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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
국화는 본디 한자 ‘菊’과 ‘花’의 합성어로서,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隱君子, 重陽花라고도 한다. 고어에서는 ‘국’의 받침이 탈락되어 ‘구화’라고도 한다. 국화의 하나인 당국화를 ‘과’ 또는 ‘과꽃’이라고 하는데, 이는 ‘구화’의 준말이다. <陳泰夏>
무속․민속
[장수의 선약] 민간에서 당굿을 할 때에 국화를 조화로 만들어 사용한다. 본래 당굿이란, 마을의 번영을 위해 마을의 수호신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堂山이나 神堂에 지내는 제사이다. 이런 당굿에 국화가 쓰이는 까닭은, 국화는 장수와 번영의 仙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국화가 이러한 상징성을 지닌 이유는, 옛날 중국의 朱孺子라는 사람이 이를 달여 마시고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가 우리 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국화는 신비한 영약이며, 몸의 기운을 북돋우는 효험이 있다고 믿는다. 달여서 마시면, 오래는 200~300년, 보통은 100년, 못해도 70~80년을 산다는 영약을 생각해 왔다. 그리고 국화에 杞菊延年, 松菊延年이라는 축수의 문구를 부쳐 長壽花로서 잔칫상이나 환갑, 진갑 등에 헌화로 많이 사용하였다. <金鍾太>
풍습
[풀로 장수] 진달래가 봄꽃 중의 여왕이라면, 구고하는 가을꽃 중의 왕자이다. 이러한 국화는 그 종류도 많아 산국화, 들국화, 水菊花, 울릉국화 등 10여 종에 이른다. 또, 霜下傑, 東籬, 東籬君子, 隱逸花, 東籬佳色 등으로도 불린다.
예부터 음력 9월 9일을 重陽節이라 하여, 민간에서는 특별한 음식을 장만해 단풍이 물든 산이나 경치 좋은 계곡으로 나들이를 하였다. 이 때 즐겨 먹는 음식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국화전과 국화 만두, 국화주이다.
국화전은 깨끗이 씻은 甘菊의 꽃에 쌀가루를 묻혀 기름에 부치며, 국화 만두는 밀가루를 물에 풀어 국화 모양의 판에 붓고 팥소를 넣어 굽는다. 국화주는 감국꽃, 생지황, 구기자나무 뿌리의 껍질과 찹쌀을 섞어서 빚은 것인데, 약주를 국화와 함께 넣어 빚은 술에 국화향을 넣어 빚는 방법, 곡물과 누룩만으로 빚은 술에 국화향을 넣어 빚는 방법이 있다. 중양절에 이 술을 마시면 무병 장수한다고 했는데, 궁중에서도 축하주로 애용하였다. 이와 같은 풍습은 고려 가요 ‘動動’의 9월령에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그 역사가 오램을 알 수 있다. 국화주는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병을 없애는 데에 큰 효과가 있다고 믿어 왔다. 그리고 꽃잎을 말려 베갯속에 넣거나 이불 솜에 넣어 그윽한 향기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밖에, 감국 포기 밑에서 나오는 샘물을 국화수라 하여, 이 물을 장기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늙지 않으며, 풍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국화는 不老長壽를 가져다 주는 신령스러운 식물로 여겼고, 약용과 양조용 및 향료로도 널리 사용해 왔다.
[군자] 국화는 매화, 난초, 대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시인 묵객의 사랑을 받아 왔다. 선비들은, 국화가 뭇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하여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는 모습을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즐겨 비겼다. <金光彦>
종교
[유교: 군자, 은자, 지조] 국화는 사군자의 하나로서, 가을 무서리를 맞으며 피어나는 데서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저 그런 풀이지만, 말없이 곧은 그 풍취,
바로 군자와도 같구나.
이런 군자 만날 수 없어
그냥 이 꽃하고나 친하려 하네. <고징후, 국화>
나비 꿈 꾼 장자도 보잘 것 없는 관리로 숨어 살려 하는데,
이내 몸은 누구란 말인가.
언제나 국화 피는 계절만 맞으면,
부질없이 歸去來만 읊으니. <안승렴, 국화>
고징후는 국화의 곧은 품위가 군자와 같음을 노래하고, 안승렴은 국화를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은자에 비유하고 있다. 국화가 ‘은둔하는 선비’의 이미지로 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화야, 어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나고
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위의 시조는 傲霜孤節, 즉 서릿발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를 노래하였다. 이것은 유교적 관념에 비추어 볼 때, 義를 지켜 꺾이지 않는 지조로 일관해 온 선비 정신과 부합된다.
[불교: 색과 공의 표상물] 불교에서는 만물의 生沒을 色이 곧 空인 이치로 인식하듯이, 국화도 그러한 의미의 지시물로 표현되고 있다.
지난해 처음 뜰 앞에 국화를 심고,
금년에 또 난간밖에 소나무를 심었네.
산 속의 중이 화초를 사랑해 이들을 심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색이 곧 공임을 알게 하고자 함이네. <휴정, 栽松菊>
휴정은 국화를 그 자체만의 특별한 의미로서가 아니라, 불교에서 일상의 사물을 심오한 교리의 지시물로 사용해 온 예를 좇아 색(현상)은 곧 공(본질)이라는 이치를 깨우치려는 지시물로 활용하고 있다. 고려의 혜심이 “9월 9일에 국화가 새로 핀 것은 시절의 인연이 눈앞에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국화 또한 ‘色則空’의 사실을 표본적으로 표상, 지시해 주는 물질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도교: 불로 장생] 중국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주유자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국화주를 담그기 시작하였다. 국화주를 담가 1년 후에 마시면 不老長生한다는 믿음이 도교의 신선 지향 사상과 연결되었다. <宋寯鎬>
동양 문화
[중국: 은자] 국화의 생산지는 원래 중국이다. 그래서 국화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나 관념은 일찍이 중국에서 형성되었다. 이런 국화가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 충숙왕 때인 것으로 ‘養花小錄’에 기록되어 있다.
문화의 이식 과정에서 중국의 국화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또 선인들은 이를 적극 수용하였다. 국화의 상징성은 중국과 우리 나라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陶潛이 국화를 사랑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그는 항상 국화를 뜰에 심어 두고 즐겼다고 한다. 또, 周敦頤의 ‘愛蓮說’에서 ‘菊花之隱逸者也’라 하여 은둔하는 선비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일본: 존엄성] 일본에서의 국화는 왕실의 紋章으로서 존엄성을 나타낸다. 벚꽃이 일본의 국민성을 상징한다면, 국화는 그들이 정신적 지주인 왕실을 상징한다. 그들의 일등 공로 훈장이 국화 문양으로 구성된 점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宋寯鎬>
역사․문학
[고고함] 고전 문학에서 형상화된 국화는 인간이 그 품격을 부여한 사군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매, 난, 죽과 함께 군자의 품격을 상징하고, 작자 스스로도 그 품격을 본받으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음의 작품은 이러한 것의 전형을 보여 준다.
구월 찬 서리에 온갖 풀이 다 시들었는데,
노란 국화 홀로 피어 동편 울타리에 가득하다.
나는 알았네, 도연명이 국화를 사랑한 이유를,
그 고상한 품격 때문이지 자태가 아니라는 걸. <이덕함, 국화>
[망향] 국화의 고고한 품격은 조선 시대의 식자층이나 사대부 문인 사이에서 통용된 사색의 소산이다. 민간에서는 국화를 가을 들판이나 야산에서 피어나 사람 가까이에서 사는 꽃으로 본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에게는 문득 고향을 생각게 하는 望鄕草이기도 하였다.
가을 하늘이 엷게 흐리니,
華嶽의 그림자도 침침하구나.
한 무더기 국화는 타향의 눈물,
외로운 등불은 이 밤의 마음. <백대붕, 秋日>
[인고] 현대 문학에서 소재로 주로 쓰이는 국화는 오랜 세월, 격정과 고통을 견디어 낸 성숙한 인간의 인고를 상징한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서정주, 국화 옆에서>
인간과 자연의 온갖 노력과 기다림과 그리움이 하나가 되어 마침내 한 송이 국화가 완성된다는 것은, ‘누님’이라는 인생적 측면과 아울러 국화의 인고가 더해져 상징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宋寯鎬>
현대․서양
[평화, 풍요] 국화는 중국에서는 長壽를, 일본에서는 태양을 상징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평화와 풍요, 富, 거룩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국화는 가을에 피는 대표적인 꽃이며, 가을은 한여름의 뜨거운 노동의 시간을 거쳐 곡물이 무르익고 수확을 하는 풍요의 계절이며 겨울의 평화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 국화는, 가을이 주는 평화와 풍요에서 오는 부를 상징하며, 노동의 결실에서 우러나는 거룩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서양에서 국화를 장례식 때에 사용하는 이유도 망자의 평화로운 휴식을 기원하는 데에 연유한다. <徐廷基>
도상
[공예품의 전형 문양] 국화는 고려 이후 각종 공예품에 많이 사용된 문양의 소재이다. 고려 청자 상감 국화문은 한적한 가을의 들국화를 묘사하고 있다. 또, 조선 시대(16세기 경)에 성행한 분청 사기 국화 印花紋도 고려 상감 청자 국화문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 시대 螺鈿漆器에서도 같은 소재가 나타나고 있다.
[은일] 조선 시대에는 宣祖 때의 재상 李山海와 李瑀 등이 국화를 즐겨 그렸다. 조선 후기에는 화원 중에 鄭敾, 張承業 등 유명한 화가를 비롯하여 裵文典, 金容鎭, 金有澤 등이 四君子를 잘 그렸다. 국화는 隱逸하는 선비에 비유되었다. 陶潛이 ‘歸去來辭’를 읊고, 동쪽 울타리 아래에 국화를 심어 두고 남산을 바라보며 自適한 은둔 생활이 대표적이다. ‘菊(jú)‘이 ’居(jū)‘와 중국 음이 비슷한 데서 隱居를 뜻하게도 되었다.
[화목과 장수] 민화 중에는 국화에 새가 날아드는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국화가 핀 뜰에 참새가 날아드는 그림은 온 집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새는 까치와 같이 기쁨을, 국화는 壽를 뜻한다. 또, 怪石에 층층이 벌여 피어 있는 국화를 그린 그림에서, 바위 또한 장수를 의미하므로 高壽와 益壽(오래 삶)를 뜻한다. <林永周>
참고 문헌
眞覺國師語錄
강희안, 養花小錄
임동권, 韓國民謠集, 집문당, 1974.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74.
이태극, 韓國名時調選, 정음사, 1982.
이창복, 大韓植物圖鑑, 향문사, 1982.
김종길, 이어령 감수, 우리의 名詩. 동아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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