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교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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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배운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 자연 거스르지 않는 삶에서 군자의 ‘지조’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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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속에서 피어나는 봄의 전령사 ‘매화’, 깊은 산중 물가에 고고하게 피어 청초한 향기를 내는 ‘난초’, 늦가을 찬바람 부는 벌판에 피어 은사(隱士)의 풍모를 풍기는 ‘국화’, 현자의 모습으로 지조·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예로부터 선비와 군자들이 사랑한 ‘사군자’로 현재까지도 이들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다른 봄꽃을 깨우는 ‘봄의 선구자’ 매화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는 봄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차가운 돌같이 딱딱한 엄동 속에서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매화는 실로 선구자적 성품과 상통한다.

특히 겨울 동안 마치 죽은 용의 형상과 같은 고목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은 늙은 몸에서 정력이 되살아나는 회춘을 상징하는데, 고목일수록 더 운치가 있고 더 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그윽한 향기를 피운다.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해 얼음과 눈보라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의연한 기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매화의 내한성(耐寒性)이라는 생태적인 특성이 이를 가능케 한다. 바람·서리·눈·추위에 특유한 저항력을 지녀 싸늘한 겨울 삭풍과 한설에 온갖 초목이 모두 잎을 떨구고 있을 때 그 추위를 무릅쓰고 홀로 꽃을 피워 이른 봄을 장식한다. 우리 조상들은 매화의 이러한 내한성 즉, 자연에 대한 저항성과 분투정신을 높이 찬양했고 절조·절개는 물론, 나아가 충정·군자·은사 등의 상징성을 파생했다.

매화의 두 번째 특성은 바로 ‘조개성(早開性)’에 있다. 여느 식물은 꽃 피울 엄두도 못 낼 때 매화는 홀로 제일 먼저 고고하게 꽃을 피우는데 조상들이 매화를 특별히 좋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매화의 생태적 특성이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유교적인 윤리관과 자연주의 정신이 결합되면서 매화를 가장 이상적인 꽃으로 만들었다.  

매화의 아칭, 즉 별명만 봐도 매화의 매력을 알 수 있다. 이른 봄 다른 꽃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의 미덕에서 비롯된 화형(花兄)은 먼저 피는 것이 형이 된다는 해석이고, 화괴(花魁)·백화개(白花魁) 등에서 말하는 ‘괴’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매화나무 특유의 외관이나 색깔·향기에서 나온 소영(疎影)·암향(暗香) 등도 있다.

 

형용할 수 없는 향기로 말하는 난초

동양란은 서양란에 비해 색채도 화려하지 못하고 크기도 작지만 대부분 청초한 아름다움과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매력이다.

난초를 소재로 한 시에서는 그 청초한 모습을 칭송하고 있는 것 외에 은은하면서도 그윽한 향기가 많이 등장하곤 한다. 난초 향기의 특징을 글로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선인들은 난초의 향기를 국향(國香), 제일향(第一香), 왕자향(王子香)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난초는 꽃다운 향기가 있는 꽃이나 식물의 표상이 되어 왔을 정도다.

난초는 그 꽃의 모습이 고아할 뿐만 아니라 줄기와 잎도 청초하고 향기가 그윽해 어딘지 모르게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범상치 않는 기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난초의 이러한 모습을 군자나 고고한 선비에 비유했던 것이다. 난초가 국화나 솔·대나무·매화 등과 같이 군자로 존칭되는 것은 속기를 떠난 산골짜기에서 고요히 남몰래 유향을 풍기고 있는 그 고귀한 모습에 유래하는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난초는 군자 중의 군자로 불린다.

그 이유는 솔은 향기가 적고, 대나무는 꽃이 없으며, 매화는 꽃이 필 무렵 잎으로 볼 수 없지만 동시에 꽃과 잎 그리고 향기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은 수선과 국화 외에는 난초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난초는 속세의 티끌에 접촉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인지, 깊은 산중 바위로 이뤄진 골짜기의 물가에 홀로 피어난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요염한 모습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요기는 추호도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고고한 자태로 은은한 행기를 뿜어 지조 높은 덕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찬바람 부는 가을에 고고하게 피는 국화

사귀어 이로운 세 가지 벗을 ‘삼익우(三益友)’라고 하는데 솔·대나무·매화가 이들이다. 여기에 국화가 제외된 이유는 국화의 고귀함을 인정하면서도 ‘은일자(隱逸者)’라는 성격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국화는 은군자(隱君子) 또는 은사(隱士)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찬바람 부는 가을에 고고하게 피는 국화
국화는 다른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해 황량한 늦가을에 고고하게 피어난다. 자연의 현상에서 인생의 진실을 배웠던 우리 선조들은 늦가을 찬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외롭게 피어난 그 모습을 보고 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사는 은사의 풍모를 느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꽃의 외적인 화려함보다는 꽃에 담긴 덕(德)과 지(志)와 기(氣)를 보다 중시했는데, 국화는 일찍 심어 늦게 피니 군자의 ‘덕’이요, 서리를 이겨 피니 선비의 ‘지’며, 물 없이도 피니 한사(寒士)의 ‘기’라 하여 이를 국화의 삼륜이라 했다.  

이외에도 국화에는 오상(傲霜), 상하걸(霜下傑), 세한조(歲寒操) 등의 별칭도 있는데, 이는 늦은 가을에 다른 대부분의 꽃이 시들고 난 후에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꽃을 피우는 국화의 내한성에 연유한 것이다.

이 같은 국화의 생태는 오랜 세월 격정과 고통을 견디어 낸 인간의 인고와 희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살아가는 기골 찬 인물에 비유되기도 하고, 온갖 유혹과 무서운 고초에도 굴하지 않는 충절과 여인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만년을 맞으면서 구겨짐 없이 성스러운 생활 태도를 지녀 존경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인물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런 이미지는 일단 국화는 험한 환경에 강한 꽃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한기에 시달리면서 개화한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은 것이다. 시인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도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또한 국화는 그해의 꽃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피는 꽃이다. 일반적으로 국화의 색깔이 황색인 것과도 연관이 있는데, 황색은 수확의 색으로 가을을 ‘황금의 계절’이라고도 표현해 온 만큼 성숙 이상의 최고단계를 일컬음을 알 수 있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 대나무

사군자로 불리는 매화에는 엄한 고담미(枯淡美)가 풍기고, 국화와 난초에는 그윽한 정적미(靜寂美)와 은밀미(隱密美)가 느껴지는데, 대나무는 어딘가 맑고 깨끗하고 상쾌한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대나무는 같은 군자라고 할지라도 은사적이거나 성자라는 측면보다는 현자(賢者)로서의 풍모가 더 나타난다. 즉 대나무의 우아한 곡선과 날씬한 형은 현자의 상인 동시에 예지의 모습을 상징한다. 또 밑으로 숙인 대나무 잎과 비어 있는 대나무 내부는 겸손한 마음과 비유되어 덕을 겸비한 선비로 상징된다.

대나무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지조·절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대나무 줄기는 곧게 뻗고 마디가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마디와 마디 사이는 속이 비어 있어 대통을 이루며 마디는 막혀 있어 강직함을 유지한다. 또한 줄기는 옆으로 빗나감 없이 세로로 잘 쪼개지며, 그 잎은 사시에 푸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선비의 강직한 성품이나 정숙한 부인의 곧은 절개를 흔히 대나무에 비유했다.

예를 들어, ‘대쪽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대를 쪼갠 듯이 곧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불의나 부정과는 일체 타협하지 않는 지조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다리를 선죽교(善竹橋)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나 을사조약 때 민영환이 자결한 곳에 혈죽(血竹)이 돋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그들의 절개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 부인들이 정절을 상징하는 ‘송죽 같은 절개’ 역시 신랑·신부 두 사람의 마음이 송죽같이 변하지 않고 절개를 지킬 것으로 다짐하는 의미로, 전통혼례의 초례상에 송죽이 장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대나무는 성질이 너무 곧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음력 5월 13일 ‘죽취일(竹醉日)’에는 대나무도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옮겨 심어도 뿌리를 잘 내린다고 알려지고 있다.   글|강재옥 본지 기자


참고자료·도움말|『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및 저자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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