는 해에 누구와 벗을 하랴. <김극기, 유감>


  언덕의 고운 꽃은 산 속에 있어

  맑은 향기 속된 세상에 보낼 길 없네.

  이 다음 숨어 사는 이의 패물이 되리니,

  나무꾼 아이들은 캐어 가지 말라. <박지번, 詠蘭>


  고려 때의 시인 金克己의 작품에서는 그윽하게 자란 난초를 속된 세상에서 떠나 사는 지조 높은 선비의 상징으로 보았다. 박지번3)?의 시에서는 난초를 본질적으로 탈속한 존재로 삼아, 세속을 멀리하고 고아하게 숨어 사는 隱者와 대응시켜 그 인격체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군자] 정도전은 “난초는 그 본질의 됨됨이가 陽氣를 많이 타고 났으므로 그 향기로움의 덕을 君子에 비길 수 있다.”고 하여, 난초를 군자와 대응시켜 그 인격체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미인] 우리 한시에서도 蘭藻(아름다운 글), 蘭質(아름다운 인성 바탕), 蘭宮(아름다운 궁전) 등의 용어를 통상적으로 활용하여 난초를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삼았다.

  [뛰어난 향기]

  玉盆에 심은 난초 一幹一花 기이하다.

  香風 거듭 이는 곳에 십 리 초목 무안색을

  두어라, 同心之人이니, 采采百年하리라. <이수강>


  난은 꽃이 적고 향기가 많으니, 聞香十里라고 함이 반드시 턱없는 한문식의 과장만은 아니다. 난화를 香祖 또는 第一香이라 이름함이 어찌 이유가 없음이랴. <문일평, 호암전집>


  난초의 향기를 꽃 중에서 가장 뛰어난 향기로 표현한 글들이다.

  [깨끗함, 청초함, 고고함]

  幽蘭이 在谷하니, 자연히 (향기가) 듣기 좋구나. <이황, 도산 12곡>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微塵도 가까이 않고 雨露 받아 사느니라. <이병기, 난초 4>


  희끄무레 새벽빛이 열려 오는 장지를 배경하고 유연하게 뻗어 오른 난초잎에 받들려 방금 벌어지고 있는 꽃숭이의 맑음! 이 맑음에 씻기어 나의 주위는 소리 없이 정화되어 가고 있다. 여기 한 송이의 작은 난초 꽃 속에 지금 우주에 흩어져 있던 美의 정기가 와서 괴고 있다. <이영도, 난초 앞에서>


  난초 역시 그 소박한 자질이 너무도 淸楚해서 잎 한 줄기, 꽃 한 송이가 수정처럼 투명하여 塵累를 벗은 듯한 孤高한 모습은 그 드높은 향기와 함께 구름 위에 솟은 선너의 자태를 방불케 한다. <장우성, 盆梅>


  난초의 깨끗함과 청초함, 고고함 등이 잘 표상된 글들이다. < 宋寯鎬>

  현대․서양

  [생식기, 생식력] 난초의 명칭은 그리스어 ‘orchis(睾丸)’에서 유래하는데, 난초의 球根이 고환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꽃의 요염스러움과 몇몇 품종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女陰과 비슷한 꽃받침 때문에 여성을 표상하고, 호화로움을 상징한다. 영국 원산의 난초는 강한 催淫 작용을 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난초는 ‘long purples'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男根의 의미가 숨어 있다.

  ‘자줏빛 난’은 1590년대에 남근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었다. 이와 같이, 난초는 불모지에 생명을 수태시키고 생식력을 도우며, 남성(아버지)의 자격을 보증하거나 여성을 표상하였다.

  [완성․순결] 난초꽃이 정신적인 완성이나 순결을 상징하는 것은 서양에서도 동양에서와 마찬가지이다. <秦炯俊>

  도상

  [군자의 기상, 자손] 난초는 동양에서 四君子라 일컬어지는 草花 중의 하나로, 흔히 군자의 氣像에 비유되었다. 난초 중에서 잎이 구불구불하고 길며, 보랏빛 꽃을 피우는 ‘蓀’이라는 품종은, ‘孫‘과 그 음이 같기 때문에 子孫을 뜻한다. 따라서, 꽃이 핀 난초는 자손을 의미하여 그려지거나 각종 공예 미술에 意匠 소재로 즐겨 다루어졌다. <林永周>

참고 문헌

  일연, 삼국유사

  이제현, 櫟翁稗說

  김규진, 蘭譜

  이어령 편저, 文章百科大事典, 금성출판사, 1988

  김성배, 한국의 민속, 집문당, 1980,

  한상수, 韓國人의 神話, 문음사, 1987

  孔子家語,

  易經

  유안, 淮南子

  굴원, 離騷

  Ad de Vries, Dictionary of Symbols and Imagery,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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